1장
방금 비가 내린 도로는 흥건하게 젖어있었고 비는 한차례 더 내릴 것 같았다.
나는 하품이 나왔다. 걸어가는 길은 공기도 습했고 내 앞엔 비를 피할 곳도 마땅치 않아 보였다.
"xx아, 너 귀 먹었어?"
갑자기 뒤에서 잡소리가 나면서 누군가 내 멱살을 홱 잡아당겼다.
사면이 각진 얼굴이 눈앞에 나타나더니 삼백안을 부릅뜨고 건방진 태도로 나를 쳐다보았다.
"네놈이 내 아우를 때렸다고?"
"니가 누군데?"
"내가 누군진 알 필요 없어, 오늘 난 너에게 가르침을 주려고 온 거니까……"
"그런 거라면 썩 꺼져."
저놈의 쓸데없는 말을 듣기가 싫어서 바로 그의 배를 걷어찼다. 덩치가 꽤 커서 이렇게까지 약골일 줄은 몰랐는데. 나는 그의 손을 잡아당겨 주먹으로 그의 얼굴을 몇 번 더 때렸다. 뒤에 있는 놈들이 상황을 지켜보더니 명령에만 복종하는 굶주린 개처럼 떼거지로 달려들었다. 나는 가방을 그들에게 던지고선 발로 걷어찼다.
나를 귀찮게 하는 놈들은 항상 똑같은 소리를 해댔다.
"너 이 xx 죽고 싶어?"
"너 이 xx ! 우리 첸 형님이 네놈을 절대 용서치 않을 거야!"
"그래서 니들이 누군데?"
왜 매번 솔선수범해서 찾아오는지는 모르겠지만 저놈들 덕분에 시간을 때울 수 있었다.
연달아 날아오는 주먹들 중 일부는 피하거나 혹은 상대방을 때리기 편하게 맞기도 했다. 이런 식으로 수도 없이 싸우다 보니 여러 경험들을 통해서 머리보다 몸이 반응을 더 쉽게 기억한다는 걸 깨달았다. 어찌 됐든 상대보다 더 많은 펀치를 날리면 이기는 거였다. 기억도 나지 않을 만큼 주먹질을 하고 나니 내 앞엔 그 누구도 서 있지 않았다.
바닥에서 몸부림치며 울부짖는 사람들을 바라보다가 그들을 무시한 채 구석에서 구겨져있는 가방을 찾아 등에 멨다.
다리에서 힘이 빠지고 시야도 흐렸지만 더는 그곳에 머물고 싶지 않았다.
*
어디로 가야 할지도 알 수 없었지만 나는 그냥 학교에 있고 싶지도, 그 집으로 돌아가고 싶지도 않았다.
"너……백기 맞지?"
"꺼져."
뒤에서 누군가 시끄럽게 굴었지만 나는 고개를 돌리지도 않고 계속 앞을 향해 걸어갔다.
"백기, 너 나 못 알아보겠니? 다이 아저씨란다."
순간 나는 땅에 못이 박힌 것처럼 굳어버렸다.
고개를 천천히 돌리자 멀지 않은 곳에서 자상한 얼굴로 마트 봉지를 들고 서 있는 남자가 보였다. 또한 그는 내 얼굴을 보고 놀라서 얼어붙은 것 같았다.
*(회상)*
"다이 삼촌, 발사믹 식초 한 병 주세요."
"오늘도 네 엄마가 맛있는 거 만들어주신다니?"
"엄마가 삼계탕이랑 감자를 곁들인 갈비찜을 해주셨는데 추류배추(식초를 넣은 배추볶음)를 만들던 도중에 식초가 떨어졌어요. 삼촌 서둘러요, 집에선 끓고 있는 중이란 말이에요."
"오냐오냐, 녀석 조급해하기는."
"그냥 가져가렴, 돈은 다음에 가져다주면 된단다, 괜히 네 배추볶음 망칠라."
"넵(好嘞; 털털한 느낌의 ok)! 고마워요 삼촌."
*
그제야 비로소 나는 천천히 주위를 둘러보았다. 조금 비탈진 길의 도로 우측에 철물점이 멀지 않은 곳에 있었다.
포장마차의 튀김 팬에선 기름이 뚝뚝 떨어지고 있었고 71번 버스에 이어 413번 버스가 그 뒤를 따라 지나갔다. 몇 백 미터만 더 가면 육교를 지나치게 되겠고. 그럼 집으로 갈 수 있었다.
"분명 너일 거라고 생각했어. 너희 집 일은……아니다, 그 얘긴 하지 말자, 그나저나 넌 왜 온몸이 상처투성이니?"
"어서 나랑 집에 가자꾸나. 마침 이모도 집에 있으니까 치료해 달라고 할게."
그는 자연스럽게 내 팔을 잡아당기며 앞으로 걸어갔다.
무언가가 내 이마와 눈가를 흘러내리면서 눈앞에 있는 사람과 함께 화면을 새빨갛게 만들었고.
진흙으로 얼룩진 바짓가랑이와 멍이 시퍼렇게 든 손이 보였다. 나는 소스라치게 놀라 그의 손을 뿌리쳤다.
"사람 잘못 보셨어요."
"너 이 녀석 무슨 소릴 하는 거……"
"사람 잘못 보셨다고요!!"
