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1
“너 정말 중앙병원을 그만둘 생각이야?”
“응. 특파팀 의무부로 옮기려고.”
“뭐? 진심이야?!”
오랜 동창은 놀란 나머지 하마터면 젓가락을 떨어뜨릴 뻔했다. 그는 잠시 생각에 잠기더니 못마땅하다는 듯 말을 이었다.
“네가 예전부터 Evolver에 관심이 많았다는 건 알아. 하지만 시내 다른 대형 병원에도 관련 부서가 있잖아. 굳이 특파팀 같은 ‘마굴’에 들어갈 필요가 있어?”
“나한테도 나름대로 추구하는 바가 있으니까.”
“그래, 그래. 위대하신 유 선생님의 높은 뜻과 신념을 내가 어떻게 이해하겠어……”
동창은 혀를 끌끌 차더니 다시 입을 열었다.
“그래도 이것 하나는 알아 둬. 특파팀에 있는 놈들은 전부 피도 눈물도 없는 인간 병기들이야. 가서 고생하지 말고 알아서 몸조심해.”
나는 긍정도 부정도 하지 않은 채 그저 웃으며 말했다.
“음식이나 먹어.”
지난 몇 년 동안 나는 환자 가족들이 흘리는 눈물을 지겹도록 보았고, 환자들이 간절히 기도하는 소리도 수도 없이 들었다.
그 광경과 목소리들은 거대한 바위처럼 나를 짓눌렀고, 숨조차 제대로 쉴 수 없게 만들었다.
반면 특파팀 의무부에는 Evolver를 위한 최첨단 의료 장비와 가장 뛰어난 인재들이 모여 있었다.
게다가 환자들까지 피도 눈물도 없는 인간 병기라면, 이보다 더 완벽한 직장이 어디 있겠는가.
하지만 정작 입사하기도 전에 나는 내 생각이 완전히 틀렸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부상자 출혈량이 너무 많습니다! 중앙 혈액원에 연락해서 혈액을 추가로 확보해야 합니다!”
“2팀에서 중상자 여섯 명 발생! 긴급 치료가 필요합니다!”
“4팀 대원들은 아직 안 왔습니까? 서두르세요!”
불과 30분 전, 한 공장에서 대형 폭발 사고가 발생했다.
‘원소 조화’ Evol 능력을 가진 Evolver가 조작 실수를 일으키면서 그의 에너지와 화학제품 사이에 비정상적인 반응이 발생한 것이 원인이었다.
특파팀은 폭발이 일어나기 전에 시민들을 대피시키고 폭발 규모도 어느 정도 억제하는 데 성공했다.
하지만 결국 한발 늦고 말았다.
굉음과 함께 치솟은 불길과 무너져 내린 건물들은 그 일대를 생지옥과도 같은 화재 현장으로 바꾸어 놓았다.
차량에서 부상자들이 끊임없이 실려 내려왔고, 의료진은 그들을 서둘러 수술실로 옮겼다.
피와 드러난 뼈, 불에 타 검게 그을린 제복과 머리카락.
나는 눈앞에서 죽어 가는 특파팀 대원을 바라보았다.
그는 이미 깊은 혼수상태에 빠져 있었지만, 미간만큼은 여전히 잔뜩 찌푸리고 있었다.
그곳에서는 울거나 기도하는 소리가 들리지 않았다.
심지어 아프다고 소리치는 사람조차 없었다.
그런데 어째서인지 내 손에 쥔 수술칼은 오히려 더욱 무겁게 느껴졌다.
십수 시간이 흐른 뒤에야 나는 응급실에서 나올 수 있었다.
오랫동안 긴장을 놓지 못한 탓에 몸도 마음도 완전히 지쳐 있었다. 그저 어디 조용한 곳에 가서 담배 한 대를 피우며 쉬고 싶을 뿐이었다.
그런데 병원 문을 나서자마자 라이터를 꺼내기도 전에 입구에 서 있는 한 청년이 눈에 들어왔다.
연모시에는 한겨울에도 눈이 많이 내리지 않았지만, 그렇다고 밖에 오래 서 있기 좋은 날씨는 아니었다.
