迎春之约 데이트 번역
迎春日(영춘일): 봄맞이날
1장
유연
선배, 우리 다음엔 저쪽 가서 “꽃꽃 쿠키” 사는 거 어때요? 되게 유명하대요~
나는 백기의 손을 잡고 동산진의 거리를 천천히 걸었다. 맑게 갠 하늘에는 한가롭게 떠 있는 구름 몇 조각이 보였고, 따뜻한 햇살이 겨울의 찬 기운을 밀어냈다.
수첩에 적힌 일정의 대부분은 이미 끝났고, 이제 남은 건 영춘일이 오기만을 기다리는 것뿐이었다.
지도를 따라 이동하려던 찰나, 백기가 내 손끝을 살짝 당기더니 멀지 않은 곳의 샛길을 가리켰다.
백기
요즘 마을에 관광객이 많아서 샛길로 가는 게 좋겠어. 눈산도 잠깐 볼 수 있고.
유연
여기 온 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벌써 이것저것 다 꿰고 있는 느낌이네요.
백기
너랑 같이 많이 걷다 보니까, 자연스럽게 외워졌어.
우리는 방향을 틀어 샛길로 들어섰고, 마주 오던 등산객 몇 명과 그대로 부딪칠 뻔했다. 그들은 온몸에 눈이 잔뜩 내려앉아 있었다.
등산객
우리는 운도 없네. 산에 들어오자마자 폭설 예보를 받았잖아.
등산객
눈이 내린 뒤에 다시 들어가려면 아마 며칠은 기다려야 할 거야.
폭설? 배낭여행객들의 얘기를 듣자 나는 무심코 맑은 하늘을 올려다봤다.
그런데 곧, 콧등에서부터 번져오는 촉촉함이 느껴졌다.
몽글몽글한 눈송이들이 마치 하얀 깃털을 비벼 만든 것처럼, 바람을 타고 끊임없이 우리 어깨 위로 내려앉았다.
백기는 내 손을 잡은 채 길가 가게의 처마 아래로 나를 이끌었다. 하늘에서 내리는 눈도 점점 굵어졌다.
나는 옷에 붙은 눈을 털었지만, 시선은 길 건너 작은 노점에 붙잡혔다.
길 사이로 흩날리는 눈송이가 사진을 가려서 선명하진 않았지만, 틈새로 “봄맞이 운세뽑기”이라는 글자가 보였다.
“봄의 운세가 궁금하다면, 한 번 시험해보세요!” —— 동산진에서 가장 영험하다는 점괘.
지금 눈이 내리면 영춘일 일정에도 영향이 있으려나, 한 번 뽑아볼까? 하고 고민하던 그때,
백기
뽑아볼래?
따뜻한 목소리가 귓가에 내려앉으며, 정확히 내 마음을 찔렀다.
유연
응!
그는 나를 데리고 눈발을 가로질러 노점으로 향했다. 귀밑머리에 맺힌 물방울이 햇빛을 받아 반짝였다.
백기는 살짝 눈썹을 들어 올린 채 나를 바라보며, 내가 고르기만을 기다렸다.
나는 직감대로 봉투 하나를 집었다.
하얀 종이봉투 위에는 옅은 하늘색 꽃이 장식되어 있었는데, 히아신스 무늬였다.
나는 봉투 안의 점괘 글을 꺼내 백기의 손바닥 위에 펼쳐놓았다.
백기
당신에겐 봄이란, 무엇을 의미하나요?
그가 입꼬리를 살짝 올린 채 읽어 내려갔고, 눈썹도 미묘하게 올라갔다.
안에 적힌 게 예언이 아니라 우리에게 질문을 던지는 내용이라니. 나는 저도 모르게 백기를 바라봤다.
상대의 눈에서도 나와 같은 의문이 비치는 걸 확인하자, 우리는 결국 푸흐, 하고 웃음을 터뜨렸다.
