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장
부드러운 달빛이 커튼 틈 사이로 방 안으로 스며들어와, 백기의 눈썹 위에 은빛을 얹는다.
우리는 새로 산 Nobi 토끼 커플 잠옷을 입고, 어깨를 살짝 맞댄 채 서로의 숨결을 나누고 있었다.
우리는 아주 가까이 있었다. 바닷소금 향이 바로 곁에서 느껴졌고, 발끝만 조금 움직여도 그의 체온이 닿을 듯했다.
백기의 심장은 고요한 파도처럼 느리고 안정된 박동을 이어가며, 어느새 나도 그 잔잔한 졸음 속으로 휘말려 들어가고 있었다.
막 잠에 빠져들기 직전, 머릿속에 희미하고 따뜻한 생각이 떠올랐다.
…포근해. 조금만 더 가까이 다가가고 싶어.
어깨 위에 놓인 손가락이 살짝 움직였다. 백기가 무의식중에 반응한 것 같기도, 조심스레 토닥여주는 것 같기도 했다.
나는 눈을 뜨지 않았다. 그저 그 생각을 고스란히 품은 채 꿈속 깊은 곳으로 가라앉아 갔다.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문득 방 전체가 살짝 흔들리는 느낌이 들었다.
부드러운 조명이 깜빡이는 눈 사이로 스며들었고, 공기엔 어렴풋이 달콤한 향기가 떠돌았다.
푹신한 소파는 마치 솜사탕으로 쌓아올린 언덕 같았고, 벽에 걸린 풍경화엔 귀여운 토끼 캐릭터들이 하나둘 나타나 있었다.
방 안 전체가 마치 누군가의 다정한 손길로, 조용히 동화 같은 분위기로 덧칠된 듯했다.
잠시 멍해졌다. 가슴속에서 이상할 정도로 낯선 감각이 피어올랐다——
여기는 분명 백기의 집인데, 어딘가가 묘하게 달랐다.
몸을 일으켜 확인하려는 순간, 무언가의 힘이 날 끌어당기듯 다시 그 따뜻한 품 안으로 되돌려 놓았다.
백기:
……왜 그래?
백기는 고개를 숙여 날 바라보며, 아직 잠에서 완전히 깨지 않은 듯한 허스키한 목소리로 말했다.
유연:
선배, 집이 뭔가 좀 이상한 것 같아요……
막 손가락으로 그걸 가리키려는 순간, 부드럽지만 단단한 힘이 나를 다시 끌어당겼다.
순간 멍해져서 아래를 내려다보자, 그 힘은 백기에게서 온 것이 아니라 우리를 단단히 연결해놓은 무언가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거대한 일체형 잠옷이 우리 둘을 포근하고 말랑한 퍼의 그물망처럼 감싸고 있었다.
잠옷 위에는 익숙한 Nobi 토끼 캐릭터가 그려져 있었고, 우리가 입은 커플 잠옷과도 묘하게 닮아 있었다.
유연:
이게 또 대체 무슨 상황이야……?
원래도 멍한 머릿속이 더 혼란스러워질 무렵, 백기도 미간을 살짝 찌푸리며 뭔가 말하려는 순간—
소파 뒤쪽에서 갑자기 "퍽!" 하는 소리가 들렸다.
통통하고 말랑한 무언가가 데굴데굴 굴러 떨어지더니, 사지 벌린 채 우리 앞에 내동댕이쳐졌다.
??:
아야야야야야! 아프잖아~!
나와 백기는 동시에 얼어붙었고, 그 털뭉치가 고개를 들자, 나는 믿기지 않는다는 듯 무심결에 입을 열었다.
유연:
…Nobi?!
Nobi:
C8, 여기가 대체 어딘 거야—!
Nobi는 멍하니 몸을 일으켰고, 옆에 있던 백기는 어느새 날 단단히 등 뒤로 감쌌다.
백기:
너 누구지?
Nobi는 엉덩이를 문지르며 조금 억울한 듯 귀를 툭 털어 올렸다.
Nobi:
방금 얘가 나 알아봤잖아? 난 당연히 Nobi지 뭐!
백기:
그럼 넌 어디서 온 거고, 왜 여기에 있는 거지?
