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장
아직은 새벽 공기가 서늘한 탓인지, 아니면 너무 이른 시간이라서 그런지, 휴가철이라 사람들이 게을러진 탓인지 소규모 농구장에는 나와 백기만 있었다. 햇빛은 약간 변색된 금속볼 프레임의 가장자리에 비쳐서 눈이 부셨다.
나는 눈을 가늘게 뜨고 농구공 골대의 흰 선 모서리를 조준하고 손목에 힘을 줘서 농구공이 공중에서 포물선을 그을 수 있게 했다.
농구공은 링에 맞고 골대에 정확히 들어갔다
"또 들어갔어요!"
"잘했어."
골대 밑에 있던 백기가 공을 다시 주워 내 손에 건네주었다.
손바닥에 잡히는 거친 촉감이 더욱 익숙해져서 마치 관계가 점차 뜨거워지는 새로운 친구처럼 느껴졌다.
독감의 유행으로 인해 나는 모든 면에서 저항력을 향상시키기 위해 운동 빈도를 높일 생각이었다.
지난해 사건을 마치고 돌아온 백기도 더 이상 중요한 일이 없었기에 나는 그에게 농구를 함께 하자고 제안했다.
그의 지도 덕분에 공에 대한 두려움이 줄어들었고, 최근에는 농구가 더욱 재밌어져 우리의 아침 운동 종목으로 자리매김했다.
"저의 득점률이 꾸준히 향상되고 있나요?"
"확실히 발전이 빠르네."
"다음에 동네 농구 시합 때 여자 선수를 추가할 수 있는지 물어볼게."
"백 코치님 너무 오버하시는 거 아니에요?"
"정말이야, 네 실력은 이미 팀 내 다른 사람들을 능가했어. 훈련에 대한 열정도 다른 사람들보다 훨씬 높잖아."
"풋…… 다른 건 자신할 순 없어도, 훈련에 관한 열정만큼은 확실히 자신 있어요."
"물론 다른사람들에게 코치님은 동네 최고의 농구 선수겠지만……"
나는 몇 번 드리블을 하고 다시 점프에서 슛을 했고, 공은 내가 원하는 대로 순순히 바구니에 떨어졌다.
"하지만 저에게는 농구 천재 남자 친구의 개인 레슨이 있죠!"
"물론 열정도 남다르고요!"
뛰어다니는 게 힘든 건 사실이지만 그와 함께라면 뭘 해도 재밌을 것 같았다.
더 말할 것도 없이 이렇게 그와 함께 플레이를 하다보니 마치 그의 영역에 발을 들여놓은 것 같은 기분이었다.
공은 그의 손을 따라 위아래로 튕기며 경쾌한 소리와 함께 그의 마음을 살며시 내비치는 듯 했다.
"그럼 널 팀에 합류시킬 방법을 찾아야겠네."
"이건 여자 친구와 함께하는 경기니 더더욱 질 수 없지."
백기는 한 손으론 천천히 공을 잡고 다른 한손으로는 내 손목을 잡고 나를 경기장 으로 이끌었다.
"휴식 시간 거의 다 됐어."
"동네 팀 훈련시킬 때도 이렇게 자주 쉬는 건 아니죠?"
"그 사람들은 그 사람들이고 너는 너야. 능력에 맞게 가르치는 거지."
그는 떳떳하게 편파적인 말을 하면서 내 손에 물 한 잔을 쥐어주고는 내가 감기라도 걸릴까봐 내가 앉아있는 동안에 외투를 걸쳐주었다.
나는 이런 특별한 대우를 즐겁게 누리며 수건으로 그의 이마의 땀을 닦아주는 것 역시 잊지 않았다.
"사실 최근에는 선배를 따라서 연습하는 것 말고도 직접 레슨 영상도 많이 찾아봤어요."
"나중에 제가 독학한 결과물도 보여드릴까요?"
나는 백기에게 윙크를 보내며 입꼬리를 올렸다.
백기가 나의 '탐구 정신'에 놀랄 거라고 생각했지만 그는 무언가를 짐짓 생각하는 듯 눈살을 살짝 찌푸렸다.
"요 며칠 네가 본 그 영상들 말이야?"
2장
"동영상에 무슨 문제라도 있어요?"
"그 풋워크 기술은 확실히 효과는 좋지만 겉보기에만 그럴 뿐 실용적이지가 않아."
"상대방이 드리블을 하면 쉽게 뚫릴 수 있어."
