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장
백기
돌아왔어?
깊은 밤, 온몸에 피로를 달고 집 문을 열자 예상치 못했지만 익숙한 목소리가 나를 맞아왔다.
나는 반갑게 고개를 들어 올렸고, 백기는 현관에 기대어 환하게 웃으며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의 눈썹과 이마 사이엔 무심한 듯 가벼운 기운이 가득해서, 마치 일주일 내내 이어진 고강도 임무가 그에게 아무 흔적도 남기지 않은 것 같았다.
거의 반사적으로 가방을 내려놓자마자 나는 그 품으로 뛰어들었다.
유연
언제 돌아온 거예요? 왜 미리 말도 안 해줬어요……
나는 일부러 볼을 부풀린 척했지만, 눈가에 번진 웃음이 아마 그동안의 그리움을 들켜버렸을지도 모른다.
그러자 그는 낮게 웃음을 흘리며 나를 더 꼭 끌어안았다.
백기
방금. 네가 집에 있을 것 같아서 미리 말 안 했어.
유연
으응… 저녁에 갑자기 급하게 끼어든 접대 자리가 하나 생겼거든요.
연말이라 그런가, 요 며칠 갑자기 너무 바빠졌어요……
백기
그래서 이렇게 피곤해 보였구나.
그는 나를 한 번에 들어 올려, 느긋하게 소파에 몸을 눕혔다.
나는 그의 품에 바짝 파고들어 금세 편한 자세를 찾았다.
유연
아무래도 세상 모두가 백 경관님만큼 체력이 좋은 건 아니니까요~
그래도 있죠, 요즘 엄청 괜찮은 휴식 방법을 찾았어요.
백기
나보다 더 대단해?
유연
그건 당연히 못 이기죠~
기껏해야 선배가 집에 없을 때 쓰는 작은 대체안 정도?
그가 기분 좋게 입꼬리를 올리는 걸 보자, 나도 참지 못하고 웃어버렸다.
백기
입체 퍼즐이 그렇게 유용한 줄 알았으면 그때 몇 개 더 사둘 걸.
유연
……어떻게 한 번에 맞혔어요?!
내가 너무 놀란 표정을 지었는지, 백기는 소리 내 웃었다.
백기
네가 다 맞춰놓고 식탁 위에 안 치워뒀잖아. 들어오자마자 보였어.
유연
아, 그랬구나. 원래는 선배랑 같이 맞출 걸 좀 남겨두려 했는데, 정신 차려보니 다 맞춰버렸어요.
아마 늘 선배가 모형 만드는 걸 보다 보니까, 나도 손재주가 좀 늘었나 봐요.
백기
충분히 대단해. 각도도 딱 맞고, 이어붙인 것도 맞물린 틈 하나 없이 깔끔하잖아.
방금 조명 달 때, 전선 끼워 넣느라 꽤 고생했거든.
그는 웃으며 팔을 뻗어 작은 목조 집 모형을 끌어왔다.
그제야 나는 깨달았다. 원래 텅 비어 있던 창틀 안쪽에, 가느다란 전선 몇 가닥이 나뭇결을 따라 기막히게 밀착돼 있었다.
그의 손끝이 처마 아래로 향하더니, 딸깍 소리와 함께 따뜻한 노란빛이 순식간에 작은 집을 밝혔다. 눈 덮인 지붕 위로 빛이 번져나가며 모든 것을 부드럽게 물들였다.
창틀에 비친 두 개의 작은 그림자를 따라가자, 벽난로 곁엔 불을 쬐려고 바짝 붙어 있는 작은 늑대와 토끼 한 쌍이 더 있었다.
유연
와… 너무 따뜻해요……
얘네 보고 있으니까, 장작 타는 소리까지 타닥타닥 들리는 것 같아요.
그가 낮게 웃으며 팔에 힘을 주어, 나를 더 단단히 품 안에 가뒀다.
백기
‘같은 것’ 말고, 우리 진짜를 들으러 가자.
2장
일주일 뒤, 백기는 차를 몰고 나를 인근 도시로 데려갔다.
차는 시끌벅적한 도심을 지나, 끝없이 이어진 산맥으로 들어섰다.
산길이 구불구불 위로 이어지고, 양옆으로 나무 그림자와 산벽이 스쳐 지나가며 바깥 공기가 점점 차가워졌다.