청년은 군사학교 제복을 입고 있었다. 머리카락에는 옅은 습기가 서려 있었는데, 꽤 오랫동안 이곳에 서 있었던 모양이었다.
그는 내 흰 가운에 묻은 핏자국을 발견하더니 곧장 다가왔다.
“선생님, 안에 있는 사람들은 어떻게 됐습니까?”
나는 그에게 고개를 끄덕여 보였다.
그러자 청년은 금세 안도의 숨을 내쉬었다. 하지만 미간에 잡힌 주름은 여전히 펴지지 않았다.
“자네도 오늘 공장 구조 작업에 참여했나?”
나는 그의 손에 감긴 붕대를 보았다. 새하얀 붕대 아래로 희미한 핏빛이 배어 나오고 있었다.
“네.”
“그나마 자네는 운이 좋았군. 가벼운 부상으로 끝났으니……”
“운이 좋았던 게 아닙니다.”
청년이 내 말을 끊었다.
“원래 저 안에 누워 있어야 했던 사람은 저였습니다.”
나는 순간 말문이 막혔다.
“특파팀 선배가 제 임무를 변경하라고 명령했습니다. 그래서 제 소대는 폭발 현장 외곽으로 배치됐고, 사실 저는……”
청년은 뒷말을 삼킨 채 고개를 돌렸다.
나는 굳게 다물린 그의 입술과 붕대 아래에서 주먹을 세게 쥐느라 도드라진 손마디를 바라보았다.
그제야 동창이 얼마나 터무니없는 소리를 했는지 알 것 같았다.
피도 눈물도 없는 인간 병기라니, 그런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이들은 그저 자신의 감정을 억누르도록 스스로를 다그치는 젊은이들일 뿐이었다.
“너무 자책하지 말게. 이런 사고는 애초에 예측하기 어려운 법이니까.”
“자책하는 건 아닙니다. 명령을 따르는 건 당연히 제가 해야 할 일이니까요.”
청년은 고개를 저었다.
“다만 제가 아직 충분히 강하지 못하다는 게 분할 뿐입니다.”
그는 잠시 말을 멈췄다가 다시 입을 열었다.
“그리고 이런 일이 다시는 일어나지 않았으면 합니다. 공장에서 일어난 일도, 수술실에 있는 사람들이 겪은 일도요.”
“허어.”
나는 그제야 조금 놀랐다.
“청년, 정말 그런 소원을 품고 있다면 선배들보다 훨씬 강해져야 할 텐데. 영웅이라도 되어야 가능할 일이야.”
청년은 병원 정문을 한번 바라보았을 뿐,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았다.
그가 떠나려 할 때, 나는 호기심을 참지 못하고 이름을 물었다.
청년은 나지막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백기라고 합니다.”
02
특파팀 의무부에 들어간 뒤로는 바쁜 업무에 치여 그 눈 내리던 밤의 대화도 금세 잊어버렸다.
이제 막 사회에 첫발을 내디딘 젊은이들은 누구나 원대한 포부를 품기 마련이지만, 실제로 그것을 끝까지 실천하는 사람은 극히 드물었으니까.
그러던 얼마 전, 특파팀 특별행동대의 신임 대장이 부임하면서 ‘백기’라는 이름이 다시 내 기억 속에 떠올랐다.
그는 정말 몰라보게 성장해 있었다.
의무부에 제출된 체력 검사 보고서에는 그가 하루하루 쌓아 온 기록이 고스란히 남아 있었다.
불과 몇 년 사이에 그는 특파팀에서 가장 날카로운 검으로 성장했다. 연모시로 복귀하자마자 특별행동대 대장으로 임명되었다는 사실은 그만큼 이 도시의 안전을 든든하게 지켜 줄 인물이 되었다는 뜻이었다.
——그런데 지금, 그 에이스가 직무 정지를 당했다.
“간에 열이 너무 많아. 며칠 동안 몸의 열을 내려 주는 차를 좀 마셔.”
“음…… 요즘 훈련량이 꽤 많을 텐데, 어떻게 살이 오히려 몇 근이나 찐 거지?”
“오른쪽 다리를 다쳤으면 무리하지 말아야지. 검사 장비에 찍힌 수치는 거짓말을 하지 않아.”
……
“다음, 당조!”
나는 문밖을 향해 소리쳤다.
