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답은 결국 스스로 찾아 나서야만 얻을 수 있다.
03-01
"고 대장님, 이번에 작전팀에 새로 들어온 신입 대원들의 명단입니다."
"기초 훈련은 이미 시작됐으니 이후 일정은 대장님께서 맡아 주시면 됩니다."
"마침 백 대장한테 보고하러 가던 참이야. 이리 줘. 그쪽에도 알려둘게."
고진은 대원이 건넨 서류를 정리하다가 저도 모르게 미간을 꾹 눌렀다. 예년에는 신입 대원들의 입대 훈련이 시작될 무렵이면 팀 내 업무가 그리 많지 않아 어떻게든 일정을 조율할 수 있었다. 하지만 최근 각종 사건이 잇따르면서 특파팀도 인력 부족에 시달리고 있었다. 어느 부서나 마찬가지였다.
이런 상황에서 신입 교육에까지 시간을 내야 한다니, 차라리 직접 작전에 투입되는 편이 덜 피곤할 지경이었다.
그렇다고 해야 할 일을 미룰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어쨌든 빨리 끝내는 게 최선이었다.
고진은 머릿속을 정리하며 걸음을 옮겼다. 어느새 지휘관의 집무실 앞에 도착해 있었다.
똑똑——
"들어와."
고진은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섰다. 그러다 단서판을 빼곡하게 뒤덮은 실타래 같은 선들에 시선이 붙들렸다.
백기가 단서판의 절반 이상을 가리고 서 있어, 드문드문 보이는 현장 사진만으로 무슨 사건인지 짐작해야 했다.
Evol의 흔적이 남은 현장 사진에 학교까지…… 고등학생 자살 사건을 정리하고 있는 건가?
고진은 거의 무의식적으로 손에 든 서류 중 관련 자료를 꺼내 들었다. 그리고 오랜 습관처럼 자연스럽게 백기에게 내밀었다.
"그 사건은 우리 쪽에서도 계속 단서를 추적하고 있어."
"하지만 Evol 파장 세 개가 모두 추적하기 까다로워서, 지금은 구역을 하나씩 돌며 조사하는 수밖에 없어."
"알아. 다만 아직 마음에 걸리는 부분이 있어서."
백기는 몸을 돌려 고진이 건넨 서류를 모두 받아 들고 책상에 비스듬히 기댔다.
집무실은 순식간에 조용해졌다. 백기가 서류를 넘기는 소리만이 적막 속에 울렸다.
잠깐 이어진 침묵에 고진은 어쩐지 불편해졌다.
예전과 무언가 달라졌다는 느낌이 들었지만, 정작 무엇이 달라졌는지는 설명할 수 없었다.
어쩌면 이렇게 둘이서 사적으로 이야기를 나눈 지 너무 오래된 탓일지도 몰랐다. 오랫동안 만나지 못한 친구들처럼, 서로 말하지 않아도 느껴지는 묘한 서먹함이 있었다.
"요즘 말썽을 일으키는 사람들이 많아?"
백기의 갑작스러운 질문에 고진은 퍼뜩 정신을 차리고 고개를 끄덕였다.
"확실히 예전보다 Evolver와 일반인 사이의 충돌이 많이 늘었어."
"그래도 각계에서 문제를 조율하고 해결하려고 노력하고 있으니까, 아직은 통제 가능한 수준이야."
"알았어. 앞으로 정기적으로 보고해."
"그래."
고진은 백기의 눈빛에 서린 진지함을 알아볼 수 있었다.
그 역시 지금 연모시 어딘가에서 모종의 음모가 은밀히 무르익고 있으리라는 것을 직감하고 있었다. 특파팀 대원으로서 쌓아 온 경험이 그렇게 말해 주고 있었다.
고진이 다음에는 어떤 내용을 보고할지 생각하고 있을 때, 백기가 신입 대원 명단을 집어 들었다.
"최근 새로 들어온 대원이 꽤 많더라. 어때?"
"어떻긴. 예전이랑 별 차이 없지."
백기의 말에 영향을 받은 것인지 고진의 말투도 한결 편안해졌다.
