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 질 무렵 다섯 시, 귀가하는 사람들로 거리는 북적였고, 딸랑딸랑 울리는 차소리가 따스한 풍경을 그려냈다.
나는 교차로의 오동나무 아래에 서서 휴대폰을 내려다봤다. 백기와의 대화창은 마지막으로 그가 보낸 메시지에서 멈춰 있었다.
백기:
갑작스럽게 사건을 하나 맡아서 조금 늦어졌어. 금방 갈게.
유연:
무슨 사건이 그렇게 급한 거지...
찬바람이 불어오고, 낙엽 하나가 회오리를 타고 떨어지더니 화면 위에 사뿐히 내려앉았다. 손을 뻗어 치우려 했지만, 그 잎은 이내 바람에 실려 사라졌다. 그때, 맑고 부드러운 목소리가 등 뒤에서 들려왔다.
백기:
오래 기다렸어?
뒤돌아보자, 예상대로 따뜻한 품속으로 안기게 되었다.
유연:
아뇨, 그렇게 오래 기다리진 않았어요. 게다가 날씨도 좋아서 기다리는 동안 기분도 아주 맑았답니다~
유연:
그런데 아침에 그러지 않았어요? 어젯밤 야근 다녀와서 오늘은 서에 인수인계만 마치면 하루 쉬기로 했다고…
유연:
왜 또 사건이에요?
백기:
서에 있는 한 대원이 외할머니 댁에서 키우는 고양이를 며칠째 잃어버린 상황이래. 근데 맡은 임무가 있어서 직접 찾으러 갈 시간이 없다고 하더라고.
백기:
들어보니까 외할머니 댁 주소가 네가 사는 아파트랑 같은 단지이길래 겸사겸사 도와주러 온 거지.
유연:
그렇구나~ 그럼 우리 수사 경험이 많은 백 형사님, 고양이 수사는 어디서부터 시작하실 건가요?
백기는 살짝 웃더니 내 손을 잡고 앞으로 걸었다.
백기:
일단 이 거리부터 '수사'해보자.
집 앞 거리. 나와 백기가 자주 산책하던 곳이라 이 일대 상점은 이미 익숙했다.
그런데도 이상하게, 그와 함께 거닐 때마다 뭔가 작은 새로운 즐거움이 숨어 있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마치 그와 걷는 시간 속에는, 언제나 새롭고 놀라운 즐거움이 끝없이 숨겨져 있는 것처럼.
과일가게 주인:
유연 양, 백 형사님~ 오늘은 일찍 퇴근하셨네요?
과일가게 주인:
신선한 오렌지 들어왔는데, 주스 만들어 드실래요? 피부에도 좋아요~
웃으며 말을 건네는 과일가게 주인. 나는 반짝이는 오렌지 하나를 들어 뺨 옆에 가져다 대며 고개를 갸웃거리며 백기를 바라봤다.
유연:
백 형사님~ 좀 살까요? 피부 미용에도 좋다잖아요~
백기는 내 말에 웃음을 터뜨리더니, 내 얼굴을 꼬집듯 손으로 살짝 만지고는 오렌지를 종이봉투에 담았다.
백기:
사장님, 혹시 최근 이 근처에서 검정과 흰색이 섞인 고양이 보신 적 있으세요?
백기:
통통하고 턱 밑에 하얀 점이 하나 있어요. 털도 매끄러운 집고양이에요.
사장님은 잠시 생각하더니 “아!” 하고 말했다.
과일가게 주인:
아, 그런 고양이… 어제 아침에 한 번 본 것 같기도 해요.
과일가게 주인:
과일 진열하느라 잠깐 등 돌린 사이에 금귤 바구니가 엎어졌거든요!
과일가게 주인:
그 전날 밤엔 비가 와서 진열대 옆에 진흙이 남아 있었는데, 거기에 고양이 발자국이 있었어요. 혹시 말씀하신 그 녀석 아닐까요?
나는 백기가 평소 사건 수사할 때처럼 진지한 표정으로 앞에 펼쳐진 진열대를 훑었다.