유연
갑자기 어떻게 대답해야 할지 모르겠어요.
백기
나도 그래.
백기
그래도 봄이 오면, 답도 자연스럽게 나타날 거야.
유연
맞아요. 그럼 이 질문은 잠시 미뤄둬요.
나는 그 종이를 수첩 사이에 끼워 넣었다. 우리 추억의 일부가 되도록.
아마 이 질문은, 봄이 정말로 찾아왔을 때 답해도 늦지 않을 것이다.
2장
영춘일 전날이 되자, 나와 백기는 아침 일찍 거리로 나가 필요한 물건들을 준비했다.
전날 갑자기 쏟아졌던 큰눈은 지금의 포근한 햇살엔 영향을 주지 못했고, 그저 작은 마을 지붕 위에 두툼한 눈만 남겨두었을 뿐이었다.
미리 준비해 둔 “풍광 수첩” 덕분에 우리는 인파를 잘 피해 다니며, 정오가 되기 전 대부분의 물건을 사둘 수 있었다.
유연
사람이 이렇게 많을 줄은 몰랐어요. 다행히 미리 와서 다행이지, 아니었으면 묵을 곳도 없었을 것 같아요.
나는 감탄하듯 한숨을 내쉬고 고개를 숙여 목록을 확인했다.
유연
내일 쓸 간식이랑 꽃구경 용품은 거의 다 준비했어요.
이제 적당한 식탁보랑 음료만 사면 돼요.
백기
음료라면 내가 영춘일에만 파는 꽃향기 과일주스가 있는 곳을 알아.
축하하기엔 딱 좋아.
유연
그래요? 그런 건 왜 전에 말 안 해줬어요?
백기
원래는 가는 길에 슬쩍 사서, 영춘일 서프라이즈로 주려고 했거든.
근데 사람이 이렇게 많을 줄 몰랐지. 품절될까 봐 계획을 앞당길 수밖에 없겠네.
유연
좋아요! 어디 있는지 알려줘요. 우리 동선 안에 있는지 확인해볼게요.
백기
내 기억이 맞다면 여기일거야.
백기의 손끝이 수첩에 그려진 지도를 따라 움직이다가, 거의 가장자리쯤에서 멈췄다.
백기
좀 거리가 있네.
유연
괜찮아요~ 그럼 우리가 둘로 나눠서 움직이면 돼요. 그렇게 유명한 거면 사려는 사람도 많을 거고.
합류 지점은……
백기
아니면 저기서 만나자.
그가 멀지 않은 곳의 큰 나무를 가리켰다. 나뭇가지 끝마다 금빛 낙엽이 가득해서, 주변의 앙상한 풍경 속에서도 유독 눈에 띄었다.
백기
금방 다녀올게.
유연
길 좀 비켜주세요!
나는 방금 산 식탁보를 높이 들어 올린 채, 사람들 사이를 힘겹게 비집고 빠져나왔다.
주위를 둘러보니, 어느새 백기와 약속했던 장소로 돌아와 있었다.
금빛 나무 아래의 벤치는 여전히 비어 있었고, 아까보다 낙엽 몇 장이 더 내려앉아 쉬고 있었다.
내가 벤치 쪽으로 걸어가려던 순간, 코끝에 갑자기 달콤하게 그을린 향이 스쳤다.
향이 흘러오는 쪽을 보니, 역시나 조금 떨어진 곳에 군고구마 손수레가 보였다.
“군고구마요—! 엄청 달~고 맛있는 군고구마요!”
아저씨의 외침에 지나가던 사람들이 모여들었고, 금세 교복을 입은 학생들로 북적였다.
방과 후 막 나온 듯한 중학생들이 가판 앞에 옹기종기 모여, 저마다 마음에 드는 고구마를 고르고 있었다.
나도 앞에 서서 윤기 도는 갈색 껍질의 고구마들을 바라보다가, 참지 못하고 손을 들었다.
유연
사장님, 고구마 두 개 주세요!