그런데 내가 아무리 물어도 백기는 작정한 듯 한마디도 흘리지 않았다. 오히려 그럴수록 기대감만 더 커졌다.
산 정상에 가까워질 즈음, 내비게이션에서 마침내 “목적지 부근에 도착했습니다”라는 안내가 흘러나왔다.
백기는 손목을 틀어 핸들을 반 바퀴 매끈하게 돌리더니, 차를 넓은 플랫폼에 안정적으로 세웠다.
그리고 창밖의 울창한 숲 사이로, 한 채의 통나무집이 모습을 드러냈다.
짙은 원목은 찬바람과 세월에 닳아 어두워져 있었고, 처마 위엔 얇은 눈이 살짝 쌓여 있었다.
조금 떨어져 있어도 어렵지 않게 알 수 있었다. 나무 들보의 구조와 처마의 곡선이, 우리가 맞춘 작은 목조 집 입체 퍼즐과 거의 똑같았다.
거의 동시에, 믿기 힘든 생각 하나가 머릿속에서 솟구쳤다.
유연
이거 설마 선배가 직접 지은 건 아니겠죠?!
내 반응이 너무 과했는지, 백기는 이런 내가 웃긴 듯 피식 웃었다.
백기
생각은 해봤지. 근데 시간 계산해보니까, 모든 과정을 다 직접 하려면 아무리 해도 1년은 걸려.
유연
그래도 이건 우리가 맞춘 퍼즐이랑 너무 닮았잖아요!
백기
닮긴 했지. 애초에 퍼즐 디자이너가 이 통나무집을 보고 디자인한 거니까.
유연
그런 것까지 어떻게 알아요?
그가 눈을 가늘게 웃으며, 휴대폰을 꺼내 사진 한 장을 열었다—
키 작은 소나무들이 통나무집을 둘러싸고 있었고, 햇살에 데워진 집은 따스한 노란빛을 띠고 있었다. 그 풍경은 눈앞의 풍경과 점점 겹쳐졌다.
백기
이 사진, 퍼즐 디자이너가 SNS에 올린 거야.
내가 DM도 보내봤는데도 답이 없어서 그냥 내가 직접 찾았지.
유연
……잠깐.
그 말은, 이 풍경 사진 한 장만 보고 여길 찾아냈다는 거예요?
그는 눈썹을 살짝 치켜올리며 당연하다는 듯한 눈빛을 보냈다.
백기
그냥 풍경 사진이라고 해도 단서가 꽤 많았어.
침엽수랑 활엽수가 섞여 있고, 오른쪽 아래엔 관목도 좀 보여. 식생으로 봐서 남쪽 산지야.
회백색 화강암에 균열이랑 자연 함몰이 있는데, 비랑 풍화가 남긴 흔적이지.
거기에 멀리 보이는 산등성이 선, 수선의 높이랑 배열까지 합치면, 가능한 위치 몇 군데로 좁힐 수 있어.
담담한 목소리였지만, 어딘가 자신감 어린 날카로움이 은근히 배어났다.
백기
마지막으로 실제 지도를 샅샅이 뒤져서 찾아냈어.
마침 민박집이래서 주말동안 빌렸어.
나는 믿기지 않는다는 듯 눈을 동그랗게 뜬 채, 한참이 지나서야 정신을 차렸다.
유연
……선배의 추리력이 대단하다는 건 알고 있었지만, 이건 너무 술술 풀린 거 아니에요?
백기는 입꼬리를 올리며, 내 목에 두른 목도리를 조금 더 끌어 올려 여몄다.
백기
네가 쉬는 방법이라면, 난 네 1순위 플랜이잖아.
실내 장식은 따뜻하고 깔끔했다. 나무 테이블과 의자는 모서리가 부드럽게 닳아 있었고, 은은한 솔향이 세월의 고요를 품은 듯했다.
창밖에서 들어오는 따뜻한 빛이 나무 바닥과 투박한 가구 위로 번져, 마치 포근한 겨울로 되돌아간 느낌이었다.
우리는 햇볕을 쬐며 느긋하게 짐을 꺼내어, 천천히 통나무집을 채워나갔다.
