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장
유연:
1호기, C8입니다. 기준점 위치 요청합니다.
유연:
1호기, C8. 악천후를 만났습니다. 귀환 시도하겠습니다!
폭우가 조종석을 총알처럼 때리며, 가시거리는 거의 제로에 가까웠다.
숨이 막힐 듯한 불안감 속에 지휘부와의 연락을 시도했지만, 귀에는 잡음과 외부의 거센 바람 소리만이 들려왔다.
젠장... 통신이 끊긴 것 같다.
어떻게 해야 하지? 탈출 장치를 작동시켜야 하나?
하지만 낙하산을 펼치면, 지금의 풍속으로는 방향 조절이 불가능해져 바로 바다로 휘말릴 것이다.
신경을 곤두세우며 계기판의 급변하는 데이터를 주시했다.
첫 원거리 탐사 비행의 시험 조종사로서, 임무의 위험성을 알고 있었고, 다양한 위험에 대비할 각오도 되어 있었다.
회색빛 하늘을 바라보며 이를 악물고 조종간을 움켜쥐었다.
다음 순간, 전투기가 급강하하며 강한 관성으로 인해 왼쪽으로 휘청였다.
참을 수 없는 통증을 무시한 채, 즉시 디스플레이를 확인하자 심장이 철렁 내려앉았다.
폭우로 인해 기류가 차단되어 왼쪽 엔진이 꺼진 것이다.
귀를 찢는 듯한 경고음이 울려 퍼지자 나는 망설일 틈도 없이 왼쪽 엔진의 연료 공급을 차단하고, 동력을 오른쪽 엔진으로 전환하여 탈출을 시도했다.
그러나 전투기는 마치 늪에 빠진 듯, 갑작스레 폭풍의 중심으로 끌려 들어갔다.
짙은 구름 속에서 여러 개의 거대한 소용돌이가 하늘에서 내려와 거센 바다와 맞닿아 있었다.
해상 토네이도에 휘말리기 직전, 생사가 달린 순간에 나는 모든 것을 걸고 엔진 출력을 최대치로 올려 전력을 다해 벗어나기로 결심했다.
설령 실패하더라도, 파도와 폭풍 속에 녹아들 뿐이다.
조종간을 놓으려는 순간, 낯설지만 단호한 지시의 목소리가 귀에 울려 퍼졌다.
??:
조종간을 놓아!
유연:
...?!
유연:
1호기? 여기는 C8! 왼쪽 엔진이...
무의식적으로 조종간을 놓았지만, 다음 순간 무전기의 통신 표시등이 켜지지 않은 것을 발견했다.
그러나 폭풍우는 의심할 여유조차 주지 않았다. 거센 바람이 전투기를 휘감아 다른 방향으로 밀어냈다.
격렬한 요동 속에서, 거대한 소용돌이가 바로 눈앞에 다가왔다.
??:
C8, 윈드시어를 이용해 20도 상방으로 기수를 올려!
유연:
...!
이번에는 조종석 유리를 통해 더 명확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모든 것을 꿰뚫는 듯한 지시였으며, 사방에서 바람을 타고 전해지는 듯했다.
충격과 의문이 가득했지만, 지금은 모든 것을 걸어야 할 때였다. 바람의 흐름을 느끼며 조종간을 조작했다.
??:
C8, 좌측으로 기울이며 추진력을 줄여, 기류의 절단면에 진입하여 충격을 완화해.
유연:
...
숨을 죽이고, 지시에 따라 엔진 출력을 낮추며 날개 기울기를 안정시켰다.
전투기는 여전히 기류 속에서 흔들렸지만, 짙은 회색 구름이 서서히 그 무거운 베일을 벗기 시작했다.
곧, 북쪽 먼 곳에 윤곽이 뚜렷한 땅이 모습을 드러냈다.
그 섬은 타원형으로, 좁고 긴 해안선을 가지고 있었다.
??:
C8, 착륙 장치를 내리고 속도를 최소로 줄여.
??:
착륙 각도를 준비하고, 해안선 북단을 향해 조준해.
맑고 단호한 목소리가 다시 창을 통해 들려왔으며, 내 생각과도 일치했다.
하지만 그는 이 전투기가 이미 심각하게 손상되었다는 것을 알지 못했다.
계기판의 상태를 보며, 나는 조종간을 단단히 움켜쥐었다.
유연:
C8 확인. 그러나 착륙 장치가 고장 나, 정상적인 착륙이 어려울 수 있습니다.
??:
...
비행 고도가 점점 낮아지는 것을 보며, 나는 깊게 숨을 들이쉬고 큰 소리로 말했다.
유연:
제가 바다에 떨어지는 순간, 바람으로 저를 해안선으로 밀어주세요!
??:
현재 각도로 착륙하면, 전투기는 즉시 해체될 거야.
유연:
저는 프로 파일럿이에요.
바람과 함께 밤낮으로 수없이 많은 시간을 보냈기 때문에 이 전투기와 내 실력에 자신 있어요.
당신이 누구든, 사람이든 바람의 신이든, 아니면 생존을 향한 제 환청이든...
부디 다시 한 번 당신의 바람을 제게 빌려주세요!
갑자기, 정면에서 거대한 강풍이 몰아쳤다.
전투기는 격렬하게 흔들렸지만 통제력을 잃지 않았고, 기류에 이끌려 빠르게 해안선으로 향했다.
나는 입술을 꽉 깨물고 조종간을 움켜쥐며, 점점 가까워지는 바다를 주시했다.
파도에 떨어지기 직전, 그 바람이 마치 나를 단단히 받아주듯, 함께 해변으로 굴러갔다.
쿵——!
충돌음이 귀를 때렸고, 시야에는 하늘을 뒤덮는 모래먼지가 일었다.
강한 충격으로 몸이 앞으로 쏠렸고, 안전벨트가 가슴을 조여 거의 숨이 막힐 지경이었다.
회색 하늘 아래, 파도와 폭우가 뒤엉켰고, 어지러운 머릿속에는 끊임없는 윙윙거림이 맴돌았다.
유연:
...
나는 그 목소리를 부르고 싶었지만, 시야는 점점 어두워졌다.
어둠이 스며들며, 마지막으로 눈에 들어온 것은 푸른 하늘빛의 물결이었다——
거대한 물고기 꼬리가 거센 파도 속에서 높이 치솟았고, 미묘한 빛을 반사하며, 결국 길고 가느다란 두 다리로 변해갔다.
거의 본능적으로, 나는 손끝을 들어 통신 버튼을 눌렀다.
유연:
...C8, 미확인 인어 발견.
2장
의식의 파편들이 마치 깊은 심해 속으로 가라앉듯 흩어졌고,
잡을 수도, 터뜨릴 수도 없는 수많은 거품들이 피어올랐다.
“인어는 강력한 집단으로, 언젠가 반드시 일반인에게 위협이 될 것이다.”
“강력한 Evol 앞에서도, 신념을 지키고 무기를 손에서 놓지 마라.”
“…그는 가장 뛰어난 사람이었다……”
“시험 통과를 축하한다. 오늘부터 너는 정식으로 회색 송골매 중대에 배속된다.”
“…B7이 탈영했어……!”
엄숙한 보고 음성과 함께, 나는 눈을 번쩍 뜨며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곧이어 짙게 몰려오는 어지럼증에 휘청이며 침대 가장자리를 손으로 짚었다.
눈을 몇 번 세게 깜빡인 뒤, 손바닥에 닿는 거친 면 소재의 감촉에 시선을 내렸다.