유연:
고양이 발자국이라… 증거가 아주 확실하네요. 수상합니다…
유연:
흠, 여기에 검정과 흰색 털이 섞인 고양이 털도 몇 가닥 있네요. 틀림없어요.
백기는 진열대 틈새에서 고양이 털을 몇 가닥 집어들며 내 말에 맞장구쳤다. 나는 그에게 미소를 건넸다.
유연:
헤헤, 이렇게 보니까 저도 슬슬 백 형사님의 멋지고 예리한 수사 실력을 닮아가고 있는 것 같아요!
내 말에 백기는 고개를 살짝 기울이며, 호박색 눈으로 나를 위아래로 훑었다.
백기:
흠… 닮지는 않았어. 넌 그보다 좀 더 귀엽지.
백기:
가시죠, 장관님. 이제 교차 증거 수집하러.
우리는 몇 군데 가게를 더 들렀고, 신기하게도 거의 모든 가게가 그 고양이의 “범행 기록”을 증언했다.
카페 직원:
맞아요! 바로 그 녀석! 아침에 카운터에 뛰어올라 커피머신 위에서 자고 있더라니까요!
카페 직원:
들어오는 손님마다 한 대씩 때리고!
꽃집 직원:
꽃병 뒤에 숨어있었어요! 순간 너무 커서 쥐인 줄 알았어요! 진짜 신고할 뻔했다니까요!
유연:
걱정 마세요, 저희는 그 고양이를 찾으러 온 거니까요. 친구 부탁으로요.
유연:
게다가 백 형사님이 나서서 못찾는 용의자는 아직 없어요~
나는 웃으며 백기를 바라봤다. 그는 꽃집 밖에서 뭔가 골똘히 생각하고 있다가, 내 말을 듣고 눈썹을 살짝 치켜올렸다.
백기:
당연하지. 반드시 범인은 검거해야 하니까.
유연:
이렇게 자신만만한 걸 보니… 혹시 범고양이의 은신처를 이미 알고 있는 거예요?
백기는 웃기만 하고는 대답 대신 화제를 돌렸다.
백기:
그러고 보니, 어제 너 그랬지?
길모퉁이 빵집 신제품 먹어보고 싶다고.
백기:
가자. 지금 사러 가자.
2장
빵집 문을 여는 순간, 갓 구운 고소한 냄새가 코끝을 간질였다.
백기는 트레이를 집어 들고 매장을 한 바퀴 둘러보다가, 집게로 매콤한 소시지 치아바타를 집어 들고 나를 바라봤다.
백기:
네가 말한 신제품, 이거 맞아?
유연:
맞아요! 신제품 홍보 문구에 이렇게 써 있었거든요——
‘매운맛 없인 못 사는 분들, 절대 놓치지 마세요!’
유연:
그거 보고 딱 떠올랐어요. 이건 백 형사님 취향이다!
나는 눈을 가늘게 뜨고 웃으며 시식용 빵 조각 하나를 집어 백기를 바라봤다.
유연:
백 형사님, 감별 한 번 해주세요~ 진짜 ‘매운맛’이 맞는지!
백기는 고개를 살짝 숙이며 고분고분 내 손끝의 빵을 한입 베어 물었다.
따뜻한 숨결이 내 손가락을 스치고, 그의 갈색 머리카락은 은은한 조명 아래 느긋하고 단정하게 드리워졌다.
유연:
어떻습니까?
백기는 곧장 대답하지 않고 조용히 빵을 삼킨 후, 이쑤시개로 작은 조각을 집어 내게 건넸다.
백기:
너도 한입 먹어봐.
나는 그 손을 따라 입을 열었고, 산초의 얼얼한 매운맛이 혀끝을 강하게 자극했다. 나는 장난스럽게 혀를 내밀며 말했다.
유연:
와, 이건 진짜 매운맛이네요! 여긴 언제 와도 실망시키질 않아요!
내 만족스러운 표정에 백기는 내 코끝을 살짝 긁으며 웃었다.
백기:
어쩐지, ‘용의자 고양이’도 이 빵집을 좋아하더라.
나는 웃음을 터뜨리며 그의 소매를 잡아당겼다.