창밖 소나무 숲이 바람에 살랑이고, 맑은 새소리가 이따금 숲을 가르며 들어왔다. 따뜻한 햇살은 풀내음과 나무 향을 감싸 안고 실내로 스며들었다.
순수한 자연 속에 있으니 숨결마저 가벼워지는 것 같았고, 시간도 이 순간에 와서 느려졌다.
그 다음 순간, 나는 문득 햇살의 포근한 온기를 머금은 바람이 나를 다정하게 끌어안는 걸 느꼈다.
집 안의 창문은 모두 닫혀 있었기에, 나는 잠시 멈칫했다가 아마 백기가 Evol을 쓴 거라고 생각했다.
마음 속 기쁨이 가득 차올라, 나는 두 팔을 벌리고 바람을 맞으며 한 바퀴 빙글 돌았다.
유연
헤헤, 요즘 선배 점점 로맨틱해지는 것 같아요.
그 잘생긴 얼굴엔 물음표가 가득했다. 내가 한 말의 뜻을 전혀 못 알아들은 것처럼.
유연
흥흥, 또 모르는 척. 저 다 알아챘거든요~
또 몰래 Evol 썼죠? 아니면 집 안에 바람이 있을 리가 없잖아요.
그런데 다음 순간, 백기는 뭔가 떠올랐다는 듯 말없이 벽과 창틀이 맞닿은 부분으로 걸어가 손바닥을 살짝 갖다 댔다.
바람이 그의 밤갈색 머리칼을 살짝 흩뜨렸고, 호박빛 눈동자엔 드물게 난처한 기색이 스쳤다.
백기
……
……나 Evol 안 썼어. 이 통나무집에서 바람이 새는 거야.
3장
백기
……그래, 바람이 새. 나무가 오래돼서 접합부가 헐거워진 것 같아.
수도꼭지 물도 온도가 많이 낮아. 배관도 좀 얼었을 거고.
백기는 대충 점검을 마치자, 통나무집에 노후 문제가 꽤 많다는 걸 알아차리고 집주인에게 전화를 걸었다.
백기
산에 들어오시려면 얼마나 걸리세요?
상대가 뭐라고 했는지, 그는 미간을 살짝 찌푸렸다.
백기
그런가요. 공구가 어디 있는지만 알려주세요.
다음 순간, 백기는 뒷문을 열고 마당으로 나갔다.
문틈으로 스며든 바람에 서늘함이 섞여 들어와, 나는 무심코 코트를 더 여몄다.
잠시 후, 백기가 돌아왔을 땐 손에 실리콘 몇 통과 실리콘건 하나가 들려 있었다.
유연
선배가 직접 고치려고요?
백기
집주인이 산에 들어올 때까지 기다리면, 네가 얼마나 더 추위에 떨어야할지 모르잖아.
그는 말하며 소매를 걷어 올리고, 실리콘 튜브를 꺼내 마개를 딴 뒤 실리콘건에 단단히 끼웠다.
그리고 몸을 살짝 숙여 틈의 시작점을 겨누더니, 실리콘을 틈을 따라 천천히, 안정적으로 채워 넣기 시작했다.
빛이 창틀을 통해 그의 차분한 옆얼굴 위로 비쳤다. 마치 모든 게 그의 손안에 있는 것처럼.
어떤 돌발상황이 생겨도 그는 늘 한발 앞서 내 앞에 서서, 문제를 침착하게 처리해버린다.
그래서 그가 곁에 있으면, 내 마음속엔 언제나 든든한 안정감만 남는다.
그렇게 생각하다가, 나는 참지 못하고 그의 허리를 콕 찔렀다.
유연
백 경관님 정말 만능이시네요?
백기
그냥 초대형 모델이라고 생각하는 거지.
그의 팔에 힘이 살짝 들어가며, 틈을 따라 균일한 실리콘 줄이 매끈하게 그어졌다.
그리고 바람은 그의 손길에 따라 조금씩, 통나무집 밖으로 밀려나는 것 같았다.
고요한 오후, 실리콘건에서 나는 미세한 지지직 소리가 묘하게 마음을 다독이는 안심이 되었다.
나는 작은 빗자루를 집어, 옆에서 떨어진 나무 부스러기를 정리해주려 했지만 틈만 나면 자꾸 옆을 힐끔거리게 됐다.