그는 백기가 들고 있는 서류를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서류에는 신입 대원들의 이력 중 몇몇 사항이 따로 표시되어 있었다.
"극히 일부를 제외하면 대부분 실전 경험이 부족해."
"나도 어떤 임무를 맡겨야 할지 고민이야. 지금은 상황이 상황이니까."
고진은 골치 아프다는 듯 머리를 긁적였다.
"그러고 보니 신입 대원 육성도 지휘관인 네 일이잖아."
"설마 나한테 전부 떠넘길 생각은 아니겠지?"
"실전 자체가 가장 좋은 훈련이잖아."
"네가 감당 못 하겠어?"
"그럼 마지막에는 꼭 얼굴이라도 비춰."
백기가 짧게 응, 하고 대답하자 고진은 어쩔 수 없다는 듯 어깨를 으쓱했다.
지금 백기에게 이런 일까지 세세하게 신경 쓸 여유가 없다는 건 고진도 알고 있었다.
특연과와 시청을 비롯해 연모시의 시민들까지, 모두가 백기에게 시선을 집중하고 있었다.
그 시선에는 기대와 희망이 담겨 있었지만, 동시에 헤아릴 수 없는 압박도 뒤따랐다.
"더 할 말 없지? 그럼 나 잠깐 나갔다 올게."
"알겠습니다, 백 지휘관님."
고진은 무심코 대답했다가 자신도 모르게 어색함을 느꼈다. 하마터면 혀를 깨물 뻔했다.
뭐, 어쩔 수 없지.
어쩌면 앞으로는 자신도 이 호칭에 익숙해져야 할지 몰랐다.
03-02
"고 대장님! 목표가 Evol로 엄청난 수의 그림자를 만들어 냈습니다! 지금은 건물 안으로 도망친 상태입니다!"
"3층에서 누군가 지나가는 걸 본 것 같습니다. 추격할까요?"
"젠장, 여긴 막다른 길이잖아! 함정에 빠졌어!"
신입 대원들의 첫 임무는 언제 봐도 눈 뜨고 보기 힘들었다.
"상대는 능력의 한계 때문에 건물 밖으로 도망칠 수 없어. 그렇게 당황할 필요 없으니까 다시 집결해서 대응 방안을 세워."
"알겠습니다!"
무전기 너머로 다시 침착한 대답이 들려오자 고진은 저도 모르게 한숨을 내쉬었다.
이번 작전의 목표는 그림자를 만들어 내는 능력을 지닌 평범한 Evolver였다. 원래는 성실하게 직장 생활을 하던 사람이었지만, 최근 Evolver와 일반인 사이에서 벌어진 폭력 사건에 여러 차례 가담하며 갈등을 부추기고 있었다.
능력 자체에 제약이 있었기에 사실 체포하기 어려운 상대는 아니었다. 하지만 작전 계획은 어디까지나 계획일 뿐이었다. 실행하는 사람에게 경험이 부족하면 곳곳에서 허점이 드러나기 마련이었다.
"고 대장님! 용의자 제압에 성공했습니다!"
"젠장! 이거 놔! 당장 풀어 달라고!"
"난 맨날 시비나 거는 일반인들한테 조금 골탕을 먹인 것뿐이야! 그게 뭐라고 날 체포하는 건데!"
"고 대장님, 이제 어떻게 할까요?"
이어폰 너머로 분노에 찬 용의자의 고함이 들려왔다. 고진은 차갑게 목소리를 가라앉혔다.
"수갑 채우고 철수해."
복귀하는 차량 안은 출발할 때와 달리 조용했다.
들뜬 목소리로 이야기를 나누던 대원들은 온데간데없고, 모두 풀이 죽은 얼굴이었다.
"용의자에 대한 정보 부족, 사전 조사와 작전 준비 미흡, 현장에서의 소통과 협조 부족……."
"이것 말고도 이번 임무에서 반성할 점이 더 있을까?"
고진은 고개를 들어 침울한 차 안을 둘러보았다.
그러자 문득 자신도 과거에 이렇게 질책을 받았던 기억이 떠올랐다.