특파팀에서는 대원들에게 더 적합한 훈련 계획을 세우기 위해 3개월마다 신체 능력을 검사하고 평가했다.
나는 당조의 건강검진 보고서를 넘겨 보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웬일이냐. 요즘은 몸 상태가 꽤 괜찮네?”
“요즘 사건이 하나 끝나면 또 하나 터지잖아요. 매일 훈련 아니면 임무인데 제가 언제 농땡이를 피우겠어요……”
당조는 투덜투덜 불평을 늘어놓기 시작했다.
“가끔은 직무 정지당해서 쉬고 있는 백 대장님이 부럽다니까요…… 아, 아니지. 그분도 쉬기는커녕 저보다 더 바쁘시니까. 역시 부러워할 일은 아니네요.”
“전체적으로 살펴보니까 라면 좀 적게 먹으라는 것 말고는 특별히 주의할 사항이 없어. 지금처럼만 유지해.”
나는 만년필을 꺼내 서명하려 했다. 그런데 갑자기 당조가 내 손을 붙잡았다.
“유 형, 부탁 하나만 해도 돼요……?”
당조는 평소답지 않게 쭈뼛거리며 코를 긁적였다.
“다음 주 목요일에 쓸 병가 확인서 하나만 써 주시면 안 될까요?”
“오늘이 겨우 화요일인데 벌써 다음 주 목요일 병가를 내겠다고? 좀 너무한 거 아니냐?”
나는 미간을 찌푸렸다.
“이유를 제대로 말하지 않으면 절대 못 써 줘.”
“크흠, 그게…… 음……”
당조는 한참이나 시선을 이리저리 피했다. 그러다 결국 마음을 굳힌 듯 사실대로 털어놓았다.
“사실 저희 부모님이 요즘 저한테 선을 보라고 성화셔서요. 상대도 정해 놓으셨는데 다음 주 목요일에 만나기로 했거든요.”
“그럼 그냥 만나러 가면 되지. 병가는 왜 필요한데?”
“유 형, 우리 팀 사람들 성격 아직도 모르세요? 고진이랑 루일…… 그 녀석들이 얼마나 남 놀리는 걸 좋아하는데요!”
당조는 억울하다는 듯 말을 이었다.
“백 대장님이야 워낙 위엄이 있으시니까 다들 함부로 장난치지 못하지만, 저한테는요?”
당조는 두 팔을 들어 크게 엑스 자를 그렸다.
“저는 그 녀석들한테 놀림당하기 싫다고요.”
“그렇게 놀림받기 싫으면 안 만나러 가면 되잖아?”
내가 다시 묻자 당조는 말을 더듬었다.
“어…….”
코끝에 가져다 댄 손가락을 몇 번이고 문지르던 그가 작은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상대가 해외 유학까지 다녀온 수재라는데, 저는 그저…… 아니, 사실은 어머니가 잘 대접하라고 하셔서요. 정말 제가 먼저 만나고 싶다고 한 건 아니고……”
“됐다. 내가 보기엔 너도 꽤 기대하고 있는 것 같은데?”
더는 둘러댈 수 없게 된 당조는 결국 나를 향해 멋쩍게 웃었다.
“예전에는 저도 이런 쪽에 별생각 없었거든요. 그런데 백 대장님이랑 유연 씨가 선남선녀처럼 늘 붙어 다니는 걸 보니까 말이죠. 부럽기도 하고 질투도 나고, 저도 한번 꿈이라도 꿔 보고 싶어졌다고요!”
당조는 간절한 표정을 지으며 말을 이었다.
“그러니까 형, 이 순수한 청년의 꿈이 산산조각 나는 걸 보고 싶지는 않으시죠?”
그는 잔뜩 기대에 찬 눈빛으로 한참 동안 나를 바라보았다.
나는 결국 한쪽 눈썹을 치켜올리고는 서명을 마친 건강검진 보고서를 그의 품에 던져 주었다.
“그럼 일단 꿈이나 더 꾸고 있어. 다음 주 일은 다음 주에 생각하자고.”
나는 서랍을 열어 다른 건강검진 보고서 한 부를 꺼내 건넸다.