Nobi:
흥, 나도 그걸 묻고 싶다니까……
말이 끝나기도 전에, Nobi는 엉덩이를 매만지던 앞발을 멈추고, 자기 아래에서 구겨진 작은 책자를 하나 꺼냈다.
Nobi:
《소원 공간 안내서》? C8, 아까 내 엉덩이 친 거 너지?!
호기심 가득한 눈으로 책을 넘기던 Nobi는 축 늘어졌던 귀를 살짝 쫑긋 세우더니, 고개를 들어 우리를 의아하게 바라봤다.
Nobi:
……혹시 너희 소원의 에너지가 날 여기에 소환한 건가?
유연:
소원… 에너지?
내가 고개를 갸웃거리며 묻자, 토끼는 고개를 끄덕이며 앞발로 작은 책자를 툭툭 두드리고는 진지한 표정으로 우리 쪽으로 몇 발자국 다가왔다.
Nobi:
너희 어젯밤에 이 커플 잠옷 입었지?
나와 백기는 서로 눈을 마주보고, 약간 머뭇대며 고개를 끄덕였다가 조금 망설이면서 고개를 살짝 저었다.
유연:
근데 우리가 산 건 붙어 있는 게 아니라, 각자 따로 입는 커플 잠옷인데……
Nobi:
흥흥, 그거면 됐어.
Nobi는 무언가를 아는 듯 고개를 끄덕이더니, “탁” 소리와 함께 책을 덮고 앞발을 한번 휘저었다.
그러자 허공에 반짝이는 글씨가 한 줄 떠올랐다.
“소원 반응 공간 생성 완료.”
나는 아직 그게 무슨 뜻인지 곱씹고 있었지만, 백기는 이미 미간을 살짝 찌푸린 채 뭔가를 떠올린 듯한 얼굴이었다.
백기:
……어제 우리 잠옷 샀을 때 그 가게 주인 기억나?
유연:
그 토끼 귀 머리띠 쓰고, 수상쩍게 웃던 사람 말하는 거야?
그 사람이 분명 좀 이상한 말을 했던 것 같긴 한데……
“Nobi 토끼의 축복을 받아, 동심 가득한 연애의 밤을 보내세요.” 뭐 이런 거?
나는 그제야 퍼뜩 떠올리며 말했지만, 여전히 믿기지 않았다.
유연:
설마 이게 그 점원이 말하던 ‘축복’……? 말도 안 돼……
Nobi 토끼는 진지하게 고개를 끄덕이더니, 폴짝폴짝 뛰어오며 다가왔다.
Nobi:
맞아! Nobi는 너희에게 축복을 주러 온 거니까! 근데——
그녀는 동그란 눈을 깜빡이더니, 갑자기 궁금하다는 듯 고개를 갸웃거렸다.
Nobi:
대체 어떤 소원이었길래, 너희 둘이 하나의…… 초대형 Nobi로 이어졌을까?
Nobi:
설마——정말정말 떨어지기 싫어서, 아주 꼭 붙어 있고 싶었던 거야?
2장
내 귓가가 살짝 달아오른 걸 느끼고, 나도 모르게 고개를 숙였다. 시야 끝으로 보이는 백기의 얼굴도 어쩐지 살짝 옆으로 돌아가 있었다.
아마도 ‘소원’이라는 말이 너무 진지하게 느껴졌기 때문일 수도, 혹은 우리 둘 다 어렴풋이 무언가를 깨달았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나는 어젯밤 잠들기 직전, 백기의 품에 안긴 채 반쯤 깨어 있었던 그 순간을 떠올리려 애썼다.
그때 내 머릿속에는, 그저 그에게 좀 더 가까이 다가가고 싶다는, 그저 ‘붙어 있고 싶다’는 마음뿐이었다.
입 밖으로 꺼내지도 못한 그 작은 소망이, 마치 어딘가에서 조용히 들린 것처럼—
나는 천천히 백기를 바라보았고, 그도 무언가를 떠올린 듯, 눈빛에 잔잔한 미소가 번지고 있었다.
백기:
어젯밤에 그런 생각을 했어……
조금만 더 가까이 붙어 있으면, 너도 더 깊이 잘 수 있을까 해서.
그 따스한 목소리가 가슴 한켠에 가 닿자, 잔잔한 물결처럼 퍼져나갔다.
