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1
NW 계획. 정식 명칭은 ‘New Weapon 계획’이다. 이 계획이 처음 제안된 것은 20년 전이었다.
나는 이 계획의 총책임자였지만, 처음 계획을 제안한 사람은 내가 아니었다. 그렇다고 뛰어난 과학자 중 한 사람이었던 것도 아니었다.
바로 지금 내 앞에 있는 이 남자였다.
나는 수십 페이지에 달하는 협약서를 차분히 끝까지 읽었다. 그리고 서명하기 직전, 고개를 들어 그를 바라보았다.
"정말 이렇게 하실 생각입니까?"
남자는 내 눈을 똑바로 마주했다. 조금의 망설임도 흔들림도 없이 담담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모든 결과에 대한 책임은 내가 전적으로 지겠다."
"평생 오명을 짊어지게 될지도 모르는데도요?"
"이것이 우리에게 남은 유일한 기회야. 최소한의 대가로 대다수 사람들의 평화를 지킬 수 있는 방법이지. BLACK SWAN은 우리에게 다른 선택지를 남겨 두지 않았어."
나는 입을 다물었다.
하지만 남자는 내가 더는 이의를 제기할 틈조차 주지 않았다.
"내가 이런 결정을 내리는 건 이번이 두 번째야."
그는 여전히 평온한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첫발을 내디딘 순간부터 이 일에는 더 이상 물러설 길이 없었어."
나는 펜을 힘주어 움켜쥐었다.
평소라면 아무렇지도 않았을 펜의 무게가 그 순간만큼은 감당하기 어려울 정도로 무겁게 느껴졌다.
깊게 숨을 들이마신 뒤, 마침내 서류에 먼저 적혀 있던 그의 이름 옆에 한 획 한 획 내 이름을 써 내려갔다.
나는 분명히 알고 있었다.
우리에게는 이제 물러설 길이 없다.
반드시 앞으로 나아가야만 한다.
서명을 마치자 남자는 내 앞으로 서류 봉투 하나를 내밀었다.
"이번 계획의 첫 번째 실험 대상자야."
나는 곧바로 봉투를 열었다.
그런데 자료 첫 페이지에 적힌 이름을 확인한 순간, 충격에 휩싸여 고개를 들 수밖에 없었다.
내가 미처 입을 열기도 전에 남자가 먼저 대답했다.
"자료는 틀리지 않았어."
"지금으로서는 그가 가장 적합한 대상이야."
"하지만……."
나는 여전히 믿을 수 없었다.
"돌아가서 준비해도 좋아. 곧 그가 올 테고, 그러면 NW 계획이 정식으로 시작될 거야."
남자의 표정에는 아무런 변화도 없었다.
마치 자신과는 아무런 관계도 없는 사람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처럼 담담했다.
하지만 잔뜩 긴장한 그의 몸에서는 마음속의 동요가 희미하게 드러나고 있었다.
나는 가슴속에 밀려드는 충격을 억누르고 더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사무실로 돌아온 나는 다시 서류를 펼쳐 들고 자료를 꼼꼼히 살펴보기 시작했다.
백기. 24세.
Evol 능력은 바람 조종. 17세에 Evol을 각성했으며, 2년 전 실시된 검사에서 능력 등급이 최고 등급으로 판정되었다.
첨부된 사진 속 청년은 특파팀의 흰색 제복을 입고 정면을 바라보고 있었다.
날카로운 눈매와 치켜 올라간 눈썹에는 칼날 같은 예리함과 누구에게도 굽히지 않을 듯한 반항적인 기질이 서려 있었다.
사진을 통해서만 바라보고 있는데도 형언하기 어려운 압박감이 느껴졌다.
의지가 굳건한 사람이다.
나는 그렇게 판단했다.
하지만 이 계획에 따른 개조를 받고 난 뒤에도, 성공하든 실패하든 지금과 같은 굳건함을 유지할 수 있을까?
그것까지는 판단할 수 없었다.
다만, 그러기를 바랐다.
그도 그럴 것이……
그는 그 두 사람의 아이였으니까.
02
수십 년 동안 중단되어 있던 계획을 다시 시작하는 것은 수많은 어려움이 따르는 일이었다. 하지만 아무리 힘들더라도 이 계획만큼은 반드시 추진해야 했다.
한 달 뒤, BLACK SWAN의 활동이 갈수록 빈번해지자 남자는 최고 지휘관으로서 직접 대원들을 이끌고 기지를 떠났다.
