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장
따뜻한 햇살이 부엌 유리를 통해 들어와 바닥 위에 얼룩진 빛을 드리웠다.
나는 거실에 앉아 퍼지는 향긋한 냄새를 맡으며, 체온계의 수치를 조용히 기다리고 있었다.
며칠 전부터 유행하던 독감에 결국 나도 걸려, 고열 감기로 끙끙 앓고 있는 상태였다.
삐삐삐—— 36.7도.
사흘째 체온이 정상이란 걸 확인하고 나서야, 나도 한숨 돌릴 수 있었다.
유연
백…… 콜록콜록!
부엌 쪽을 향해 백기를 불러보려다, 목 깊숙한 곳에서 뻣뻣한 통증이 올라오며 말이 끊겼다.
입을 작게 벌려 몇 번 소리를 내보려 했지만, 그저 허스키한 숨소리만 흘러나왔다.
아직 목이 다 낫지 않았다는 걸 깨달은 나는 자연스럽게 옆에 놓인 고무 오리 장난감을 집어 들었다.
'삑삑——'
귀엽고 익숙한 소리가 울리자, 문가에서 낯익은 발걸음 소리가 들려왔다.
백기
체온 다 쟀어? 몇 도 나왔어?
백기가 따뜻한 쌀죽 냄새와 함께 문 앞에 나타났다.
작은 그릇을 손에 든 그는 우리가 얼마 전에 산 강아지 프린트 앞치마를 입고 있었다.
나는 체온계를 높이 들어 보이며 해맑게 웃었다.
백기
다 나은 것 같네.
그는 내 옆에 나란히 앉아, 조심스럽게 죽 그릇을 내 손에 건넸다.
백기
죽도 딱 알맞게 식었어.
그런데 얼굴 보니까, 목 상태는 아직 안 좋은가 보네?
나는 고개를 끄덕이고, 다시 한 번 장난감 오리를 쥐었다.
며칠 동안 말을 못 하자 백기는 이 오리를 눌러 의사 표현을 대신하게 하자는 아이디어를 냈고, 의외로 꽤 쓸만했다.
부드러운 죽이 입안으로 들어오자, 한동안 텅 빈 듯하던 위장이 따뜻하게 채워졌다.
백기
맛있어?
나는 삑—— 하고 한 번 눌렀다. 정말 맛있어!
죽이 목을 타고 넘어가자 잃어버린 식욕도 서서히 돌아오는 듯했다.
창밖을 바라보니 햇살이 참 좋으니 며칠 동안 집에만 있었던 마음도 어딘가 들떴다.
이런 날이라면, 잠깐 외출해도 괜찮지 않을까?
게다가, 백기의 소중한 휴일을 계속 나 때문에 집 안에서만 보내게 하는 건 너무 아깝잖아.
그런 생각이 들자, 나는 조용히 휴대폰을 들어 한 줄을 적었다.
유연
이번 며칠 휴가 동안 내내 나 간호만 해주고 있는데, 지겹진 않았어요?
유연
맨날 내가 수공예하는 거나 보고… 재미없었을 텐데.
백기
전혀. 오히려 네 손재주 구경하는 거 꽤 재미있던데.
백기
오늘 상태 좀 괜찮으면, 잠깐 나가보는 것도 좋을 것 같아.
유연
그럼 오늘 어때? 딱 좋은 날씨 같아.
백기
좋지. 집에만 있느라 기운도 많이 빠졌을 텐데, 가서 맛있는 것도 먹고. 에너지 충전도 하자.
그가 그렇게 말하자, 나는 머리까지 힘껏 끄덕이며 장난감 오리를 높이 들었다.
‘삑—삑—’
이건 우리만의 암호, 더블 사인!
백기
근데, 이 ‘통역관’은 집에 두고 가자.
그는 내가 손에 쥐고 있던 오리를 가리켰고, 입가에는 웃음을 숨기지 못했다.
백기
우리 사이의 호흡은 충분히 믿고 있으니까.
백기
게다가 이번 데이트는, 우리 둘만의 시간이었으면 해.
2장
백기와 함께 시장 거리를 지나가던 중, 인파와 다양한 가판대들 앞에서 우리 둘 다 잠시 갈피를 잡지 못했다.
거리를 따라 다양한 노점들이 늘어서 있었고, 그 사이에 선 우리는 어느 방향으로 가야 할지 잠시 망설였다.
나는 잠깐 고민하다가, 조금 떨어진 곳에 있는 아이스크림 가게가 눈에 들어왔고, 마음이 흔들려 왼쪽을 가리켰다.
백기:
저쪽으로 가볼까?