우리는 이미 서로에게 너무 익숙하고 가까운 사이였고,
아마도 그 ‘좀 더 가까워지고 싶다’는 조용한 바람이 우리를 이 신기한 순간까지 이끈 거겠지.
백기:
그래서…… 우린 소원 때문에 이렇게 붙어버린 거야?
그는 살짝 미간을 찌푸렸다. 이미 상황을 받아들이기 시작했지만,
완전히 갇혀 있다는 사실엔 여전히 어딘가 반감이 있는 듯했다.
Nobi는 진지한 얼굴로 우리를 보고 있었고, 장난은 아닌 것 같았다.
유연:
그렇게 보면…… 어젯밤에 더 이상한 생각 안 한 게 다행이네……
내가 중얼거리자, 백기가 한쪽 눈썹을 살짝 올리고, 내 손을 잠시 더 꽉 쥐었다.
백기:
더 이상한 생각이라니?
유연:
에, 에헴…… 별거 아니야!
나는 서둘러 화제를 바꾸며 귀까지 달아오른 걸 감추려 했다.
백기는 가볍게 입꼬리를 올리더니, 방 안을 천천히 둘러보았다.
백기:
일단 여기가 어떤 규칙으로 돌아가는지부터 알아보자.
그다음에 어떻게 나갈지 생각해도 늦지 않아.
그는 그렇게 말하며 무의식적으로 우리 둘을 감싼 이 커다란 커플 잠옷을 살짝 당겼다.
눈빛에는 어느새 진지함이 깃들어 있었다.
백기:
하지만 이게 진짜 우리 소원에 대한 응답이라면……
백기:
적어도 이 시간 동안은, 마음 가는 대로 해도 되겠지.
소파 한켠에서 뒹굴거리던 Nobi가 갑자기 몸을 뒤집더니 우리 쪽으로 돌아섰다.
마치 이제야 할 일을 떠올린 듯한 표정이었다.
Nobi:
좋은 생각이네! 그리고 소책자에 적혀 있길, 이 축제가 끝나면
‘소원 공간’도 자연스럽게 사라질 거래~
유연:
말은 그렇지만…… 지금 우리 상태로는 뭐 하나 하기도 엄청 불편하거든요……
나는 무심코 몸을 옆으로 좀 움직이려 했지만, 그 움직임에 따라 백기도 같이 끌려가버렸다.
그가 우리 균형을 다시 잡으며 몸을 받쳐주었고, 내가 미간을 살짝 찌푸린 걸 눈치챘는지 살짝 눈썹을 치켜들었다.
백기:
그럼 일단 이 귀찮은 옷부터 벗자.
그 말을 끝내자마자, 백기는 곧바로 몸을 움직여 그 옷에서 빠져나오려 했다.
나도 서둘러 그의 동작에 맞춰 몸을 돌렸지만
그 옷은 마치 투명한 접착제가 칠해져 있기라도 한 듯, 우리 몸에 딱 달라붙어 전혀 떨어지지 않았다.
열심히 십여 분을 씨름한 끝에, 우리는 결국 숨을 헐떡이며 소파 위에 털썩 누웠고, 그 거대한 커플 잠옷은 단 한 줄도 흐트러지지 않은 채 그대로였다.
벗을 수도, 찢을 수도 없었고, 심지어 백기가 Evol을 발동시켰을 때조차 그 힘은 무력하게 솜사탕 같은 미풍으로 변해버렸다.
Nobi
몸부림치지마~
조금 떨어진 곳에서 Nobi가 몸을 뒤척이며 소파 팔걸이에 엎드렸다.
양쪽 귀를 살랑이며 게으른 말투로 말했다.
Nobi
여긴 너희들의 ‘소원’을 이루어주는 공간이지, 수업 땡땡이 치는 데가 아니거든?
유연
땡땡이…?
나는 얼떨떨한 얼굴로 되물었다.
Nobi는 자기 앞에 놓인 소책자를 앞발로 툭툭 두드리며, 나름 진지하게 말했다.
Nobi
당연하지! 더 가까워지고 싶다면 그만큼 진심으로 서로를 마주해야 해.
게으름도 안 되고, 몰래 도망가는 것도 금지야!
Nobi
애초에… 너희들은 진짜로 떨어지고 싶은 게 아니잖아?
그녀는 눈을 가늘게 뜨며 ‘나 다 안다’는 표정으로 바라봤고, 그 시선을 받은 나는 괜히 찔려서 시선을 슬쩍 피했다.