*
그가 입을 다시 떼기도 전에 나는 온 힘을 다해 반대 방향으로 내달렸다. 나는 무언가에 붙잡힐지도 모른다는 두려움 때문에 감히 뒤를 돌아볼 엄두도 내지 못했다.
나는 더 이상 그 거리의 아이가 아니었다. 엄마도 지금의 나 같은 아이는 원치 않으시겠지.
나는 필사적으로 어떻게든 이런 것들을 감추고자 애쓰며 고개를 푹 숙인 채 반대 방향으로 달려 나갔다.
그런데 이런 때에 싸움을 걸어오는 놈들도 없었다. 정신을 차렸을 땐 나는 이미 예전에 자주 가던 작고 허름한 체육관으로 뛰어가고 있었고 그곳에는 평소처럼 망가진 농구공 몇 개가 옆에 놓여 있었다. 피로와 함께 통증이 몰려왔지만 나는 농구공을 더욱 세차게 휘두르며 온 감각을 다 동원해 공을 던졌다. 러닝, 드리블, 레이업……이와 같은 과정을 몇 번이나 반복했는지도 모르겠던 때. 마침내 비가 내렸다.
*
내가 언제 집에 들어왔는지도 잊어버리고 아무렇게나 상처를 닦고 바닥에 앉아 흰색 벽이 어두워지고 밝아지는 것을 지켜보았다.
*
"엄마, 저 갈게요!"
"오늘 아침 1교시에 받아쓰기하는 거 아니니?"
"어서 내려오렴! 버스 온다!"
창밖의 소리가 새어 들어와 내 몸을 감쌌다.
나는 일어나서 가방을 메었다.
학교 갈 시간이었다.
2장
학교에 가는 건 따분한 일이었다.
선생님들은 지루하고 식상한 이야기들만 하는 데다 어떤 사람들은 눈앞에 있지만 그들의 눈에는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보였다. 누군가는 계속해서 쳐다보거나, 안 보는 척하며 수군거렸다. 나는 신화 속의 괴물처럼 조용히 있었다. 덕분에 아무도 시끄럽게 굴지 않아서 좋네. 나는 내 자리에 앉아 가방을 벽 쪽 구석에 놓고 그대로 책상 위에 엎드렸다. 교실에서 자면 좋은 점이 많았다. 선생님의 목소리는 잠자기 딱 좋았고 교실은 항상 조용하니 훼방을 놓는 사람도 별로 없었으니까. 나와 그들 사이에는 서로를 가로막는 보이지 않는 막이 있는 것처럼 그들은 내게 다가오지 않았고 나도 다가가지 않았기 때문에 오히려 우리 모두는 평화롭고 조용한 시간을 보낼 수 있어서 좋았다.
*
팔을 굽히며 하품을 했더니 통증이 서서히 가셨다.
이내 졸리기 시작했다.
"그쪽으로 가지 마……쟨……"
"이……숙제는……"
"……기……친구?"
무슨 소리가 들리는 것 같았지만 정신이 몽롱해서 잘 들리지 않아 머리를 털어 내고 고개를 들었다.
"뭐야?"
"미안해!!"
제대로 보기도 전에 한 여학생이 황급히 고개를 숙이고 재빨리 무언가를 쌓아 올리고는 도망쳤다.
어이가 없어 엎드려 다시 잠을 청하려고 하는데 주변에서 알아들을 수 없는 소리가 조용히 들려왔다.
"방금은 수학부장이 숙제를 달라고 한 것뿐인데 그렇게 무례하게 굴 필요는 없지 않아?"
한 남학생이 책상 몇 개를 사이에 두고 일어서서 나를 바라보았다.
나는 그가 누군지도 모르겠어서 대꾸도 않고 다시 또 엎드렸다.
*
내가 방금 한 건 그녀가 나에게 뭘 원하는지 물었던 것뿐이었잖아?
"너……"
"됐어, 쟤 건드리지 않게 조심해……너까지 때릴지도 몰라."
"다음 묘인걸이라도 되고 싶은 거야?"
너희들은 묘인걸이 되지 않는 게 좋겠지. 나는 하는 수 없이 마음속으로 한마디 중얼거렸고 끝내 목소리가 다시 잦아들면서 조용히 잠을 잘 수 있게 되었다.
*
"백기 학생, 백기 학생! 잠깐만 기다리렴!"
체조시간을 피하기 위해 학교 옆 건물 복도에 있는데 갑자기 누군가 뒤에서 내 이름을 계속 부르는 것 같았다. 짜증이 치밀어서 돌아서는데 안경을 쓰고 빡빡 깎은 머리를 한 청년이 들뜬 표정으로 주먹을 휘두르며 나를 향해 달려오는 것이 보였다. 싸우려는 거였나. 주먹을 불끈 쥐고 그의 다음 행동을 경계하며 지켜보는데 그때 매우 쾌활한 소리가 들렸다.
"백기 학생, 널 오랫동안 지켜보았단다. 혹시 우리 학교 농구팀에 들어오지 않을래?"
"……네?"
나는 그 사람이 기뻐서 어쩔 줄 몰라하는 것을 보고 그 자리에서 멍하니 있었다.
"어젯밤에도 새로 지은 수로 쪽에 있는 야외 농구장에서 농구하지 않았니?"
