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부 백기 외전 01 미결사건 未结案 번역
미결 사건
01
“백 대장님, 선두 용의자가 지금 막 동쪽 골목을 지나 구도심 쪽으로 향했습니다.”
“쉐츠는 예상으로는 5분 뒤 번화가에 들어설 겁니다. 상대가 분진을 조종하는 능력을 가지고 있어서, 그때가 되면 민간인 피해가 더 커질 수 있습니다.”
“주변에 있는 대원들은?”
“그 구역 주민들을 대피시키는 작업을 병행 중입니다.”
비바람 소리 속에 섞인 루일의 급박하지만 차분한 목소리가, 백기의 귀에 유난히 또렷하게 들려왔다.
“최단 경로.”
백기는 주위의 바람장을 뒤틀며, 지체 없이 목표 좌표를 향해 날아갔다. 굵은 빗방울들이 연속으로 시야를 가리고, 도시 전체가 거대한 장막에 덮인 듯 방향조차 분간하기 힘들었다.
그가 깨어난 지 불과 나흘 만에 맞닥뜨린 두 번째 ‘Evolver 집단 상해 사건’이었다.
아직 다 낫지 않은 손목의 통증을 세게 눌러 참으며, 백기는 눈을 내리깔고 빗줄기 속에서 용의자의 흔적을 재빨리 좇았다.
곧 번화가 인근 교차로에서 목표를 발견했다. 주저 없이, 그는 곧장 땅에 내려섰다. 바람은 빗방울을 휘감아 보이지 않는 장벽이 되어 상대 앞에 가로섰다.
“쉐츠, 넌 체포됐다.”
그러나 상대는 역시 특경에게 대비가 된 듯, 곧바로 뒤로 몸을 빼냈다. 쉐츠가 손가락을 휘두르자, 거센 분진이 백기의 코끝을 스치며 휘몰아쳤다.
“다가오지 마! 이 주변 전부 날려버릴 수도 있어!”
손에 든 라이터를 흔들며 위협하는 쉐츠를 보며, 백기는 단 한 걸음 앞으로 나섰다.
응축된 바람이 칼날처럼 뻗어나가 그의 손목을 가격했다. 상대는 분명 아파하는 기색을 보였지만, 끝내 손가락으로 라이터를 놓지 않았다.
너무 약했나? 백기는 확신했다. 이 거리에서 빗나갈 리가 없었다. 그러나 왜인지 바람의 위력이 희미하게 흩어졌다. 전날에도 똑같은 현상이 있었다.
곱씹을 여유도 없이, 손목의 통증이 쉐츠의 얼굴에 분노를 드러나게 했다. 광기로 가득한 눈빛 속에서, 켜진 라이터가 민가 쪽으로 던져졌다.
“같이 죽자!”
포개진 빗줄기 속에서 불덩이가 폭발하듯 터졌다.
백기는 손가락을 펼쳐 바람을 집결시켜, 마지막 순간 불덩이를 꺾어냈다. 그것은 방향을 틀어 골목의 잡동사니 더미 위에 떨어졌다.
동시에 그는 쉐츠의 양손을 꺾어 제압하고, 수갑으로 단단히 고정했다.
“할 말은, 심문실에서 하시지.”
그는 쉐츠의 어깨를 눌러 제압한 채, 시야 끝에 계속 내리는 비를 흘끗 보았다. 불길은 허공으로 몸부림치며 솟구쳤지만, 곧 시들어가는 망령처럼 요동칠 뿐이었다.
잠시 멈춘 그는 손끝에서 바람을 몇 줄기 휘몰아 보내 불길을 완전히 꺼버렸다. 남은 건 검게 그을린 재뿐이었다.
“백 대장님, 모든 용의자 체포 완료되었습니다.”
“귀환 후 즉시 모든 심문실과 인원을 배치해서, 밤샘 조사 들어가라.”
“내일 오전, 이번 작전에 대한 통합 보고서를 내 책상에 올려.”
“명령 수령했습니다.”
“작전 종료.”