밝은 하늘색의 낡은 침대보가 깔려 있었고,
내 몸에는 크고 작은 붕대가 감겨 있었다.
비록 조금 어긋나 있었지만, 표준적인 8자 교차법으로 잘 묶여 있었다.
주위를 예리하게 둘러본 나는, 자신이 아주 소박한 나무 오두막 안에 있다는 것을 알았다.
작은 탁자 하나, 침대 하나, 구석의 난로에서는 아직도 따뜻한 열기가 조금 남아 피어오르고 있었다.
유연:
……
머릿속을 스치듯 해변의 희미한 그림자가 떠올랐다.
나는 눈살을 찌푸리고 혼란스러운 마음으로 조심스레 문을 열고 나왔다.
눈앞에는 짙푸른 바다가 펼쳐져 있었고, 잔잔한 파도가 바위에 부딪혀 하얀 포말을 튀기고 있었다.
어제의 폭풍우가 마치 꿈처럼 아득하게 느껴졌다.
흩어진 기억을 더듬으며 해안을 따라 걸었다.
섬은 식생이 무성했고, 멀리에는 커다란 야자수들이 숲처럼 늘어서 있었다.
세상에 잊힌 듯, 고요하고 고립된 섬이었다.
한쪽으로 돌아가자, 거대한 고래의 백골이 얕은 바닷가에 누워 있었고,
그 뒤로는 모래에 깊이 처박힌 내 전투기가 보였다.
유연:
…꽤 심하게 부딪쳤네.
강제 착륙에는 성공했지만, 엔진은 충격으로 심하게 휘었고,
날개는 일부 파손되어 있었으며, 조종석 유리는 산산이 부서져 있었다.
나는 조심스레 조종석 안으로 들어가 상태를 확인했다.
다행히 내부 손상은 심하지 않았다.
연료통, 엔진, 그리고 블랙박스 — 이 세 가지는 거의 기적적으로 멀쩡했다.
그제야 나는 음성 기록 장치를 힘껏 눌렀다.
아직 이 전투기를 고칠 수 있을지는 모르지만,
비행 중의 모든 기록을 남겨두는 건 필수였다.
만약 내가 이 외딴 섬에서 죽는다 해도, 누군가 이 기록을 발견하게 된다면
더 많은 위험을 피할 수 있는 실마리를 얻게 될 것이다.
유연:
여기는 회색 송골매 중대 C8.
500해리 비행 중 특대형 폭풍을 만나, 무명도로 불시착…
사람의 흔적이라고는 전혀 없는 해변을 바라보다가, 나는 잠시 생각에 잠긴 뒤 한 문장을 더했다.
유연:
섬 주변에 인어 존재가 의심됩니다…
말이 끝나기 무섭게, 탕! —
기록 장치가 날아온 돌멩이에 맞고 모래 위로 떨어졌다.
모래가 튀는 순간, 몸을 돌리려 했지만
그보다 빠르게 차가운 무언가가 내 목덜미에 닿았다.
??:
너무 느려.
그 목소리였다.
폭풍 속에서 들었던 바로 그 음성.
그는 거친 바람에 능할 뿐 아니라, 움직임 또한 날카로웠다.
나는 아무 소리도 감지하지 못했다.
나는 천천히 두 손을 들어 머리 위로 올렸다.
??:
움직이지 마.
유연:
…저는 적의가 없어요.
유연:
폭풍 속에서 제게 말을 걸었던 사람, 당신 맞죠?
당신이 저를 구했어요. 감사 인사를 전하고 싶어요.
그는 대답하지 않았다.
그저 시선을 떨군 채, 한 걸음 더 가까이 다가왔다.
뜨거운 숨결이 목덜미를 스쳐 지나갔다.
??:
회색 송골매 중대가 왜 이곳에 있지?
유연:
……
유연:
저는 정기 순찰 비행 중이었고, 운 나쁘게 특대형 폭풍을 만나 어쩔 수 없이 착륙했어요.
유연:
그런데… 당신, 회색 송골매 중대를 알고 있네요?
저한테 붕대를 감아준 솜씨를 보면, 군 경험도 있으셨던 거 아닌가요?
나는 목소리를 점차 낮추며 말했고, 동시에 옆눈으로 그의 움직임을 살피며 돌아설 타이밍을 재고 있었다.
몸을 돌리는 찰나, 폭포처럼 쏟아지는 햇살이 세상을 눈부신 금빛으로 물들였고, 나는 그 안에서, 더 뜨겁게 타오르는 호박빛 눈동자와 마주쳤다.
유연:
……!
놀라움에 몸이 굳어 있던 순간, 그는 갑자기 내 어깨를 거칠게 움켜쥐고 힘껏 뒤로 밀쳤다.
나는 모래 위로 거칠게 내동댕이쳐졌고, 그가 곧바로 몸을 숙여 나를 누르듯 덮쳤다.
햇빛은 그의 그림자에 가려졌고, 시야는 오롯이 그로 가득 찼다.
??:
겨우 살아났으면서, 또 죽을 셈이야?
그의 눈빛은 번뜩였고, 턱선은 날카롭게 각졌으며, 그의 전체적인 존재감은 칼날 같았다.
맑고, 정제된 — 그러면서도 치명적으로 예리했다.
그런데도 이상하게,
나는 피식 웃음이 새어 나왔다.
유연:
당신이 날 구했잖아요.
정말 죽이려 했으면, 전 바다에서 이미 죽었겠죠.
??:
군인은 요행을 바라지 않아.
네 교관이 그렇게 안 가르쳤나?
유연:
물론 가르쳤죠.
하지만 지금 이 순간만큼은…
제 판단을 믿고 싶어요.
유연:
…선배.
그 마지막 두 글자가 입 밖에 나오자, 그의 표정이 순간 굳어졌다.
또렷한 이목구비가 미묘하게 일그러졌고, 그는 싸늘한 눈빛으로 나를 내려다보았다.
??:
너, 누구야?
그는 손에 힘을 주며, 질문과 동시에 내 어깨를 짓눌렀다.
살짝 열이 오르는 통증이 신경을 타고 퍼져 나갔다.
나는 무의식적으로 숨을 들이켰고, 그는 내 상처를 힐끗 살피곤 힘을 살짝 줄였지만, 여전히 날 꽉 붙들고 있었다.
유연:
백기 선배, 안녕하세요. 저는 선배의 경찰학교 후배, 유연입니다.
유연:
현재 회색 송골매 중대 소속으로, 장거리 시험비행 임무 중입니다.
그는 잠시 말을 잇지 않았다.
내 얼굴을 주의 깊게 바라보며, 마치 기억 속 어딘가에서 단서를 찾으려는 듯했다.
하지만 결국, 그의 눈빛엔 단지 얕은 경계와 판단만이 담겨 있었다.
백기:
난 널 알지 못해. 그런데 넌 나를 본 적 있다고?
유연:
2년 전, 선배의 사진이 부대 전체에 공개됐어요.
체포 지시와 함께요.
그는 그 말을 듣고 눈을 가늘게 떴다.
그 눈동자엔 잠깐, 낯선 감정이 스쳐 지나갔다.
백기:
내가 누군지 알면서도, 임무 내용을 그대로 말해?
유연:
물론이죠.
만약 당신이 정말 소문 속의 탈영자라면……
유연:
이게 제가 가장 빠르게 진실을 확인할 수 있는 방법이니까요.
내가 내놓은 설명이 예상 밖이었던지,
그의 입술이 살짝 굳어졌다.
백기:
확인?