유연:
백 형사님~ 이제 그만 애태우고, 단서가 뭔지 알려주세요~
백기는 미소를 머금고, 내 손을 이끌어 계산대 근무 중인 직원에게 다가갔다.
백기:
요 며칠 사이에, 가게에서 음식이 사라진 적 있나요?
점원:
음식이요… 아! 오늘 아침 창고에서 식자재를 정리하는데, 소시지 하나가 없어진 거예요!
점원:
처음엔 납품업체가 수량을 빼먹은 줄 알고, 점장님한테 따졌죠~
백기가 헛기침하자, 나도 웃음을 터뜨리며 점원의 끝없는 투덜거림을 끊었다.
유연:
저희는 잃어버린 고양이를 찾고 있어요. 혹시 그 소시지, 고양이가 가져간 건지 CCTV를 볼 수 있을까요?
유연:
그럼 도망간 방향도 추적할 수 있을 것 같아서요~
점원:
아, 네네! 바로 보여드릴게요!
점원은 능숙하게 마우스를 움직였고, 이내 화면에 검은 점 하나가 스치듯 지나갔다.
백기:
창고 안에 아직 있는 것 같네.
그는 점원을 향해 고개를 들고, 침착한 목소리로 말했다.
백기:
안에서 찾아봐도 괜찮을까요?
점원:
물론이죠! 친구분 고양이라면 빨리 찾는 게 좋죠! 저기 문으로 나가시면 돼요.
점원이 알려준 길을 따라 우리는 창고 앞에 섰다.
나는 백기와 눈을 마주쳤고, 살며시 문을 밀어 열었다. 안은 조용했고, 눈에 띄는 건 아무것도 없었다.
유연:
설마 이미 도망간 건 아닐까요?
백기:
아니, 아직 있어.
백기는 주변을 두리번거리다가 바닥에 떨어진 반쯤 먹힌 소시지를 가리켰다.
백기:
이건 최근에 도둑맞은 소시지고, CCTV로 봤을 때도 창고 문은 아침에 한 번만 열렸어.
백기:
이 문은 무거워서 고양이 혼자 못 열어. 안에 숨어 있는 거야, 인기척 듣고.
유연:
그렇다면…
나는 종이봉투에서 갓 구운 빵 조각을 조금 떼어냈다. 일부러 매운 부분은 피해서.
유연:
백 형사님, 이걸로 ‘미끼 수사’ 해보죠!
백기:
그럼 이건 압수. 나가면 다시 사줄게.
그는 빵 조각을 바닥에 놓고, 나와 함께 살금살금 문 밖에 몸을 숨겼다.
창고 안은 날것의 식재료로 가득했지만, 따뜻하고 부드러운 갓 구운 빵의 향기는 유난히 강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통통한 고양이 한 마리가 조심스럽게 어둠 속에서 모습을 드러냈다.
그리고 그 작은 발이 빵 위에 닿는 순간—
백기가 재빠르게 움직여, 고양이의 목덜미를 단단히 붙잡았다.
백기:
용의자 고양이, 체포 완료.
조금 후, 우리는 고양이를 잃어버렸던 대원 외할머니 댁—정할머니 댁에 함께 찾아갔다.
정할머니:
정말 고마워요! 우리 손자가 그러더라고, 자기 대장님이 그렇게 유능하다면서~
작은 검은 고양이는 정할머니 품에 안겼고, 할머니는 감격에 겨운 목소리로 거듭 감사 인사를 건넸다.
정할머니:
이 녀석 이름이 ‘참깨볼’이야. 우리 손자가 당분간 나한테 맡긴 거거든요.
정할머니:
며칠째 안 보여서 얼마나 걱정했는지 몰라요.
정할머니:
백 대장님 덕분에 찾았으니, 내가 맛있는 거 좀 해서 꼭 보답할게요~
하지만 말끝에서 한숨이 섞였고, 다시 고양이 쪽을 힐끗 바라봤다.
정할머니:
얘가 또 얼마나 영악한지 몰라요. 이번에 붙잡혀도 며칠 지나면 또 도망치려 들걸요…
정말로, 참깨볼은 정할머니 품에서 빠져나오려는 듯 발을 구르며 탈출을 시도했다.