생각해 보면 누구나 신입 시절을 거쳐 왔다. 임무에서 실패를 맛보는 고통 역시 정의를 지키는 과정에서 치러야 할 대가 중 하나였다. 대원들이 이 사실을 깨달아야만 앞으로 특파팀에 제대로 적응하고, 이 도시를 지키는 일원이 될 수 있을 터였다.
고진은 말없이 들고 있던 서류를 어깨에 걸치고는 조금 부드럽게 말투를 바꿨다.
"왜, 이 정도도 못 견디겠어?"
차 안의 대원들이 무의식적으로 서로 눈치를 주고받았다. 그러다 젊은 대원 한 명이 손을 들었다.
"그런 건 아닙니다, 고 대장님."
"사실 최근 몇 차례 임무를 수행하면서 저희 모두 경험이 부족하다는 걸 깨달았습니다……."
"그런데 특파팀이 저희가 상상했던 곳과는 조금 다른 것 같습니다."
그 말에 고진은 문득 호기심이 생겼다.
"너희는 특파팀에서 어떤 일을 할 거라고 생각했는데?"
"당연히 매일 도시 곳곳을 누비면서 시민들을 보호하고 범죄자를 체포하는 거죠!"
"연모시의 영웅이 되어 정의를 지키는 겁니다!"
"물론 저희도 백 지휘관님 같은 사람이 되기란 정말 어렵다는 걸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백기 지휘관님이야말로 우리 연모시에서 정의의 상징이잖아요!"
신이 나서 대답하는 대원들의 모습에 고진은 잠시 멍해졌다.
아직 앳된 얼굴에는 미래에 대한 기대와 백기를 향한 끝없는 동경이 가득했다.
마치 백기의 뒤를 따라 그가 걸어온 길을 그대로 밟기만 하면, 정의라는 것도 당연히 손에 넣을 수 있으리라 믿는 듯했다.
하지만 고진은 알고 있었다.
그들 자신의 정의는 결국 스스로 찾아 나서야 한다는 것을.
"그렇게 생각한다면 앞으로 훈련량을 두 배로 늘리겠어. 임무도 너희가 독자적으로 수행하는 방향으로 진행할 거고."
"앞으로 겪을 어려움은 오늘보다 훨씬 많을 거야. 알겠어?"
"알겠습니다!"
대원들이 일제히 대답하는 소리가 고진의 귓가에 울렸다. 그는 가볍게 손뼉을 쳤다.
"아, 그리고 한 가지 더."
"너희 모두 입대 훈련은 통과했지만, 원칙적으로 아직 한 단계가 남아 있어."
"조만간 너희끼리 임무를 수행하도록 할 거야. 그게 최종 평가가 될 테니."
"그때까지 준비 잘해 둬."
특파팀으로 복귀한 고진은 평소처럼 오늘의 작전 기록을 작성하기 시작했다.
그런데 기록을 제출하려던 순간, 자신의 이름 바로 위에 백기의 이름이 있는 것을 발견했다.
어째서인지 문득 궁금해졌다.
요즘 백기는 좀처럼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는데, 대체 무슨 사건을 조사하고 있는 걸까?
고진은 습관적으로 화면을 위로 올려 이전 기록들을 살펴보았다.
그러다 저도 모르게 미간을 찌푸렸다.
백기의 작전 기록이…… 너무 많은 것 아닌가?
03-03
【백기의 작전 기록】
작전팀 책임자인 고진에게는 모든 작전 기록을 열람할 권한이 있었다.
특파팀에서는 작전 기록을 작성할 때 상세한 보고까지 요구하지는 않았지만, 매번 임무를 수행하기 전과 후에 반드시 기록을 남기도록 규정하고 있었다. 필요할 때 담당자와 작전 경위를 확인하고, 모든 기록을 통합하여 관리하기 위해서였다.
물론 구체적인 작전 내용까지 상세하게 기록하는 대원들도 적지 않았다. 이렇게 하면 다른 팀과 협력할 때도 정보 공유에 차질이 생기는 것을 방지할 수 있었다.
일반 대원의 작전 기록은 보통 한 달에 50건을 넘지 않았다.