유연:
네. 전… 답을 알고 싶어요.
유연:
선배가 첫 시험 비행을 했을 때,
멀리서 한 번 본 적이 있어요.
열여섯, 경찰학교에 막 입학했을 때였다.
훈련장 상공을 날아오르는 전투기 한 대가 있었다.
불꽃처럼 긴 꼬리를 끌며, 목을 치켜든 듯이 포효했고, 거의 도발적인 자세로 비스듬히 하늘을 가르며 구름과 태양을 찢고 나아갔다.
기체는 햇빛을 받아 번뜩였고, 맑고, 순수하고, 깨끗했다.
마치 하얀 새 한 마리가 자유롭게, 힘차게 날아오르는 것 같았다.
그 조종사가 누구인지는 몰랐다.
하지만 이름은 알고 있었다 — 백기.
그날의 하늘을, 나는 단 한 번도 잊은 적이 없다.
그리고 이후로, 나도 조종간을 쥐게 되었다.
아마도 그날의 기억이 지금 눈앞에 다시 펼쳐진 듯,
처음 하늘을 꿈꾸었던 그 마음이 다시금 떨려왔다.
나는 고개를 들어, 여전히 나를 가늠하듯 바라보는 그의 시선을 정면으로 마주했다.
유연:
선배, 저는… 늘 한 번은 선배를 만나고 싶었어요.
유연:
2년 전, 선배가 임무 중에 이볼 능력이 발현되어 인어로 변했고,
그 일로 ‘배신자’라는 누명을 썼다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부터…
유연:
그 뒤로도 계속, 다시 한 번 만나고 싶었어요.
유연:
선배가 정말 인어 측에서 파견된, 인간 사회에 숨어 있던 첩자였는지…
알고 싶었어요.
백기:
……
나는 거의 숨도 쉬지 않고 말을 내뱉었고, 그의 표정은 점점 더 차가워졌다.
아직 나를 향한 압박감은 내비치지 않았지만, 그는 뭔가를 느낀 듯 갑자기 시선을 들었다.
그가 바라보는 방향을 따라가 보니, 해안의 파도가 어딘가 이상하게 요동치고 있었다.
그걸 인식할 새도 없이, 백기가 내 옷깃을 거칠게 잡아채 나를 나무숲 속으로 던졌다.
유연:
무슨 일이에요?
백기:
말하지 말고 숨어 있어.
그 순간, 바다 위로 거대한 파도가 솟구쳤고, 몇 개의 그림자가 물살을 가르며 튀어나왔다.
형형색색의 빛을 반사하는 물고기 꼬리가 잇달아 모습을 드러냈다.
…인어?!
놀랄 틈도 없이, 한 마리 인어가 번개처럼 백기 앞으로 돌진했다.
그 손바닥에서 찬빛이 번뜩이며 곧장 목을 향해 파고들었다.
하지만 백기는 물러서지 않고 오히려 다가가, 몸을 틀며 상대의 손목뼈를 꺾듯이 잡아챘다.
그 기세를 그대로 되받아 상대를 바닥에 세차게 내리꽂았다.
모래와 자갈이 튀었고, 나머지 인어들도 지상에 착지하며 인간 형태로 변했다.
그들은 반원형 진형을 갖춘 채 공격 태세에 들어갔다.
백기가 눈을 들자마자, 공기 속에서 갑자기 폭발이 일었다.
바람에 휘말린 흙먼지가 격류처럼 솟구쳐, 마치 갑옷처럼 단단한 ‘풍벽’을 이루었다.
모든 것이 흔들렸다.
나는 나무를 꽉 붙잡고, 밀려드는 무시무시한 기압에 필사적으로 버텼다.
……정말 강한 Evol.
백기:
죽고 싶지 않다면, 덤벼.
그는 담담하게 입을 열었고, 그 목소리는 또 하나의 거친 폭풍 같았다.
그 말이 끝나기 무섭게, 인어들이 일제히 덤벼들었다.
이토록 많은 Evol 능력자들을 본 건 처음이었다.
마치 세상이 내린 '지름길'이라도 되는 듯, 운 좋은 자들만이 도달할 수 있는 더 높은 경지 같았다.
허공에서 자라나는 덩굴, 금속처럼 빛나는 몸, 용과 뱀처럼 뒤틀리는 불꽃— 모든 것이 압박감을 동반하고 있었다.
백기는 그 틈을 유연하게 누비며, 몸을 감싼 바람의 칼날로 적들을 베었다.
피가 안개처럼 흩어졌고, 온 해변이 붉은 물결로 뒤덮였다.
모두가 쓰러졌고, 갑작스레 쏟아진 폭우가 그 위를 뒤덮었다.
오직 한 사람, 온몸이 피범벅이 된 그 등만이 서 있었다.
그는 오랜 시간 동안 그 자리를 지켰고, 등은 곧게 펴져 있었으며, 어딘가 외롭고도 완강한 기색이 배어 있었다.
나는 손끝에 힘을 주며, 무의식적으로 몸을 일으키려 했다.
하지만 백기가 먼저 고개를 돌려 나를 바라보았다.
폭우 속, 그의 호박빛 눈동자는 차갑게 빛났고, 마치 불길처럼 타오르고 있었다.
백기:
죽으러 온 게 아니라면,
상처부터 제대로 치료해.
백기:
여기서 나가.
3장
백기는 왜 인어들과 충돌하는 걸까?
그가 정말 소문대로 인어 쪽의 첩자라면, 왜 그렇게 훈련이 잘 된 인어들이 오히려 그를 공격하는 걸까?
혹시 인어들 사이에도 내부 갈등이 있고, 그는 그중 한 쪽에 속해 있는 걸까?
며칠 만에 찾아온 맑은 오후, 나는 천천히 오두막 밖으로 나와 주위를 둘러봤지만, 그 익숙한 실루엣은 여전히 보이지 않았다.
유연:
……오늘은 Evol을 사용하지 않는건가?
요즘 백기는 좀처럼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대신 그의 자리를 채운 건 잇따른 폭풍우였다.
내가 바람에 익숙한 만큼, 그건 결코 자연현상이 아니었다. 오히려 백기가 일으킨 Evol 능력 같았다.
적이 없는데도 그는 왜 이러는 걸까?
그 거세게 몰아치는 해풍은 도대체 무엇을 향해 싸우고 있는 걸까?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는 의문들, 설령 그를 다시 마주친다 해도, 제대로 말 한마디 나눌 틈도 없었다.
유연:
됐어, 날도 좋은데… 비행기나 좀 손봐야지.
나는 전투기 곁으로 가, 가는 길에 따온 열매들을 내려놓고 조종석 안으로 들어갔다.
예비 도구함에서 종이와 펜을 꺼내들고, 부품을 하나하나 점검하며 필요한 자재를 써내려갔다.
종이 두 장이 빼곡히 채워진 걸 보고, 나는 절망스러운 마음으로 조종석 위에 드러눕듯 누웠다.
유연:
……이 외딴 무인도에서 이런 부품들을 어디서 구해…
그때, 하늘을 가르며 흰 갈매기 한 마리가 날아갔다.
무언가 떠오른 나는 눈을 가늘게 뜨고, 두 손을 나팔 모양으로 입에 대고 소리쳤다.
유연:
백기! 선배——!
백기 선배——!!
주변은 고요하기만 했다.
단지 한 줄기 바람이 내 머리카락을 들어올려, 입술에 닿으며 조용히 “그만하라”는 듯 막을 뿐이었다.
나는 아무렇지도 않게 머리카락을 쓸어 넘기고는 계속해서 큰소리로 외쳤다.