그는 약속대로 첫 번째 실험 대상자를 데리고 돌아왔다.
그렇게 NW 계획이 정식으로 재개되었다.
백기는 실험실 한가운데에 말없이 서 있었다.
그의 낯익은 얼굴을 보는 순간, 나는 잠시 정신이 아득해졌다. 하지만 곧 감정을 추스르고 앞으로 진행될 1단계 실험의 내용과 그로 인해 발생할 수 있는 영향에 대해 설명하기 시작했다.
내 입에서 잔혹한 말들이 쏟아져 나왔지만, 백기는 아무런 반응도 보이지 않았다.
동요하지도, 두려워하지도 않았다.
그는 등을 곧게 편 채 서 있었다. 몸에는 아직 마르다 남은 핏자국이 묻어 있었다.
나는 단 한 번 그의 눈을 마주쳤다가 곧바로 시선을 돌렸다.
그늘이 드리운 눈동자에는 너무도 깊고 무거운 감정이 억눌려 있었다. 그러면서도 어딘가 비현실적일 만큼 평온해 보였다.
마치 자신의 운명을 침착하고 두려움 없이 받아들인 사람처럼.
"백기, 준비됐나?"
줄곧 침묵하고 있던 남자가 마침내 입을 열었다.
백기는 얼음장처럼 차가운 목소리로 짧게 대답했다.
"예."
남자는 나를 향해 고개를 돌리더니 가볍게 끄덕였다.
"시작하지."
우리는 이 실험을 위해 오랫동안 기다려 왔다.
실험이 정식으로 시작되기 직전, 남자는 서둘러 자리를 떠났다.
모든 절차는 질서정연하게 진행되었다.
차가운 빛이 내려앉은 실험실에서 약물을 투여받은 백기는 투명한 완충액 속에 잠겨 있었다.
그의 몸에는 수십 개의 금속 전극이 부착되어 있었고, 우리는 이를 통해 아주 미세한 수치 변화까지 관찰하고 있었다.
실험이 진행되자 얼마 지나지 않아 이상 징후가 나타났다.
심전도에 표시되던 파형의 움직임이 점점 느려졌다.
그러다 갑작스럽게 한 차례 크게 요동치더니, 그대로 일직선이 되어 버렸다.
마치 어둠 속에서 마지막으로 타오르던 작은 불씨마저 갑자기 꺼져 버린 것 같았다.
우리는 이미 이런 상황에 대비하고 있었다.
하지만 막상 그 순간이 닥치자, 나는 내 손이 떨리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한 연구원이 백기의 생체 징후가 거의 사라졌으며, Evol의 파동 역시 더는 감지하기 어려울 정도로 미약해졌다고 보고했다.
모든 수치가 잔혹한 현실을 보여 주고 있었다.
이번 실험은 실패로 끝나려 하고 있었다.
그리고 이 청년은 곧 사망 판정을 받게 될 터였다.
나는 벽을 세게 내리쳤다.
그제야 떨리던 손가락이 조금 진정되었다.
나는 연구원들에게 가능한 모든 소생 조치를 취하라고 지시했다.
하지만 시간은 속절없이 흘러갔다.
1분, 2분…….
마침내 그의 생명 징후가 완전히 사라졌다.
"백기……."
나는 두 눈을 감은 채 움직이지 않는 청년을 말없이 바라보았다.
그러자 오래전, 그 사람이 처음으로 내게 이 이름을 이야기했던 순간이 떠올랐다.
그때였다.
심전도의 직선이 아주 미세하게 흔들렸다.
누군가 놀라 외치는 소리가 들렸다.
나는 숨을 죽이고 화면을 주시했다.
파형의 움직임이 조금씩 커지기 시작했다.
마치 누군가가 손을 뻗어 죽음의 문턱에 선 그를 억지로 끌어당기는 것 같았다.
그리고 마침내 심전도가 정상으로 돌아왔다.
그제야 실험실에 있던 모두가 길게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실험이 끝난 뒤, 나는 백기의 경과를 관찰하는 임무를 맡았다.
병상에 누운 청년은 한 차례 죽음을 겪고 돌아온 탓인지 얼굴에 핏기 하나 없었다.
의식을 잃은 상태에서도 잔뜩 찌푸린 미간은 좀처럼 펴지지 않았다.