우리는 눈을 마주쳤고, 동시에 가리킨 손끝이 같은 방향을 향해 있었다.
다양한 맛의 아이스크림이 풍기는 달콤한 우유 향이 식욕을 자극했다.
백기:
사장님, 이거 하나 주세요.
백기가 주저 없이 아이스크림을 사는 걸 보고, 나는 목을 살짝 짚으며 말없이 그의 시선을 끌었다.
그는 내 몸짓을 보고도 그대로 아이스크림을 내밀었다.
백기:
조금만 먹고, 나머지는 나 줄래. 감기 특권이야.
우리는 시장을 따라 아이스크림을 나눠 먹으며 걷기 시작했고, 마치 며칠 동안 못 나왔던 시간이 되돌아온 것처럼 느껴졌다.
어느새 우리는 시장의 입구까지 도달했고, 안경을 파는 작은 가게 앞에서 걸음을 멈췄다.
나는 백기의 옷차림을 훑어보다가, 진열대 위의 다양한 안경테들을 바라보았다.
연한 블루 스트라이프의 아우터와 깔끔한 이너는 안경과 제법 잘 어울릴 것 같았다.
나는 백기의 손을 이끌어 작은 가판대로 향했다.
그런데 내가 무슨 말을 꺼내기도 전에, 백기는 먼저 은색 테 안경 하나를 들어 내 콧대에 올려놓았다.
백기:
안경 고른다면, 이게 잘 어울릴 것 같은데.
나는 입술을 삐죽였다.
...분명히 내가 고르려고 했는데.
나는 다시 은색 안경 하나를 들어 백기에게 들이밀었다.
그는 그제야 내 의도를 알아챈 듯 고개를 끄덕였다.
백기:
나한테 골라주고 싶었구나.
나는 다시 진열대를 훑어보다가, 마음에 드는 안경을 발견했다.
손을 뻗으려다 말고, 핸드폰을 꺼내 자판을 두드렸다.
유연:
내가 고른 안경 어떤 건지 맞혀볼래요~
유연:
우리의 '궁합 테스트'라고 생각해요!
백기는 흥미로운 듯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백기:
도전을 받아들일게.
나는 일부러 여러 개를 집어 들며 연기했지만, 시선은 계속 같은 안경에 머물러 있었다.
내가 OK 사인을 보내자, 백기는 망설임 없이 그 안경을 들어 올렸다.
백기:
직감이 이거라고 말하네.
그는 안경을 써보더니, 은색 테가 그의 이목구비를 더욱 돋보이게 했다.
어떻게 그렇게 정확히 맞힐 수 있었지?
백기:
표정을 보니까 맞췄네?
나는 무의식적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아직도 놀란 눈빛으로 바라보는 나를 향해, 그는 덧붙였다.
백기:
안경 고를 때 네 눈동자 움직임을 봤어.
백기:
그리고 예전에 네가 내 안경 골라준 적 있잖아. 네 취향 기억하고 있었어.
지난번 안경 고르던 기억이 떠올랐고, 그는 다시 내 콧등을 살짝 건드렸다.
백기:
사실 힌트는 하나 더 있었어. 이 안경이 우리가 커플로 맞출 수 있는 디자인이거든.
내 작은 속셈이 들킨 것 같아, 나는 입을 삐죽이며 말했다.
유연:
혹시 백 경관님이 지금 내 생각도 다 맞히는 거 아니에요?
백기는 살짝 눈썹을 치켜올리며, 웃음을 터뜨렸다.
백기:
그 정도는 아니야. 아무리 그래도 항상 놓치는 부분이 있거든.
백기:
그래도 요즘엔 작은 것도 더 눈여겨보고 있어.
내가 궁금한 듯 눈을 깜빡이자, 그는 말을 이어갔다.
백기:
예를 들어, 네가 의문이 생길 때는 오리 인형 소리를 짧게 내고,
백기:
애교 부릴 땐 끝소리를 길게 내지.
유연:
그럼 지금은 “통역기”도 없는데, 내가 무슨 생각하는지 맞혀볼 수 있어요?
백기:
내 실제 실력을 ‘점검’해보고 싶은 거야?
나는 뜻밖의 기쁨에 눈이 반짝이며 고개를 연달아 끄덕였다.
백기:
좋아, 본부의 불시 점검, 받아들이지.
그가 능숙하게 주도권을 내게 넘기자, 나는 마다하지 않고 웃으며 받았다.
유연:
그럼 지금 내가 동작 하나 해볼 테니까, 뭘 생각하는지 맞혀봐요~
그렇게 말은 했지만, 이미 정답은 마음속에 정해놓은 상태였다.