오랜 시간이 지난 뒤에야, 등 뒤에서 바람이 조용히 감기듯 불어왔다.
고개를 돌리자—역시나.
그 말없이 다가온 실루엣이 어느새 내 뒤에 서 있었다.
그는 미간을 찌푸렸고, 입은 한 줄로 굳게 다문 채였다.
백기:
무슨 일이야?
유연:
선배, 안녕하세요!
이건 제가 비행기 수리하려고 정리한 자재 목록이에요, 한번만 봐주세요~
그의 다소 퉁명스러운 말투에도 나는 씩 웃으며 경례를 하고, 준비한 메모지를 건넸다.
백기:
……?
그는 그것을 받지는 않았지만, 종이 위에 적힌 내용을 힐끗 훑어보더니
마지막에는 살짝 눈썹을 움직이며, 마치 억지로 표정을 눌러 참는 듯했다.
그 눈빛에는… 미세한 안도의 기색도 스쳐갔다.
백기:
나보고 자재를 구해오라고?
유연:
네, 선배. 이 섬에는 아무것도 없어요.
그런데 떠나려면 비행기를 수리해야 하니까요.
백기:
스스로 해결해.
그가 그렇게 단도직입적으로 거절했지만, 나는 여전히 미소를 지었다.
유연:
그럼, 선배가 바람으로 저를 직접 이 섬 밖으로 날려 보내주셔야겠네요.
하지만 거리가 워낙 멀어서, 에너지를 엄청나게 소모하실 텐데요?
말하면서, 나는 무심코 그의 몸에 아직 아물지 않은 상처들을 바라보았다.
유연:
어차피 폐를 끼쳐야 한다면, 그냥 자재 구해주는 쪽이 훨씬 수월하지 않을까요?
백기:
……
백기:
안 도와.
내가 다시 몇 번이나 “선배—” 하고 불러도, 백기는 더 이상 돌아보지 않고 시야에서 사라졌다.
유연:
……안 도와주면 말지 뭐.
나는 회색 송골매 중대의 당당한 조종사다.
이 정도 일로 물러날 순 없지!
다음 날, 날이 갠 틈을 타서 나는 전투기에서 떨어져 나온 금속 조각들을 깎아 손삽을 만들고,
비옥한 땅을 찾아 구덩이를 파기 시작했다.
흙이 사방으로 튀었고, 땀이 등을 타고 흘러내렸다.
드디어 ‘田’ 자 형태의 밭이 윤곽을 드러내기 시작했을 무렵—
맞은편에 어느새 길고 곧은 다리 한 쌍이 나타났다.
나는 삽자루를 땅에 세우고 고개를 들어, 눈앞에 선 사람을 향해 환히 웃었다.
유연:
선배, 어떻게 여기까지 오셨어요?
백기는 밭을 반복해서 살펴보다가, 묵묵히 미간을 살짝 찌푸렸다. 마치 무언가를 참는 듯한 표정이었다.
백기:
이게 뭐야, 농사라도 지을 생각이야?
유연:
맞아요! 당장 이 섬을 떠날 수 없다면, 우선 살아야 하니까요.
구운 생선이랑 시큼한 열매만 먹고는 오래 못 버텨요.
그래서 야채랑 과일 씨앗을 조금 모아봤어요.
백기:
……
유연:
선배가 제 질문에도 아직 대답 안 해주셨잖아요.
이참에 이렇게 지켜보는 것도 괜찮은 방법 같아서요.
유연:
그리고… 하나만 부탁드릴 게 있어요.
그는 무표정한 얼굴로 살짝 눈썹을 들어 말하라는 신호를 보냈다.
유연:
그게… 그러니까, 다음에 선배가 또 폭풍우를 일으키실 거면,
이쪽만은 조금 피해주실 수 있을까요?
유연:
여기 작물들이 아직 연약해서, 잘못하면 다 망가져서요.
그의 표정이 점점 차가워지는 걸 보고, 나는 서둘러 경례를 붙였다.
유연:
물론요, 수확할 때가 되면 절반은 선배께 드릴게요!
백기:
필요 없……
그가 말을 끝내기도 전에, 쾅—! 하고 거센 파도가 갑자기 암석에 부딪혀 폭발하듯 부서졌다.
우리는 동시에 그 소리에 고개를 돌렸고, 해면 위로 다시 거대한 물결이 솟아올랐다.
몇 마리의 인어들이 파도를 가르며 튀어나와, 우리가 있는 해변 가까이로 올라왔다.
백기의 몸이 순간 굳어지는 것을 본 나는 조심스럽게 말했다.
유연:
…또 선배랑 싸우러 온 거야??
백기:
너는 네 밭이나 계속 파.
그는 그 말을 내뱉자마자 순식간에 몸을 날려 경사 아래로 내려갔다.
아마 이 상황이 지긋지긋했던 모양인지, 이번에는 그의 등장과 동시에 하늘에 거센 먹구름과 광풍이 일었다.
펑——! 하는 소리와 함께 기류가 폭발하고, 해변은 다시 피비린내 나는 전장으로 변했다.
나는 경사 중턱에서 그 상황을 내려다봤다. 높은 곳에서 본 덕분에, 상황 전체가 더 뚜렷하고 선명하게 보였다.
이번에 나타난 인어들은 또 다른 무리였지만, 역시나 백기를 향해 망설임 없는 살의를 드러내며 공격해왔다.
곳곳에서 피 안개가 솟구치며, 인어들 틈에서 끊임없이 피가 흩날렸다.
그 장면은 너무도 촘촘하고 끊임없어서, 마치 어디서 흘러나왔는지도 모를 피가 계속해서, 어디론가로 흘러가고 있는 것 같았다.
그때, 아래쪽에서 어렴풋한 대화 소리가 들려왔다. 나는 나무 사이에 몸을 숨긴 채 조금 더 가까이 다가갔고, 그 소리는 점점 또렷해졌다.
??:
백기, 넌 이미 그 분의 시련을 통과했어.
??:
우리랑 함께 돌아가자.
백기:
꺼져.
백기:
내가 어딜 가든, 그건 너희가 정할 일이 아냐.
차가운 웃음을 머금은 채, 백기는 주먹을 휘둘러 상대 남자의 얼굴을 세차게 후려쳤다.
바람은 고요했다. 상대는 백기가 이렇게 원시적인 방식으로 대응할 줄은 몰랐는지, 입가의 피를 닦으려 손을 들자마자 또 한 방의 주먹이 날아들었다.
백기의 빠르고 매서운 주먹은, 복잡한 Evol의 세계 속에서 오히려 거칠고 원초적인 방식으로 더욱 눈에 띄었다.
그건 마치 본능적인 분출이었다. 자신의 몸에 얼마나 많은 상처가 생기든 아랑곳하지 않고, 피는 땀처럼 방울져 흘렀으며, 기습처럼 쏟아진 폭우와 함께 모두의 머리 위로 내리꽂혔다.
빗줄기는 억수같이 퍼부었고, 세상은 다시 붉은색으로 물들었다.
그는 분노했고, 경멸했고, 지겨워했다.
하지만 결코 도망치지 않았다.
그동안 억눌려왔던, 안에서 소용돌이치던 감정들이 이 순간에 한꺼번에 터져 나왔다.
마치 꺼지지 않는 불꽃처럼, 거세게 타올랐다.
내가 얼어붙은 채 얼마나 그 자리에 있었는지 모르겠다.