"넌 몸이 원체 좋은 데다 키도 크니 포워드도 할 수 있을 거야. 학교 대표팀에 들어가면 성적이 좋지 않아도 괜찮으니 우리......."
"당신이 누군데요?"
그가 말하는 모든 말들이 헛소리처럼 들려서 그만 청산유수처럼 나오는 그의 말을 끊어버렸다.
"내 소개를 잊었네. 나는 체육 선생님이야, 성은 쳉이야, 창창대로 할 때 그 쳉, 그냥 쳉 선생님이라고 불러주면 돼."
".......쳉 선생님."
"그래그래, 나는 지금 우리 학교 농구팀을 전담하고 있고, 지금 우리 팀에는……"
"관심 없어요."
나는 그가 하는 쓸데없는 말을 듣기 싫어서 뒤돌아서 떠났지만 여전히 내 뒤에서 쫑알대는 소리에 짜증이 계속 치밀었다.
"제가 누군진 알아요?"
"워낙 유명하니 당연히 알지!"
"그렇지만 농구팀에 들어오면 너는 엄연히 팀의 일원이 될 테니 앞으로 걱정 말고 농구만 하면 돼."
"우리 팀엔 실력 좋은 친구들도 많으니 열심히 하면 전국 대회에도 진출할 수 있을지도 몰라!"
"난 네가 틀림없이 할 수 있다고 생각해! 넌 분명 코트 위에서 득점왕이 될 수 있을 거야. 학교에서 뭔가 해보고 싶지 않아? 나는……"
"지금 당신이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 알긴 해요?"
새로운 형태의 장난인지 아니면 사람을 농락하려는 수법인지는 모르겠지만 그가 말을 할 때마다 짜증이 더욱더 치밀어 오르는 것만 같았다. 늘 두려움과 도발로 가득 찬 선생님들의 눈빛에 반해 여기 이 선생님의 눈빛은 유난히 거슬렸다.
"전 관심 없다고 했어요."
"백기 학생, 정말 진심으로 제안하는 거야!"
"난 백기 학생이 가장 적임자라고 생각해!"
쿵!
나는 더 이상 그와 쓸데없는 말을 주고받고 싶지 않아 주먹으로 옆에 있는 벽을 내리쳤다.
"한 번만 더 귀찮게 굴면 다음번엔 당신을 팰 겁니다."
*
늘 그렇듯 점심시간이 끝나갈 무렵에야 식당으로 갔다. 먹을 건 별로 없었지만 사람이 많지 않아서 좋았다.
나를 쳐다보는 이상한 시선도 별로 없었다. 동물원의 구경거리가 되는 건 사양이니까.
"왜 이제야 온 거니? 식기 전에 어서 들렴, 닭고기 좀 남겨뒀단다."
"...... 고맙습니다."
보통 내가 거의 마지막으로 식사를 하는 학생이라서 그런 건지 아주머니는 날 알아보시고는 매번 큰 그릇에 음식을 가득 담아주셨다. 작은 산더미처럼 음식이 담긴 식판을 들고 구석자리로 옮겨 따뜻한 음식을 먹으니 공복 상태의 위가 데워지면서 내일 점심까지 버틸 수 있을 것 같았다.
*
"난 백기 학생이 가장 적임자라고 생각해!"
"학교에서 뭔가 해보고 싶지 않아?"
*
"……"
그 청년의 말이 이유도 모른 채 다시 울려 퍼지면서 입안에 있던 스크램블이 맛을 잃었다.
"농구를 해봤자 무슨 의미가 있겠어?"
고작 취미일 뿐이잖아, 강해지지도 못하고 Evol을 바꿀 수도 없잖아.
그리고 나 같은 사람이 뭘 할 수 있겠어?
이 질문에 대한 답은 없는 것 같기도 하면서, 이미 답이 나와있는 것 같기도 했다.
배는 불러왔지만 그래도 모든 음식을 다 먹고 식판을 조리대 위에 올려놓았다.
점심시간이 끝나기까지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기에 나는 몸을 쭉 펴고 교실로 향했다.
*
오후 1교시는 수학 시간이었던 것이 기억났다. 타오 할멈은 나를 맘에 들어하지 않았다.
수업을 빼먹으면 담임 선생님과 교감 선생님을 찾아가 한참이나 투덜댔기 때문에 그녀의 신경을 거슬리게 하고 싶지 않았다.
*
나는 한 손으로 턱을 괴고 창밖으로 구름이 모였다가 흩어지는 것을 바라보았다. 타오 할멈이 무슨 말을 했는지 교실 전체가 순식간에 웃음바다가 되었다.
나는 저곳에 속해있지 않았다.
그럼 나는 어디에 있어야 할까?
오후의 햇살이 따뜻하게 안아주듯이 들어와 눈꺼풀이 점점 더 무거워졌다.

나는 들키지 않게 이어폰을 끼고 엎드려서 모든 사물로부터 나를 고립시켰다. 눈을 감아도 햇빛은 여전히 눈부셔서 망막을 흐리게 만들었다. 연습장과 교과서를 앞에 쌓아두고 책 한 권을 집어 머리 위에 올려놓으니——완벽했다.
"이 코사인 정리를 이용하면 a의 제곱은 b 제곱과 c의 제곱을 더한 값에서 2bccosA를 뺀 값과 같고......"
음악 사이로 들려오는 열정 가득한 지식들의 향연이 여전히 간헐적으로 들려서 나는 볼륨을 조금 더 높였다.