나는 따로 보관해 두었던 그의 소지품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전원이 꺼진 휴대전화, 열쇠 꾸러미, 특파팀 신분증…….
그리고 원래 가슴팍에 소중히 간직하고 있었던 사진 한 장.
사진은 상대가 예상하지 못한 순간에 찍힌 듯했다.
인화지는 이미 조금 누렇게 바래 있었고, 그 안에는 아름다운 소녀가 담겨 있었다.
나는 잠시 생각하다가 그 사진을 백기의 베개 옆에 놓아두었다.
어쩌면……
이렇게 하면 그가 좋은 꿈을 꿀 수 있을지도 모르니까.
03
실험이 끝난 지 일주일이 지났다.
몇 가지 상황은 당초 우리의 예상을 벗어났다.
백기가 의식을 되찾은 뒤 처음 30시간 동안은 사고가 일시적으로 혼란에 빠졌다. 동시에 개조된 그의 Evol은 우리가 통제할 수 없을 정도로 강력해져, 한때 실험실 전체를 파괴하기까지 했다.
다행히 어느 시점을 지나면서 그는 다시 안정을 되찾았다.
하지만 감정은 결여된 채 극도로 냉담해졌다.
마치 우리가 구상했던 그대로, 가장 강력한 '병기'가 된 것 같았다.
"쾅——!"
굳게 닫힌 문 너머에서 무언가 거세게 쓰러지는 소리가 들려왔다.
문에 손을 얹으려던 나는 그대로 동작을 멈췄다.
몇 분을 기다린 뒤에야 문을 밀고 들어갔다.
백기는 텅 빈 지하 훈련실 한가운데에 서 있었다.
그의 차가운 눈동자가 나를 향했다.
이미 여러 차례 겪은 일이었지만, 나는 또다시 가슴이 철렁 내려앉는 것을 느꼈다. 몸이 반사적으로 긴장했다.
온몸의 세포가 내게 경고하고 있었다.
그는 위험하다.
나는 일정한 거리를 유지한 채 그를 설득했다.
"우리가 세운 계획에 따라 차근차근 적응해야 해."
백기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의 주위로 검은 바람이 휘몰아쳤다.
소용돌이치는 기류는 칼날처럼 벽과 바닥을 갈라놓았고, 순식간에 훈련실 안의 모든 것을 휩쓸었다.
나는 손을 들어 얼굴에 새로 생긴 상처에서 흘러나오는 피를 닦았다.
그리고 말없이 그와의 거리를 조금 더 벌렸다.
나는 그가 Evol을 완전히 소진할 때까지 사용하고, 회복되기를 기다렸다가 다시 소진하는 과정을 반복하는 모습을 조용히 지켜보았다.
그것은 극심한 고통이 따르는 과정이었다.
온몸의 뼈를 모조리 부러뜨린 다음 억지로 다시 맞추는 것과 다를 바 없었다.
이처럼 폭발적인 에너지는 종종 백기 자신에게도 상처를 입혔다.
얼마 지나지 않아 그의 온몸은 상처투성이가 되었다. 마치 핏물 속에서 막 건져 올린 사람처럼 보일 정도였다.
"오늘 훈련은 이쯤에서 끝내야 해."
나는 다시 한번 그를 만류했다.
하지만 내 말에 돌아온 것은 날카로운 경보음이었다.
나는 경악한 채 백기의 눈앞에 나타난 텅 빈 공간을 바라보았다.
그 구역에 존재하던 모든 것이 사라져 있었다.
백기의 Evol에 변화가 일어난 것이다.
원래 실험 계획대로라면 적어도 보름이 지난 뒤에야 가능할 것으로 예상했던 돌파였다.
그때 백기가 마침내 입을 열었다.
"아직 나를 기다리는 사람이 있어."
그것이 바로 그를 움직이는 집념인 듯했다.
집념은 때로 한 사람을 파멸시키기도 하지만, 반대로 그 사람을 더욱 강하게 만들기도 한다.
나는 그를 기다리고 있다는 사람이 누구인지 알지 못했다.
그가 도대체 어떤 믿음을 품고 있기에 이토록 잔혹한 계획을 견뎌 낼 수 있는지도 알 수 없었다.
NW 계획.
이 계획은 실험 대상자의 체내에 존재하는 Evol 유전자를 최대한 자극하여, 짧은 시간 안에 Evol 능력을 강제로 완전히 개발하고 최고 수준에 이르게 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그에 따른 부작용 역시 명백했다.