그는 내 시선을 눈치채지 못한 듯, 같은 동작을 인내심 있게 반복했다. 빠르진 않지만, 흔들림 없이 단단하고 절제된 움직임으로.
얼마나 봤는지 백기는 오두막 안팎을 모두 보수하고 실리콘건을 내려놓았다. 손을 씻고 돌아온 그는 나를 안은 채 침대 가장자리에 함께 앉았다.
백기
아직도 추워?
유연
안 추워요~
선배가 여기 있으면, 저도 따뜻해져요.
나는 웃으며 그의 허리에 팔을 감고, 이마 가장자리에 맺힌 잔땀을 손가락으로 살짝 닦아줬다.
백기
그럼 내가 더 널 따뜻하게 해줄게.
내가 반응할 새도 없이, 이불이 살짝 흔들리며 바스락거리는 소리가 귓가에 스쳤다.
다음 순간, 나는 햇볕에 잔뜩 달궈진 이불 속으로 그에게 통째로 감싸였다.
우리는 거의 붙어 있었다. 가슴과 가슴이 맞닿고, 시선도 조용히 엉겨 붙었다.
따뜻한 온기가 단숨에 몸을 덮쳤고, 아까의 서늘함은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숨결이 교차하는 사이, 내 심장이 저절로 훨씬 빨라졌다.
유연
왜 그렇게 쳐다봐요.
그렇게 바라보는 눈빛에, 나는 왠지 모르게 괜히 뜨끔했다.
백기
너 따라 하는 거야. 방금 너도 그랬잖아.
이 사람이 내가 훔쳐보던 시선을 진작에 알아챘다는 걸 깨닫자, 나는 민망해서 눈을 깜빡였다.
유연
선배가 일하는 모습이 너무 멋있었단 말이에요……그래서 좀 더 보고 싶어서 그만.
이미 알아챘으면서, 아까 왜 말 안 했어요?
연이 네가 나 보는 게 좋아서.
당연하다는 듯한 그의 목소리가 귓가를 스치자, 마음이 간질간질해졌다.
백기
어디가 멋있었어?
그는 뜨거운 시선으로 내 눈을 똑바로 바라봤다. 쉽게 넘어갈 생각이 없어 보였다.
버틸 수가 없어, 나는 결국 항복했다.
유연
어디든 다 멋있어요.
내 얼굴에 붉은 기가 떠오르는 걸 보자, 그는 마침내 낮게 웃었다.
백기
원래는 훔쳐본 만큼만 돌려받으려 했는데.
지금은 마음이 바뀌었어.
말이 끝나기도 전에, 겨울의 모든 부드러움을 실은 듯한 키스가 내 입술 위로 내려앉았다.
아마 백기의 품이 너무 따뜻해서였을까. 나는 어느새 잠들어버렸다.
눈을 떴을 땐 벽난로의 장작이 타닥타닥 소리를 내며 활활 타고 있었고, 주황빛 불꽃이 실내를 포근하게 데우고 있었다.
다만 그 외엔 너무 조용했다. 백기는 집 안에 없는 것 같았다.
그를 찾으려고 몸을 일으키려는 순간, 둔탁한 발소리와 나무가 부딪히는 가벼운 소리가 섞여 밖에서 들려왔다.
생각할 틈도 없이, 나는 급히 슬리퍼를 신고 현관으로 달려갔다—
문을 여는 순간, 잘게 부서진 눈송이가 겨울 특유의 청량한 차가움과 함께 얼굴에 와 닿았다.
눈이 오고 있었다.
하늘과 땅이 옅은 흰빛으로 물든 가운데, 백기는 굵은 장작 하나를 어깨에 안정적으로 메고 있었다. 왼팔엔 가지런한 나무토막 몇 개가 끼워져 있었다.
그의 발걸음이 얇게 쌓인 눈을 밟을 때마다, 서두르지 않는 차분한 소리가 또각또각 났다.
그리고 다음 순간, 내 시선을 느낀 듯 그가 고개를 들어 나를 바라봤다.
백기
깼어?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빠르게 다가가, 그가 들고 있던 작은 장작 하나를 받아 들었다.
유연
왜 이렇게 많이 가져온 거예요?
백기
작은 건 밥하고 장작불 때는 데 쓰고, 큰 건 밤새도록 태우기 좋아. 짐승들도 쫓을 수 있고.