"백기 학생, 널 오랫동안 지켜보았단다. 혹시 우리 학교 농구팀에 들어오지 않을래?"
이유는 몰라도 그 선생님의 목소리가 다시 들려오는 것 같았다.
햇빛은 따사롭고 바람이 불어오면서 나는 잠에 들고 있다는 걸 깨달았다.
*
"Nice!"
얼굴도 잘 보이지 않는 어떤 남자가 농구 유니폼을 입고 내 앞에 서서 다섯 손가락을 내밀고 웃고 있는 듯했다.
"뭘 망설이고 있는 거야, 하이파이브도 몰라?"
"……웬 하이파이브?"
"바보 같기는! 우리 오늘 경기 이겼잖아! 어제 잠 제대로 못 잤어?"
그는 적극적으로 내 손바닥을 한 대 후려친 후 팔을 내 목에 감고 무척이나 바보같이 웃었다.
"우리? 이겼다고?"
"주장 쟤 표정 좀 보세요. '시합 한 번 이겼다고, 전국대회에서 우승했다고 생각하는 것 같아.'라고 말하는 것 같지 않아요?"
"패도 되냐?"
온 세상이 웃고 있는 것 같아서 나도 그만 따라 웃을 수밖에 없었다.
꿈을 꾸고 있다는 걸 알고 있었다. 깨끗한 체육관에 들어선 내 모습이 보였다, 위아래로 점프하면서 슛을 던지는 내 모습이 보였다. 아주 밝은 무언가가 보였다.
3장
"백기야, 와서 팀 구경 좀 해봐. 와서 보면 분명 네 마음에 들 거야."
"맞는 게 무섭지도 않아요?"
"……그건 지금도 무섭긴 하지."
며칠간 모처럼 조용했던 오후는 또다시 박살이 나고 말았다. 옥상에는 한 사람이 더 늘었을 뿐이지만 유난히 붐비는 것 같았다.
"그런데 말이야 너희 학생들끼리의 사소한 다툼은 별것도 아니야……"
"……"
도대체가 이 사람이 지나치게 이상적인 건지 아니면 지나치게 순진한 건지 모르겠다.
계속되는 잔소리를 피하기 위해 나는 아예 남아있는 수업들을 제껴버렸다.
*
길을 걷는데 날씨도 좋아서 뭔가 설명할 수 없이 기분이 경쾌했고 왼쪽 가슴이 뭔가 부풀어 오르는 느낌이 들었다.
"학교 대표팀?"
손으로 공을 때리는 자세를 취하고 제자리에서 공을 드리블하다가 부드럽게 점프해 손목을 휘둘렀다.
나 같은 사람도 정말 학교 대표팀에 들어갈 수 있을까?
하지만 그 질문에 대한 답이 나오기도 전에 한 무리의 사람들이 쇠몽둥이를 들고 나에게서 몇 미터 떨어진 곳에 멈춰서는 것을 보았다.
"즐거워 보이네."
리더는 낯이 익었지만 어디서 만났는지 기억이 나지 않았다.
"전에 빚은 서로 합의가 안 됐지? 우리 첸 형님에게 우리가 빚을 졌다고 하니 네놈한테 관심이 생겼나 모양이야, 가서 얘기 좀 나눠봐."
쇠파이프가 바닥에 끌리면서 끽끽하는 소리가 났다. 이를 악물고 찡그리고 있는 그의 얼굴이 유달리 우습게 보였다.
"나를 보고 싶은 거면 혼자 오라고 해."
"내 말을 안 듣겠다는 거지?"
"꺼져."
나는 그와 말을 섞고 싶지가 않아서 발로 걷어찼다.
내 뒤에 있는 사람들이 나를 둘러싸고 있었고 이런 장면은 익숙하다 못해 반갑기까지 했다.
몸이 본능적으로 주먹을 휘둘러 그 낯설고 공허한 얼굴을 패버렸다. 상대는 많았지만 그들은 고통을 두려워했다.
나는 두렵지 않아. 그래서 나는 늘 일어날 수 있었다.
싸움은 아주 간단했다. 눈앞에 있는 사람만 보면 아무 생각도 할 필요가 없었다.
모든 망설임과 복잡한 생각들은 모두 뒤로하고 마치 처음부터 존재하지 않았던 것처럼 잊어버릴 수가 있었다.
*
바닥에 있는 사람들은 울부짖고 있었고 나는 전혀 상관없다는 듯이 자리에서 일어나 비틀거리며 몇 걸음 내딛다가 누군가에게 떠밀렸다. 고개를 들어보니 더 많은 사람들이 서 있었다. 온몸에서 악취가 나는 듯한 붉은 머리의 남자가 얼굴을 일그러뜨리고 누런 이를 드러내며 웃었다.
"이 동네에 대단한 녀석이 있다고 들었는데 그게 너일 줄은 몰랐네."
"내 이름은 자오첸, 사람들은 날더러 첸 형님이라고 부르지. 백기 형제, 실력이 꽤 좋은 것 같은데 나랑 같이 일해볼 생각 없어? 잘 먹고 잘 마실 거라고 약속하지……윽!"
나는 그에게 한 방 먹였다.
"헛소리는 개에게나 들려주지 그래?"