“이건 너희 백 대장님 거야. 직무 정지된 뒤로 계속 나한테 맡겨져 있었거든. 네가 대신 좀 전해 줘.”
“문제없죠!”
당조는 흔쾌히 대답하더니 백기의 건강검진 보고서를 펼쳐 보았다.
그는 수치를 훑어보며 연신 감탄했다.
“역시 제가 존경하는 남자답네요. 이 수치 좀 보세요. 특파팀에서 압도적인 1위잖아요.”
당조가 사무실을 나서려 할 때, 나는 다시 그를 불러 세웠다.
“그러고 보니 백기는 언제 돌아온대?”
그 말을 들은 당조는 이를 드러내며 활짝 웃었다.
“돌아오실 때가 되면 반드시 돌아오실 거예요.”
03
——“어젯밤 유성우가 절정에 달했습니다. 이상적인 관측 조건에서 시간당 200개 이상의 유성이 관측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현재까지 과학계에서는 이 현상에 대한 합리적인 설명을 내놓지 못하고 있습니다.”
——“일부 시민들이 ‘신비로운 하늘의 빛이 방사선을 내뿜는다. 세계는 Evolver를 선택한다’라는 문구가 적힌 전단지를 받은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본 방송국에서는 취재를 위해 현장에 기자를 파견했으며……”
나는 휴대전화 화면을 빠르게 넘겼다.
각종 언론 매체에 올라온 기사들은 하나같이 어젯밤 유성우에 관한 이야기뿐이었다.
기사 아래에 달린 댓글에는 불안과 공포가 가득했다. 마치 내일 당장 세상이 멸망하기라도 할 것 같은 분위기였다.
보고 있자니 괜히 짜증만 났다.
나는 중앙병원에 있는 오랜 동창에게 전화를 걸어 상황을 확인하려던 참이었다. 그런데 갑자기 등 뒤에서 다급한 발걸음 소리가 들려왔다.
고개를 돌리자 뜻밖에도 오랫동안 보지 못했던 백기가 눈에 들어왔다.
그 뒤에는 당조가 따라오고 있었다. 두 사람은 각각 어깨에 한 명씩 사람을 둘러메고 있었다.
내가 무슨 일이냐고 묻기도 전에 백기가 빠른 말투로 입을 열었다.
“유 선생님, 이 두 사람을 당장 응급 처치해야 합니다!”
백기가 메고 온 사람은 이미 반쯤 의식을 잃은 상태였다. 몸을 계속해서 경련하며 입으로는 알아들을 수 없는 소리를 중얼거리고 있었다.
이 증상은 분명……
환자의 생명이 위태로운 상황에서 지체할 시간은 없었다.
나는 더 묻지 않고 즉시 의무부 동료들에게 연락해 두 사람을 응급실로 옮겼다.
다행히 발견이 빨랐던 덕분에 두 환자는 얼마 지나지 않아 위험한 고비를 넘겼다.
나는 동료들에게 몇 가지 주의 사항을 당부한 뒤 백기와 당조를 향해 잠시 따로 이야기하자는 눈짓을 보냈다.
“그런데 왜 환자들을 여기로 데려온 거지?”
“특파팀 입구에 쓰러져 있었습니다. 구급차를 부르는 것보다 직접 의무부로 데려오는 편이 빠르다고 판단했습니다.”
백기는 간결하게 대답했다.
내가 백기가 아직 사복 차림이라는 사실을 눈여겨보자 당조가 웃으며 말했다.
“앞으로 4시간 16분만 지나면 백 대장님도 직무 정지가 끝나고 복귀하시거든요. 원래는 시간 딱 맞춰서 돌아오실 생각이었는데, 이렇게 작은 사고가 생긴 거죠. 유 형, 윗선에는 보고하지 말아 주세요!”
“내가 그런 사람이냐?”
나는 그 녀석을 한번 노려본 뒤 다시 백기를 바라보았다.
“백 대장, 나한테 할 말이 더 있는 것 같은데?”
백기가 고개를 끄덕였다.
“아까 환자들을 치료하시는 걸 보니 상당히 익숙해 보이셨습니다. 혹시 이전에도 비슷한 증상의 환자를 보신 적이 있습니까?”
“……”
나는 등 뒤의 병실을 한번 돌아본 뒤 목소리를 낮췄다.