그런데 고진이 백기의 이름으로 검색해 보니, 무려 100건에 가까운 작전 기록이 나타났다. 사실상 하루도 쉬지 않고 일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고진은 백기의 집무실에서 보았던, 단서들로 빼곡하게 채워진 게시판을 떠올렸다.
백기는 요즘 대체 무엇을 조사하고 있는 걸까?
고진은 기록을 하나씩 자세히 살펴보기 시작했다. 그러다 실제로 몇 가지 이상한 점을 발견했다.
1. 【작전 기록표】
작전 수행자: 백기
장소: 시청
작전 내용: 특파팀과 시청 산하 각 부서의 협력 회의
임무 안내: 관계 기관들이 참여하는 공식 회의. 관련 자료를 준비하여 현황을 설명하고 의견을 교환할 것. 향후 여러 분야에서의 협력 방안을 논의할 예정.
대원 보고: 시청 각 부서와 협의를 마쳤으며, 이후 구체적인 사항은 각 부서에서 별도로 조율할 예정.
2. 【작전 기록표】
작전 수행자: 백기
장소: 시내 상업 지구
작전 내용: 일반인을 습격한 Evolver 범죄자 체포
임무 안내: 상업 지구에서 돌발 습격 사건 발생. 용의자는 성인 남성으로, 감정이 크게 격앙된 상태이므로 즉시 체포할 것.
대원 보고: 충동적인 범행으로 확인됨. 범인은 오랫동안 타인에게 악의를 품어 왔으며, Evolver와 일반인을 가리지 않고 무차별적으로 공격함. 현재 구금 완료.
3. 【작전 기록표】
작전 수행자: 백기
장소: 시 외곽 순환도로
작전 내용: 시 외곽 야간 순찰
임무 안내: 최근 야간에 시 외곽 지역에서 Evolver들이 악의적인 목적으로 집결한다는 시민 신고가 접수됨. 이에 따라 해당 구역을 새로운 순찰 경로에 추가함.
대원 보고: 교통사고 3건, 강력 사건 1건, 실종 사건 4건 처리. Evolver는 발견되지 않았으며, 관련 사건은 담당 시청 부서에 인계함.
4. 【작전 기록표】
작전 수행자: 백기
장소: 연모시 시내버스 종점 및 주변 노선
작전 내용: 고등학생 자살 사건 관련 탐문 조사
임무 안내: 고등학생 자살 사건은 아직 종결되지 않았으며, 관련 단서를 확보한 대원은 누구든 정보를 제공할 수 있음.
대원 보고: 자오양이 실종되기 전후의 동선을 확인하기 위해 관련 버스 노선을 따라 탐문 조사를 진행함. 새로운 목격자나 자살 사건과 관련된 단서는 발견되지 않았으며, 추가 조사가 필요함.
5. 【작전 기록표】
작전 수행자: 백기
장소: 구도심 주거 단지
작전 내용: 사건 기록에 남은 Evol 흔적 재검증
임무 안내: 특수연구과에서 최근 정체가 확인되지 않은 Evol 파장 자료 여러 건을 제공함. 해당 파장들을 대조하여 관련 Evolver를 특정할 것.
대원 보고: 관련 Evol 파장의 흔적은 매우 희미하지만, 일부 장소에서 여전히 확인되고 있음. 현재로서는 특정 인물을 지목하기 어려움.
03-04
그 후에도 백기가 하루에 수행하는 임무의 수는 계속 늘어만 갔다.
시내 구도심에서부터 외곽의 폐공장에 이르기까지, 고진은 백기가 잠잘 시간조차 남겨 두지 않고 온갖 임무에 매달리고 있으리라고 확신했다.
고진은 알고 있었다. 백기가 혼자 사건을 조사할 때면 늘 이렇게 한다는 것을.
그는 백기가 관여한 사건들을 하나씩 거슬러 올라가며 단서를 추적했다. 수없이 뻗어 나간 실들이 저마다 다른 방향으로 이어지다가, 마지막에는 어렴풋이 하나의 답을 가리키는 것 같았다.
과거와 현재의 사건들을 연결하는 한 명의 Evolver.