옆에 있던 백기는 가볍게 기침을 하더니, 방금 전까지 살짝 불편하던 표정 대신 어딘가 수긍하는 듯한 여유를 띠었다.
백기
듣고 보니…… 규칙도 꽤 단순하네.
백기
그럼 우리, 좀 더 가까이 붙어서 이 공간을 제대로 즐겨볼까.
그가 잠옷 안에서 내 손을 조용히 잡았다. 은근한 초대처럼.
나도 미소를 머금은 채 그의 손을 가볍게 쥐어주었다.
손끝이 닿은 순간, 백기는 몸을 살짝 앞으로 기울였고, 나는 바로 눈치를 채고 그에 맞춰 천천히 몸을 움직였다.
이 연결된 잠옷은 지나치게 부드러워서, 조금만 움직여도 포근한 제약처럼 서로를 더 바짝 붙게 만들었다.
숨을 들이쉬는 것조차, 둘이 호흡을 딱 맞춰야 가능한 정도였다.
일어나려던 찰나 중심을 잃고 앞으로 반 걸음 정도 고꾸라졌고
나는 정확히 백기의 품 안으로 안겼다.
그가 자연스럽게 내 등을 받쳐 안아주며 나지막이 웃었다.
백기
내가 너무 빨리 걸었나?
유연
조금…? 근데 이제 나도 리듬 맞췄는걸요~
나는 자세를 다시 가다듬고, 그의 걸음에 맞춰 살짝 몸을 움직였다.
서서히, 우리 사이엔 묘한 호흡이 생겨났다.
서로의 숨결이 귓가에 부딪히는 거리, 아주 작은 움직임만으로도 다음 동작을 짐작할 수 있을 만큼 가까운 거리.
그 조용한 리듬은 마치 우리 둘만이 들을 수 있는 느린 춤처럼 흘렀다.
오래전부터 마음속 깊은 곳에 잠들어 있던 교감이, 이 낯선 공간에 발을 들이며 조용히 깨어난 듯했다.
그러는 사이, 어디선가 은은한 과일 향이 스치고
문득 정신을 차리자 어느새 우리는 주방 문 앞에 와 있었다.
발끝이 살짝 튀어나온 바닥에 걸려 몸이 휘청거리자
백기
조심해!
백기가 한 손으로 조리대를 짚고, 다른 손으로 내 허리를 빠르게 붙잡았다.
그 순간, 그의 손 아래 있던 바구니가 마치 보이지 않는 바람에 쓸린 듯 파르르 떨리더니
그 안에 담긴 사과들이 와르르 쏟아져 나왔다.
작은 장난꾸러기 요정들처럼 깡총깡총 뛰며 바닥 이곳저곳으로 도망치듯 굴러갔다.
3장
유연
……사과가 살아 움직여?!
나도 모르게 소리쳤고, 백기는 그 틈을 타 나를 끌어당기며 굴러오는 사과들을 막으려 달려들었다.
빠르고 느린 움직임 사이에서 균형이 크게 흔들렸고, 백기는 재빠르게 몸을 돌려 날 안고, 우리는 함께 부엌 한가운데의 폭신한 바닥 매트로 넘어졌다.
그가 한 손으로 바닥을 짚고 있는 사이, 축 늘어진 앞머리가 내 눈가를 스쳤고, 그가 숨을 고르며 말했다.
백기
……미안. 반사적으로 막느라, 말도 없이 움직였네.
나는 웃음을 참지 못하고 그의 뺨을 콕 찔렀다.
유연
마치 농구공이 갑자기 날아오면 반사적으로 받으려는 것처럼요?
백기
응, 비슷해. 하지만 이 사과들은 농구공보다 훨씬 다루기 힘들어.
유연
그럼 선배, 아직도 계속 쫓을 생각이에요~?
백기가 눈썹을 치켜올렸고, 그의 호박빛 눈동자엔 장난기가 반짝이고 있었다.
백기
당연하지. 놈들은 반드시 체포해서 정의의 심판을 받아야 해.
유연
영웅은 역시 생각도 똑같군요!
얼마의 시간이 지났는지도 모르게, 나는 숨을 거칠게 몰아쉬며 백기 쪽으로 조금씩 다가갔다.