인어들의 모습이 바닷가에서 사라지고, 백기가 끝내 쓰러질 듯 멈춰 서 있는 그 순간까지— 문득 정신이 돌아왔다.
나는 그대로 그에게 달려가, 휘청이는 백기를 안았다.
그는 생각보다 훨씬 무거웠고, 우리는 거의 비틀거리며 함께 모래사장에 주저앉았다.
유연:
선배, 괜찮으세요?
그는 아무 말 없이, 넓은 손으로 모래를 꽉 움켜쥐고는 고집스레 그걸 지렛대 삼아 일어서려 했다.
젖은 앞머리가 얼굴에 들러붙었고, 그의 턱선은 굳게 다물려, 이를 악물고 있는 것이 분명했다.
백기:
선배라고 부르지 마.
백기:
나는 이제 그곳에 속하지 않아.
다음 날, 하늘은 잿빛이었다. 나는 걱정스러운 마음에 섬을 한 바퀴 돌았지만, 갈매기와 파도 소리 외엔 아무것도 찾을 수 없었다.
유연:
……인어들은 일반 사람보다 회복력이 빠르다던데,
선배도 괜찮겠지…?
혼잣말을 중얼거리던 그때, 비행기 근처 모퉁이에서 금속빛을 띠는 물건 더미가 눈에 들어왔다.
나는 깜짝 놀라 달려가 확인했고, 그곳에는 내가 작성한 자재 목록에 있던 부품들이 하나도 빠짐없이 해변에 놓여 있었다.
그는 분명 당시 그냥 대충 한 번 훑어봤을 뿐이고, 내가 건넨 메모지도 가져가지 않았는데…
혼자서, 고집스럽게 등을 돌리고 있던 그 뒷모습이 다시 머릿속에 떠올랐다. 괜스레 가슴 한구석이 찡해왔다.
몰아치는 바닷바람 속에서, 그에게는 마치 이 거센 파도만이 유일한 벗처럼 느껴졌다.
시간은 하루하루 흘러갔고, 나는 전투기 수리에 집중하면서 부상도 회복하고 훈련도 계속했다.
백기는 다시 찾아오지는 않고, 다만 내가 자재를 다 쓸 때마다, 말 없이 새 보급품을 남겨두고 갔다.
아마 그도 내가 정말로 밭을 일구는 걸 원하지는 않았던 모양이겠지만, 그래도 가끔은 다양한 음식들도 함께 두고 가곤 했다.
우리는 그 이후로 한마디도 나누지 않았지만, 나는 여전히 종종 멀리서 그의 모습을 볼 수 있었다.
마치 처음 그를 마주쳤을 때처럼 멀찍이 떨어진 거리였지만, 그 거리 덕분에 오히려 그의 윤곽과 날 선 모습이 더 선명하게 다가왔다.
나는 매일같이 인어들이 그를 찾아오는 모습을 보았다, 그리고 해변엔 늘 끝없이 피가 흩뿌려져 있었다.
그러나 온몸이 얼마나 상처투성이가 되든, 백기는 언제나 다시 일어섰고, 항상 날카로운 발톱과 송곳니를 드러냈다.
단 한 가지 예외가 있다면—희미한 달빛이 비치는 밤, 그는 바위에 앉아, 은빛 카세트 플레이어를 손에 쥐고 밤새 무언가를 듣고 있었다.
마모된 이어폰 너머로 그가 어떤 조용한 선율을 듣고 있는지는 알 수 없었다.
그리고 그 외의 시간에는, 하늘은 늘 익숙한 폭풍우에 휩싸였다. 그건 마치 무겁고도 처절한 외침 같았다.
백기는 그 폭풍의 중심에 서서, 거침없이 바람을 일으켰고, 마치 모든 것을 찢어버릴 듯 바람을 휘몰아쳤다.
과거 그의 전투기 날개는 이제 모든 것을 산산조각 내는 폭풍으로 변해 하늘 전체를 뒤덮고 있었다.
하지만 하늘은 그토록 격렬하면서도 아무 말이 없었다.
나는 하늘에게 대체 무엇과 싸우고 있는 거냐고 물었지만, 돌아온 것은, 오직 더 거세진 바람뿐이었다.
그 바람은 말없이, 상처투성이인 채, 심지어는 자신조차 간신히 떠받치고 있을 뿐이었다.
그런 나날이 오래도록 이어졌고, 나는 점점 더 확신하게 되었다. 백기는 결코 소문 속에 떠도는 그 '첩자'나 '배신자'가 아니라고.
그러던 어느 날, 다시 흐린 하늘 아래, 나는 문을 열자마자 날카로운 피 냄새를 맡았다.
해변 위에 남은 핏자국은 거의 파도에 씻겨 나갔지만, 아주 희미한 핏줄 하나만이 앞을 향해 길게 뻗어 있었다.
유연:
……
불길한 예감이 스쳐 지나가자, 나는 핏자국을 따라 달려갔다. 아니나다를까, 거대한 고래 뼈 앞에서 백기를 발견했다.
그는 힘겹게 옆으로 쓰러져 있었고, 마치 산소가 거의 바닥난 사람처럼 거칠게 숨을 내쉬고 있었다.
푸른 하늘을 닮았던 물고기 꼬리는 잿빛 하늘 아래 칙칙하게 빛났고, 크고 작은 피 자국들이 더욱 선명하게 눈에 들어왔다.
발소리를 들은 듯, 흐릿하던 그의 시선이 잠깐 내 쪽에 초점을 맞췄다가, 곧바로 눈썹을 떨구며 시선을 피했다.
마치 나에게 지금의 처참한 모습을 들키고 싶지 않은 것처럼.
유연:
…선배, 괜찮아요?

백기:
……신경 쓰지 마.
백기:
나에게서 떨어져.
백기는 그렇게 말하며 손끝으로 바위를 꽉 움켜쥐고, 애써 몸을 일으키려 했다.
하지만 물고기 꼬리는 맥없이 미끄러지기만 했고, 그는 단 1초도 자신의 몸을 지탱하지 못했다.
그렇게까지 고집스러운 얼굴을 보자, 내 가슴 속엔 뭔가가 뜨겁게 치밀어 올랐다.
참지 못하고 나는 목소리를 높였다.
유연:
무슨 놈의 신경 쓰지 마예요, 지금 서 있지도 못하면서!
백기:
난…할 수 있어… 당연히 할 수 있어…
유연:
그럼 날 밀쳐내봐요!
당신이 자랑하는 그 바람으로 날 날려버리라구요!
당신이 자랑하던 그 멋진 폭풍으로!
백기:
……
그는 다시 이를 악물었다. 그리고 바로 그 순간, 주변의 기류가 한순간 스치듯 흔들렸다.
그 바람은 간신히 내 머리칼 끝자락을 스치고 지나갔다.
유연:
봐요, 당신은 나한테 저항조차 못 하잖아요!
도대체 언제까지 그렇게 혼자서 강한 척만 할 거예요!
유연:
나한테 의지해요!
내가 도와줄게요!
유연:
당신이 나를 도와줬던 것처럼요!
백기:
…내가 강해져야만, 선택할 수 있으니까!
격해진 분노의 외침이 파도를 가르며 울려 퍼졌다.
백기의 눈엔 분노와 절망의 불꽃이 이글거렸고, 그는 그 안에서 스스로를 태워가며 버티고 있었다.
그리고 나 역시, 마치 불붙은 또 하나의 성냥개비처럼 그 타오르는 영혼 속으로 뛰어들고 싶었다.
그가 얼마나 지독하게 뜨거운 고통 속에 있는지를 바라보면서.
