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4 불속에서의 단련
"이번 전투, 이번 임무는 백기를 진정한 강한 사람으로 만들었다."
01
현상수배범을 쫓은 지 13일째 되던 날.
백기가 현상범 추적 업무에 참여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평소의 모의연습과는 완전히 달랐다.
수배범의 이름은 진철욱이었다. 그의 범죄 수법은 치가 떨리도록 잔인했다.
갖고 있는 Evol 능력은 알아낼 수 없었지만, 그는 뛰어난 역추적 능력을 가지고 있어 추적 업무를 방해하고 있었다.
상황은 그리 낙관적이지 않았다.
이 도시는 큰 편이 아니다. 숨을 수 있는 곳은 더욱 한정적이다. 그럼에도 여전히 어떠한 단서도 찾을 수 없었다. 어딘가에서 폭발이 일어난 것만 빼면...
이번 임무를 맡은 팀장이 지도에 앞전 폭파지점을 표시했을 때, 특경 사무소에서 10km도 채 떨어지지 않은 곳에서 갑자기 불꽃이 솟구쳤다.
곧이어 천둥과도 같은 폭파음이 들려왔다.
귀청이 떨어져 나갈만한 소리.
"낮이어서 마을에 사람이 많지는 않아. 사상자가 몇 명인지는 확인 중이야. 하지만, 마을 전체가...파괴된 것 같아."
나쁜 소식을 접한 팀장이 손에 쥐고 있던 펜을 부숴버렸다.
02
백기가 특수경찰학교에 들어온 이듬해에, 그는 이 까다로운 임무에 배치되었다. 백기 외에도 십여 명의 신입생과 경험 있는 정식 Evol 특수경찰도 30여 명이 배치되었지만, 상황이 예상외로 매우 급박한 경지에 이르렀다.
백기는 시커멓게 타버린 폐허 속에서 꺼낸 시체들을 보고 있었다. 마치 눈이 아플 정도로 타오르는 또 다른 큰불구덩이를 보고 있는 듯했다.
려엽이 그에게 다가오며 잠긴 목소리로 말했다.
"갑자기 내가 쓸모없는 사람처럼 느껴져."
백기가 그를 한 번 쳐다보자, 려엽이 계속 말을 이어갔다. '예전에 난, 내 능력으로 많은 사람들을 구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꼭 그렇진 않나 봐.'
백기는 말없이 주먹을 꽉 쥐었다.
려엽은 백기와 같은 경찰학교 2학년 학생이다. 그가 보유한 Evol 능력은 치유. 같은 팀의 동료로서 려엽은 백기와 파트너가 되길 바라고 있었다. 하지만 조직은 그의 마음속 바람을 들어주지 않았다.
려엽은 아직도 백기를 처음 만났던 순간을 기억한다. 그때 그들은 두 번째 훈련인 체포술과 격투기 수업을 진행하고 있었다. 백기가 교관에게 이끌려 훈련장에 들어섰을 때, 그는 조촐한 백팩과 마른 혈흔이 얼룩져 있는 흰 셔츠를 입고 있었다.
려엽은 그의 얼굴에 가득한 멍 자국을 보자, 관심이 생겼다. 분명 그는 이 학교에 들어오기 위해 지옥 같은 시험을 치렀을 것이다. 그는 모든 신입 중 가장 심한 상처를 입은 사람이었다.
너무 약한 것 같은데, 괜찮으려나?
조용히 생각하던 려엽의 얼굴에 매서운 주먹이 날아들었다. 같이 훈련하던 동료가 미안하지만 조금의 원망이 섞인 말투로 말했다. "왜 이렇게 대충이지? 뭘 보고 있는 거야?"
려엽은 입가의 핏자국을 쓱 닦으며, 상대방의 대단한 손놀림에 감탄했다. 그래도 통증은 전혀 없었다. 습관이 들어서일까. 그는 동료에게 계속하라는 듯 손짓했다.
저녁 휴식시간, 려엽은 새로 들어온 신참의 이름이 백기라는 것을 알아냈다. 동료 사이에 그에 대한 평가는 단 몇 단어뿐이었다. 냉담함, 오만함, 그리고 고고함.
저녁에 순찰을 하던 려엽은 운동장에서 진도를 따라잡으라는 명령에 따라 훈련량을 늘리고 있는 백기를 봤다. 려엽이 막 인사를 하러 다가가던 찰나, 그는 미처 거둬들이지 못한 백기의 주먹에 맞아 그 자리에서 바닥에 고꾸라졌다.