백기
사장님, 저도 고구마 두 개요. 좀 큰 걸로요!
익숙한 목소리가 바람을 타고 들려오더니, 백기의 그림자가 그대로 내 뒤에 내려앉았다.
차가웠던 바람은 어느새 셀 수 없이 많은 따뜻함을 품고, 나를 감싸고 있었다.
“고구마 여깄습니다~”
백기가 비닐봉지를 받아 들었고, 다른 한 손은 자연스럽게 내 손을 붙잡았다.
백기
우리, 생각보다 빨리 만났네.
금빛 낙엽이 사방으로 흩날렸고, 우리는 나란히 기대어 벤치에 앉았다.
크고 작은 봉투들이 벤치를 가득 채우고 있었는데, 마치 우리가 봄을 얼마나 기다려왔는지 보여주는 것 같았다.
유연
이렇게 많이 샀으니 영춘일이 지나도 다 못 쓰겠는걸요.
지금 정리 좀 해둘까요?
백기
좋아. 근데 그전에 이거부터 뜨끈할 때 처리하자.
그가 내 손에 들린 고구마를 가리켰다. 내 표정을 보고 이미 다 알아챈 듯했다.
살짝 그을린 껍질을 손끝으로 조심스레 벗기자, 진한 고구마 단내가 확 퍼졌다.
한 입 베어 물자, 폭신하고 촉촉한 속살이 입안에서 사르르 녹으며 달콤한 향이 번졌다.
유연
겨울에 이거 한 입 먹으면 정말 행복해져요.
백기
나도 그래. 아저씨 장사가 잘될 만하지.
나도 모르게 시선이 다시 노점으로 향했다. 그곳엔 여전히 학생들이 잔뜩 모여 있었다.
유연
여긴 학교랑 가깝고, 싸고 맛있으니까 학생들이 엄청 좋아하겠어요.
백기
그점은 우리 때도 똑같았어.
고등학교 때도, 교문 앞에 군고구마 파는 할아버지가 있었거든.
학생이 사면 일부러 더 큰 걸로 주셨어.
“먹고 키 커라”면서.
그래서 겨울방학 하교 시간때면 줄이 엄청 길었어. 결국엔 학교 경비 아저씨가 질서 잡으러 나올 정도로.
짧은 말들이 봄바람처럼 불어오며, 과거의 기억을 서서히 데려왔다.
유연
나도 기억 나요~
그러다 하나 알아낸 사실이 있었어요. 그 할아버지는 매번 봄 오기 직전에야 나오셨다는 걸요.
겨울은 너무 추워서 일어나기 힘들다고 하셨어요.
그래서 우린 장난으로 그 할아버지를 “봄 할아버지”라고 불렀어요. 고구마 먹으면 봄이 온다고요.
그 잠깐의 추억이 옛 시간을 들춰 올리며, 봄과의 거리도 조금 더 가까워진 듯했다.
나는 백기를 바라보며, 문득 마음이 고등학교 시절로 되돌아간 것 같았다.
그때도 이렇게 백기 옆에 앉아 있었더라면, 나는 분명……
알 수 없는 충동이 올라와, 나는 몸을 살짝 기울여 그의 고구마를 몰래 한 입 베어 물었다.
유연
결론은… 선배 손에 들린 고구마가 더 달다, 이거에요.
나는 코끝을 찡긋하며 웃었다. 꼭 잡히기 싫어 도망치려는 도둑처럼.
백기
그럼 나도 맛을 봐야겠는데.
내가 반응할 틈도 거의 없이, 백기는 이미 내 앞까지 다가와 있었다.
나는 반사적으로 손에 든 고구마를 내밀었지만—
입가에 부드러운 감촉이 닿았고, 은은한 고구마 단내가 스쳤다.
따뜻한 숨결이 그대로 나를 감싸며, 차가운 기운을 밀어냈다.
백기
나한테는 이게 더 맛있네.