유연:
강하다는 게, 말조차 안 하는 거예요?!
유연:
강하다는 게, 혼자서 모든 걸 짊어지는 거예요?
정말 강한 사람은, 모든 걸 혼자 감당할 수 있는 사람이에요?!
백기:
그럼 내가 뭐라고 말해야 하는데?
내가 그 잘도 떠도는 첩자 같은 건 아니고,
그냥… 어느 날 갑자기 이유도 없이 이상한 힘이 생겼다고 말하라고?
세상은 갑자기 조용해졌다.
남은 건 백기의 분노에 찬 목소리뿐이었다.
백기:
내가 뭘 말하든, 아무도 믿지 않았어!
백기:
그 누구도!
백기:
하지만 괜찮아. 내가 뭘 해왔는지, 나 자신은 알고 있으니까!
백기:
그럼 내가 또 뭘 말해야 하는데?
인어로 변한 뒤 갑자기 인어들이 나를 찾아오기 시작했다고?
사실 나는 본래 인어의 자식이었고,
한때 아무 쓸모 없다고 버려졌던 존재였다고?
백기:
이제 와서 또 무슨 ‘시험’을 통과하면
내가 있어야 할 자리에 돌아갈 수 있다고?
백기:
그게 말이 돼?!
왜 나만 정해진 자리에 끌려가야 해?
왜 나만 선택할 수 없어?
백기:
왜, 단지 이 Evol 능력이 생겼다는 이유만으로
내가 누구인지를 스스로도 결정하지 못해야 하는데?!
백기:
나는, 내가 직접 정할 거야!
이 순간, 불꽃이 마침내 모든 안개와 소문을 태워버렸다.
나는 거짓과 시간의 장막을 뚫고 그 예전의 소년을, 그리고 지금의 백기를 바라볼 수 있었다.
그토록 아름다운 눈,
그토록 아름다운 꼬리.
그가 평범한 인간인지, 인어인지는 이제 더 이상 중요하지 않았다.
내가 본 것은 오직 하나, 울부짖으며, 빛을 터뜨리며, 자존심을 안고 몸부림치는 한 영혼.
나는 숨을 깊이 들이쉬고, 그를 향해 발을 내디뎠다.
유연:
그렇다면, 내가 당신의 동반자가 되어줄게요.
나는 천천히 두 팔을 벌려 그를 살며시 끌어안았다.
유연:
당신은 분명 이 힘을 제어할 수 있어요.
지금은 단지 너무 지쳐 있을 뿐이에요.
백기, 당신은 이제 혼자가 아니에요.
내가 당신을 지킬게요.
그 순간, 마치 바다마저 숨을 죽인 듯 고요해졌다.
그래서 나는 그가 아주 작게 내뱉은 속삭임을 들을 수 있었다.
백기:
……내가 널 구했기 때문이야?
나도 팔에 힘을 조금 더 주며 그가 나의 존재를 더 확실히 느낄 수 있도록 안았다.
유연:
왜냐하면 당신은 오래전부터 내가 하늘을 향해 날아오를 수 있게 해준 이유였으니까요.
4장
백기는 아마도 오랜만에 제대로 잠든 것 같았다.
햇살이 밝게 집 모서리를 비추는 아침, 나는 침대 가장자리에 앉아 그에게 새 약을 발라주고, 새 붕대를 감아주었다.
반듯하게 묶인 8자 매듭을 보며, 얼마 전 백기가 내게 어설프게 묶어줬던 모습이 떠올라 웃음이 나왔다.
유연:
만능 선배도 생각보다 그렇게 만능은 아니네—
그는 내 농담을 듣지 못하고, 조용히 작은 침대 위에서 고르게 숨을 쉬며 깊이 잠들어 있었다.
그런데 이 사람은 왜 자면서도 이렇게 찡그릴까……?
나는 이마의 주름을 펴주려다 말고, 창밖에서 들려온 거센 파도 소리에 손을 멈췄다.
고개를 들고 밖을 바라본 순간, 가슴이 싸늘해졌다.
그 인어들이 다시 찾아온 것이다.
나는 놀라지 않고, 몸을 일으켜 이불을 걸치고, 미리 숨겨 두었던 권총을 소매에 감췄다.
문을 열고 해변으로 나왔을 때, 그들은 이미 인간의 모습으로 바꾸어 오두막 쪽으로 걸어오고 있었다.
유연:
당신들, 무슨 일이지?
남자:
수장님으로부터 그를 데려오라는 명령을 받았으니 비켜라.
긴 머리의 남자는 내 저지를 전혀 개의치 않고, 마치 칼날을 뽑아 들듯 단호하게 말했다.
나는 잠시 멍해졌고, 그와 동시에 마음이 무겁게 가라앉았다.
백기가 예전에 분노하며 저항하고 외쳤던 모습이 뇌리를 스쳤다.
그래서 나는 단호하게 총구를 들어 그 남자를 겨눴다.
유연:
내가 거절하면요?
남자:
쓸데없는 간섭은 하지 마라.
남자:
이 세상은 강자만의 놀이터다.
유연:
그래서 수단을 가리지 않겠다는 거군요. 무력을 써서라도.
유연:
저는 인간측 군인으로서, 결코 먼저 무력을 행사하지 않을 겁니다.
남자는 냉소를 띠며 손바닥을 펼쳤고, 그 위로 허공에서 날카로운 비수가 여러 자루 솟아올랐다.
분명 그들은 이미 행동을 결심한 상태였다.
비수가 허공을 가르며 날아드는 순간, 내 총알이 먼저 방아쇠를 뚫고 나가 그의 무릎에 명중했다.
남자의 낮은 신음소리에 주위 시선이 잠시 분산된 틈을 타, 나는 주저 없이 몸을 날려 그의 관자놀이에 총구를 겨누고는 냉정한 시선으로 현장에 있던 모든 사람을 훑었다.
유연
마지막으로 묻겠습니다. 정말 무력을 쓸 생각인가요?
설령 제가 여기서 죽더라도, 제 부대는 곧바로 신호를 받을 겁니다.
당신들이 강하다는 건 압니다. 하지만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아야 할 거예요.
그렇지 않다면, 인간과 인어 사이의 분쟁 책임은 당신들이 져야 할겁니다.
저는 회색 송골매 부대의 대원, 극한의 테스트를 통과한 최정예 병사입니다.
저의 신념과 자부심을 걸고, 나의 땅과 전우를 지켜낼 겁니다.
남자
……
남자는 평온한 얼굴로 나를 바라봤지만, 이마엔 어느새 잔땀이 송골송골 맺혀 있었다.
사실 내 심장도 미친 듯이 뛰고 있었고, 뜨거운 땀이 속옷을 적실 듯 흘러내렸다.
길고 무거운 침묵 끝에, 그는 마침내 손을 들어 동료들에게 신호를 보냈다.
남자
가자.
기억해둬라. 이 차이(인간과 인어 사이에 존재하는)는, 절대 평화로울 수 없어.
그는 그 말을 남긴 채 일행을 이끌고 철수했다.
몇 갈래의 물결 속으로, 물고기 꼬리들이 조용히 사라졌다.
유연
……
그제야 긴장이 풀린 나는 다리에 힘이 풀려 모래사장에 주저앉고, 숨을 몰아쉬었다.
그때, 나무집에서 가벼운 소리가 났다. 돌아보니, 백기가 힘겹게 외벽에 몸을 기댄 채 서 있었다.
헝클어진 머리카락, 거칠게 찢겨나간 붕대 아래로 상처는 거의 다 아문 듯 살빛 자국만 남아 있었다.