하지만 백기가 재빠르게 다시 붙잡았고, 나는 조심스레 고양이 머리를 쓰다듬었다.
유연:
참깨볼~ 얌전히 좀 있으라니까~ 너무 말썽꾸러기잖아~
정할머니는 우리 둘을 바라보다가 번뜩이는 눈으로 말했다.
정할머니:
얘 좀 봐요, 두 분 품에선 얌전하네?
정할머니:
잠깐만 봐줄래요? 난 장 좀 보고 와야 해서…
정할머니:
저녁엔 우리 손자도 임무 끝나니까, 참깨볼 데리러 오라고 할게요!
정할머니:
집에 혼자 두면 또 몰래 나갈까봐 겁나서 그래요~
조금이라도 빨리 ‘고양이 반환’을 하고 싶어 하는 정할머니의 간절함에
나와 백기는 눈을 마주치고 웃었다.
유연:
좋아요~ 저희가 놀아주면 에너지 좀 빼서 조용해질지도 모르잖아요?
유연:
할머니도 밤에 고생 안 하시게요~
나는 슬쩍 백기의 손을 흔들며 그의 의견을 물었다.
백기는 고양이를 한 번, 나를 한 번 바라보더니 조용히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백기:
응, 나도 그게 제일 나은 방법인 것 같아.
유연:
참깨볼, 집에 온 걸 환영해!
현관문을 열고, 나는 참깨볼을 안고 새로운 환경에 익숙해지도록 데리고 다녔고, 백기는 우리가 장 봐온 물건들을 종류별로 냉장고에 정리하고 있었다.
그때, 품 안에서 못마땅하다는 듯한 고양이 울음소리가 들려왔다.
참깨볼:
야옹…!
낯선 환경임에도 이 조그만 녀석은 전혀 겁먹은 기색 없이, 까만 눈을 반짝이며 이곳저곳을 두리번거렸다. 호기심 가득하면서도 당장이라도 튈 듯한 기세였다.
유연:
그러고보니 우리 참깨볼이랑 어떻게 놀아줘야 할까요?
유연:
정 할머니 댁에서 가져온 낚싯대랑 간식 말고는 아무것도 없는데……
백기는 잠깐 생각에 잠겼다가 말했다.
백기:
일단 간단하게 고양이 캣타부터 만들어주자.
그는 팔소매를 걷고는 종이 상자를 몇 개 들고 와 금세 발판와 통로가 연결된 원형 고양이 놀이 구조물을 베란다 옆에 만들어냈다.
나는 참깨볼을 안고 옆에서 ‘감독’처럼 구경했지만, 녀석은 별로 흥미 없는 듯 몸을 이리저리 뒤척이며 안겨 있으려 하지 않았다.
혹시 또 도망치려나 싶어 나는 힘을 줘 꼭 안았다.
그런데 참깨볼은 몸부림으로는 빠져나오지 못하자, 갑자기 입을 벌려 내 팔을 물려고 했고——
그 순간 입에 들어온 건, 옆에 놓여 있던 낚싯대였다.
낚싯대에 달린 방울이 찰랑이며 울렸고, 백기는 익숙하게 참깨볼의 목덜미를 집어 들며 나에게서 데려갔다.
백기:
방금 잡혀놓고 벌써 다시 범죄를 저지르려고?
그는 눈썹을 치켜올리며, 일부러 엄한 얼굴을 하고 고양이에게 물었다.
햇살이 그의 등 뒤에서 거실로 쏟아졌고, 바닥에는 또렷한 그림자가 길게 드리워졌다.
유연:
그냥 사람 품에 안겨 있는 걸 싫어하는 애일지도 모르죠?
나는 변명처럼 한 마디 툭 내뱉었지만, 곧이어 참깨볼이 아첨하듯이 백기의 손가락을 핥는 걸 보고 말문이 막혔다.
유연:
……강약약강의 고양이라니!
백기는 웃음을 머금은 채 고양이를 부드럽게 캣타워 위에 올려놨고, 그 방향은 내 쪽을 향해 있었다.
백기:
참깨볼, 너 아부할 상대 잘못 골랐어.