하지만 고진은 알고 있었다. 백기라면 결국 그 답을 찾아낼 것이다. 그리고 자신에게도 당장 해결해야 할 일이 있었다.
신입 대원들의 최종 평가일은 금세 다가왔다.
이번에도 임무는 Evolver를 체포하는 것이었다. 다만 지난번과 달리 용의자가 한 명이 아니라 Evol 능력을 사용하는 폭력 조직이라는 점이 달랐다.
난이도는 이전보다 훨씬 높아졌지만, 고진은 오히려 지난번처럼 긴장하지 않았다.
"A팀은 저와 함께 용의자들을 분산시키겠습니다. 다른 팀은 용의자들이 흩어지는 대로 각자 체포 작전을 진행해 주세요."
"고 대장님께서는 건물 밖에서 상황을 감시하시면서 수시로 연락해 주십시오."
"알았다."
이어폰으로 들려오는 대원들의 대화에 고진은 별다른 말을 보태지 않았다.
심지어 임무를 시작하기 전에도 이번 작전이 그들의 '최종 평가'라는 사실을 굳이 언급하지 않았다.
그저 백기에게 메시지를 하나 보냈을 뿐이었다. 전에 신입 대원들의 훈련에 한 번쯤 참여하겠다고 약속했으니까.
"고 대장님, 전원 배치 완료했습니다. 작전을 시작해도 되겠습니까?"
"작전 개시를 허가한다."
고진은 조금도 망설이지 않고 명령을 내렸다.
막 시선을 감시 화면으로 돌리려던 순간, 옆에서 한 줄기 바람이 일었다.
고개를 돌려 보니 어느새 백기가 곁에 서서 화면을 바라보고 있었다.
"지금 상황은?"
"이제 막 작전이 시작됐어. 5분 뒤쯤 용의자들과 접촉할 예정이야."
별다른 설명 없이 고진은 여분의 이어폰을 백기에게 건넸다.
백기의 새하얀 소매 끝에는 잔주름이 잡혀 있었고, 미간에는 자세히 살펴보지 않으면 알아차리기 어려울 만큼 희미한 피로가 배어 있었다.
"용의자들을 분리해서 제압하려는 거야? 네가 짠 작전이야?"
"이번 작전은 처음부터 끝까지 신입들이 직접 계획했어. 난 기껏해야 뒤에서 지원하는 역할이지."
"그동안 실전 훈련을 시킨 보람이 있나 보네."
"벌써 그렇게 판단해?"
고진은 백기가 유난히 신입 대원들을 믿고 있는 것 같아 저도 모르게 고개를 들어 그를 바라보았다.
"지시도 명확하고 움직임도 정확해. 그 정도면 충분하지."
"이번 임무는 충분히 해낼 수 있을 거라고 믿어."
백기의 목소리는 담담했다.
조금도 흥분하지 않은 채, 그저 지휘관으로서 평범한 작전 하나를 평가하는 듯한 말투였다.
하지만 고진은 알고 있었다.
백기에게서 이 정도 평가를 받는다는 건 이미 대단한 칭찬이라는 것을.
고진은 백기 곁에 서서 이어폰 너머로 들려오는 대원들의 교신과 작전 지시를 들었다.
간결하고 효율적이었다. 용의자들은 하나둘씩 분리되어 체포됐고, 대부분 제대로 저항조차 하지 못했다.
그 모습을 보고 있자니 문득 예전에 백기와 함께 임무를 수행하던 시절이 떠올랐다.
그때도 꼭 이런 식이었다.
다만 백기가 특파팀 지휘관이 된 뒤로는 많은 것이 달라지고 있었다.
그는 여전히 최전선에서 활동했지만, 이제는 '지휘관'만이 수행해야 하는 임무도 점점 많아졌다.
백기의 말 한마디, 행동 하나하나가 특파팀 전체의 입장을 대변하기도 했다.
백기는 앞으로 나아가고 있었다.
다른 사람들 역시 그의 발걸음을 따라가고 있었다.
자신도 마찬가지였다.
고진은 지난 며칠 동안 머릿속에서 정리해 온 추측들을 다시 한번 되짚어 본 뒤 백기에게 물었다.