백기가 정신을 차리고 보니, 려엽은 마치 아무 일도 없던 것처럼 얼굴을 들고선 백기를 향해 웃어 보이고 있었다.
03
백기는 눈썹을 찌푸렸다.
려엽은 몸을 일으켜 세우며 말했다. '아직 인사하기엔 안 늦었지? 내 이름은 려엽, 너랑 같은 신참이야!'
백기는 그를 쳐다보지도 않고 하던 훈련을 계속했다. "나한테서 멀리 떨어져."
려엽은 백기가 이래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다.
물론 그도 백기의 말을 들을 리 없다. 그에게서 멀리 떨어졌지만 오히려 그와 더 친해졌다. 예컨대 백기가 순찰할 때면 려엽은 몰래 내려와 그에게 인사를 했고, 백기가 밥을 먹을 때면 옆에는 항상 뜬금없이 식판 하나가 더 놓여 있었다. 의심할 여지없이 물론 려엽이었다.
려엽은 별 다른 생각 없이, 단순히 백기를 사연이 있는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그가 차갑게 동료를 멀리하며 혼자 생활하는 것을 보고싶지 않았다. 특기 격투기는 동료와 함께 연습해야 하는 것이 아닌가...
다른 동료들은 백기의 차가움에 쉽게 다가가지 못할 거라 생각했다. 심지어 '백기는 차갑고 콧대가 높으니 한번 눌러주자'며 그를 도발하는 일도 생겼지만 어쨌든 그들은 모두 '같은 류의 사람'이었고, 려엽이란 '중재자'가 더해지고, 어느 날 백기의 옷 속에서 알 수 없는 소녀의 사진이 발견되자 집단으로 그를 놀린 적도 있다.
시간이 지나자 백기는 더 이상 예전처럼 그들을 거절하진 않았다. 물론 여전히 좋은 표정을 짓지는 않았지만 말이다.
백기는 격투기에 정말 능했다. 모든 과목에서 다른 학생들보다 뛰어났지만, 특히 격투기는 '으뜸 중의 으뜸'이라 할 수 있었다. 많은 동료들이 그와 겨루고 나면 그 실력에 놀라곤 했고, 려엽은 이를 보며 더더욱 놀라워했다. 이렇게 강한 사람이 처음 왔을 때는 왜 그 모양이었을까?
백기는 빠르게 날아오는 려엽의 주먹을 받아냈다. 려엽은 백기에 의해 몇 번이나 땅바닥에 내동댕이 쳐졌는지도 알 수 없었다. 얼굴은 온통 멍이 들었지만 1분도 채 지나지 않아 멍이 점점 사라졌다.
주변 사람들이 떠들어 댔다. '백기! 쟤는 아픈 것도 모르는데 봐주지 마!'
려엽은 황급히 손사래를 쳤다, '아프진 않지만 내상은 입는다고!'
학교에 들어간 지 6개월째. 백기는 총교관의 명령을 받았다.
백기는 군인의 자세를 하고 넓은 원목 탁자 앞에 서 있었고, 탁자 뒤의 의자에 한 남성이 옷깃을 단정하게 하고 엄숙하게 앉은 채 백기의 자료를 넘기며 보고 있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그는 흥미진진한 듯 눈썹을 치켜올렸다.
그가 고개를 들어 백기를 보았다. '싸움은 좀 하나?'
백기는 여전히 꼿꼿한 자세로 담담하게 대답했다.
'그런대로 합니다.'
04
말이 떨어지자마자 의자 위의 그림자는 이미 사라져 있었다. 그 찰나, 백기가 고개를 돌려 한 손으로는 재빨리 날아오는 주먹을 받으며 다른 한 손으로 상대를 향해 주먹을 휘둘렀다. 하지만 상대는 순식간에 그와 2m는 족히 떨어진 창가로 피했다.
남자가 호탕하게 웃으며 박수를 쳤다. '꽤나 빠르군.'
그는 알아볼 수 있었다... 이 소년에겐 결연함이 있으며 전반적으로 차가운 냉기가 흐르고 있지만 그의 공격은 그것보다도 훨씬 더 차가움이 가득하다는 것을.
백기는 남자에게 거수경례를 하고는 재빨리 군인의 자세를 취했다.
남자는 그의 어깨를 짚으며 말했다. '2주 후, 8기 용사 대회가 개최된다. 너도 참가했으면 좋겠군.'