유연
휴……오늘 안엔 무조건 너희들 다 잡아버릴 거야!
연결된 커플 잠옷 때문에 움직임은 어색했지만, 그래도 멈추지 않았다.
비틀거리며 한 걸음씩 나아가면서도, 나는 이를 악물고 붉디붉은 사과들을 노려봤다.
놈들은 바닥 위를 깡충깡충 뛰며 마치 우릴 일부러 도발하듯 활기차게 튀어다녔다.
유연
이런……진짜 방법이 없는 거야?
백기는 눈을 가늘게 뜨고 주변을 쭉 훑어보더니,
내 손가락을 살짝 잡아쥐며 잠시 멈추라는 듯 신호를 보냈다.
백기
놈들을 이쪽으로 유인해 보자.
나는 곧 그의 의도를 알아차리고, 쫓는 걸 포기한 척 제자리에서 멈췄다.
과연, 몇몇 사과들은 경계를 풀고 천천히 우리 쪽으로 다가오기 시작했다.
백기
넌 왼쪽, 나는 오른쪽. 셋에 맞춰서 동시에 막자.
유연
접수!
백기
하나, 둘——셋!
백기는 순식간에 앞으로 뛰어들었고, 나도 그와 동시에 움직였다.
하지만 이번엔 움직임이 너무 컸는지 “딸깍” 하는 소리와 함께, 잠옷의 연결이 느슨해졌다.
백기는 순식간에 발걸음을 재빨리 옮기며 바닥 위를 가볍게 뛰어넘고,
도망치는 사과들을 하나하나 정확하게 가로막아 품에 안았다.
백기
이제 어디로 도망가려고.
그는 정확히 몇 개의 사과를 품에 안고 고개를 돌려 나에게 미소를 보내려는 찰나
투명한 장벽이 조용히 솟아올라 나의 발걸음을 막았다.
나는 본능적으로 멈춰 섰고, 백기는 손을 들어 장벽을 건드리자 얕은 파문이 번졌다.
유연
……이게 뭐야?
우리가 뭔가 파악하기도 전에, Nobi가 갑자기 거실에서 허둥지둥 뛰어왔다.
그녀는 작은 안내서를 뒤적이며 소리쳤다.
Nobi
큰일이야, 큰일이야!
귀까지 바짝 세우며 초조하게 페이지를 넘기던 그녀가 갑자기 외쳤다.
Nobi
“착용자 중 한 명이라도 강한 ‘분리 욕구’를 가지게 되면, 공간은 자동으로 격리 장치를 가동합니다……”

그녀는 갑자기 고개를 번쩍 들고, 과장스럽게 눈을 크게 뜨고 백기를 바라봤다.
Nobi
세상에, 누가 도망치려 했다는 거야?! 어쩐지 두 사람은 서로 좋아하는 사이 아니었어? 나… 나 속은 거야?!
그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백기의 귀끝이 붉게 물들었고, 그는 서둘러 그녀의 말을 막았다.
백기
누가 도망친다는 거야……!
그는 여전히 어렵게 잡아낸 사과들을 품에 안은 채, ‘일을 키운 건가’ 하는 눈빛으로 난처해하며 말했다.
백기
그냥 상황이 급했어. 반응이 빨랐을 뿐이라고.
Nobi
급한 상황? 뭐가 급했다는 건데——
Nobi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백기는 그녀를 들어올려 한 손으로 입을 가렸다.
그 동작은 부드러우면서도 아주 능숙했다.
백기
쓸데없는 말은 그만해.
그 말과 함께, 그는 나를 향해 시선을 돌렸다.
백기
……너도 그녀 말 신경 쓰지 마.
백기
난 그냥, 빨리 저 사과들을 잡고 싶었을 뿐이야.
그 사람이 아직도 진지하게 해명하는 걸 보자, 나도 결국 웃음을 참지 못하고, 투명한 장벽 너머로 그를 향해 손을 살짝 흔들었다.
유연
알았어요~ Nobi 말은 안 들을게요. 선배 말만 들을게요~
Nobi는 백기의 손 안에서 몸부림치며 빠져나오려 했지만, 결국 실패하고 눈망울을 동그랗게 뜨고 나를 향해 도와달라는 눈빛을 보냈다.
Nobi
야야야! 웃지 말고, 나 좀 살려줘!