"고등학생 자살 사건을 계속 조사하고 있는 거야?"
"응."
"혼자서 조사하려고?"
"도와주는 사람도 있어. 게다가 그 사건은 특파팀과 직접적인 관련도 크지 않고."
"네가 맡은 일에나 지장 없도록 해."
백기는 고진을 향해 귓가의 이어폰을 가리켰다. 그 행동만으로도 자신의 뜻을 충분히 전한 듯했다.
어째서인지 고진의 머릿속에 백기의 작전 기록들이 하나둘 떠올랐다.
처음에는 그저 백기 특유의 고집이 또 한 번 발휘된 것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이제 보니, 그것은 백기가 어떻게든 모든 일을 감당하며 제자리를 지키려는 방식이기도 했다.
백기는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자신이 이제 특파팀의 지휘관이라는 사실을.
남들은 상상하기조차 어려운 압박을 짊어지고 있으며, 예전처럼 사건 하나에 무작정 뛰어들어 며칠씩 자취를 감출 수도 없다는 사실을.
한때 고진이 알던 백기의 모습은 세월과 풍파 속에 조금씩 가려진 듯했다. 이제는 고진조차 그 속을 온전히 들여다볼 수 없는 모습이 되어 가고 있었다.
어쩌면 달라진 것은 백기만이 아닐지도 몰랐다.
자신 역시 변했을 것이다.
고진은 고개를 들어 백기를 바라보았다.
분명 익숙한 얼굴인데도, 지금은 예전보다 훨씬 멀리 있는 사람처럼 느껴졌다.
백기는 언제나 다른 사람들보다 앞서 나아가며, 누구에게도 알려지지 않은 압박까지 홀로 짊어지려는 것 같았다.
고진은 생각했다. 예전 같았으면 분명 점잖은 척하지 말라고, 무슨 일이 있으면 말해서 다 같이 해결하자고 했을 것이다.
하지만 마음 한구석에 스친 낯선 감각은 두 사람 사이의 지위 차이를 한층 크게 느끼게 했다.
그에게는 지휘관의 결정을 함부로 의심하거나 따질 권한이 없었다.
결국 고진은 조금 의례적인 말투로 대답할 수밖에 없었다.
마치 아무 말 없이 백기의 뒷모습을 따라 걷는 사람처럼.
"무슨 일 있으면 팀에도 꼭 이야기해."
말끝에는 스스로도 알아차리기 어려울 만큼 희미한 거리감이 배어 있었다.
그 목소리는 마침 이어폰에서 들려오는 대원의 보고와 겹쳐졌다.
"용의자 전원 체포에 성공했습니다! 다음 지시를 부탁드립니다!"
무전기 너머로 붙잡힌 범인이 발버둥 치는 소리가 들려왔다.
백기와 짧게 대화를 나누는 동안에도 고진은 계속해서 새로 들어오는 정보를 확인하고, 그에 맞춰 대원들의 움직임을 조정하고 있었다.
"용의자들을 데리고 내려올 때는 일반 시민들에게 주의해. 저쪽에서 혼란을 일으킬 기회를 주지 마."
"차량에 태우는 대로 곧장 본부로 복귀해."
그동안 백기는 처음부터 끝까지 한마디도 보태지 않았다.
그저 입가에 서서히 미소가 떠올랐을 뿐이었다.
"어때? 신입들이 임무 수행하는 모습도 다 봤는데, 지휘관으로서 총평 한마디 해 줘야 하지 않겠어?"
"그럴 필요 없어."
"이미 합격이야."
백기는 이어폰의 마이크를 입가로 가져갔다.
그의 목소리에는 어느새 특파팀 지휘관 특유의 위엄이 실려 있었다.
"모두 정식으로 특파팀에 합류한 걸 환영한다."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백기는 이어폰을 고진에게 돌려주었다.
"난 아직 조사할 게 남아서. 먼저 갈게."
백기의 모습은 곧 사람들 사이로 사라졌다.
고진은 그 뒷모습을 바라보다가 얼마 전 신입 대원들과 나누었던 대화를 떠올렸다.