(백기가 자오첸을 거의 음식물 쓰레기마냥 취급해서... 음식물 찌꺼기...를 개에게 주지 그래? 라는 의미도 통할 듯한)
그는 핏물을 한 모금 내뱉었고 나는 고개를 돌려 다시 주먹을 휘둘렀다.
하지만 그는 파리마냥 더 많은 사람을 데려왔다.
들고 있던 쇠몽둥이를 떨어뜨렸는데 통증을 느낄 수 없는 데다 힘이 서서히 빠져나가면서 팔은 무거워서 도무지 들어 올릴 수 없는 상태였다. 나는 바닥에 쓰러지면서 왼쪽에 있는 사람과 오른쪽에 있는 다른 사람에게 몸이 들리는 것을 느꼈다.
누군가 갑자기 내 앞머리를 세게 잡아당겼다.
"백기 형제, 너와 나 그리고 여기 있는 모든 형제들은 모두 같아."
"부모가 낳았지만 우리를 길러줄 부모가 없으니 우리끼리 알아서 살 길을 찾을 수밖에 없지 않겠어?"
"도둑질이나 강도질, 그게 뭐 어때서? 아무도 우리를 돌보지 않지만 우리는 아직 살아 있고, 우리 스스로를 잘 먹여 살리고 있는데 이 또한 영광스러운 일 아니겠어?"
"네가 우리와 함께한다면 우리는 함께 큰일을 해낼 수 있을지도 몰라……"
나는 심호흡을 하고 마침내 시끄러운 그의 말을 머리로 부딪쳐 끊어버리고 이를 하나 더 뽑아낼 만큼의 힘을 모았다.
"잔말이 많네."
물 한 방울이 내 얼굴에 떨어지더니 장비가 쏟아지기 시작했다.
공터는 짙고 검은 물로 뒤덮여 있었고 나는 구속에서 벗어나 다시 일어서서 그들과 싸웠다.
분명 놈들은 그렇게 많았는데 그들은 죽기를 두려워했다.
난 두렵지 않았다.
어쩌면 나는 이 순간을 기다려왔는지도 모른다.
진흙탕에서 사라져 아무도 신경 쓰지 않는 구석진 곳에서 오랫동안 그리워했던 곳으로 돌아가는 것을 말이다.
어차피 누구에게 표현해야 할지 모르겠는 분노와 역겨움, 그리고 이 주먹 외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안타깝게도 이런 놈들은 나를 때려죽이지도 못한다. 나는 터진 풍선처럼 비틀거리며 일어났다.
"나는 너희들과 달라."
하지만 나 역시 그게 뭔지는 분명하게 말할 수 없었다. 나는 언제나 온유하셨던 그 (어머니 온영) 얼굴을 떠올린다. 그녀는 평범하지만 일상적인 말들을 하면서 휘어진 눈매를 하고는 나를 안아주었다. 그녀는 나에게 어떠한 명령을 내리지도, 반드시 어디로 가야 한다고 한 적도 없었다. 그녀는 언제나 미소를 짓고 있는 것 같았다. 그녀는 세상과, 또 나를 향해 미소를 지었다. 그녀는 어디에도 없었지만 따뜻한 무언가를 내 안에 숨겨둔 것 같았다. 그 덕분에 나는 떳떳하게 앞으로 한 걸음 한 걸음 나아갈 수 있었다.
갑자기 바람이 불어오면서 내 볼을 스쳤고 느리고 무감각해져 버린 머릿속이 한순간 멍해졌다. 나는 텅 빈 손바닥을 펼쳤지만 그곳엔 아무것도 없었다. 그렇지만 무언가가 보이는 것 같았다.
"우리들은 달라."
나를 사랑한 누군가가 있었으니까.
"나는 네가 벌이는 큰일들에 대해선 관심이 없어."
"다신 내 앞에 나타나지 마."
"너 이 x새기, 가만두지 않을 거야......!"
등 뒤로 누군가 뭐라고 지껄이는 것 같았지만 나는 뒤돌아볼 생각도 하지 않았다.
*
집에 돌아온 후 너무 피곤한 나머지 아무렇게나 씻고는 잠이 들었다.
며칠 내내 몽롱한 상태로 몸이 춥고 더워지는 것을 느꼈고 나는 차디찬 음식을 몇 입 먹고는 다시 잠을 청했다.
내 명줄도 참 질기네.
일주일이 지나고 깨어났을 땐 이미 오후였다. 나는 일어나서 학교에 나갔다.
"교감이 또 뭐라고 하겠지……"
*
나는 투덜거리며 학교로 향했고, 학교에 도착했을 땐 수많은 시선이 쏟아졌다.
평소 나를 유심히 지켜보던 여학생들은 겁에 질린 표정으로 한층 더 멀리 떨어져 있었다.
"아니지? 조폭이라고? 진짜?"
"나도 들었는데 3반 애들이 봤대….…"
"맙소사, 진짜 너무하네….…"
믿기지 않을 정도로 성가신 수군거림은 큰 소리로 말하는 것보다 훨씬 더 짜증 나서 나는 걸음을 재촉했지만 굉음에 가까운 노여운 포효에 의해 발걸음을 멈췄다.
"백기!! 당장 교무실로 와!"
교감 선생님이 목을 뻣뻣하게 하고 두 눈을 커다랗게 뜬 걸 보니 오늘은 교실 밖으로 못 나갈 것만 같았다.