나는 간신히 웃음을 참고, 일부러 진지한 척 기침을 하며 말했다.
유연
에헴, 이건 우리 연모시에서 손님을 환영하는 전통적인 방식이랍니다.
유연
백 경관님께서 너를 아주 뜨겁게 환영하고 계신 거지~
Nobi
흥, 거짓말치지 마! 세상에 이렇게 야만적인 환영이 어딨어!
백기는 그런 Nobi를 보며 어이없어하면서도 살짝 웃었고, 그녀를 조심스럽게 테이블 위에 내려놓았다.
백기
자, 이제 본론으로. 이 장벽의 작동 원리는 뭐고, 어떻게 해제하는 건데?
Nobi
아까 말했잖아! 너희 둘이 입고 있는 그 커플 슈트는 ‘소원’으로 연결된 거야. 네가 너무 조급해하니까, 그 소원이 깨져버린 거지.
그래서 지금처럼 당연히 분리된 거고!
백기의 표정에 다시금 살짝의 난처함이 떠오르자, 나는 얼른 손을 흔들며 둘의 대화를 끊었다.
유연
자자~ 백 경찰관의 ‘도망 혐의’는 무죄로 판결내립니다!
유연
우리 이제 다시 방법을 생각해보죠!
내 말에 백기의 얼굴에도 조금 안도한 기색이 번졌다.
그는 손을 뻗어 장벽에 조심스레 손바닥을 대고, 투명한 표면을 살며시 더듬으며 집중했다.
백기
이 공간이 정말로 우리의 소원을 반영하는 거라면,
다시 이어지는 방법도 분명 있을 거야.
백기
어쩌면, 이 장벽을 통과할 수 있는 연결 고리가 필요할지도 몰라.
그의 시선이 품 안에 안겨 있는 몇 개의 사과 위로 떨어졌고, 곧 표정이 조금씩 환해졌다.
백기
이 사과로 한번 시험해볼까?
나는 그의 의도를 곧바로 알아차리고 손을 내밀었다.
백기가 사과를 들어 올리자, 예상대로 그것은 아무런 저항 없이 투명한 장벽을 통과해 내 손바닥 위에 가볍게 안착했다.
나는 웃으며 사과를 살짝 닦아낸 뒤, 그것을 백기에게 내밀었다.
유연
그럼, 문제의 ‘주범’부터 맛보는 걸로 진정해볼까요?
백기의 눈가에 희미한 웃음기가 스쳤고, 그는 고개를 숙여 조심스레 한 입 베어물었다.
그와 동시에, 나도 반대편에서 한 입 베어물었다.
“아삭——”
투명한 장벽은 마치 햇살에 녹아 사라지는 안개처럼, 소리 없이 사라졌다.
그 순간, 부드럽지만 강한 힘이 나를 잡아끌었고, 나는 그대로 백기의 품으로 쓰러졌다.
익숙한 온기가 나를 감싸고, 연결된 잠옷은 다시 우리 사이의 틈을 부드럽게 메우며 딱 맞게 감겼다.
온기가 피부를 뚫고 심장까지 스며들었고, 나는 본능처럼 그의 옷깃을 움켜쥐고 살짝 몸을 비볐다.
백기는 안도한 듯 숨을 내쉬었지만, 여전히 눈에 미묘한 미안함이 비쳤다.
나는 손뼉을 치듯 그의 머리카락을 쓰다듬으며, 마치 실수한 귀여운 동물을 다독이듯 웃어주었다.
유연
이 정도로 내가 화낼 리 없잖아요.
유연
그치만 말이죠, 보셨죠? 선배를 다시 데려오는 "비법"은 꽤 많다구요?
내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백기가 고개를 숙여 나를 바라보았다.
그의 눈빛엔 어쩔 수 없다는 듯한 웃음기가 어렸다. 그리고는 결국 참지 못한 듯, 살짝 몸을 기울여 내 입술에 조용히 입을 맞췄다.
백기
……억지로 데려올 필요 없어. 내가 스스로 돌아왔으니까.
나는 눈을 감고 미소 지었다.
사랑으로 뜨겁게 피어오른 여름의 순간이, 우리의 입술 위에서 조용히 피어났다.
4장
우리는 입맞춤 속에서 천천히 숨을 고르며 가라앉았다.
방금 전까지의 약간의 두근거림이 여전히 서로의 호흡에 남아 있었다.