앞으로 특파팀이 어떤 방향으로 나아가게 될지, 고진 역시 확신할 수 없었다.
아니, 어쩌면 지금껏 그 문제를 진지하게 생각해 본 적조차 없었는지도 몰랐다.
하지만 지금 백기가 떠나가는 뒷모습을 보고 있자니, 마음속에도 하나의 답이 떠올랐다.
그들은 앞으로도 저 뒷모습을 따라 나아갈 것이다.
모두가 바라 마지않는 그곳에 도달할 때까지.
03-05
실무 경험 (工作经验)
Q. 고 대장님, 저희도 배울 수 있도록 특파팀 대원으로서 쌓아 오신 경험을 좀 들려주실 수 있을까요?
다른 건 몰라도 꼭 기억해 뒀으면 하는 게 하나 있어. 바로 융통성 없이 굴지 말라는 거야.
Evol은 사람마다 능력이 제각각이잖아. 아무리 사전에 철저히 조사해도 막상 현장에 나가면 예상하지 못한 변수가 생기기 마련이지.
그러니까 자신이 알고 있는 지식을 상황에 맞게 활용하고, 유연하게 대처할 줄 알아야 해.
물론 임무를 완수하는 건 중요해. 때로는 희생을 피할 수 없는 상황도 있겠지.
하지만 우리가 바라는 건 모든 대원이 무사히 돌아오는 거야.
미래의 변화 (未来变化)
Q. 그렇다면 앞으로 백 대장님의 지휘 아래 특파팀은 어떻게 달라질 거라고 생각하시나요?
한 가지는 확실해. 앞으로 우리가 어떤 방향으로 나아가든, 우리의 입장과 신념은 변하지 않을 거라는 거야.
백기는 그런 일이 일어나도록 내버려 두지 않을 테고, 특파팀의 일원인 우리도 마찬가지야.
앞으로 닥쳐올 여러 도전에 대비하려면 외부 기관과의 협력을 더욱 확대하게 될 수도 있어.
특연과와 비슷한 부서를 더 많이 설립해서 각자의 능력과 전문성을 충분히 발휘할 수 있도록 할 수도 있겠지.
나는 특파팀의 미래가 특정한 한 사람의 것이 아니라, 연모시 전체의 것이라고 믿어.
개인적인 견해 (个人看法)
Q. 그렇다면 부하이자 친구의 입장에서, 백 대장님이 지휘관이 된 것에 대해 특별히 어떤 생각을 갖고 계신가요?
나한테는 그 두 입장이 다르지 않아.
그 녀석은 겉으로 보면 자기 방식대로만 행동하고, 모든 일을 혼자 해결하려는 사람처럼 보이지.
하지만 사실은 다른 사람들의 의견이나 생각도 전부 귀담아들어. 다만 그걸 굳이 말로 드러내지 않을 뿐이야.
무엇보다 지휘관으로서 자신이 어떤 책임을 져야 하는지 정확히 알고 있어.
그건 뛰어난 실력을 갖추는 것보다 훨씬 중요한 일이야.
정의 (正义)
Q. 그렇다면 고 대장님이 생각하시기에 백 대장님이 추구하는 정의는 어떤 모습인가요?
그 문제에 관해서는 사람마다 생각이 다를 거야.
애초에 정의라는 건 말로 무엇을 주장하느냐보다 실제로 어떻게 행동하느냐를 봐야 하는 거니까.
그런 의미에서 백기의 정의는 누구보다 앞장서서 실천하는 정의라고 생각해.
의견 충돌 (遭遇分歧)
Q. 백 대장님과 오랫동안 함께 일하셨잖아요. 만약 두 분의 의견이 충돌한다면 어떻게 하실 건가요?
그럼 의견 차이를 해결하면 되지.
임무를 수행할 때는 누구나 자신만의 판단을 내리기 마련이야. 나든 백기든 잘못 판단할 때가 있을 수 있고.
하지만 그럴 때일수록 한 가지를 명심해야 해.
자기 생각만 옳다고 고집해서는 안 된다는 거야.
아무리 의견이 다르더라도, 우리에게는 결국 단 하나의 목표밖에 없어.
임무를 완수하는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