그래, 일주일 동안 수업을 안 들었으니 하라는 대로 달달 외워야겠지.
*
교무실에 들어가자 뜻밖에도 그는 책상 위에 있는 교과서들을 세게 내동댕이쳤다.
"그래, 백기. 널 잠시라도 내버려 두면 하늘나라로 가겠구나."
"어떻게 선생님을 때릴 수가 있어!"
4장
나는 당황해서 그가 무슨 말을 하는지 도통 이해할 수가 없었다.
"뭐라고요?"
"감히 네가 '뭐라고요?'라고 물어?! 네 얘긴 하기도 싫구나. 무단결석에 시험도 낙제하고 널 어딜 봐서 고등학생이라고 할 수 있겠어?"
"이젠 조폭들과 어울리면서 선생님까지 때려? 더 이상 공부할 생각이 없나 보구나!"
"저는 무슨 소리인지 모르겠어요."
"마지막으로 물으마, 네 잘못을 인정할 거니, 안 할 거니?!"
"몇 번을 물어보셔도 소용없어요."
"말했잖아요, 무슨 말인지도 모르겠고, 선생님도 때리지 않았다고요."
"넌 정말 구제불능이구나!"
나는 이를 악물고 똑바로 서서 눈도 깜빡거리지 않았다.
"백기, 말해두겠는데, 이번 네 행동은 아주 악질적이야. 학교에선 너에게 벌점 처벌을 할 수도 있어! 안 그러면……
"
"교감 선생님!"
다급하게 문을 여는 소리와 함께 귀에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교감 선생님, 제가 다친 건 백기와는 관계가 없어요."
"쳉 선생! 그 꼴이 됐는데도 아직도 저 녀석을 감쌀 마음이 들어요?"
"많은 학생들이 저 녀석이 선생님을 때렸다는 걸 봤다고 했어요! 저 불량배들이 매일 교문 앞에서 "백기 형님"을 외치는 소리가 들리지 않아요?"
"그날 밤 그 사람은 백기 학생처럼 보이긴 했지만 저는 그 사람이 백기란 생각은 들지 않았습니다...... 게다가 백기가 저를 때릴 이유도 없는걸요!"
"때리는 데에 무슨 이유가 필요했겠어요! 매일같이 싸우는 걸 보면 당장 내일이라도 교장 선생님을 때린다고 해도 믿겠어요!"
고개를 돌리자 퉁퉁 부은 얼굴을 한 사람이 나를 걱정스러운 얼굴로 바라보고 있었다. 한 손과 목에 각각 깁스를 하고서.
"쳉 선생님……"
"이제서야 선생님이라고 부르는 거니? 쳉 선생님이 네 학생부에 흠집을 내지 않으려고 필사적으로 사정하는 걸 좀 보렴!"
"지금 당장 고개 숙여 사과하고 반성문 3천 자를 쓰고 제출하렴. 3일간 정학 처분을 받고 나면 이 일은 눈감아줄 테니……"
"제가 한 일이 아닙니다."
"뭐라고?"
"전 선생님을 때리지 않았어요."
"다시 말해봐."
"저는, 선생님을, 때리지, 않았습니다."
나는 주먹을 불끈 쥐고 두 눈이 조금 빨개진 남자를 보면서 또박또박 말을 꺼냈다.
일주일 전에 자오첸이 연락했던 것을 떠올리고는 어쩌면 이 일이 그들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그게 무슨 소용이겠어? 쳉 선생님이 내가 한 게 아니라고 해도, 내가 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수도 없이 많은데.
장내의 공기가 토하고 싶을 정도로 역겨웠다. 나는 몸이 떨리는 것을 느꼈고, 이 이상 교감의 말을 듣고 싶지 않아 몸을 돌려 밖으로 나갔다.
"백기! 어디 가는 거야! 학교 다닐 생각 없는 거야?"
"그럼 퇴학시키세요."
"하고 싶은 대로 하세요."
*
이 세상의 규칙은 내 몫이 아닐뿐더러 나를 속박할 수도 없다. 사무실을 나서는 순간 누군가와 부딪힌 것 같았지만 신경 쓰지 않고 계속 걸어갔다. 어디로 가야 할지 몰랐지만 이 빌어먹을 학교를 벗어나야겠다는 일념뿐이었다.
*
"잠깐만, 백기야 잠깐만 기다려줘."
운동장으로 가는 길에서 쳉 선생님은 또다시 숨을 헐떡이며 나를 멈춰 세웠다.
"백기야, 나는 네가……한 짓이 아니라고 믿어."
"그렇지만 나를 때린 사람들과 그 불량배들과는……어울려 다니지 않는 게 좋을 거야."
그는 나를 쳐다보지도 못하고 무언가에 짓눌린 듯이 움츠러든 채 서 있었다.
"당신은 제가 그놈들과 똑같다고 생각하는 거네요."
"나는……"
"뭐 하는 거야? 왜 또 싸우려고?"
갑자기 키 큰 남학생들이 무리 지어 달려와 쳉 선생님을 가로막으며 경계하며 나를 노려보았다.