백기는 말없이 거실로 돌아왔고, 주변엔 포근한 공기가 흩어지며, 모든 소리가 조용히 감싸 안긴 듯 고요했다.
남은 건 우리 피부에 닿은 따뜻한 온기뿐.
그때, 주방 쪽에서 Nobi가 한쪽 귀를 쏙 내밀더니 깡충깡충 뛰며 테이블 위로 올라왔다.
Nobi
흠흠~ 축제가 곧 끝나니까, 마지막 기회는 제대로 즐겨야 해요!
나는 웃으며 그녀의 폭신한 몸을 손가락으로 살짝 찔렀다.
손끝에 닿은 부드러운 털은 마치 작은 동화 속 생명체를 만지는 기분이었다.
유연
고마워, 소원을 이뤄준 작은 토끼야.
Nobi는 우쭐하며 자그마한 가슴을 쑥 내밀고, 동그란 몸을 꼿꼿이 세우며 귀까지 바짝 치켜세웠다.
Nobi
그야 당연하지! 나를 만난 건 너희의 초행운이지!
게다가 말이야, 사실 너희는 원래도 소원에 아주 가까웠어.
이 공간은 그저, 살짝 더 가까워지게 도와줬을 뿐이라구~
흠흠! 그러니까, 어서 계속 행복하게 지내!
내가 이렇게까지 나선 걸 헛되이 하지 말고!
그녀는 배를 두드리며 신나게 외친 뒤, 앞발로 폼나게 손을 흔들었다.
Nobi
그럼 이만, 행운의 커플 여러분, 안녕~!
그녀는 그렇게 말하고는 아주 진지한 표정으로 앞발을 흔든 뒤,
톡 하고 가볍게 뛰어올랐다.
그 순간, 공간 전체가 마치 수채화처럼 천천히 안개로 흩어지기 시작했다.
소파, 벽, 티테이블… 모든 것들이 빛 속으로 조금씩 사라져 갔다.
다시 눈을 떴을 때, 우리는 살짝 흔들리는 해먹 위에 함께 기대어 있었고,
마치 한낮의 포근한 꿈에서 조용히 깨어난 것 같았다.
커튼 틈새로 들어온 햇살이 바닥에 따뜻한 빛무리를 만들고,
우리는 아직도 그 "너무 딱 붙는" Nobi 토끼 연동 잠옷을 입고 있었다.
피부에 닿은 보들보들한 털, 마치 조용한 도장처럼 그 모든 가까움, 떨림, 조금 더 다가가고 싶던 마음이 다 꿈이 아님을 알려줬다.
집 안은 고요했고, 오직 나와 백기, 그리고 우리의 숨소리와 심장 박동만이 남아 있었다.
그제야 백기의 숨결도 느긋해졌고,
나는 그의 어깨에 살짝 기대어 장난스레 그의 볼을 집었다.
그가 눈을 한 쪽 뜨며 나를 바라봤다.

유연
생각해보면, 우리가 바란 '더 가까워지고 싶다'란 소원이… 이 잠옷 한 벌을 입는 걸로 실현될 줄은.
왠지 꿈 같네요. 좀 유치하지만… 그래도 참 달콤했어요.
백기
재밌긴 했지… 다만, 혹시라도 문제가 될 만한 Evol 사건은 아닌지 확인은 해봐야겠어.
그는 본능적으로 아직 경계심을 놓지 못한 듯, 살짝 눈살을 찌푸렸다.
나는 그 모습이 귀여워서 슬며시 웃으며 장난을 걸었다.
유연
우리가 사과 잡다가 너무 열심이었던 게 유일한 '사고'였던 것 같지만~?
백기의 귓불이 살짝 붉어졌고, 그는 헛기침을 하며 잠옷 모자에 달린 토끼 귀를 정리했다.
백기
……그래도, 생각해보면 우리한테 딱 맞는 일이긴 해.
유연
네?
그는 부드럽게 웃으며 황혼빛 아래에서 한층 더 따뜻한 표정을 지었다.
백기
비록 가끔 부딪치고 엉키더라도, 난 너와 함께라면 계속 걸어가고 싶어.
방향이 달라도, 함께 걸어갈 속도는 맞춰갈 수 있을 테니까.