너무도 자연스럽게 말해서, 나는 잠깐 멍해졌다.
유연
여기 야생동물도 있어요?
백기
숲속에 늑대 발자국이 있어.
그는 태연하게 말했지만, 눈 밑에 숨겨둔 웃음기가 슬쩍 새어 나왔다.
유연
선밴 정말 거짓말 못 해. 나 속일 때마다 꼭 그런 표정이잖아.
백기
무슨 표정?
그는 눈썹을 살짝 올리며, 흥미가 생긴 듯했다.
유연
얼굴은 티가 안 나는데, 눈은 자꾸 웃고 있어.
그리고 내가 속아주길 바라는 못된 마음도 보이고……
백기
그럼 지금 내 표정에서는 뭐가 보여?
그는 장작을 장작 패는 통나무 받침 옆에 안정적으로 내려놓고, 몸을 숙여 내게 더 가까이 다가왔다.
소년의 시선은 직설적이면서도 뜨거웠다. 커다란 세상 속에서 오직 나만 보이는 것처럼.
유연
간단해요. 한 번에 알겠는데요?
나는 그의 눈을 마주하고, 발끝을 들어 그의 입술에 살며시 입을 맞췄다.
유연
선배는 나랑 장난치는 거 좋아하잖아요.
백기
반은 맞췄어.
그가 웃으며 나를 끌어안더니, 몸을 숙여 내 세계를 가득 채웠다.
백기
난 너랑만 장난치고 싶어.
4장
집주인은 결국 한 번 들렀다. 숙박비를 절반이나 깎아준 데다, 사과의 뜻이라며 푸짐한 산나물과 야생고기까지 한가득 가져다주었다.
우리는 당연히 사양하지 않았고, 신선한 산버섯으로 고깃탕을 끓이기로 했다.
마당의 장작 패는 나무토막 옆에서, 백기가 도끼를 시원하게 휘두를 때마다 통나무가 하나씩 ‘쩍’ 소리를 내며 갈라졌다.
나는 옆의 아궁이 앞을 지키며, 집게로 마른 장작을 골라 불구멍 안에 차곡차곡 넣었다.
곧 약한 불로 뭉근히 끓는 탕이 보글보글 소리를 내기 시작했고, 장작 쪼개는 둔탁한 소리와 함께 텅 빈 산중에 울려 퍼졌다.
장작불의 따뜻한 빛이 눈 위에 비치자, 바람마저 어딘가 부드러워진 듯했고, 작은 마당은 유난히 안온해 보였다.
마지막 통나무 한 토막까지 잘게 쪼개질 즈음, 탕의 진한 향도 마당 가득 퍼져 있었다.
백기가 몸을 일으키는 걸 보자, 나는 그의 곁으로 다가가 손가락으로 잔뜩 뭉친 그의 어깨를 꾹꾹 주물러 주었다.
그런데 그는 반사적으로 몸을 살짝 옆으로 비키며, 나무 부스러기가 묻은 소매를 뒤로 감추려 했다. 혹시라도 내게 묻을까 봐.
백기
나 더러워. 너까지 더러워지면 안 되잖아.
유연
난 더러워지는 거 안 무서운데.
내가 손을 멈추지도 않고, 게다가 막무가내로 그의 품 안으로 파고들자, 그는 결국 웃으며 나를 더 꼭 끌어안았다.
바람과 눈 사이에서 우리는 바짝 기대었다. 새하얀 세상에 우리 둘만 남은 것처럼.
하지만 다음 순간, 마당 구석에서 묵직하지도 가볍지도 않은 소리 하나가 들려왔다— “쿵”.
우리는 의아한 얼굴로 서로를 바라본 뒤, 뒤돌아 살폈지만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내가 ‘내가 잘못 들었나?’ 싶어하던 찰나, 더 크게 카작 하는 소리가 터지듯 울렸다.
소리 나는 쪽을 보니 장작더미 옆에서 물이 갑자기 수도관에서 뿜어져 나오고 있었다.
수도관이 터졌다.
물줄기는 백기가 정갈하게 쌓아둔 마른 장작을 향해 쏟아졌고, 순식간에 겉면을 흠뻑 적셨다.
나는 아무 생각도 할 새 없이 장작더미로 달려갔다. 어떻게든 빨리 옮겨야 했다.