"왜요? 멋진 페이크 동작으로 보이는데……?"
"이따가 해볼까?"
"지금 해보는 게 낫겠다!"
내가 공을 잡은 걸 본 백기는 여유롭게 내 앞에 서서 평소처럼 허리를 살짝 숙이고 무릎을 구부리는 자세조차 취하지 않았다. 나는 굴복하지 않고 동영상 속의 드리블을 따라가며 앞으로 나아갔고 그를 스쳐지나갈 때 멋진 페이크 동작을 취했다.
공이 땅에 떨어지기도 전에 그는 손을 뻗어 자신의 옆으로 당기자 마치 내가 직접 공을 넘겨준 것처럼 빈 손으로 돌아서게 되었다.
"빈 틈이 너무 많아."
그는 어깨를 으쓱 하며 농구공을 제 품에 안았다.
며칠 동안 열심히 연습한 동작을 이렇게 쉽게 그가 막아내자 나도 모르게 뺨이 부풀어올랐다.
그에게 좀더 가까워진 줄 알았지만 나는 여전히 초보자라는 걸 깨달았다.
"그런가요……"
나는 공을 받고 작은 한숨을 쉬었다.
백기는 순간 눈에 띄게 얼어붙었다가 다시 입을 열었는데 이때 말이 평소보다 좀 빨라졌다.
"이건……동영상 문제야."
"누가 이 동작을 수행하건 저지당할 수 있어."
"네 동작은 영상보다 더 예쁘고 깔끔해. 경로도 잘 선택했고."
"불필요한 움직임만 없애면 나한테 저지당하지 않을 거야."
"정말요?"
"정말이야, 다시 해봐. 뒤돌아보지 말고 방금 한 것처럼 하되 손을 좀더 빨리 바꿔봐."
나는 그의 지시를 따라 다시 동작을 시도했는데, 이번에는 순조롭게 공을 몰고 갈 수가 있었다.
하지만 내가 그에게 가까이 다가가는 순간, 아무리 봐도 일부러 나를 놓아주는 것처럼 손을 뻣뻣하게 들어보였다.
"선배, 혹시……"
내가 묻기도 전에 멀리서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이게 누구야——여어 백기 형!
"샤오바이, 우리는 봐주지도 않고 훈련시키면서 여자친구는 맞춰주는 거야?"
"염장지르는 사람들이 많으니까 발렌타인데이엔 밖에 나가면 안된다고 했잖아요……"
동네 농구팀 몇 명이 멀리서 우리 쪽으로 다가왔고, 그들은 다른 사람들보다 더 소란을 피웠다.
옆에 있던 그가 가볍게 웃더니 눈썹을 치켜들고 목소리를 높이며 화답했다.
"그녀는 원래도 뛰어나서 나를 능가할 수 있어요."
"방금 그녀가 한 동작은 당신들이 막을 수 없을텐데 못믿겠으면 2대2로 한판 붙어봐요."
실제론 백기와 같이 경기할 수는 없겠지만 내 슛의 정확도는 모두를 깜짝 놀라게 했다.
작은 서운함과 더 많은 달콤함이 뒤섞인 새콤달콤한 맛에 내 입꼬리는 집으로 돌아올 때까지 기쁨의 미소로 잔뜩 휘어져있었다.
"내가 네 실력이 좋다고 했는데, 그 사람들은 믿지 않았네."
그는 자부심에 가득차 말끝이 올라갔다.
"칭찬으로 들을게요. 이제야 선배가 저를 얼마나 봐줬는지 알겠어요."
"하지만 언젠가, 선배가 저를 봐주지 않고도 공평정대하게 이겨보일거예요!"
백기는 미소를 지으며 내 머리를 쓰다듬고는 우리가 사용하던 수건을 빨래 바구니에 넣었다.
"다른 분야에서도 공평정대할 수 있을까?"
"농구는 내가 너보다 일찍 시작해서 단기간에 공정할 수는 없을 거야."
나는 그의 말이 사실임을 알았기에 그가 베란다에서 말린 목욕 수건을 가지러 오는 동안 욕실 거울 앞에서 끙끙거리며 하나로 묶은 머리를 풀 수밖에 없었다.
샤워기를 틀고 물이 따뜻해지기를 기다리는 동안 갑자기 그와 '공평정대하게 경기'할 수 있는 기회를 생각해냈다.
오늘 우리가 기념일을 위해 예약한 식당 근처에 오락실이 있었다.