유연
그럼 백 경관님 눈엔… 우리가 ‘연결된 토끼 커플’처럼 보인다는 거죠?
백기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잠옷 안에 숨겨진 내 손가락을 살며시 꼭 쥐어 답 대신 마음을 전했다.
그의 엉뚱하면서도 진지한 비유가 너무 귀여워서, 나는 웃음을 터뜨리며 장난스럽게 윙크를 했다.
유연
근데 말이야, 가끔 이렇게 계속 붙어 있는 게, 좀 답답하다고 느끼진 않아요?
아까 사과 쫓을 때처럼 말이에요.
백기는 잠시 말을 멈췄다가, 조용하지만 진심이 담긴 눈빛으로 나를 바라봤다.
백기
그렇지, 물론 답답할 때도 있어.
하지만 네 곁에 있을 수 없는 ‘자유’라면… 그건 별로 소중한 게 아니라고 생각해.
그는 숨을 고르듯 잠시 멈췄고, 이어지는 말엔 더 깊은 진심이 실려 있었다.
백기
게다가, 이 '묶여 있음'은 언제나 내게 상기시켜줘.
어떤 상황이 와도, 우린 서로를 의지할 수 있다고.
우리가 계속 가까워지고자 한다면, 어떤 장애든 함께 넘어설 수 있다고.
햇살을 받아 더욱 짙어진 그의 호박빛 눈동자를 바라보는 순간, 내 심장도 덩달아 조여왔다.
나는 참지 못하고 그의 눈에 살짝 입을 맞췄다.
귀 가까이서 그의 심장이 더 빨라진 소리가 들려왔다. 무언가가 조용히 깨어나는 듯한 소리.
아무리 가까워져도, 우리는 늘 조금 더 다가가고 싶은 욕심이 남아 있는 걸지도 모른다.
그 마음과 마음 사이의 거리란, 원래 그런 것일 테니까.]
유연
생각보다, 이 '소원 공간'… 효과가 좋은데요?
백기
응, 기대 이상이었어.
나는 기지개를 켜다가, 연동된 잠옷이 살짝 당겨지는 느낌에 문득 어떤 생각이 떠올랐다.
유연
근데 계속 이렇게 붙어 있는 건 좀 불편하긴 한데…
우리의 ‘하루 연결 체험’은 여기까지 하는 걸로 어때요?
백기는 고개를 숙인 채 장난기 어린 눈빛으로 나를 바라봤다.
백기
그건 안 돼.
나는 억울한 표정을 지으며 고개를 들고 그에게 바싹 다가갔다. 말투엔 살짝 애교 섞인 기색도 더해졌다.
유연
정말 안 돼요? 이 늑대 선배님?
백기
안 돼.
네가 도망칠 수 있다면 모를까.
코끝이 간질일 만큼 위험한 기운이 느껴졌다. 나는 잽싸게 손을 뻗어 연동 잠옷의 지퍼를 내리려 했다.
유연
그럼 저, 도망칠게요——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손목이 따뜻한 손에 덥석 잡혔다.
잠옷 안에 있던 다른 손도 내 팔을 단단히 붙잡았다.
그 순간, 뜨겁고 깊은 입맞춤이 내려와, 내 모든 도망칠 핑계를 단숨에 막아버렸다.
백기
……늦었어.
백기
한 번 더 기회를 줄게.
나는 도발적으로 팔을 감은 손가락에 힘을 주며, 그에게 내 대답을 전했다.
서로의 심장이 구름 위를 나는 듯 빠르게 뛰고 있었다.
헐렁하게 흘러내린 연동 잠옷보다, 지금 내게 밀착되어 있는 건 단연코 백기의 품이었다.
숨결은 얽히고, 피부는 맞닿았다.
부드러운 잠옷보다 더 진하게, 더 따뜻하게 내게 닿아 있는 사람——그건 백기였다.
해먹은 우리의 장난에 삐걱이며 흔들렸고,
그 아래 Nobi 토끼 인형에 가려져 있던 쪽지 한 장이 살며시 떨어졌다.
쪽지엔 마치 축제의 끝을 알리는 인장처럼, 둥글둥글한 글씨가 쓰여 있었다.
[소원 공간 연결・축복 확인]
상태:장기 연결 중
다음 축제 발동 시간:무작위 생성
발동 조건:순수하고 사랑스러운 두 개의 마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