백기는 손을 들어 작전 전용 통신 채널을 닫았다. 그러나 루일의 통신은 여전히 끊기지 않았다.
“무슨 일 있나?”
“그녀에 관한 소식이, 1차 결론이 나왔습니다.”
백기는 곧 루일이 말하는 ‘그녀’가 그 아이임을 깨달았다. 4일 전 꿈에서 깨어난 이후, 그는 단 한 번도 그녀를 보지 못했다. 어떠한 소식도 없었다. 남은 건 현실과 맞닿지 않는 기억뿐. 그래서 그는 결국 루일에게 맡겼다. 사람 찾는 일은 그가 가장 빨랐으니까.
“도시 내 모든 도로 CCTV, 출입국 기록까지 확인했지만, 연모시를 벗어난 흔적은 없습니다.”
“물론, 어떤 Evol의 개입으로 강제로 이탈했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는 없지만, 현재의 단서는 그것만이 유일한 해석은 아닙니다.”
“그럼 또 다른 가능성은?”
너무 자세한 보고가 이어지자, 백기의 가슴 속에서 은근한 조급함이 피어올랐다.
“그녀가 마지막으로 사라진 단서는… 바로 당신, 백 대장님과 연결되어 있습니다.”
02
따뜻한 물줄기가 백기의 등을 따라 흘러내렸다. 팔에 남은 어두운 상처는 이 순간 더욱 선명하게 붉게 드러났다. 그는 대충 수도꼭지를 잠그고, 수건으로 몸의 물기를 훔친 뒤 옷을 갈아입고 거실 소파에 털썩 앉았다.
집에 돌아오자마자 부어둔 컵라면은 얼마나 불어 있었는지 모른다. 입에 넣으면 푹 퍼져 흐물거리지만, 매운맛만은 그럭저럭 괜찮았다. 백기는 몇 젓가락을 입에 밀어 넣으면서, 긴 손가락으로 무심히 휴대폰 화면을 넘겼다. 그리고 그 여자와의 채팅 기록을 열었다.
그가 깨어난 뒤 두 번째로 이 기록을 여는 순간이었다. 그는 메시지를 보내고 싶어 했지만, 결국 얼굴을 찌푸린 채 창을 닫았던 기억이 떠올랐다.
“내가 너 퇴근 데리러 갈게.”
“너와 함께한 모든 순간, 나는 다 기억하고 있어.”
“너를 위해서라면, 뭐든 할 수 있어.”
끊임없이 튀어 오르는 단어들이 백기의 신경을 자극했다. 그는 자신의 미간이 한 번도 펴진 적 없는 것처럼 느꼈다. 도무지 이해할 수 없었고, 또 어떻게 이런 앞뒤 없는 말들을 자신이 입 밖에 낼 수 있었는지도 알 수 없었다.
자신이 절대로 그런 ‘우유부단한’ 사람이 될 리 없었다. 설령 그 대상이 그녀라 하더라도.
백기는 인정했다. 그녀가 분명 자신의 삶 속에서 중요한 역할을 해왔다는 것을. 수많은 중요한 순간들을 함께 지나왔다는 것을. 회상 속에서 떠오르는 그녀의 웃음은 셀 수 없을 만큼 많았고, 그것은 끝없이 불어오는 바람처럼 멈추지 않았다.
하지만 그는 너무도 분명히 알고 있었다. 지금의 자신과는 전혀 맞지 않는다는 걸. 최소한 기억 속에서 느껴지는 그 행복을, 자신은 결코 체감할 수 없었다. 마치 단순한 착각 같기도 했고, 혹은 도무지 이해할 수도 받아들일 수도 없는 어긋남 같았다.
깨어난 이후로 그는 자주 이런 ‘이질감’을 느꼈다. 만약 그것들이 자신의 기억 속에 실제로 존재하는 일이 아니었다면, 그는 틀림없이 자신이 잠들어 있던 그 시간 동안 누군가 자신의 뇌를 조작한 게 아닐까 의심했을 것이다.