장기간 연습이 필요한 구기 운동은 그를 따라잡을 수 없겠지만 게임은 어떨까?
여기까지 생각하고 나는 욕실 밖으로 머리를 내밀었다.
"선배—— 우리 오늘 데이트에 다른 걸 추가해보면 어떨까요?"
3장
"여름에 작은 섬에 마련된 오락실도 충분히 호화스럽다고 생각했는데 아직 개선될 여지가 많았네요……"
비록 내가 따로 추가한 계획이라고는 하지만 가게 안의 진열은 여전히 나를 놀라게 했다.
다양한 종류의 메인 기계가 차례대로 진열되어 있었고, 전원이 켜진 메인 보드에서는 오색찬란한 빛이 반짝이고 있었다.
게임은 물론이고 키보드, 마우스, 조이스틱 등 손님들이 선택할 수 있도록 캐비닛 전체가 가득 채워져 있었다.
아마도 우리가 처음 온 걸 눈치챈 점원이 친절하게도 연인들을 위한 게임을 몇 가지 추천해주었다.
"뭐할까?"
백기는 쿠션이 들어가 있는 편안한 방석 의자를 두 개 가져와 나와 함께 텔레비전 앞에 앉았다.
나는 일단 포근해보이고 사랑스러워 보이는 파티용 게임을 골라 그의 눈앞에 흔들었다.
"이거 해봤어요?"
"아니."
"이 게임을 택한다면 네가 원하는 '공명정대한 경기'를 할 수 있을 거야."
"그럼 흔쾌히 결정된거죠? 진 사람은 벌칙으로 쪽지 붙이는 거예요!"
게임 시작과 함께 경쾌한 음악이 몸을 감쌌다.
우리는 선택한 작은 동물을 조종하여 다른 플레이어를 '타도'하면서 각 레벨의 퀘스트를 완료해야 했다.
게임은 단순해 보였지만 인형 같은 작은 동물들은 온몸이 푹신푹신해서 움직이기가 쉽지 않았다.
약간의 '격투' 요소가 있다는 걸 고려할 때, 나는 선배가 나보다 더 빨리 컨트롤에 익숙해질 것이라고 예상했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WIN"이라는 큰 글자가 토끼 머리 위로 나타났다.
"네가 이겼어."
"'코스'를 바꾼 후에 더 나아진 것 같네."
조이스틱을 내려놓은 그는 좌절하기는 커녕 게임에서 진 사람답지 않게 눈에 미소를 머금고 있었다.
나는 뭔가 이상하다는 느낌이 들었다.
"선배……방금 또 저에게 양보한 거예요?"
"나도 그러고 싶은데."
"이런 종류의 게임을 해본 적이 없어서 조작법도 잘 몰라."
이 말을 듣자 내 머릿속 한 구석에서 방금 했던 플레이를 다시 떠올려보라는 신호가 삐 하고 올렸다.
"방금 전 퀘스트의 목표는 '눈깔 사탕'을 빼앗는 거였죠? 선배는 계속 작은 사탕만 골라서 옮겼고요."
"큰 사탕은 더 많은 점수를 얻지만 무게가 커서 이동 속도가 느리기 때문에 먼저 작은 것을 옮기는 게 나았어."
"하지만 제가 큰 사탕을 옮길 때도 선배가 저를 말리는 건 못봤어요."
"난 항상 네 뒤를 따라다녔잖아?"
"그냥 따라다니기만 하고, 제가 큰 사탕을 베이스캠프로 옮기는 걸 보고도 계속 방해하지 않았잖아요?"
백기는 부자연스럽게 시선을 피하고 방석에 앉은 자세를 바꿨다.
"흠……조작법은 네가 더 능숙해서 계속 속도를 낼 기회를 찾고 있었는데 따라갈 수가 없었어."
"선배 분명 제가 길을 잃고 빙빙 돌고 있을 때 절 따라잡아서 제 토끼를 한 대 쳤잖아요."
"제가 반격하려고 하니까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다시 사탕이 놓여져 있는 장소 중앙으로 다시 달려갔잖아요?"
"그건……네가 임기응변 능력이 좋아서 그런 거야."
설명하면 할수록 선배가 게임 속에서 나에게 기회를 줬다는 생각이 확실해졌다.
공평정대해야 하는 게임이 이러면 내기의 재미도 사라져버려!
"저한테 양보하지 말고! 저랑 경쟁해요!"