실험 대상자가 힘의 부담을 견디지 못할 가능성이 매우 높았으며, Evol이 정점에 도달한다는 것은 곧 능력의 쇠퇴가 시작될 수 있다는 의미이기도 했다.
그런데 지금 백기가 개조를 통해 얻은 힘은 우리의 예상을 훨씬 뛰어넘고 있었다.
그의 Evol이 쇠퇴하기 시작하면 과연 어떤 결말을 맞이하게 될지, 우리 중 누구도 예측할 수 없었다.
마침내 백기가 움직임을 멈췄다.
그는 기력을 모두 소진한 채 계단에 주저앉았다.
나는 참지 못하고 물었다.
"왜 이 계획에 참여하기로 한 거지?"
"제겐 힘이 필요합니다."
백기는 조금도 망설이지 않고 대답했다.
"힘을 얻는 것이 반드시 좋은 일일까?"
"많은 사람에게는 그렇지 않겠죠."
나는 그가 끝까지 말하지 않은 뜻을 이해했다.
백기는 자신이 그 힘을 통제할 수 있다고 확신하고 있었다.
그 확신은 오히려 우리보다도 훨씬 굳건했다.
그 순간, 나는 문득 그의 미래가 기대되기 시작했다.
비록 NW 계획의 실험 대상자들은 결국 하나의 '병기'가 될 뿐이라 해도.
그리고 병기에게 허락된 미래란……
무언가를 파괴하거나, 스스로 파괴당하는 것뿐이라 해도.
04
실험이 끝난 지 2주가 지났다.
NW 계획의 개조 과정은 이미 마지막 단계에 접어들었다.
우리는 백기에게서 방대한 양의 데이터를 수집했고, 이를 바탕으로 향후 계획을 계속 추진할 수 있게 되었다.
한편 BLACK SWAN이 갑자기 본격적인 활동을 드러내면서 우리 역시 NW 계획의 진행 속도를 높이고 다음 실험 대상자를 찾기 시작해야 했다.
하지만 이는 대단히 어려운 일이었다.
개조를 받는 사람은 누구나 충분히 굳건한 의지를 지니고 있어야 했다.
파괴적인 힘이 가져오는 고통을 견뎌 내야 할 뿐만 아니라, 그 힘이 주는 유혹까지 이겨 내야 했기 때문이다.
이처럼 중요한 시기에 백기가 갑자기 나를 찾아왔다.
나는 그가 내 앞에 내려놓은 서류를 바라보며 한참 동안 침묵하다가 마침내 입을 열었다.
"이 일로 어떤 결과를 맞이하게 될지 충분히 알고 있다면, 서명해 주겠어."
"잘 알고 있습니다."
백기는 등을 곧게 편 채 서 있었다.
그의 눈에 깃든 결의는 조금도 흔들리지 않았다.
나는 더는 묻지 않았다.
펜을 들어 신중하게 협약서에 서명했다.
NW717의 임무 파견을 승인한다.
"네가 굳이 이 길을 선택하겠다면……."
나는 평범해 보이는 검은 장갑 한 켤레를 꺼내 책상 위에 올려놓았다.
"이게 그 힘을 제어하는 데 도움이 될 거야."
백기는 잠시 멈칫했다.
조금 의외라는 표정이었다.
하지만 그 역시 아무것도 묻지 않고 검은 장갑을 착용했다.
가죽은 손가락 하나하나에 빈틈없이 꼭 들어맞았다.
백기는 장갑을 낀 자신의 손을 내려다보았다.
그의 눈에 순간 어두운 그림자가 스쳐 지나갔지만, 이내 사라졌다.
이것은 세상에 존재해서는 안 되는 힘이었다.
하지만 여러 가지 예상치 못한 상황이 겹치면서 결국 세상에 모습을 드러내고 말았다.
임무를 마친 백기를 다시 만났을 때, 실험실에 있던 모든 인원은 이미 대피한 뒤였다.
조수는 미리 내게 경고했지만, 나는 기어이 이 자리에 남기로 했다.
내 눈앞에 있는 백기는 거의 무너지기 직전이었다.
그는 몸을 잔뜩 웅크린 채 두 주먹을 세게 움켜쥐고 있었다.
피부 위로 혈관이 불거져 나왔고, 감당하기 어려운 충격을 견디고 있는 듯했다.