그는 마치 복잡한 범죄 현장에 홀로 서 있는 것 같았다. 겉으로 보기엔 아무런 이상도 없어 보였지만, 무의식 깊은 곳에서 본능이 계속 속삭였다 —— 이곳에는, 지극히 중요한 ‘무언가’가 사라져 있다는 사실을.
무언가가 끊임없이 울부짖고 있었지만, 정작 그 목소리만은 들을 수 없었다.
관자놀이가 지끈거리며 욱신거렸다. 그는 무심코 머리카락을 헝클어쥔 뒤, 루일에게 수색 범위를 계속 넓히라고 메시지를 보냈다. 그리고는 휴대폰을 닫고, 퍼져버린 라면을 억지로 몇 입 더 떠먹으며 방금 머릿속의 혼란을 쓸어내려 했다.
그러나 안도의 숨을 내쉬기도 전에, 방금 꺼둔 휴대폰이 다시 환하게 켜졌다. 걸려온 전화였다.
“백 대장님, 늦은 시간에 죄송합니다. 저는 특수연구과의 샤웨이입니다. 전에 보내주신 그 ‘물건’, 이제 1차 검사 결과가 나왔습니다.”
“편하시다면, 내일 특수연구과로 와서 보고서를 받아 가실 수 있습니다.”
백기는 순간 멈칫했다. 온몸의 혈액이 한꺼번에 솟구치는 것 같았다. 그것은 그가 오래된 집에서 가져와 검사를 의뢰했던 물건이었다. 어쩌면 어머니의 죽음에 관한 진실을 밝힐 직접적인 단서일 수도 있었다. 비록 특수연구과의 장비가 아직 검증 단계에 불과하다는 걸 알면서도, 그는 가슴 깊은 곳에서 치밀어 오르는 무거운 숨결을 막을 수 없었다.
왜 이런 감각이 드는 걸까? 그는 분명 이유를 알아야 한다고 느꼈지만, 끝내 잡히지 않았다.
시계를 올려다보니, 아직 밤 11시.
“오늘 밤 당직자는 누구지?”
“접니다, 백 대장님.”
“그럼 내일 말고, 지금 당장 자료를 정리해. 바로 가겠다.”
“알겠습니다.”
백기는 옷장에 손을 뻗어 아무 옷이나 꺼내 입으려다 문득 멈춰 섰다. 거울에 비친 흰 셔츠 위에는 하트를 그리는 늑대 캐릭터가 새겨져 있었다. 기억난다. 그것은 그녀가 사 준 옷이었다. 그녀는 늘 그에게 옷을 사주기를 좋아했고, 그 덕에 그의 옷장은 불필요할 만큼 꽉 차 있었다.
백기는 고개를 저었다. 방금 건조기에서 막 꺼낸 제복을 다시 입고, 현관문을 닫는 순간, 머릿속을 스친 한 가지 생각에 멈칫했다. —— 어째서 나는 누군가가 내 삶에 이렇게 많은 흔적을 남기도록 허락한 걸까.
특수연구과까지의 거리는 멀지 않았다. 도착했을 때, 샤웨이는 이미 모든 자료를 책상 위에 펼쳐두고 있었다.
“제공해주신 증거물에 대해 분석과 대조를 진행했습니다. 여기 모든 자료가 있습니다.”
샤웨이는 간단하게 설명한 뒤, 그는 다시 자리로 돌아가 키보드를 두드렸다. 백기는 파일을 집어 들었다. 한 장 한 장 넘기며 펼쳐지는 분석지는 그를 다시 그날로 데려갔다. 끝없는 불길이 온몸을 태울 듯 휘몰아치고, 극심한 고통이 피부 곳곳을 파고들었다. 그러나 이번에는 기억에 삼켜지지 않았다. 그는 오히려 그 불길을 직시하며, 그 속으로 들어가려 했다.
“전자 파일도 내 휴대폰으로 보내.”
그는 알았다. 자신이 이제 어디로 가야 하는지.