백기:
이 집은 그녀가 주인이야.
백기:
간식이 먹고 싶으면, 그녀의 말을 잘 듣는 게 좋겠지?
참깨볼은 잠시 캣타워를 킁킁대며 망설이더니, 내가 손에 든 고양이 간식을 보곤 눈빛이 번쩍였다.
나는 간식을 캣타워의 끝에 올려두고 말했다.
유연:
이 캣타워를 성공적으로 통과하면 간식을 줄게, 어때?
간식을 본 순간, 참깨볼의 눈이 반짝였고, 곧바로 구조물 안을 이리저리 뛰기 시작했다.
검은 통통한 몸이 발판 위를 민첩하게 오르내렸다.
유연:
와, 참깨볼 대단한데?
한 바퀴를 무사히 돈 후, 참깨볼은 약속대로 간식을 받아냈다.
그뿐만 아니라, 구조물에 재미가 붙은 듯 다시 안으로 쏙 들어가 계속 놀기 시작했다.
나는 옆에서 박수를 치며 응원했고, 그렇게 서너 바퀴를 더 도는 동안, 참깨볼은 전혀 지친 기색 없이 완전히 놀기에 푹 빠져 있었다.
백기가 만들어준 놀이 공간이 꽤 마음에 든 모양이었다.
이번에는 캣타워 안에 매달린 봉제 장난감을 툭툭 치며 앞발로 건드리는 모습에, 나도 웃으며 한숨을 내쉬었다.
유연:
정 할머니가 왜 그렇게 피곤해하셨는지 알겠는걸……
유연:
에너지가 정말 넘쳐요, 얘는.
그 말에 백기가 내 허리를 슬쩍 감싸며, 뺨 가까이에 얼굴을 기울여 조용히 말했다.
백기:
아마 네가 참깨볼한테 참 다정하고 인내심 있게 대해줘서 그런 거 아닐까.
백기:
그래서 이렇게 잘 따르는 거겠지.
그 말에 나는 귀 끝까지 뜨거워졌고, 참깨볼이 다시 우리 쪽으로 다가와 꼬리를 흔들며 우리를 바라보는 걸 보았다.
유연:
저기요… 선배. 참깨볼이 우리 보고 있는 것 같은데——
백기는 고개를 돌려 참깨볼을 바라봤고, 고양이는 정말로 꼬리를 살랑이며 고개를 갸웃거리고 있었다.
참깨볼:
야옹?
백기는 잠시 생각하더니, 마치 고양이의 말이라도 알아들으려는 듯 낚싯대를 들어 가볍게 흔들었다.
백기:
뭐 하고 싶어?
참깨볼은 백기를 한번 쳐다보더니, 이내 갑자기 방향을 틀어 멀리 쪽으로 달려갔다.
유연:
——조심해!
참깨볼이 캣타워에서 벗어나 창가 쪽으로 튀어가는 걸 본 나는 급히 따라갔다.
하지만 내가 가기도 전에, 참깨볼은 냉장고 위로 날렵하게 뛰어올라——
백기가 종이상자로 만든 놀이 상자 안으로 폴짝 들어가 버렸다.
그리고는 마치 '승리했다'는 듯, 우리를 향해 꼬리를 살랑이며 흔들었다.
…하지만 너무 신났던 걸까.
툭! 다음 순간, 상자에서 이상한 소리가 났고, 참깨볼은 그대로 상자 안으로 꺼져버렸다.
나는 깜짝 놀라 재빨리 달려가 녀석을 안았고——
그 반동에 몸이 밀려, 그대로 소파 위로 넘어져버렸다.
4장
한바탕 소란 속, 누군가의 따뜻한 손이 정확하게 내 허리를 감싸 안았다.
그리고 나와 고양이를 함께 품에 안은 채, 부드럽게 소파 위로 쓰러졌다.
푹신한 소파가 꺼지며 둔탁한 소리가 났고, 햇살조차 충돌에 휘날린 듯, 봉긋 솟아올라 백기의 갈색 머리카락 위로 흩어졌다.
유연:
…선배, 괜찮아요!?
나는 참깨볼을 안은 채 허겁지겁 고개를 돌려, 내 아래에 깔린 사람을 바라봤다.