그 머리 위, 바람에 살랑이는 멍청한 한 가닥의 머리카락을 보며 나는 웃으며 손을 흔들었다.
유연
선배, 좋은 아침이에요.
백기는 묵묵히 내 곁으로 걸어와 옆에 앉았다.
고개를 살짝 기울인 채 날 찬찬히 바라보는 그를 향해, 나는 두 팔을 벌리고 당당하게 웃음을 지었다.
유연
어때요, 제가 지켜줄 수 있다 했죠?
그는 같이 웃지는 않고, 조금 어색하게 입술을 굳게 다물었다.
백기
그 사람들이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았다면?
유연
그럼 간단하죠.
유연
다시 달려와서 당신 머리에 총 겨누고 이렇게 말할 거예요. “당신들이 안 물러나면, 이 사람 쏴버릴 거야.”
백기는 잠시 멍하더니, 마치 굳어 있던 얼음이 처음으로 금이 가듯, 입가를 살짝 올리며 웃었다.
마치 항복이라도 하듯, 그는 시원하게 웃음을 터뜨렸다.
햇살과 바람도 그를 더없이 아끼는 듯, 그의 소년 같은 기세와 자유로운 모습이 더욱 뚜렷하게 드러났다.
백기
그럼 난 너한테 죽을 뻔했네.
유연
그건 한참 멀었죠.
나는 끝없이 펼쳐진 바다를 바라봤다.
그것은 광대하고 신비롭고, 도전과 미지로 가득했다.
유연
선배, 왜 인어들의 세계로 가지 않고 여기 혼자 남아 있는 거예요?
백기
가기 싫어서.
백기
설령 언젠가 가야 한다 해도, 모든 걸 다 뒤엎어 버릴거야.
백기
그리고 지금의 난 아직 충분히 강하지 않아.
유연
그럼… 우리 부대로 돌아오는 건 어때요?
유연
제가 증인이 되어줄게요. 당신이 좋은 사람이라는 걸 모두에게 말할게요.
그의 속눈썹이 살짝 떨리는 듯했다.
백기
그럴 필요 없어.
백기
설령 누군가가 날 믿는다 해도, 어느 병사가 이질적인 존재에게 등을 맡기겠어?
유연
…그럼 나는요?
그는 침묵했다. 바다도 마치 그 침묵을 들은 듯 한숨을 쉬었고, 물결은 조용히 밀려가며 옅은 모래 자국을 남겼다.
오랜 침묵 끝에, 눅눅한 공기 속에서 그가 낮고 잠긴 목소리로 물었다.
백기
너는 왜… 일면식도 없는 날 믿는 거야?
그의 눈에 망설임이 반짝이자 나는 저도 모르게 조금 다가서며 그 호박색 눈동자를 진지하게 들여다보았다.
유연:
비록 본 적은 없었지만, 사방에서 당신의 이름을 들었어요.
당신은 가장 뛰어난 군인이었고, ‘청공’ 실험기 1호의 첫 시험비행을 맡은 조종사였죠.
그래서 당신이 하늘을 나는 모습을 본 적 있어요.
정말 자유롭고, 대담하고…… 그리고 아름다웠어요.
유연:
그런 비행 궤적을 보고, 저도 조종간을 잡아 하늘로 향하게 됐어요.
그 모습은 멀고도 흐릿했지만, 내게는 누구보다도 크고 깊은 동경과 존경의 대상이었다.
그날의 기억은 지금까지도 내게 날개를 달아주며, 계속해서 하늘을 향하게 했다.
유연:
그래서, 저는 진실을 알고 싶어요.
전해 들은 이야기 속 당신이 아니라, 진짜 당신이 어떤 사람인지 알고 싶어요.
난 더 이상 루머 속에서 당신을 알고 싶진 않아.
백기:
……
바닷바람이 불어왔다. 그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그저 멍하니 나를 바라보았다.
부드러운 바람이 오래도록 스쳐간 뒤에야, 마침내 그의 목소리가 조용히 흘러나왔다.
백 기:
그날, 난 산속에서 임무를 수행하던 중 적과 충돌했어.
결국 절벽 아래로 밀려 떨어질 뻔했는데, 떨어지기 직전 갑자기 온몸에 어떤 힘이 치밀어 올랐어.
바람이 날 떠받쳐 줬고, 그와 동시에…
난 인어로 변했지.
나는 그 이야기를 들으며 눈을 깜빡였다.
머릿속에 그 장면이 그려지고는, 나도 모르게 물었다.
유 연:
잠깐만… 그러면 갑자기 인어로 변한 다음에… 산속에서 펄떡펄떡 꼬리 치며 있었던 거야?
백 기:
…그게 지금 중요해?
유 연:
…푸흐하하하!
상상하지 말아야지 하면서도, 도저히 참지 못하고 또 웃음이 터졌다.
바로 다음 순간, 그의 손이 내 옆에 짚히며, 잘생긴 얼굴이 눈앞으로 훅 다가왔다.
그는 어딘가 당황한 듯했지만, 날 노려보는 눈빛은 여전히 매서웠다. 다만 귀 끝이 살짝 붉어진 듯 보였다.
백 기:
그게 그렇게 웃겨?
유 연:
아니 아니… 안 웃어, 안 웃을게요!
괜히 심장이 빠르게 뛰기 시작해, 나는 서둘러 얼굴 옆 공기를 손으로 가르며 흥분을 식히려 했다. 그리고 자연스럽게 물음을 이었다.
유 연:
그 다음에는요?
백 기:
그게 끝이야. 나중에 동료들이 날 발견했어. 다들 충격을 받았고, 날 체포했지.
설명했지만… 아무도 믿지 않았어.
그는 말을 멈추고, 조용히 시선을 먼 바다 수평선에 고정했다.
백 기:
밤낮없이 이어지는 심문 속에서, 난 도무지 그들과 소통이 되지 않았고.
그래서… 그냥 도망쳤어.
인간과 인어 사이의 간극은 너무도 멀었다. 수많은 의심과 경계, 말로 설명할 수 없는 차이가 그 틈을 메워버리고 있었다.
유 연:
그래서 여기로 온 거예요?
백 기:
그래.
내가 누구인지 알아야 했고, 내가 어떤 사람이 될지는 나 스스로 정해야 하니까.
그의 단단한 의지를 느끼고, 나는 살짝 미소를 지었다.
유 연:
고마워요. 저를 루머 속에만 살게 두지 않아서요.
역시 선배는 정말, 정말 대단한 사람이에요!
그가 나를 돌아보며 부드럽게 입꼬리를 올렸다.
백 기:
너만큼은 아니야.
유 연:
선배도 만만치 않네요~
오랜 시간 품어왔던 의문이 풀려서일까, 나는 조금 들뜬 마음에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두 팔을 활짝 벌렸다.
유연:
근데 진짜 신기하지 않아요?
생각해봐요…… 선배의 첫 시험비행 덕분에 저는 하늘이 이렇게나 자유롭고 아름답다는 걸 처음 알게 됐어요.
그래서 저도 하늘을 날아야겠다고 결심했고, 수년 뒤 제 첫 장거리 시험비행에서 선배가 절 구해줬잖아요!
백기:
……크흠, 그날 폭풍은 사실 내가 Evol 훈련하던 중이었어.
근데 거기에 비행기가 지나갈 줄은 몰랐지……
나는 눈을 동그랗게 뜨고 입을 떡 벌렸다.
유연:
우와…… 역시 선배였구나!