나는 그가 왜 이런 상태에 빠졌는지 잘 알고 있었다.
바로 임무를 떠나기 전, 내가 경고했던 그 결과였다.
NW 계획에서 실험 대상자를 개조하는 데 사용하는 약물은 유난히 강력했다.
약물이 체내에 완전히 융합되기 전까지는 그에 따른 반작용 또한 극심하게 나타났다.
지금 이 순간, 백기의 몸속에 있는 모든 혈관과 세포 하나하나가 격렬한 고통을 호소하고 있을지도 몰랐다.
그 고통은 최초의 실험 때보다 몇 배는 더 심할 것이었다.
"통증을 가라앉혀야 해."
나는 주사기를 꺼내 약물을 채운 뒤, 통증을 차단하는 주사를 놓으려고 했다.
"필요 없습니다."
백기는 고개조차 들지 않았다.
그의 말투는 어쩌면 지금의 나보다 더 침착했지만, 목소리에는 알아차리기 어려울 만큼 미세한 떨림이 섞여 있었다.
"보고서는 읽었습니다. 제게는 이번 기회가 필요합니다."
그는 단 한 번뿐인 실낱같은 가능성에 모든 것을 걸고 있었다.
나는 그의 의사를 존중해 통증 차단 주사를 내려놓았다.
대신 실험의 마지막 단계에 해당하는 약물을 그에게 주입했다.
모든 처치를 마친 뒤에는 멀찍이 떨어진 곳에서 최종 결과를 기다렸다.
백기는 시종일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한때는 숨소리마저 사라진 듯 희미해졌다.
오직 장비에 표시되는 수치만이 그의 몸속에서 얼마나 격렬한 변화가 일어나고 있는지를 보여 주고 있었다.
나는 그렇게 밤새 한숨도 자지 않고 그를 지켜보았다.
그리고 동이 희미하게 틀 무렵, 백기가 몸을 일으켰다.
오랫동안 같은 자세를 유지한 탓인지 몸이 한 차례 휘청거렸다.
하마터면 균형을 잃고 쓰러질 뻔했다.
나는 그를 대상으로 정밀 검사를 진행했다.
그 결과, 백기가 성공 확률이 고작 천분의 일에 불과한 기회를 붙잡았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었다.
당초 우리의 계획에서는 개조체의 완성도가 아무리 높아도 80% 안팎에 머물 것으로 예상했다.
하지만 지금 백기의 완성도는 그 수치를 훨씬 뛰어넘고 있었다.
나는 복잡한 심정으로 최종 검사 결과를 바라보았다.
그리고 백기가 떠나기 직전, 다시 한번 경고했다.
"그 힘이 결국 너를 집어삼킬 수도 있어."
백기의 온몸에서는 위험한 기운이 감돌고 있었다.
하지만 그의 눈빛만큼은 얼음처럼 차분했다.
"물러설 수 없습니다."
이 계획은 그에게 단 한 걸음도 물러설 여지를 남겨 두지 않았다.
나는 알고 있었다.
백기의 개조가 성공했다는 것은 곧 NW 계획이 본격적으로 확대되기 시작한다는 의미이기도 했다.
나는 그와 관련된 모든 데이터와 보고서를 정리해 기록 보관철에 넣었다.
그리고 곧 시작될 다음 실험을 준비했다.
05
NW 계획이 시행되면서 개조를 받은 사람들이 미치는 영향은 점점 우리의 통제 범위를 벗어나기 시작했다.
이에 우리는 모든 일이 끝난 뒤, 실험에 참여한 사람들을 어떻게 해야 할지 고민하기 시작했다.
누군가 내게 앞으로 어떻게 할 생각이냐고 물었다.
나는 어쩌면 아무도 나를 알아보지 못하는 곳을 찾아가, 죄책감과 참회 속에서 조용히 여생을 보내게 될지도 모르겠다고 대답했다.
NW 계획의 첫 번째 성공적인 실험 대상자였던 백기는 내가 예상했던 것보다 훨씬 일찍 자신의 선택을 내렸다.
내가 지휘관의 사무실 앞에 도착했을 때였다.
막 닫히려는 문틈 사이로 책상 위에 놓인 배지 하나와 검은 장갑 한 켤레가 눈에 들어왔다.
복도에서 백기와 스쳐 지나갈 때, 그는 나를 향해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품에서 물건 하나를 꺼내 그에게 건넸다.