3장
봄이 가까워질수록, 나와 백기의 “영춘 활동”도 마침내 끝을 향해 가고 있었다.
행인
봄이 왔다~! 영춘일 잘 보내~!
사방으로 흩날리는 꽃잎들이 바람을 타고 떨어져, 지나가는 사람들 하나하나에게 가볍게 내려앉았다.
공기엔 여전히 찬 기운이 남아 있었지만, 그렇다고 영춘일을 향한 사람들의 열기까지 막을 순 없었다.
우리의 머리카락 끝에도 알록달록한 꽃잎들이 소복이 쌓여, 끝나가던 겨울을 봄빛으로 살짝 덧칠해 주는 듯했다.
나는 수첩을 펼쳐 오늘 아직 끝내지 못한 일들을 하나씩 점검했다.
유연
어디 보자… “꽃열차”는 아까 이미 탔고, 기념사진도 잔뜩 찍었어요.
엽서랑 꽃꽃과자도 꽤 많이 샀고, 이건 가져가서 선물로 줘도 되겠다.
백기
응. 협곡 안에 있는 “얼음 깨진 시냇물(破冰溪流)”은 일찍 가서 다행이었어.
안 그랬으면 하루 종일 줄 섰을지도 몰라.
수첩 계획대로면 거의 다 끝냈네.
우리는 수첩에 적힌 항목들을 하나씩 세어 내려가다가, 자연스럽게 마지막 칸에 시선이 멈췄다.
그곳엔 내가 직접 그려 넣은 히아신스 그림 한 송이가 있었다.
유연
마지막은 영춘일 전통에 따라 히아신스 꽃잎으로 마무리~
그리고 화단 근처에 자리 잡고 피크닉하면 끝!
백기는 내 손을 잡고 가까운 꽃가게로 향했지만, 기대와 달리 가게 안은 유난히 한산했다.
점장
정말 죄송합니다. 눈이 와서 히아신스는 다 팔려버렸어요.
점장의 사과를 듣는 순간, 내 마음도 덩달아 조여 왔다.
점장
두 분도 히아신스 사러 오신 거라면 정말 죄송하지만, 지금 가게엔 남아 있지 않아요.
며칠 전 내린 큰눈이 마을 주변 꽃철에도 영향을 줬고, 길까지 막혀버렸거든요.
도로가 뚫리길 바랐는데 이제 보니 시간 안에 어렵겠네요.
아쉬움이 스치듯 지나간 그때, 내 곁에서 백기의 목소리가 들렸다.
백기
그럼 등산객들이 쓰는 꽃구경 루트 지도는 아직 남아있나요?
백기는 꽃가게 문 옆에 붙어 있는 포스터를 가리켰다. 거기엔 주변 개화 지점이 표시된 지도가 선명하게 인쇄돼 있었다.
점장
물론이죠. 요즘은 등산객이 없어서, 오히려 많이 남아 있어요.
백기는 점장에게서 지도를 받아 들고 고개를 숙여 찬찬히 살폈다.
백기
히아신스를 보러 갈 방법이 있어.
그의 눈썹 끝이 살짝 올라가며, 자신만만한 기색이 스쳤다. 나도 저도 모르게 가까이 다가갔다.
유연
설마 숨겨진 길이라도 찾은 거예요?
백기
확실히 우리만 갈 수 있는 길이지.
그의 손끝이 망설임 없이 마을에서부터 지도를 가로질러, 산의 반대편으로 곧게 선을 그었다.
백기
날아서 가자.
4장
거센 바람이 하늘의 솜뭉치 같은 구름을 마구 찢어놓았고, 그 바람은 원래의 찬 기운도 조금은 몰아내 버렸다.
익숙한 마을은 시야 속에서 점점 작아지더니 마침내 겹겹의 흰 눈 속으로 스며들었다.
나는 축하용 물건들을 품에 안은 작은 가방에 꾹꾹 넣고 몸을 백기의 등에 기대었다.