“예전 일이 아니야. 내 오랜 동창이 지금 시내 중앙병원에서 일하고 있는데, 그쪽에는 이미 같은 증상을 보이는 환자들이 꽤 많이 들어왔어.”
나는 말을 이었다.
“환자들 모두 예외 없이 특수한 파장의 전자파에 노출되어 뇌가 손상된 상태야. 자네들이 오기 직전에도 그 친구와 이야기를 나눴지만, 아직 이렇다 할 결론을 내리지 못했어.”
백기의 미간이 좁혀졌다.
“중앙병원에 이미 같은 증상을 보이는 환자가 많이 있다는 말씀이십니까?”
나는 곧바로 그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아차렸다.
“직접 가서 확인해 보고 싶은 거지? 그럼 내가 당장 친구에게 연락해 놓을게.”
“감사합니다.”
백기는 당조에게 시선을 돌렸다.
그러자 당조가 곧바로 손을 들어 보였다.
“걱정 말고 다녀오세요. 여기는 제가 알아서 처리할게요. 이따 뵙겠습니다.”
백기는 나를 향해 가볍게 고개를 숙였다.
“그럼 저는 먼저 가 보겠습니다. 앞으로 의무부의 도움이 더 필요할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그때도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나는 대수롭지 않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다 문득 다른 일이 떠올랐다.
“그런데 당조, 오늘 목요일 아니냐? 지금 임무 나가느라 바쁜데 휴가는 안 내도 되는 거야?”
“휴가요?”
백기가 되물었다.
“아뇨, 아뇨! 휴가라니요. 그런 건 애초에 없었습니다.”
당조는 더없이 진지한 표정으로 대답했다.
“저는 국민을 위해 봉사하는 공복입니다. 휴식 따위는 필요 없습니다.”
04
백기는 원래부터 결단력 있고 행동이 빠른 사람이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의무부에는 중앙병원에서 보내온 방대한 양의 뇌 손상 환자 상세 기록이 도착했다.
그리고 그 자료와 함께 또 하나의 소식이 전해졌다.
특별행동대 대장 백기가 직무 정지 기간을 마치고 정식으로 복귀했다는 소식이었다.
“당조, 연구실에는 무슨 일로 왔지?”
“아, 아무것도 아닙니다! 그냥 유 형한테 의학적인 문제를 좀 물어보러 왔습니다. 그럼 저는 이만 임무 수행하러 가겠습니다!”
복도에서 들려오던 대화가 끝나기가 무섭게 백기가 연구실 문 앞에 모습을 드러냈다.
그는 나에게 간단히 인사를 건넸다. 당조가 무슨 의학적인 문제를 상담했는지는 굳이 캐묻지 않고 곧바로 본론부터 꺼냈다.
“어떻습니까? 전자기파의 발생원은 찾으셨습니까?”
불과 네 시간 남짓 전까지만 해도 사복을 입고 있던 사람이 어느새 특파팀 제복으로 갈아입고 있었다.
익숙하면서도 어딘가 낯선 모습이었다.
아무래도 방금 작전 배치 회의를 마치고 온 모양이었다. 아직 업무의 긴장에서 벗어나지 못한 그는 온몸에서 날카롭게 벼린 창과도 같은 기세를 풍기고 있었다.
방사선이 눈에 보이고 손으로 만질 수 있는 적이었다면, 아마 지금쯤 백기에게 제압당해 바닥에 쓰러져 있었을 것이다.
그런 우스운 생각이 머릿속을 스쳤지만, 나는 곧바로 그의 질문에 대답했다.
“아직 찾지 못했어. 대신 다른 사실을 몇 가지 알아냈지.”
나는 검사 장비에서 끊임없이 변하는 숫자 하나를 가리켰다.
“여길 봐. 이 비정상적인 전자기파는 사람의 뇌세포에만 영향을 주는 것 같아. 다른 검사 수치에는 큰 변화가 없거든. 그런데 나를 더 놀라게 한 사실이 하나 있어……”
나는 환자 기록의 맨 위쪽을 가리켰다.
그곳에는 환자의 기본 정보를 기입하는 칸이 있었다.
나이와 성별뿐 아니라 Evol 능력 보유 여부를 표시하는 항목도 있었다.