그가 처음 실험을 받았을 당시 따로 보관해 두었던 특파팀 신분증이었다.
백기는 조금 의외라는 표정을 지었다.
그러더니 아주 작은 목소리로 "감사합니다."라고 말하고는 미련 없이 걸음을 옮겼다.
나는 그 자리에 서서 멀어지는 그의 뒷모습을 바라보았다.
백기는 걸을 때도 언제나 등을 곧게 펴고 있었다.
처음에는 무겁게 느껴지던 그의 발걸음이 점차 가벼워졌다.
이윽고 그는 휴대전화를 꺼내 어딘가로 전화를 걸었고, 복도 모퉁이를 돌아 시야에서 사라졌다.
이것이 우리가 마지막으로 만나는 순간이기를.
나는 마음속으로 그렇게 바랐다.
그리고 굳게 닫힌 사무실 문을 밀고 들어갔다.
남자는 창가에 말없이 서 있었다.
마치 무언가를 기다리고 있는 듯했다.
"왜 백기를 보내주기로 하신 겁니까?"
내가 물었다.
남자는 다시 책상 앞으로 돌아왔다.
그의 뒤편 벽에 새겨진 NW의 표식이 마치 무겁고 거대한 그림자가 되어 그를 뒤덮고 있는 것 같았다.
그가 담담하게 입을 열었다.
"이런 직책을 맡고 있지만, 나 역시 한 사람의 아버지니까."
잠시 말을 멈춘 그는 덧붙였다.
"비록 좋은 아버지는 못 되었지만."
그는 눈에 잘 띄지 않는 서랍 하나를 열었다.
그리고 그 안에서 누렇게 바랜 사진 한 장을 꺼냈다.
나는 그 사진에 누가 담겨 있는지 알고 있었다.
이제는 모든 사람의 기억 속에만 영원히 남아 있는, 그 아름다운 여인의 모습이었다.
문득 그가 온영의 죽음을 알게 되었던 밤이 떠올랐다.
그리고 온몸에 가시를 세운 채, 얼굴 가득 거부감과 절망을 드러내던 어린아이의 모습도 떠올랐다.
참으로 길고 무거운 밤이었다.
하지만 다음 날이 되자 남자는 이미 모든 동요와 무너져 내렸던 감정을 거두어들인 뒤였다.
마치 내가 목격했던 그 모든 고통이 한낱 착각이었던 것처럼.
그때의 어린아이는 이제 어른이 되었다.
하늘과 땅 사이에 당당히 설 수 있을 만큼, 누구도 더는 그의 존재를 외면할 수 없을 만큼 성장했다.
그는 어머니가 바라던 그대로 강인한 수호자가 되어 있었다.
어째서인지 나는 불쑥 이런 말을 꺼냈다.
"사실 두 분은 많이 닮으셨습니다."
그러자 남자는 곧바로 고개를 저었다.
"그 아이가 나보다 더 훌륭해. 그때……."
그는 거기까지 말하고는 잠시 생각에 잠긴 듯 더 이상 말을 잇지 않았다.
나 역시 굳이 그 이야기를 파고들지 않았다.
대신 준비해 온 서류를 꺼내 NW 계획의 모든 실험에 대한 최종 결과를 사실대로 보고했다.
이 계획의 본래 목적은 절대적인 힘을 이용해 능력이 폭주한 Evolver를 제거하고, 일반인과 Evolver 양쪽의 피해를 줄이는 것이었다.
계획이 시행되는 동안 우리는 그 목적을 달성했다.
하지만 동시에 피할 수 없는 수많은 문제도 생겨났다.
그리고 지금은……
어쩌면 이 계획도 무대에서 물러날 때가 된 것인지 몰랐다.
나는 오랫동안 기다렸다.
그리고 마침내 남자의 선언을 들을 수 있었다.
"NW 계획은 일주일 후 정식으로 종료한다."
어쩌면 우리 모두가 오랫동안 기다려 온 순간일지도 몰랐다.
나는 서류를 정리하고 그를 향해 경례했다.
그것은 동시에 이 계획을 위해, 그리고 이 세상을 위해 자신의 모든 것을 바친 사람들에게 보내는 경의이기도 했다.
머지않아 이 계획은 기나긴 역사의 흐름 속에 묻혀, 다시는 누구의 입에도 오르내리지 않게 될 것이다.
오직 반짝이는 저 별들만이……여전히 끝없이 긴 밤을 밝히고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