내가 내쉬는 숨은 하얀 입김이 되어 뭉게뭉게 피어났고 구름층에 맺힌 물방울이 휴대폰 화면 위를 계속 흘러내렸다.
유연
저쪽으로 조금 더 가야 할것 같죠?
나는 애써 화면을 뚫어져라 보며 지도 방향을 가늠했다.
지도에는 옅은 보랏빛 작은 꽃 표시가 산골짜기 숲 한가운데 찍혀 있었지만, 지금 우리 눈앞에 있는 건 자욱한 구름과 새하얀 적설뿐이었다.
백기
아래쪽은 눈이 너무 깊어. 기준이 될 만한 걸 찾아야겠어. 지도 좀 볼게.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휴대폰을 백기 앞쪽으로 내밀었다. 살랑거리는 바람이 그의 머리카락을 흔들어, 깊고 단단한 눈빛이 드러났다.
백기
지도는 오래됐지만, 전체 지형은 크게 안 변했어.
표시된 곳은 저쪽일 거야.
백기는 멀리, 얼음과 눈으로 덮인 산등성이를 가리켰다. 솟아오른 봉우리는 아직 겨울빛 속에서 잠든 듯했다.
백기
좀 춥지 않아?
유연
괜찮아요. 어차피 계속 선배 곁에 기대 있잖아요.
그는 내 두 손을 꼭 쥐었다. 손바닥을 통해 전해지는 온기가 이상하리만치 안심이 됐다.
백기
그럼 이제 조금 더 빨리 날 거야. 꽉 잡아.
그가 몸을 낮추자, 사방의 바람이 갑자기 모여들며 우리를 끌어당겼고, 우리는 그대로 앞을 향해 날아갔다.
방금까지만 해도 멀게 느껴졌던 산봉우리가 순식간에 가까워졌다.
백기의 유려한 비행 궤적을 따라, 내 시선도 아래를 끊임없이 훑었다.
매서운 바람 소리가 귀 옆을 긁고 지나가며, 마지막 방해물이 되려는 듯했다.
나는 손을 모아 눈앞에 대고, 하늘에서 반사되어 쏟아지는 눈부신 흰빛을 막았다.
그러다 끝없이 하얀 눈 골짜기 한가운데, 기적처럼 파란빛 한 줄기가 번뜩였다.
유연
선배, 저기!
내가 아래를 가리키자, 백기도 곧장 속도를 올렸다.
아까의 냉기는 멀리 뒤로 내던져진 듯했고, 고도가 낮아질수록 손에 닿을 듯한 따스함이 맞아왔다.
그리고 익숙한 향기가.
백기
도착했어.
부드러운 바람이 내 몸을 가볍게 들어 올리더니, 조심스럽게 땅 위에 내려놓았다.
발바닥으로 전해지는 촉감은 눈이 아닌, 풀밭의 느낌이었다.
눈을 뜨자, 백기의 미소와 함께 넓게 펼쳐진 푸른 보랏빛이 한꺼번에 시야로 밀려들었다.
유연
…진짜, 우리가 찾았어요.
지금 이 계곡은 마치 건널 수 없는 장벽 같았다. 눈 위로는 푸른색으로 이뤄진 바다가 펼쳐져 있었고, 주변 산등성이는 온통 눈으로 뒤덮였는데 우리 발아래엔 봄이 활짝 피어 있었다.
그건 마치 계절에 새겨진 눈금처럼, 원래 도착해야 할 시간을 앞질러 조용히 숨어 있다가, 발견해 주길 기다려온 것 같았다.
내가 멍하니 있는 사이, 내 손가락이 조용히 당겨졌다.
백기
이쪽으로 와.
우리는 눈앞의 귀한 봄을 망가뜨리고 싶지 않아, 히아신스 꽃밭 사이를 조심조심 걸었다.
그리고 숲 쪽에 가까운 곳에서 평평한 돌 몇 개와 나무 그루터기를 발견했다.