백기:
준비됐어.
자신만만한 그의 얼굴을 보며, 나는 살짝 웃으며 세 걸음 뒤로 물러났다.
손가락을 들어 셋, 둘, 하나— 우리의 ‘찰떡 게임’이 시작됐다.
나는 고개를 들어 가만히 그를 바라보다가, 한참 후 조용히 앞으로 한 걸음을 내디뎠다.
백기:
끝이야? 생각보다 난이도가 있네.
유연:
어려운 건 아닌데요~ 백 대장님의 관찰력이 관건이죠!
나는 생각에 잠긴 듯한 그의 표정을 바라보며 속으로 웃었다.
설마 정답이 ‘선배 자신’이라는 건 눈치 못 챘겠지?
그런데 그건 조금 반칙 같기도 해서, 나는 힌트를 슬쩍 얹었다.
유연:
필요하면 힌트도 줄 수 있어요~
자신만만하게 그를 바라봤지만, 그는 내 손끝을 살며시 잡을 뿐이었다.
백기:
힌트는 필요 없어.
백기:
다만… 약간의 ‘외부 지원’은 필요할지도.
3장
따르릉 하는 초인송 소리와 함께 , 백기가 내 손을 잡고 골목 모퉁이의 한 가게로 들어섰다.
벽면을 가득 채운 형형색색의 뜨개 작품들, 거의 모든 자리가 차 있는 걸 보니 꽤 인기 있는 공방 같았다.
나는 고개를 들어 백기를 바라보며 눈을 동그랗게 떴다.
도움이 필요하다고 하더니 왜 공예점으로 온 거지?
그의 소매를 살짝 당기며 묻는 대신 신호를 보냈다.
하지만 백기는 아무런 설명도 없이 조용히 나를 끌어 한쪽 자리에 앉혔다.
백기
내가 생각을 해낼 때까지, 이걸로 시간도 보내고… 혹시 단서도 찾을 수 있을지도 모르니까.
정신을 차릴 틈도 없이, 백기는 테이블 위에 손수 공예 키트를 두 벌 꺼내 놓았다.
이 공방에서 정말 단서를 찾을 수 있다는 걸까? 설마 날 속이는 건 아니겠지?
하지만 백기의 자신만만한 얼굴을 보니 나도 모르게 턱을 괴고, 그가 뭘 하려는지 궁금해졌다.
그는 실타래 속에서 몇 가닥의 실을 골라내더니 손끝에 감기 시작했다.
매듭을 묶는 손놀림은 아직 어설펐지만, 찡그린 눈썹 사이로 흘러나오는 진지함이 자꾸 시선을 끌었다.
아직 좀 걸릴 것 같긴 하지만, 나도 요 며칠 아픈 동안 제법 배운 게 있으니 실전으로 써볼 기회 아닐까?
게다가 백기에게 작은 선물도 몇 개 만들어줄 수 있을지 모르고.
그때 떠오른 게 있었고, 나는 감기 앓던 날들에 봐뒀던 디자인을 떠올리며 예쁜 실팔찌 하나를 만들기로 했다.
다양한 색의 실이 손가락 사이를 부드럽게 지나며, 어느새 손목띠의 형태를 갖추기 시작했다.
하지만 무심코 다음 실을 잡으려 손을 뻗었을 때 실 반대편에서 뭔가 당겨지는 느낌이 들었다.
고개를 들어 시선을 따라가 보니, 그 붉은 실의 다른 끝은 백기의 손끝에 쥐어져 있었다.
백기
우연이네. 너도 이 빨간 실 쓰고 싶었던 거야?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실을 조금 더 잡아당겼지만, 금세 실타래는 다 풀려버렸다.
백기
두 사람이 쓰기엔 좀 부족하네. 내가 더 가져올게.
그가 자리에서 일어나기 전, 나는 실을 다시 한번 끌어당겼다.
그가 살짝 고개를 갸웃하는 걸 보고, 나는 테이블 구석에 놓인 수공예 예시 도안을 가리켰다.
거기에는 색연필로 그려진 종이컵 전화 한 쌍이 있었다.
내 손끝을 따라 시선을 옮긴 백기의 눈동자에 곧 이해한 듯한 표정이 번졌다.
백기
그렇네, 이 실로 이걸 만들면 딱 좋겠다.
우리는 자연스럽게 옆에 놓여 있던 빈 종이컵을 하나씩 집어 들고, 실 끝을 단단히 묶었다.
송곳으로 컵 바닥에 구멍을 내자, 긴 붉은 실이 두 개의 컵을 연결했다.