헬멧을 벗자, 익숙한 거리 풍경이 시야에 밀려왔다. 그는 곧장, 언제나 봉인된 채로 있던 그 문 앞에 섰다. 반드시 열어야만 하는 문이었다. 흩날리는 재가 검은 흔적을 그의 시야에 덧칠했고, 바닥의 잿더미 위를 걸어 들어갔다.
어둠은 불길처럼 그를 몰아붙이고, 추궁하고, 심지어는 질책했다.
백기는 고개를 들었다. 직감이 속삭였다. —— 이곳에는 아직 무언가 놓치고 있는 것이 있다.
그것은, 어머니의 죽음에 관한 진실이었다.
03
시간
어릴 적 기억 속에는 아직 한낮의 평온한 장면이 남아 있다.
화재가 난 시각은 아마도 그보다 훨씬 늦었을 것이다.
그 전까지 나는 무엇을 하고 있었던 걸까?
기억은 흐릿하게 흩어져, 남은 건 바람에 휩쓸려 밖으로 내던져진 느낌과 어머니의 얼굴뿐.
왜일까? 내가 스스로 잊고 싶었던 걸까? 아니면, 감히 마주할 용기가 없었던 걸까?
화재
타는 냄새를 맡은 기억도 없고, 연기가 점점 번져가는 모습도 없었다.
불은 마치 한순간에 일어난 것 같았다. 내가 본 것은 이미 집 전체를 집어삼킨 큰불이었다.
창문
창틀이 통째로 날아간 건, 어머니가 바람의 Evol 능력을 썼기 때문일까?
하지만 그렇게 했다면 불길은 오히려 더 커졌을 터. 어머니가 그런 선택을 하실 리 없다.
아니면, 그때도 그런 힘이 남아 있었다면… 왜 탈출하지 못하신 걸까?
혹은, 그것도 화염이 폭발적으로 치솟는 순간 생긴 결과였을까?
파일 기록
이번 사건의 기록에는 분명 문제가 있다.
특파팀이든 시 공안국이든, 어디에도 그에 해당하는 자료가 남아 있지 않다.
설령 평범한 사고였다고 해도, 마땅히 기록은 존재해야 한다.
그리고 그때 출동했던 소방대도 평범한 소방서 소속이 아니었던 것 같다.
지난 몇 년간 소방국 자료를 추적해 보았지만, 그 흔적조차 남아 있지 않았다.
어머니의 사망 증명서만이 유일하게 남은 서류였다.
NW 쪽에도 기록은 없었다.
예전에 그들의 실험에 참여했을 때, 사실 그 자료를 찾는 것도 목적 중 하나였는데,
샤오웨이의 권한으로 열람 가능한 모든 NW의 데이터베이스를 뒤져 봐도 단 하나의 흔적도 없었다.
마치 그 사건에 전혀 개입하지 않은 것처럼.
그렇다면…… 더 높은 권한으로만 접근할 수 있는 자료가 따로 있는 걸까?
……그 사람의 손에?
장롱
모든 것이 불타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거실 장에 넣어두었던 사진첩, 증서들, 어머니의 업무 기록 노트까지.
그해 어머니가 내게 사주셨던 새 농구공도 그 구석에 있었던 것 같다.
하지만 이제 모두 사라졌다.
……단지 몇 가지 조사에 필요한 자료가 사라졌을 뿐인데도,
가슴이 불편하다.
불길
불길은 너무도 거셌다.
자연적인 확산이 아니라면, 다량의 가연물이 뿌려졌기 때문일까? 휘발유? 혹은 가연 촉진제가?
그러나 분석 자료에 따르면, 가장 가능성이 높은 건 역시 Evol이다.
특히 거실이 가장 심하게 소실되었지만, 발화점은 끝내 특정되지 않았다.
큰불은 너무 많은 단서를 삼켜버렸다.
그 목적은 무엇이었을까? 무엇을 감추기 위해서였을까?
혹은 누군가의 자살을 위장하려 했던 걸까?
……아니, 절대 아니다.
그럴 리가 없다.
어머니는 마지막 순간까지, 아마도 나를 원망하고 계셨을 테니까.
04
쉐츠(薛辞) 일당을 검거한 지, 벌써 나흘이 지났다.