그런데 모든 환자의 해당 항목에는 예외 없이 ‘없음’이라고 적혀 있었다.
“방사선의 영향을 받은 환자들은 전부 평범한 일반인이야.”
내가 조사 결과를 설명하는 동안 백기는 줄곧 침착한 표정을 유지하고 있었다.
하지만 마지막 말을 꺼낸 순간, 그의 표정에 미세한 균열이 생겼다.
백기는 고개를 들어 화면에 표시된 각종 수치를 한참 동안 바라보았다. 마치 그 모든 데이터를 머릿속에 새겨 넣으려는 듯했다.
그러고는 깊게 숨을 들이마신 뒤 입을 열었다.
“기밀연구과 쪽과는 이미 이야기를 마쳤습니다. 그쪽에서 새로운 사실을 발견하면 즉시 정보를 공유해 주기로 했습니다. 이쪽도 마찬가지로, 결론이 나오면 가장 먼저 저에게 알려 주십시오.”
나는 흔쾌히 고개를 끄덕였다.
“의무부 쪽은 걱정하지 않아도 돼. 오히려…….”
문득 조금 전 당조에게 들었던 이야기가 떠올랐다.
“아까 당조가 그러더군. 자네 그 아가씨가 로비에 들어왔을 때 감지 장치가 아무 반응도 보이지 않았다고.”
“당조 그 수다쟁이가 정말…….”
백기는 이를 살짝 악물었다.
내가 그의 다음 행동까지 알아차렸다는 사실에 조금 당황한 모양이었다.
하지만 얼굴에는 좀처럼 보기 힘든, 딱 그 나이 또래의 청년다운 표정이 떠올라 있었다.
그는 나를 향해 조금 쑥스러운 듯 웃어 보이더니 몸을 돌려 자신의 사무실을 향해 빠른 걸음으로 달려갔다.
젊음이란 참 좋은 것이다.
나는 웃으며 고개를 저은 뒤 다시 자리로 돌아가 업무를 이어 갔다.
05
“유 선생님, 밖에 눈이 오는 것 같습니다.”
나는 건성으로 대답하고는 눈앞의 감시 화면에서 시선을 떼지 않았다.
모니터마다 넓은 야외 격투장이 비치고 있었다. 특파팀 대원들은 그곳에 서서 끊임없이 새롭게 나타나는 가상의 상대를 기다렸다. 그리고 상대가 나타날 때마다 온 힘을 다해 싸웠다.
가능한 한 많은 Evol 에너지를 방출하기 위해서였다.
방사선의 발생원은 아직 찾아내지 못했지만, 다행히 그것을 제어할 방법은 발견했다.
Evol 에너지를 입자 형태로 공기 중에 퍼뜨리면 불안정한 방사선을 흡수할 수 있었다. 그렇게 하면 문제의 파장이 사람들에게 더 이상 영향을 미치지 못할 터였다.
마침 옆 건물의 기밀연구과에는 Evol 에너지를 입자 형태로 변환할 수 있는 장비가 있었다.
나는 그저 모니터 너머로 지켜보고 있을 뿐인데도 이마에는 긴장한 탓에 식은땀이 얇게 맺혀 있었다.
시간이 일 분, 일 초 흐를 때마다 에너지를 모두 소진한 대원들이 가상의 상대에게 쓰러졌다. 그러면 의무부 동료들이 그들을 밖으로 데리고 나왔다.
하지만 이 젊은이들은 체력을 어느 정도 회복하고 나면 하나같이 내게 같은 말을 했다.
“유 선생님, 충분히 쉬었습니다. 다시 한번 들어가고 싶습니다.”
나는 그들의 요청을 모두 받아들였다.
처음부터 끝까지 한 번도 경기장에서 내려오지 않은 사람은 단 한 명뿐이었다.
백기였다.
그는 특파팀의 에이스이자 가장 날카로운 검이었다. 그렇기에 누구보다 많은 승리를 거두고, 누구보다 많은 에너지를 방출해야 했다.
나는 백기가 비치는 감시 화면으로 시선을 돌렸다.
그곳에는 백기와 그의 가상 상대 외에도 경기장 아래에 서 있는 한 여자가 있었다.