실을 살짝 당기자, 적당한 긴장감이 느껴졌고 나는 컵을 귀에 가져다댔다.

백기
...여보세요, 잘 들려?
컵 안에서 백기의 목소리가 전해졌다.
음색이 조금 흐릿했지만, 어린 시절로 돌아간 듯한 설렘이 피어올랐다.
나는 손을 들어 OK 사인을 보내며, 말을 좀 더 해달라고 눈짓했다.
백기
예전 이웃집 애들이 방을 따로 써도, 종이컵 전화로 속삭이곤 했지.
백기
귓속말하기 딱 좋거든.
원래는 맑았던 목소리가 평소보다 낮고 부드러워, 마치 시간을 초월하는 듯한 힘이 느껴졌다.
이번엔 내가 입을 컵에 가까이 대고, 백기를 ‘청취자’로 만들었다.
유연
그럼 그땐 어떤 얘기들을 속삭였는데요?
내가 이렇게 작은 목소리를 낸 게 전달될까?
얼른 고개를 들어 보니, 그의 눈과 시선이 딱 마주쳤다.
백기
좋아하는 사람이 좋아하는 것들… 그런 이야기였던 것 같아.
소란한 배경음 속에서도 백기의 말은 유난히 선명하게 다가왔다. 마치 우리를 위한 전용 채널이 열린 듯했다.
백기
원래 속삭임이란, 소중한 사람한테만 들려주는 거니까.
백기
지금도 마찬가지야.
종이컵이라는 새로운 매개체가 생기면서, 우리는 말없이도 소통할 수 있는 또 다른 방법을 얻은 셈이었다.
무슨 일이든, 컵을 한 번 당기기만 하면 상대가 가장 먼저 알아채준다.
마치 집에 있을 때의 ‘통역관’ 오리처럼 말이다.
조금 시간이 걸리긴 했지만, 백기에게 줄 털실 팔찌를 드디어 완성했다.
그런데 건네주기도 전에, 종이컵 전화선이 두 번 툭 하고 당겨졌다.
혹시 또 실타래를 가지러 가자는 신호인가 했는데
그는 어느새 조용히 내 앞에 손을 내밀고 있었다.
백기
시간이 좀 걸렸지만, 나도 완성했어.
내 시선이 테이블 위를 스치자, 백기 주변에 어느새 잔뜩 쌓여 있는 털실 꽃들이 눈에 들어왔다.
색 조합이 묘하게 엇갈린 것도 있고, 실이 엉켜버린 것도 있는 걸 보니 꽤 여러 번 시도한 것 같다.
그가 뭔가 비밀스러운 얼굴을 하고 있는 걸 보니, 나도 모르게 옆에 놓인 수화기를 들었다.
유연
딱 좋네요. 저도 방금 완성했어요. 동시에 공개해 볼까요?
나는 손바닥에 팔찌를 감싸 쥔 채 앞으로 내밀었다.
그도 고개를 끄덕이며 손바닥을 테이블 한가운데로 올렸다.
백기
삼, 이, 일을 셀까?
나는 윙크로 대답했다. 그럼~ 당연하죠!
숫자가 끝남과 동시에, 우리는 동시에 손을 펼쳤다.
거기엔 비슷한 디자인의 털실 팔찌 두 개가 나란히 놓여 있었다.
다만 백기가 만든 팔찌에는 작고 하얀 꽃 한 송이가 덧붙어 있었다.
백기
아까 네 옆에서 봤는데, 이 디자인이 귀엽고 잘 어울릴 것 같더라고.
유연
근데 원래 도안엔 꽃은 없었던 것 같은데요?
나는 그 작은 꽃을 가리키며 말했다. 뭔가 의미가 있을 것 같았다.
백기
그건 내가 생각한 힌트 중 하나였어.
네가 뭘 떠올릴지, 뭘 좋아할지 예측해 본 거지.
그는 그렇게 말하며, 조심스레 내 손목에 팔찌를 채워주었다.
바람에 살짝 흔들리는 하얀 털실 꽃이 생명을 얻은 것처럼 피어 있었다.
백기
정답에 가까워졌어?
나는 살짝 생각하다가, 컵 전화에 대고 조용히 말했다.
유연
거의 다 왔어요~
결국 ‘하얀 꽃’이니까 ‘백기’의 ‘백’과도 통하잖아요? 틀린 말은 아니지.
백기
좋아, 그럼 더 노력해서 다음엔 꼭 맞혀볼게.
4장
해가 서서히 저물어갈 무렵, 방에 남은 사람은 여전히 공예 테이블에 앉아 있는 나와 백기뿐이었다.