나는 선반에서 쪽지를 가져와서 백기의 몸에 눌렀다.
"계속 이렇게 하면 벌을 더 줄거예요!"
그는 두 손으로 나의 허리를 꽉 잡고 쪽지를 더 붙여지게끔 얼굴을 옆으로 돌렸다.
"무슨 벌인데?
"만약 너에게 뽀뽀를 많이 하면 적당히 '감형'해줄 수 있어?"
그의 눈매가 모두 구부러진 것을 볼 때 그는 분명히 '물리적 처벌'을 수행할 준비가 되었다는 것으로 판단하고 나는 실눈을 뜨고 머리를 빠르게 회전시켰다.
"제가……고진 씨에게 격투를 배우고, 항졔에게 사격을 배우고, 루일에게 컴퓨터를 가르쳐 달라고 부탁하고, 샤워궈에게 가전제품 수리를 가르쳐 달라고 부탁할 거에요."
"새롭게 입문할 분야를 알아보고 저를 도와줄 사람을 찾아볼 거예요!"
예상밖의 대답에 멍해지다 순식간에 미소가 얼어붙은 그의 느슨해진 눈썹이 가운데로 뭉쳐져 주름이 잡혔다.
"그건 안되겠는데."
"네가 말한 건 내가 다 할 수 있는데 걔네들이 왜 필요해?"
"게다가 넌 내 여자친구니까 이런 건 나한테 직접 말해야지."
그는 '내我的' 라는 단어를 세게 짓이겨 말했고, 내 손목을 세게 잡아당기며 나를 품에 안았다.
나는 그가 진지해진 것을 보고 기뻐서 손을 들어 그의 코끝을 가리키며 크게 미소지었다.
"그래서 벌칙이란 거겠죠?"
"이제 저랑 경쟁할 마음이 생겼어요?"
내가 의기양양하게 목소리를 높이자 백기는 나를 놓지 않고 손에 힘을 주면서 방향을 바꾸어 텔레비전 앞에 앉았다.
어깨에 무개가 더 실리면서 가장 익숙한 온기가 뺨을 스쳤다. 가느다란 갈색 머리카락이 주인처럼 내 목덜미를 살살 간지럽혔다.
그는 두 손을 내 허리에 두르고 나를 꼭 껴안았고, 다시 조이스틱을 잡고 조작법을 익히기 시작했다.
"수락한다는 거죠?"
가벼운 소리가 바람의 흐름과 함께 그의 콧속을 빠져나오면서 귓불을 자연스럽게 쓸어넘기더니, 또다른 짜릿함을 불러일으켰다.
"대가가 그런 거라면 정말이지 질 수가 없지."
4장
방금 전 내가 토끼를 조종해서 모퉁이를 돌고 있을 때 회색빛이 도는 파란색이 화면에 다가왔다.
"아! 여기서 왜 나와요?"
"뒷쪽 통로가 복도와 연결되어 있어서 이게 가장 빨라."
"얄밉네요, 스퍼트를 올려야겠어요——"
"이미 늦었어."
나는 자신의 토끼가 한바탕 몸부림친 후에도 여전히 늑대에게 짊어져 끌려가는 것을 보면서 더욱 힘껏 버튼을 연달아 눌러 '마수'에서 벗어나려고 했다.
"어떻게 이렇게 다 잡히지——"
백기가 더 이상 나에게 양보하지 않자 게임의 난이도와 재미가 급격히 높아졌다.
그는 빠르게 지도에 익숙해진 덕분에 여러 위치에서 나를 '기습' 공격 했다.
나는 다년간의 프로그램 제작과 현장 촬영 경험을 살려 맵에서 사용할 수 있는 소품을 열심히 찾아 '전투력'을 높였다.
"……걸렸다고?"
"풋! 먼저 저를 놓아줘요. 잠시 휴전할테니 선배를 구해낸 다음에 다시 이야기해요."
"내가 방금 왔던 길 가지 않도록 조심해, 그렇지 않으면 걸리게 될 거야."
"너무 늦었어요…… 전 이미 선배 옆에 끼였어요."
물론 게임 조작에 익숙치 않은 우리는 때때로 길을 잘못 드는 바람에 푹신푹신한 인형이 이상한 곳에 걸리면서 시간과 기회를 날려버렸고, 그 바람에 게임 내 카운트다운이 계속 줄어들었다. 화면 속 바쁘게 돌아다니는 작은 동물들은 더욱 당황하여 좌충우돌하면서 카운트다운이 제로가 되자——
'WIN'이라는 글자가 토끼 머리 위에 다시 나타났다.