백기는 조심스럽게 나와 고양이를 모두 감싸 안고 있었고, 내가 돌아보자 눈썹을 살짝 올리며 환한 미소를 지어 보였다.
백기:
괜찮아.
그는 편안한 자세로 나와 고양이를 품에 안은 채 소파에 기대었고, 참깨볼은 그의 가슴 위에 철퍼덕 올라앉아 꼬리를 살랑이며 야옹야옹 울었다.
백기:
이 녀석, 고양이 잡기 놀이가 하고 싶었던 거였나 봐.
마치 그의 말에 답하듯, 참깨볼이 또 한 번 “야옹” 하고 울며 앞발로 백기의 가슴을 톡톡 건드렸다.
그 표정은, ‘다시 한번 해보자!’고 말하는 것만 같았다.
유연:
방금 그 난리를 치고도 또 놀고 싶다니, 정말 대단하다…
나는 두 손을 들며 항복 선언을 했다. 그때, 백기의 웃음 섞인 목소리가 들려왔다.
백기:
아까 하품하던 거 보니까, 사실은 졸린데 흥분해서 정신 못 차리는 거야.
그는 참깨볼의 턱을 가볍게 쓰다듬었다. 그러자 참깨볼은 금세 조용해졌고, 백기의 긴 다리가 움직이며 내 발목을 포근히 감싸 안았다.
백기:
우리도 좀 쉬자. 고양이도, 우리도.
그의 셔츠에서는 우리가 함께 고른 섬유유연제의 향기가 은은하게 퍼졌고, 그 안에 담긴 따뜻한 체온이 온몸을 감싸 안았다.
백기의 품 안에 느슨히 안기자, 머릿속 생각들도 금세 말랑말랑해졌다.
따뜻한 햇살이 조용히 내려앉은 거실, 마치 솜털 같은 민들레들이 툭툭 피어나는 듯한 평온한 오후.
나는 한 손으로 참깨볼의 턱을 간질이며 조용히 물었다.
유연:
…고양이 세계에서 보면, 참깨볼은 우릴 어떻게 생각할까요?
유연:
자기 밥 터에 난입한 복면 도둑들? 아니면, 자길 납치해간 멍청한 인간들?
그 말에 백기가 웃음을 삼켰다.
그의 가슴에서 퍼지는 진동이 니트 사이로 전해져, 살며시 간지러운 감각이 피부에 맺혔다.
백기:
아마, 같이 놀고, 잘 재워주는 좋은 친구라고 생각하겠지.
나는 시선을 내렸다.
참깨볼은 그의 가슴 위에 폭 안겨서, 눈을 살짝 감은 채 조용히 숨을 고르고 있었다.
유연:
휴… 드디어 에너지가 다 소진된 것 같네요.
백기는 나른하게 대꾸했다. 목소리에 콧소리가 섞여 있었다. 나는 그를 보았다.
유연:
선배도 좀 졸리죠?
백기는 대답하지 않고, 조용히 얼굴을 내 머리카락에 부드럽게 비볐다.
그러고 보니, 임무 끝나자마자 바로 나를 찾아온 거니까—아직 제대로 쉬지도 못했을 텐데.
나는 천천히 손을 들어 그의 뺨을 어루만졌다.
그의 따뜻한 숨결이 손바닥에 살짝 닿았다. 나는 그의 눈을 마주 보았다.
유연:
햇살도 좋고… 고양이는 코 골면서 자고 있고…
유연:
이럴 땐, 그냥 같이 자는 게 정답이죠~
백기는 콧속으로 웃음을 머금은 숨을 내쉬며, 내 이마에 부드럽게 입을 맞췄다.
백기:
그럼, 같이 자자.
그의 키스는 따뜻한 햇살처럼 이마에 포근하게 내려앉았다.
참깨볼은 하품을 하고, 자세를 바꾸더니 다시 눈을 감았다.
나도 조용히 눈을 감고, 백기의 품 안에서 가장 편안한 자세를 찾아 몸을 기댔다.
그리고 귓가에, 맑고 나지막한 그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백기:
유연아, 좋은 꿈 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