그는 갓 만든 털실 오리 인형을 손에 흔들며 내 쪽으로 건넸다.
백기
이번엔 정답 맞췄을까?
그의 손에서 털실 오리를 받아 들고, 나는 오리의 꼬리를 두 번 가볍게 눌렀다.
유연
정답은 아니지만, 귀여우니까 봐줄게요~
이게 벌써 몇 번째 “오답 시도”인지 모른다.
책상 위엔 동물, 꽃, 정체불명의 조형물까지 온갖 작품들이 가득하다.
처음엔 정말 정답을 찾으려는 줄 알았는데, 백기를 잘 아는 나로선 점점 알 것 같았다.
그는 단순히 “정답”을 찾는 게 아니라, 나에게 보여주고 싶은 마음을 다양한 방식으로 표현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렇게 하다 보니 어느새 책상은 온통 그의 마음으로 채워졌다.
백기
음... 이것도 아니었어?
유연
있긴 있죠, 하지만 귀여움으로 넘어가려는 건 통하지 않아요~
하얀 꽃, 항상 곁에 있던 오리 인형까지 어떤 대답이든 백기와 관련된 것들이었지만, 아직 퍼즐 한 조각이 빠져 있었다.
백기
정답이 멀지 않은 것 같네.
유연
후훗.
나는 고개를 들어, 그가 거의 맞췄다는 신호를 보냈다.
백기
그렇다면, 이제 확신이 생겼어.
그는 내 손을 잡고 창가로 이끌었다.
창문을 열자, 황금빛 석양이 도시를 덮고, 마치 한 폭의 그림처럼 눈앞에 펼쳐졌다.
백기
정답은 바로 여기 있어.
창문 사이로 스치는 산들바람이 우리 둘을 창가에 머물게 했다.

그가 선물한 털실 팔찌 위의 꽃이 바람에 흔들리며, 순백의 곡선을 그려낸다.
꼭 안아주는 그의 품은 안심이 되는 따뜻함으로 가득했다.
백기
바람 속에 내 대답이 있어.
백기의 목소리는 바람에 섞여 멀리 퍼져나가는 듯했다.
흩날리는 머리카락 아래, 노을빛이 비친 그의 눈동자.
그는 직접 말하지 않았지만, 나는 그가 이미 정답을 알아챘음을 느꼈다.
유연
정답이에요.
정말 이렇게 빨리 맞힐 줄은 몰랐는데.
나는 그의 귀에 기대듯 다가가, 최대한 가볍게 속삭였다.
승리를 확인한 듯, 그의 눈빛엔 확신이 가득했다.
백기
빨랐던 게 아니야. 원래 진작 알아야 할 답이었을 뿐이야.
해질 무렵, 나와 백기는 수제 공방에서의 수확을 가득 안고 집으로 돌아왔다.
조금 전의 ‘수수께끼’가 백기에 의해 풀려버린 걸 떠올리며, 나는 손에 들린 털실 오리 인형을 꼭 쥐었다.
소리는 나지 않았지만, 내 옆을 걷던 백기는 곧바로 고개를 돌려 물었다.
백기
아직도 내가 어떻게 맞췄는지 궁금해?
나는 손에 들린 오리를 들어 올려, 허공에서 살짝 고개를 끄덕였다.
힌트도 없는데 맞히다니, 정말 대단했다.
백기
문제는 어려웠어도, 내가 생각한 정답은 늘 단순했으니까.
그는 내 손끝을 단단히 맞잡고, 마치 내가 무슨 질문을 할지 이미 알고 있었다는 듯 확신에 찬 표정을 지었다.
백기
그때 너는, 나만 바라보고 있었잖아.
황금빛 햇살이 그의 눈동자에 드리워지며, 그 안에 내 모습이 투영되었다.
백기
혹시 몰라서, 다른 정답 후보들도 하나씩 지워봤어.
그의 자신만만한 말에 나도 모르게 웃음이 터졌다.
그리고 문득 떠오른 생각이 가슴속에 피어올랐다.
나는 살짝 그의 옷자락을 당기고, 까치발을 들어 그의 귀에 살짝 속삭였다.
유연
그럼 마지막에 틀렸으면 어쩔 뻔했어요?
내 목소리는 마치 종이컵 전화기 속처럼 조용히 울렸다.
백기
안 무서워.
그가 고개를 숙이자, 눈가에 드리운 속눈썹이 저녁 바람처럼 살며시 스쳤다.
백기
말했잖아.
나는 우리 사이의 ‘호흡’을 믿으니까.
백기
그러니까 너에게 주는 내 대답은 언제나 단 하나뿐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