백기는 평소처럼 특파팀 복도를 걸었다. 가끔 들려오는 몇 마디 인사 외에는, 들려오는 소리는 단호한 발걸음 소리와 출동을 알리는 경보음뿐.
몇 번째인지 알 수도 없을 만큼 반복된 “백 대장님(白队)”이라는 짧은 인사에, 그는 결국 미간을 좁혔다.
그는 쉐츠 검거 작전에 참여했던 한 대원을 불러 세워, 후속 상황을 보고하도록 했다.
고개를 끄덕이고, 단말기를 켜 자료를 검색해 빠른 속도로 최신 보고서를 열람하는 동작까지, 모든 게 교본처럼 정확하고 효율적이었다.
“쉐츠 일당에 대한 조사 과정에서 관련자가 워낙 많아, 주모자 외에도 공범들을 계속 체포하고 조사 중입니다.”
“다만 쉐츠의 진술과 현장 조사를 종합하면, 이번 사건은 단순한 우발적 충동 범죄였을 뿐, 장기적인 모의는 없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다만……”
옆에서 이어지던 보고가 잠시 멈추자, 백기는 눈길을 옆으로 돌렸다.
“문제 있나?”
백기의 목소리에는 묘한 위압감이 깃들어 있었고, 대원은 급히 거수경례를 붙인 뒤 말을 이어갔다.
“아닙니다! 다만 그 뒤는 보고서에 없는 제 개인적인 판단입니다.”
“말해.”
“최근 공안 쪽에서도 보고가 올라왔습니다. Evolver뿐만 아니라, 일반인들 사이에서도 충돌 사건이 늘고 있다고 합니다.”
“네 말은, 둘 사이에 연관성이 있고… 누군가 뒤에서 조종하고 있다는 거군.”
백기가 시선을 고정하자, 대원은 잠자코 고개를 끄덕이며 그 말을 사실상 인정했다.
“루일에게 지시해. 공안 시스템 보고까지 이번 사건 관련 자료에 통합하고, 연모시 전체의 최근 범죄 분포도 함께 대조해. 결과가 나오면 바로 나한테 보고하도록.”
“그리고 당조를 심문실에 대기시켜. 내가 바로 가겠다.”
대원의 신속한 응답과 함께, 백기는 심문실로 발걸음을 옮겼다.
방금 들은 말이 사실이라면, 연모시는 이미 눈에 보이지 않는 위험 속으로 빠져들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리고 그의 책임은, 그 위험을 근원에서 잘라내는 것이었다.
당조가 합류하자, 심문은 빠르고 매끄럽게 진행됐다.
수십 명의 자료가 한꺼번에 그의 앞에 놓였을 때에야, 백기는 이번 사건의 규모가 상상 이상임을 실감했다.
“백 대장님, 이 사람들의 자료도 전부 기록에 포함시킵니까?”
백기가 고개를 들자, 익숙한 당조의 웃음이 시야에 들어왔다.
“왜, 문제라도 있나.”
“아닙니다. 다만 양이 많다 보니 미리 확인드리고 싶었습니다. 사람을 더 배정해 주셔야 할지도 몰라서요.”
왠지 모르게, 당조의 말투가 어색하게 들렸다. 마치 다른 사람의 입에서 나온 듯.
뭔가 말하려다, 그의 웃는 얼굴을 보고는 순간 입을 닫았다.
“일단 네가 해. 인원은 이틀 안에 보충해 줄 테니까.”
“알겠습니다. 그럼 제가 조금이라도 더 해서 다른 사람 부담을 줄이겠습니다.”
문을 닫고 나가는 당조의 뒷모습을 보며, 백기는 새삼 깨달았다.
그래, 당조는 언제나 이렇게 공손한 사람이었다.
사무실로 돌아온 백기의 책상 위에는 이미 여러 개의 서류가 쌓여 있었다.
전날 처리한 Evol 관련 절도 사건 기록부터, 이미 종결된 사건의 후속 문건까지.
백기는 그것들을 옆으로 밀어 두고, 사무실의 화이트보드 앞으로 갔다.