언제나 내 앞에는 나와 그들을 명확하게 구별하려는 사람들이 있었다. 다만 이 순간에 여기 있는 사람들은 바보같이 정직한 사람들로 가득해서 되려 자오첸 패거리와는 사뭇 달라 보였다. 나는 잠시 쳐다보다가 도발에 상대하지 않고 조용히 그들을 지나쳤다. 어깨가 스치는 그 순간 쳉 선생님의 목소리가 들렸다.
"내가 전에……"
"마지막으로 말할게요. 저한테서 떨어지세요."
나는 이게 그 제안에 보답하는 최선의 방법인지는 알 수 없었다.
갑자기 피곤이 쏟아졌지만 이대로 교문을 나서면 또 누군가에게 가로막힐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한참을 생각하다가 옥상으로 한 걸음 한 걸음 올라갔다.
*
운동장에는 축구하는 사람, 달리는 사람, 미소 짓고 있는 사람, 조용한 사람들로 가득 차 있었다.
나는 분명 그들과 같은 공간에 있었지만 우리는 너무도 달랐다.
나도 저런 얼굴을 했었던 것 같은데, 하지만 언제부터인가 모든 게 달라졌다.
"안녕, 친구. 네가 방금 나랑 부딪쳤단다."
언제부터 내 뒤에 서 있었는지는 모르겠지만 고개를 들어보니 전혀 모르는 얼굴이었다.
"당신도 내가 사과하길 원해요?"
남자는 잠시 멈칫하더니 이내 손을 내저으며 나를 보고 부드럽게 미소 지었다.
"아니, 그럴 필요는 없어. 이건 그냥 서로를 알아갈 수 있는 계기가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거든."
"나는 성이 공이고 영어를 가르치는 선생님이란다. 그냥 공 선생님이라고 불러도 돼."
"당신이 누구이건, 무엇을 가르치건, 그게 나랑 무슨 상관인데요?"
"별 상관은 없지만 그냥 궁금해서 그래. 정말 네가 쳉 선생님을 때렸니?"
궁금하다고? 나는 대답할 가치를 느끼지 못해 속으로 코웃음을 쳤다.
"네가 조폭이랑 어울려 다니고 체육 선생님에게 원한을 품고 있다면서? 정말이야?"
"쳉 선생님은 정말로 너를 보호하려고 네가 때린 게 아니라고 하신 거야?"
그 남자가 계속해서 질문을 했다. 하는 질문마다 불꽃이 튀는 것처럼 화끈거리면서 초조한 기분이 들었다.
"내가 아니라고 하면 믿을 거예요?"
"물론이지, 내가 아는 학생들과 선생님들에게도 분명히 설명할 거야."
그는 여전히 미소만 지을 뿐이었고 나는 그의 말에 할 말을 잃어버렸다.
"너에 대한 소문은 몇 번 들었지만 나중엔 직접 만나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거든."
"그 전설 속의 '백기'가 어떤 아이인지 보고 싶었단다."
"백기야, 넌 뭐 때문에 학교에 오는 거니? 네 어머니 때문에?"
"우리 엄마 얘긴 꺼내지도 마!"
나는 그에게 달려가 두 손으로 그의 멱살을 잡아당겼다. 내 머릿속은 그의 입을 다물게 할 생각으로 가득했다.
"난 네가 그저 백기로서 학교에 오면 된다고 본단다. 네 어머니를 위해서나, 누구를 위해서가 아닌, 그저 네 자신을 위해서 말이야. 그렇게 한다면 너는 예전에는 미처 눈치채지 못했던 것들을 더 많이 볼 수 있을 테고, 네가 학교에 온 이유를 찾게 될 거야 체육 선생님의 제안도 분명 순전히 네가 '백기'라서 그런 걸 테니."
그 남자의 얼굴에는 나를 두려워하는 기색은 전혀 없었고 변함없이 진실된 태도로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이런 느낌이 너무 낯간지럽게 느껴져 나는 당황해하면서 손을 치웠다.
"당신이 무슨 말을 하는지 모르겠어요."
"그럼 잘 생각해 보렴."
학교 종소리가 교정에 유유자적하게 울려 퍼지자 남자는 검지로 석양에 비친 내 머리를 쿡쿡 찔러댔다.
"네가 찾으려고 한다면 분명 답을 찾게 될 테니."
"넌 지금도 충분히 노력을 해왔으니 너 자신을 포기하지 말고, 네가 먼저 마음속으로 이 세상을 포기하지 말았으면 좋겠구나."
나는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라 가만히 그를 바라보았다.
" 자, 학교가 끝났으니 이제 집으로 돌아가렴."
"말 안 해도 알아요."
나는 뭔가 간파당했다는 생각에 몹시도 부끄러운 기분이 들어 도망치듯 옥상을 떠났다.
*
하교 시간에 학교를 떠난 건 오래간만인 것 같았다. 잇따라 하교하는 학생들과 거리를 두고 걷는데 아까 그 남자가 했던 말이 마음속에 울려 퍼졌다. 짜증이 나 머리를 긁적이며 집으로 발걸음을 옮기는데 그 순간 다리를 절뚝거리는 남자아이가 내게로 달려왔다.
"형아! 드디어 찾았네!"
"……응?"
"형아, 이리 와봐!"
그는 내 손을 잡고 한사코 놓지 않았다. 아이는 걸어가면서 어떤 방향을 향해 계속해서 소리를 질러대 주위의 구멍가게 주인들까지 고개를 내밀었다.
"아빠 엄마, 그 키 큰 형아 찾았어요!"