백기는 이곳에 갓 들어왔을 무렵, 그 대회에 대해 동료들이 하는 이야기를 무심코 들은 적이 있었다. 각국에선 그 해의 가장 우수한 엘리트 신입생을 시합에 내보내고, 심사위원들은 각 항목의 현장 실전을 관찰하며 참가자의 격투기 등 모든 능력을 평가한다. 그리고 최종 우승자는 국가를 대표해 모든 Evol 특수경찰들이 동경하는 시상대에 올라 가장 큰 명예를 얻게 된다.
즉, 용사 대회는 전 세계 Evol 특수경찰들이 경쟁하는 첫 전쟁터이자 국제 Evol 특수경찰 조직에게 실력을 인정받을 절호의 기회이기도 했다.
백기는 고민도 않고 거절했다. "참가하지 않겠습니다."
남자의 손이 굳어졌다. "자네와 상의하자는 게 아니네."
백기는 그의 눈을 똑바로 쳐다보았다. "팀 내에 저보다 유능하고, 대회에 참가하고 싶어 하는 사람이 많습니다."
남자는 웃으며 물었다. "그래? 또 다른 이유는 없나?"
그는 여러 특수 경찰들을 시합에 데리고 간 경험이 있었다. 하지만 이런 기회를 얻고도 고맙다고 하진 못할지언정 이렇게 거절한 것은 그가 처음이었다.
백기가 말했다. "전 이곳에 상을 타러 온 게 아닙니다."
남자는 가볍게 웃으며 그의 어깨를 툭툭 쳤다. "자네의 의견을 존중하니 고민할 시간은 주겠네. 하지만 Evol 특수경찰로 선발되는 건 자네가 결정하는 게 아니란 것만 알아두게."
얼마 지나지 않아, 백기가 시합 참가를 거절했다는 소식이 조직 전체에 퍼졌다. 어떤 동료는 그의 머리카락을 흩트리며 휘파람을 불기도 했다. 백기가 동료를 밀치려는 찰나, 려엽이 그에게 얼굴을 들이밀며 다가왔다.
"거절할 때 자기가 멋있다고 생각했지?!"
히죽거리는 얼굴을 바라보자니 백기는 이상한 기분이 들었다. 그는 눈썹을 치켜세우곤 려엽에게 물었다. "넌 가고 싶어?"
려엽은 진지하게 고민하고는 대답했다. "하고 싶다, 아니다를 말할 건 아니지만, 만약 나에게 기회가 주어졌다면, 출전했을 거야."
"왜지?"
려엽은 눈을 가느다랗게 떴다. "내 동생들이 가장 존경하는 사람이 경찰이거든. 만약 내가 가장 뛰어난 경찰이 된다면, 걔네들도 분명 엄청 기뻐할 거야."
결국 백기는 그 해의 시합에 참가하지 않았다.
선발된 사람은 또 다른 백씨 성을 가진 학생이었다.
05
현상수배범을 쫓은 지 30일째. 양측이 처음으로 맞붙었다.
오랜 기간 추적을 거듭한 끝에 백기는 이 자의 Evol이 철벽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총을 쏘아도 그를 해칠 순 없다. 유일한 약점은 아마도 머리이리라. 백기는 그 자의 머리를 날카로운 눈빛으로 쳐다봤다.
백기는 진철욱이 얼마나 많은 폭약을 가지고 있는지 몰랐다. 진철욱은 그의 몸 자체로도 거대한 폭탄 같은 것이었다. 게다가 이번 추격에서 이미 너무나도 많은 동료가 쓰러졌다.
백기의 주먹에 맞은 진철욱은 무너진 담벼락으로 날아가 부딪혔다. 그가 쓰러진 순간, 특수경찰들이 즉시 그의 주변을 둘러쌌다.
진철욱은 휘청거리며 일어나선 입가의 피를 닦으며 차갑게 될 줄이야."
밝게 내리쬐는 햇볕 아래, 백기의 코트가 바람에 흩날리고 있었다.
진철욱은 공중에 떠 있는 소년을 보더니, 갑자기 눈을 부릅뜨며 분노에 찬 포효를 질렀다. 순간, 그의 몸 근육들이 단단하게 부풀어 오르며 피부색도 까맣게 변하기 시작했다.
백기는 놀란 듯 두 눈을 살짝 부릅뜨며 재빠르게 반응했다. 그것은...
"조심해!" 백기가 크게 소리쳤다. 그는 급강하하는 동시에 그와 가장 가까운 동료를 잽싸게 당기며 바닥으로 엎드렸다.
얼마나 큰 위력의 폭발이었을까. 거친 바람이 얼굴을 스치고 깨진 돌조각들이 사방에 흩어졌다.