우리는 배낭에서 준비해 온 것들을 꺼냈다. 푸른빛과 흰빛이 섞인 담요에는 옅은 하늘색 작은 꽃이 수놓아져 있었다.
백기는 전에 사둔 과일주스를 내 손에 쥐여 주고는, 가볍게 잔을 맞댔다.
백기
이 풍경이라면 축하하기 딱 좋네.
유연
그럼 축하해요. 우리가 함께 맞이한 또 하나의 봄을~
잔이 공중에서 살짝 부딪치며 맑은 소리를 냈다. 그 소리는 봄이 들려오는 종소리 같았다.
흔들리는 히아신스가 바람에 출렁이며 우리 주변에 푸른 물결을 일으켰다.
고개를 들자, 히아신스 한 송이가 마치 약속이라도 한 듯 내 머리카락 끝에 내려앉았다.
꽃잎은 햇살을 받아 푸른 보석처럼 반짝였고, 봄의 숨결을 가득 품고 있었다.
백기
영춘일 풍습대로라면, 누구나 꽃잎의 축복을 받아야 해.
지금 보니… 바람이 대신 해준 모양이네.
유연
그럼 다음 바람을 빨리 기다려야겠어요. 지금은 나 혼자만 머리 위로 꽃잎이 떨어지잖아요.
내가 몸을 일으키기도 전에, 한 줄기 미풍이 조용히 일었다.
옅은 하늘색 꽃잎이 내 손끝에서 바람을 타고 올라가더니, 백기의 머리칼 위로 사뿐히 내려앉았다.
그 순간, 그의 머리 위에 봄의 첫 번째 색이 그려졌다.
백기
방금 그 바람은 나랑 상관없어.
백기
하얀 눈이 덮인 언덕도 있고, 아직 얼어붙은 시냇물도 있어.
그 바람은 우리가 며칠 동안 걸었던 거리로도 가서, 지나가는 사람들의 어깨 위에 내려앉겠지.
우리가 묵던 작은 집으로도 가서, 선반 위에 하나 더 남겨 놓을 수도 있고.
봄바람이 닿는 곳이라면 어디든 갈 수 있어.
포근한 햇살이 계속 눈 위로 쏟아졌고, 미세한 물방울이 촘촘히 녹아내렸다.
히아신스들은 바람을 타고 산 너머로 가고 싶어 했지만, 번번이 산의 적설 위로 떨어지고 말았다.
푸른 점들이 반짝이는 모습은, 대낮의 별처럼 보였다.
산 너머에는 히아신스를 기다리는 사람이 그렇게 많을 텐데 라는 생각이 들자 나는 괜히 아쉬워졌다.
유연
마을 사람들도 이런 풍경을 볼 수 있으면 좋을 텐데.
백기
그럼 우리가 봄을 보내주자.
나는 고개를 들어, 봄처럼 다정한 그의 눈빛을 마주했다.
그가 손바닥을 내밀자, 나도 뜻을 알아차리고 조용히 내 손을 포개 올렸다.
백기
우리가 봄바람을 불어주는 거야.
가벼운 바람이 우리의 손바닥 사이에서 피어났다. 바람은 히아신스 꽃잎을 들어 올려 산 너머로 실어 보냈다.
그곳에는 봄의 소식과, 우리가 건네는 축복이 함께 닿을 것이다.
나는 바람 속 꽃잎들을 바라보며, 마음 한구석에 작은 기대를 키웠다.
유연
며칠만 더 지나면 마을 꽃도 전부 피겠죠.
떠나기 전까지, 우린 마을의 봄을 한동안 실컷 즐길 수 있겠어요.
백기
나한텐 봄은 이미 오래전에 왔어.
그는 나를 품에 끌어안았다. 뜨거운 온기가 남아 있던 겨울의 기운을 마지막 한 점까지 지워냈다.
백기
내가 너를 만난 그날부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