그녀의 시선은 줄곧 백기의 움직임을 쫓고 있었다.
백기가 절묘한 공격을 성공시키면 환호성을 지르며 기뻐했고, 잠시 열세에 몰리면 두 주먹을 꼭 쥐었다.
하지만 그녀가 어떤 표정을 짓든, 처음부터 끝까지 변하지 않는 감정이 하나 있었다.
나는 그것을 분명히 알아볼 수 있었다.
백기를 향한 믿음이었다.
그가 무엇이든 해낼 수 있으며, 결국에는 반드시 승리하리라는 믿음.
에너지 충전 진행률이 천천히 올라갔다.
97%, 98%, 99%……
마침내 가상의 ‘백기’가 쓰러지고, 시뮬레이션 심판이 “You win”이라고 외치는 순간 감시실에서도 뜨거운 환호성이 터져 나왔다.
꼬박 여섯 시간이었다.
특파팀 대원들은 아무도 알지 못하는 곳에서 한 차례, 또 한 차례 전투를 거듭한 끝에 Evol 에너지 입자로 연모시 전체를 뒤덮는 데 성공했다.
“대원들의 체력 검사 보고서를 바탕으로 가장 빠른 회복 방법을 찾아 적용해야 하지, 다른 대원들의 몸 상태도 계속 살펴야 하지, Evol 에너지가 안정적으로 방출되도록 조절까지 해야 하지……”
동료는 안경을 벗고 얼굴을 세게 문질렀다.
“정말이지, 고난도 수술 한 번 하는 것보다 훨씬 힘드네.”
나는 웃으며 그의 어깨를 두드렸다.
“수술 한 번으로는 환자 한 사람을 구할 수 있지만, 이번에는 우리가 도시 전체의 사람들을 구한 거잖아.”
“그것도 그렇네.”
동료도 따라 웃었다.
“유 선생, 좀 쉬지 그래? 소파 하나 비워 줄게.”
“괜찮아. 난 잠깐 바람이나 쐬고 올게.”
나는 감시실을 나와 담배를 반쯤 피웠다.
그러다 문득 중앙병원에 있는 오랜 동창에게 연락해 그쪽 상황이 어떤지 물어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동창은 전화를 금세 받았다. 그도 방금 병실에서 나온 참인 듯했다.
“이야, 타이밍 한번 기막히네! 네 전화가 오자마자 이쪽 환자들 상태가 줄줄이 안정됐다고 뜨잖아.”
“그러니까 내가 네 행운의 부적이라니까.”
“웃기고 있네.”
동창은 크게 웃었다.
“내가 하늘에 떠 있는 Evol 빛 입자들을 못 봤을 줄 알아? 그중에서도 너희 특파팀 근처가 제일 많더만. 자, 이실직고해 봐. 대체 무슨 일을 벌인 거야?”
“군사 기밀이라 알려 줄 수 없습니다.”
나는 저도 모르게 입꼬리를 올리며 말을 이었다.
“다만 내가 그때 특파팀 의무부를 선택하길 정말 잘했다는 생각이 들어. 덕분에 이런 광경까지 직접 볼 수 있게 됐으니까.”
“그야 그렇지! 나는 중앙병원에서 환자들을 돌보고, 너는 특파팀에서 그 말썽꾸러기 녀석들을 돌보고. 우리 둘 다 앞날이 밝구만!”
동창은 신이 난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이번 일 다 끝나면 꼭 시간 내서 밥이나 한번 먹자!”
“좋지. 복미관으로 갈까, 아니면 강호요릿집에……”
말을 하던 나는 저도 모르게 목소리를 낮췄다.
“왜 그래?”
전화기 너머에서 동창이 의아해하며 물었다.
호숫가로 이어지는 긴 계단 끝에 백기가 있었다.
그는 그녀의 곁에 몸을 기댄 채 피곤한 듯 눈을 감고 있었다.
하늘에서는 눈송이와 빛 입자들이 뒤섞여 자유롭게 흩날리고 있었다.
나는 두 사람만의 고요한 시간을 방해하고 싶지 않아 조용히 방향을 틀었다.
“아무것도 아니야.”
나는 나지막이 말했다.
“그냥 영웅을 봤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