고막이 찣어질 듯한 엄청난 소음에 백기는 육중한 물체에 머리를 세게 맞은 느낌이 들었다. 그러면서도 깨진 돌의 파편들이 계속해서 온몸을 스쳐 지나가고 있었다.
시간이 얼마나 흘렀을까. 짙은 연기는 점차 흩어졌고 그곳은 거대한 괴물이 짓밟고 지나간 듯 이미 폐허가 되어 있었다.
06
백기는 자신의 몸에 뒤덮인 파편들을 털어냈다. 멀지 않은 곳, 깊은 구덩이 속에 익숙한 그림자가 보였다. 그림자는 마치 무언가를 보호하려는 듯, 두 손을 벌려 땅을 짚고 바닥을 보고 있었다.
백기는 그가 려엽이라는 걸 알아챘다. 려엽의 몸을 짓누르고 있는 돌덩이를 치우자 온통 피투성이가 된 그의 몸이 드러났다. 잘린 바위가 려엽의 복부를 찔러 붉고 끈적한 액체가 계속 뿜어져 나오고 있었다.
백기가 려엽의 몸을 부축해 일으켜 세우자... 그 밑에 정신을 잃은 채 웅크리고 있는 두 개의 작은 그림자가 보였다. 미처 피하지 못하고 쓰러진 어린아이 둘이었다.
백기는 외투를 벗어 필사적으로 려엽의 복부를 지혈하며 소리쳤다. "입 다물어!"
려엽은 또 웃었다. "소리치지 마, 너무 아파..."
백기는 주먹을 꽉 쥐었다, 려엽의 허약한 목소리가 다시 들려왔다. "아이들은... 무사해?" 백기는 고개를 끄덕였다.
려엽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꼭 내 동생들 곁에 묻어줘, 안 그러면 애들이 무서워할 거야."
려엽의 희미한 미소를 보자, 백기는 가슴이 아려왔다.
려엽이 들릴락 말락 하는 소리로 말했다: 예전에 많이 자책했어, 나에게 Evol이 있었는데도 동생들을 구할 수 없었거든..."
백기는 그의 손을 꽉 잡았다. 그는 려엽을 이해할 수 있었다. 려엽은 뭔가 더 말하고 싶어 했지만 그는 이미 실이 끊어진 나무 인형처럼 백기의 팔뚝에 축 늘어졌고, 더 이상 생기라고는 찾아볼 수 없었다.
백기는 사방을 둘러보았다. 이 폐허에 나뒹굴고 있는 것은 모두 몇 분 전만 해도 생생하게 살아서 그의 앞에 서 있던 사람들이었다.
동료의 시체는 피범벅이 되어 있었다. 첫 번째 실전에서 이렇게 생사를 직면하게 되었다.
불과 어제만 해도 그들은 시시덕거리며 어깨동무를 하고 함께 밥을 먹자고 하고, 그가 숨겨놓은 소녀의 사진을 보며 그녀를 놀렸다...
격투기 수업을 듣는 모든 사람이 손을 저으며 그를 피해도 려엽만은 눈웃음을 치며 그에게 말하곤 했다. '나랑 연습하자'. 그러고는 몇 번을 쓰러져도 아무런 불평도 하지 않았다.
눈에 선한 모든 것들이... 일순간 사라져 버렸다.
마치 처음부터 아무것도 없었던 것처럼...
백기가 폐허의 가운데 드러눕자 작열하는 태양이 끊임없이 그의 눈을 찔렀다. 몽롱한 시선 속, 그는 머리 위에 빙빙 도는 헬기를 발견했다. 귓가에는 익숙한 목소리, 분노와 냉정함, 슬픔이 담긴 목소리가 들렸다. 그는 손을 뻗어 가슴팍을 움켜잡았다...
그곳에는 소녀의 사진이 고이 끼워져 있었다. 다만 그한테서 계속해서 흘러내리는 피로 인해 한쪽 모소리가 젖어있었다. 그의 귓가에는 소녀가 연주하며 부르는 노래가 들리는 것 같았다. 그 목소리는 가볍고, 부드럽게, 천천히 그의 몸속으로 들어와 그의 심장을 침식했다.
그는 문득 생각했다. 소녀가 품속에 꼭 안고 있던, 자신은 아무리 읽어도 이해되지 않던 그 <바이런 시집>을...
'생'과 '사' 모두 나를 속박할 수 없다.
아마 지금 다시 그 시집을 읽는다면, 이해할 수 있지 않을까...
백기는 눈부신 미소를 지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