거의 동시에 백기도 빠르게 다가와 밸브를 잠그려 했다.
그런데 그가 밸브를 움켜쥔 순간, 오래되어 바삭해진 관이 또 한번 터지며 물줄기가 방향을 바꾸면서 곧장 나를 향해 쏘아졌다.
백기
……!
그는 말을 꺼내기도 전에 재빨리 내 앞을 막아섰고, 그대로 머리부터 발끝까지 흠뻑 뒤집어썼다.
1분 뒤, 우리는 우왕좌왕하며 힘을 합쳐 결국 밸브를 잠갔다.
내 옷자락에도 물이 꽤 튄 걸 보자, 백기는 미간을 찌푸리며 나를 욕실로 끌고 가더니, 곧장 욕실 난방을 켰다.
그리고는 마른 수건을 집어, 내게 묻은 물기를 꼼꼼히 닦아주었다. 따뜻한 노란 조명 아래서 보니 그가 나보다 훨씬 처참했다.
머리카락은 뚝뚝 물이 떨어지고 있었고, 심지어 삐죽 솟은 잔머리 한 가닥이 덜렁덜렁 서 있었다.
유연
풋…… 선배 너무 귀여워.
그가 거울을 보고는, 삐죽 선 잔머리를 손으로 눌러보려는 듯 손을 들자 나는 결국 웃음을 터뜨렸다.
유연
하하하, 그 얘기 하는 거 아니에요.
유연
그냥 가끔은 선배도 어쩌지 못하는 일이 있다는 게 귀여워서요.
호박빛 눈동자가 잠시 멈칫하더니 천천히 웃음이 차올랐다.
다음 순간, 그는 일부러 수건으로 머리를 더 헝클어뜨리며 당당하게 내 쪽으로 몸을 숙였다.
백기
내가 해결 못 하는 일은 아직도 많아. 네가 도와줘야 해.
그가 떼쓰듯 능청을 부리는 모습을 보자, 내 심장이 예고도 없이 한 박자 툭 하고 놓쳤다.
하지만 그 장본인은 한순간도 눈을 떼지 않고 나를 바라보고 있었고, 나는 웃으며 수건을 받아 그의 젖은 머리칼을 조심조심 닦아줄 수밖에 없었다.
샤워를 마칠 때까지도, 나는 그 뜨겁고 맑은 시선이 여전히 피부에 남아 있는 것만 같았고, 심장은 계속 두근거렸다.
욕실을 나서자, 백기는 이미 홈웨어로 갈아입은 채 베란다에서 젖은 옷들을 널고 있었다.
오후의 햇살이 그 위로 내려앉아, 그는 포근해보였다.
이 고요를 깨고 싶지 않았는지, 나는 살금살금 그의 뒤로 다가가 조용히 그의 가슴을 끌어안았다.
맞닿은 옷자락을 타고 온기가 전해졌고, 그의 은은한 향과 햇살 냄새가 함께 나를 꽉 감싸안았다.
유연
선배 오늘 계속 바빴네요.
그는 옷의 주름을 펴던 손을 잠깐 멈추고, 고개를 살짝 기울였다.
백기
그래? 다 사소한 일들이잖아.
유연
하지만 삶이라는 게 원래 그런 사소한 것들이 모여서 되는 거잖아요~
그가 작게 웃더니, 마지막 옷 한 벌을 걸어 넌 뒤 돌아서서 나를 품 안으로 끌어안았다.
백기:
하지만 내가 바라는 생활은 그게 전부가 아니야. 수도관은 집주인이 알아서 고치라고 하자.
지금은 그냥 널 안고 조용히 좀 있고 싶어.
그는 몸을 숙여, 느긋하게 내 어깨에 턱을 기댔다. 그리고 몸의 무게를 살짝, 아주 조금 내게 맡겼다.
눈은 소리 없이 내렸고, 세상은 마치 조용히 줄어들어 연인의 품만큼만 남은 것 같았다.
그러자 내 심장은, 또 다른 심장이 나와 똑같이 편안한 리듬으로 천천히 뛰고 있다는 걸 알아차렸다.
그래, 조금 엉망이 되면 어때.
어차피 선배가 옆에 있잖아. 지금 내 앞에 펼쳐진 이 순간이, 내가 가장 원하는 삶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