그럼 그렇지, 어떻게 그렇게 딱 맞춰서 부품을 가져다주나 했더니 양심의 가책이었던 거예요?
백기:
……꼭 그런 건 아니야.
뭔가 마음속에서 정리가 된 듯, 그는 웃으며 자리에서 일어나 몸에 묻은 모래를 툭툭 털었다.
백기:
넌 정말 대단해.
그러니 언젠가는, 그 어떤 폭풍도 너를 가둘 수 없게 될 거야.
유연:
정말요……?
백기에게 그런 칭찬을 듣고 나니, 나는 절로 코끝이 들썩였고, 마음속에 하나의 생각이 떠올랐다.
유연:
그럼, 선배. 제 비행기 한 번 타보실래요? 거의 다 고쳤거든요.
유연:
이번엔 제가 데려다 드릴게요.
유연:
준비되셨나요?
나는 조종석에 앉아 뒤에 앉은 백기를 돌아보며 입술을 꾹 눌렀다.
유연:
사실… 좀 떨려요.
유연:
오랜만에 누가 제 뒤에 타니까, 예전에 교관이 악마처럼 훈련시킬 때가 떠올라서요.
백기:
자신감을 가져, 프로 파일럿.
백기는 아무렇지도 않게 말했지만, 그 말투에서 그의 기분이 꽤 좋아졌음을 느낄 수 있었다.
나도 따라 웃으며 엔진을 가동시켰다. 기체는 곧바로 떨리며 낮게 울리는 굉음을 내뿜었다.
조종간을 밀어 넣자, 타이어는 모래사장 위에 두 줄의 깊은 자국을 남기며 앞으로 내달렸다.
속도는 점점 빨라지고, 놀란 바닷새들이 사방으로 흩어졌다.
이제 어느 정도 거리가 되었다 싶을 때, 나는 조종간을 힘껏 끌어당겼고, 전투기는 곧장 기세 좋게 솟구쳐 구름 위로 날아올랐다.
섬은 점점 멀어져 바다 위의 작은 점이 되었고, 푸른 하늘이 우리를 넓게 끌어안았다.
나는 원래의 항로가 아닌, 기억 속의 그 계곡을 향해 천천히 방향을 틀었다.
얼마쯤 지났을까, 멀리서부터 한 줄기 푸른 계곡이 마치 세상 밖 낙원처럼 서서히 시야에 펼쳐졌다.
이곳의 햇살은 유난히 나른했고, 만물은 금빛의 부드러운 베일을 두른 듯했다.
푸르고 싱그러운 초원은 비단처럼 펼쳐져 있었고, 그 위로는 품위 있는 수목들과 알록달록한 꽃밭이 흩뿌려져 있었다.
맑고 투명한 시냇물이 계곡을 구불구불 흘러가며, 물 위에는 햇살이 반짝였고, 세상은 기억 속 그대로 찬란하게 빛나고 있었다.
유연:
선배, 이 세상은 정말 넓어요. 어디든 갈 수 있을 만큼.
유연:
그러니까 만약 선택할 수 있다면, 평범한 인간이 되고 싶어요? 아니면 인어?
백기:
상관없어.
백기:
내가 가고 싶은 곳은 어떤 신분도 나를 막지 못해.
그가 말하며 한 손으로 기체 문 가장자리를 짚고는 가볍게 몸을 날려 비행기 위에 올라탔다.
왼쪽 날개가 그의 무게로 기울자 나는 놀라 조종간을 꽉 잡고 균형을 유지하려 애썼다.
유연:
선배!
백기:
걱정 마. 바람이 도와줄 거야.
곧 가볍고 자유로운 바람이 우리를 감싸며 받쳐주었고, 우리는 다시 파란 하늘 위를 안정적으로 비행했다.
고개를 돌리자 그는 어느새 인어의 모습으로 변해 있었다.

하늘보다 더 푸른 꼬리는 햇살을 받아 반짝이며, 그 순간 가장 눈부신 풍경이 되었다.
산골짜기를 낮게 스치자 새들이 우리를 동료로 여긴 듯 함께 날개를 펼쳤다.
그 순간, 하늘은 또 하나의 바다 같았다. 끝없이 넓고, 자유로운 곳.
날개를 가진 새든, 꼬리를 가진 물고기든—원하는 하늘과 바다를 스스로 선택할 수 있는 세계였다.
유연:
선배, 내가 아직 한 번도 말한 적 없는 것 같은데…… 너의 꼬리, 정말 예쁘다고 생각해요.
유연:
마치…… 하늘의 색 같아서.
유연:
그래서 설령 하늘이 선배가 속할 최종적인 곳이 아니더라도, 원하면 언제든 날아오를 수 있는 곳이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나는 잠시 말을 멈추고, 진지하게 그를 바라보았다.
유연:
제가 돌아가면, 사람들에게 말할 거예요. 선배가 어떤 사람인지.
유연:
선배가 부대로 돌아가지 않더라도, 돌아갈 수 있는 선택지를 꼭 만들 거예요.
그 순간, 바람이 거세게 불고 있었지만, 그는 단 한 마디도 놓치지 않고 들었으리라 믿었다.
왜냐하면 그는 웃었으니까. 아주 예쁘게, 마음이 녹을 만큼.
백기:
난 항상 더 강해져야 한다고 생각했어. 그래야 더 많은 선택을 가질 수 있고, 후회 없이 살 수 있다고 믿었지……
백기:
그런데 유일하게 너는 내가 선택한 게 아니었는데, 네가 변화를 가져왔어……
백기:
네가 나에게 선택이란 걸 처음으로 줬어.
너는 어느 날 우연히 내 삶에 들어왔고, 내가 나 자신과 싸우는 그 한가운데서, 너란 아름다운 존재를 만나게 됐어.
그 순간부터 하늘도, 세상도 내가 상상하던 것과는 전혀 다른 모습으로 바뀌었지.
나는 예상하지 못했고, 너도 그런 의도로 온 건 아니었는데 말이야.
유연:
하지만 저는…… 아마도 정말로 선배가 운명처럼 정해져 있었던 사람은 아니라고 생각해.
유연:
하지만 제가 걸어온 이 긴 길이, 결국 당신을 만나는 순간으로 이어진 걸거예요.
선택이란 건 늘 운명과 나 자신이 함께 만들어낸 마법이니까.
나는 흔들리지 않고 내 길을 걸어왔기에, '운명'이라는 이름의 그 순간이 태어날 수 있었던 거야.
그리고 지금 이 순간, 우리 둘은 서로의 눈 속에서 그 마법 같은 순간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때, 백기가 무언가를 본 듯 멀리 계곡 아래를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백기:
유연아, 나 여기 온 적 있어.
백기:
바로 저기서, 내가 이 힘을 갖게 됐고…… 모든 게 거기서 시작됐어.
나는 순간 멍해졌다가, 황급히 그의 말을 받았다.
유연:
그렇게 우연일 수가……?
유연:
저도 여기 온 적 있어요. 처음으로 이렇게 멀리 날아갔던 날이었고, 그렇게 아름다운 풍경을 본 것도 처음이었어요.
유연:
그래서 선배에게도 꼭 보여주고 싶었어요……
거의 동시에, 우리는 고개를 돌려 서로를 바라보았다.
백기:
그게 언제야?
바람이 다시 자유롭게 불어오고, 푸른 하늘과 유리빛 풍경이 시야를 가득 채웠다.
그리고 나는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유연:
……2년 전이요.
찰칵——
운명의 톱니바퀴가 맞물리며 돌아가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