나는 그를 다치게 할까 봐, 마지못해 그의 뒤를 따라갔다.
"뭐 하는 거야?"
*
몇 걸음 가지 않아 그는 나를 끌고 국수가게처럼 보이는 가게로 들어왔고, 주방에서 부부로 보이는 사람들이 뛰어나왔다.
"바로 이 형이야! 날 구해준 형 말이야!"
"……?"
"형아 잊은 거야? 며칠 전에 근처에 있는 공원에서 놀다가 차에 치였던!"
"형이 날 병원에 데려다줬잖아!"
나는 한참을 멍하니 있다가 보름 전에 확실히 그런 날이 있었던 것 같단 생각이 어렴풋이 들었다.
체육관에서 남몰래 농구를 하고 자전거를 타고 돌아오던 길에 어떤 남자아이가 길가에 쓰러져 있는 것을 보았다.
누구 집 아이인지 몰라 인근 병원으로 곧장 데려다줬지만 그저 지나가는 길이었을 뿐이다.
"정말 고마워요. 저희 아이를 구해줘서 정말 고마워요. 근처 고등학교에 다니는 학생이 구해줬다고 해서 요 며칠 동안 계속 찾았는데 이제야 만나네요."
앞에 있는 남자는 아이의 아버지인지 눈시울을 붉히고는 내 손바닥을 꽉 움켜쥐었다.
고맙다는 인사를 받는데 나는 송구스럽기만 해서 나도 모르게 손을 움츠렸다.
"사람 잘못 보셨어요, 제가 한 일이 아니에요."
"왜 형아가 아니야! 내가 보석 같은 형아 눈동자를 기억하고 있는데!"
"지금도 형아 손이 기억나, 정말 따뜻했다고!"
"나 구해줘서 고마워, 형(大哥哥)."
*
부부는 나에게 반드시 식사대접을 해주겠다며 아주 정성스럽게 만든 국수 한 그릇을 대접했다.
나는 어색하게 자리에 앉았고 김이 모락모락 나는 뜨거운 국수 냄새가 곧 콧속을 가득 채웠다.
남자아이는 내 맞은편에 앉아서 신나서 쉴 새 없이 말을 걸어왔다. 그의 이름은 샤오레이고, 올해 6살이 되며 곧 초등학교에 입학할 거라고 말했다.
"형형 저기 구멍가게에서 튀긴 돼지고기 먹어본 적 있어? 진짜 맛있어! 어묵도 엄청 맛있어!"
"……그런 건 몸에 안 좋잖아."
"우리 엄마도 똑같은 소리 하는데."
그는 젓가락을 윗입술과 코 사이에 걸치고 재빨리 다음 주제로 넘어갔다.
모든 것이 낯설고 평온했다. 나는 천천히 젓가락을 들어 국수를 한 입 먹었다.
"……맛있어."
"맛있으면 자주 와서 먹어야 해."
옆에 있던 여자가 웃으며 행주를 치우자 샤오레이도 젓가락을 높이 들면서 팔을 높게 들어 올렸다.
"매일 와서 먹어야 해!"
"말이 나왔으니 말인데 아직 네 이름도 모르고 있었구나."
세 사람이 부드러운 시선으로 나를 쳐다보자 나는 잠시 멈칫했다.
"저는 백기라고 해요."
"자주 놀러 오렴, 백기야."
이 사건은 지극히 평범한 날에 발생한 에피소드였다. 그날은 나에 대한 소문이 하나 더 추가되었지만 어떤 사람이 나를 믿어주고 또 다른 사람은 나에게 감사함을 표했고 또 나를 반겼다.
*
주말에는 집에 있기가 싫어 구석에 오랫동안 놓여있던 농구공을 보고 집어 들었다.

햇빛은 눈부셨지만 무더운 날씨는 아니었고 나는 목적지도 모른 채 자전거를 타고 상쾌한 마음으로 페달을 밟았다.
얼마 지나지 않아, 새로 지어진지 얼마 안 된 듯한 야외 경기장이 나타났다.
몇몇 어린이들이 농구공을 움켜쥐다가 휘청거리더니 다시 일어섰다.
나는 자전거를 세우고 멀리서 그 광경을 바라보았다.
내가 처음 농구를 할 때가 떠올랐다. 그때의 모습이 저 모습과 똑같아 보였다.
그때의 나는 미래의 내가 어떤 모습이 될지 몰랐겠지.
나는 시선을 거두어들이고 심호흡을 한 후 고개를 들었다.
내가 가야 할 곳은 내가 알아서 찾는 수밖에 없겠지.
부드러운(온화한) 바람이 나를 스쳐 지나가면서 꽃잎을 흩날렸다. 눈부시게 아름다운 꽃들이 계속해서 흔들렸고, 운해가 유유자적 흘러가면서 바람의 궤적을 그렸다.
바람은 언제나 내 손안에 있었다.
눈시울이 붉어지는 것을 느끼면서, 손을 뻗어 바람을 붙잡았다. 나는 농구공을 안고서 자전거를 세운 뒤 햇살이 내리쬐는 운동장을 향해 달려갔다.
“며칠 후에 또 자오첸 녀석을 패주러 가야겠네.”
소년은 저도 모르게 입꼬리를 올렸고,
그의 발걸음은 여느 고등학생들처럼 경쾌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