조금 전 루일이 보낸 보고가 도착해 있었다.
백기는 연모시의 도시 지도를 붙이고, 사건 발생 장소를 하나하나 표시해 나갔다.
도시 전체가 깨어난 지난 일주일 동안, 범죄율은 미묘하게 흔들리고 있었다. 예측 범위 안에 있긴 했지만, 범행 대상이 완전히 무작위라는 점이 경계할 만했다.
만약 정말 누군가가 뒤에서 조종하고 있다면, 미리 대비해야 했다.
특파팀 또한 그 파급 범위 안에 포함될 수 있으니까.
백기는 조여오는 관자놀이를 주물렀다. 머리를 비우려 했지만, 생각은 멈추지 않았다.
그는 언제나 기억 속 “특파팀 모습”을 떠올렸다.
야근으로 지각하는 대원들, 휴게실에서 흘러나오는 불평과 웃음소리.
어떤 의미에서 지금의 특파팀은 완벽했다.
너무 완벽해서—오히려 낯설고 불편했다.
책상 한쪽으로 시선을 돌리자, 그곳에는 사진 한 장이 놓여 있었다.
분명 이전에는 전혀 신경 쓰지 않았는데. 그녀의 사진이었다.
그녀는 말없이 그곳에 있었고, 마치 그가 발견하기만을 기다리는 듯했다.
확실히, 그녀가 사라진 이후부터 그는 이해할 수 없는 일들이 늘어났다.
“네가 있다면, 나는 이 모든 걸 이해할 수 있을까?”
그 생각에, 백기는 피식 웃으며 사진을 집어 들었다.
방금 전의 생각이 한심하게 느껴졌다.
백기에게는, 누구의 의지에도 기대할 필요가 없으니까.
05
옛집
Q 집 현장 잔해 분석으로 얻은 수사 단서는 무엇을 말해주는가?
아직 장비가 정식으로 가동된 건 아니지만, 검사 결과는 충분히 신뢰할 수 있다.
현장의 잔해에서 두 종류의 아주 선명한 Evol 지문이 검출되었고, 또 하나는 지문이 없는 Evol 에너지 파동 흔적이었다.
그중 하나는 낡은 집 곳곳에서 빈번히 나타난 지문과 일치한다. 어머니의 Evol 지문으로 추정된다.
또 다른 지문…… 사고가 난 그날, 집에 다른 Evolver가 있었던 걸까?
그런데 지문이 없는 그 에너지 파동은 또 무엇이지? 특별한 외부 간섭을 받은 건가? 아니면, 다른 사람……?
……그날,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회상
Q 회상 속에서 일어난 일을 어떻게 정의할 수 있나?
몇 가지 알 수 없는 말을 빼면 기본적으로는 이해 가능한 일이다…… 타임라인인에도 문제는 없다.
다만 몇몇 말이 모호하게 남아있다. 그렇게 중요하지는 않을 것이다.
도대체…… 그 이질감은 어디서 비롯된 걸까?
특파팀
Q 특파팀에서 무슨 일이 있었나?
모든 게 정상으로 느껴지지만 어딘가 이상하다.
아마 늘 느껴지던 그 이질감과 관련이 있을지도 모른다. 좀 더 지켜봐야 한다.
첫사랑
Q 그저 한때의 첫사랑 이야기였을 뿐일까?
그렇다. ……아마도.
지금은 그런 걸 붙잡고 있을 시간이 아니다.
……그리움 같은 건 이미 오래전에 의미가 없어졌어야 했다.
그녀
Q 그녀는…… 대체 무엇을 의미하나?
……
중요한 Evol의 핵심, Evol을 얻는 과정에서 특별했던 사람, 수많은 일을 함께 겪어 온 사람……내 입에서 도무지 낯선 말들을 쏟아내게 했던 사람.
분명 단지 그 중요성과 ‘약속’ 때문에, 계속해서 지켜온 것뿐일 것이다.
……그런데 왜 이렇게 초조하고 불안하지? 이것도 그 이질감과 관련이 있는 걸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