"어라? 제가 이겼다고요?"
나는 화면에 뿌려지는 리본을 보면서 저도 모르게 두 손을 하늘로 치켜들고 환호성을 질렀다.
"내가 이겼어!!"
그가 내 귓가에 살짝살짝 입맞춤을 했다. 뒤를 돌아보니 반짝이는 두 눈을 마주할 수 있었다.
"이번엔 진짜로 졌어."
"헤헤, 알아요! 그래서 대단한 승리라고 할 수 있죠."
나는 일부러 거드름을 피우며 그를 향해 고개를 들고는 또 한 장의 쪽지를 그의 머리에 붙였다.
"실례지만 상대에게 혼신을 힘을 다해 싸웠는데도 졌다는 느낌은 어때요?"
그의 눈빛에서 은은한 빛이 스쳐갔고 백기는 잠시 생각에 잠기더니 그의 아름다운 입술이 전보다 조금 더 위로 올라갔다.
"한판 더 하자."
"다음에는 안 질 거야."
오후의 햇빛이 유리창을 비추면서 내 주위에 춤추듯 색채를 흩뿌리고 있었다.
나는 내가 가장 좋아하는 소년의 눈에서 나와 똑같이 날아오를듯한 표정을 볼 수 있었다.
"언제든 함께하겠습니다!"
온 도시가 낭만적인 기념일의 분위기에 휩싸여 있었고, 그와 나는 서로가 정한 유치한 규칙에 집착하며 신나는 게임 음악에 푹 빠져있었다.
게임은 몇 라운드 동안 계속되었고 대부분 내가 이겼다.
하지만 우리가 서로에게 얻은 점수는 매장에서 베개와 매니큐어 같은 작은 경품으로 교환하기에 충분했다.
승리의 글자가 다시 한번 내 캐릭터 머리 위로 뜨자, 나는 의기양양하게 백기의 품에 안겨 그의 턱에 내 정수리를 문질렀다.
"헤헤, 설마 제가 이 게임에 관해선 천재인 건 아니겠죠?"
백기는 내 말을 따라 의식적으로 메모를 집어 손에 쥐었다.
"나한테 게임 천재 여자친구가 있는 줄은 몰랐네."
"오늘 처음 알게 됐어."
"선배가 그렇게 말하면 저 들뜬다고요."
"마음대로 들떠있어."
"만약 날아가서 길을 찾지 못하면 내가 네 곁으로 날아가서 너를 집으로 데려다줄게."
그는 진담 반 농담 반 내 엉뚱한 논담에 반쯤 웃으며 대답했고, 즉시 새로운 게임을 클릭했다.
나는 목표물을 향해 달려가는 대신 움직임이 훨씬 유려해진 토끼들만 조종해 늑대 주위를 빙빙 돌았따. 때때로 돌진해서 작은 늑대를 넘어뜨리고 또 몸을 돌려서 그 위로 넘어졌다.
"선배의 승부욕이 이렇게 치솟을 줄은 몰랐어요."
"그래서 다른 선생님은 찾지 말라고요?"
"농구가 됐든, 사격이 됐든, 뭐든 내 모든 영역에 널 데려갈 수 있는 건 나뿐이야."
"당연히 이 기회를 그 누구에게도 주지 않을 거야."
"마찬가지로 나도 이렇게 너에게 다가가고 싶어."
나는 백기를 향해 고개를 돌려 조이스틱을 아무렇지 않게 옆으로 치우고 미소를 지으며 그의 이마를 짚었다.
"우리 백 형사님은 메이크업 배우실 거예요? 아니면 영상 촬용?"
내 뺨에 다정한 키스가 닿았다.
"너의 전부."
"너의 모든 것에 다가가고 싶어."
게임 속 캐릭터는 조종하는 사람이 없어 스스로 대기 모드로 전환되었고 토끼와 늑대는 엉덩방아를 찧었다.
마음 속 깊은 곳에서 우러나오는 만족감이 가슴 전체를 가득 채웠다.
"이렇게 된 거……"
백기는 눈썹을 살짝 치켜올리더니 내가 하려던 말에 잠시 반응하지 않았다.

나는 미소를 지으며 그의 손을 잡아당겨 머리카락의 작은 고무줄을 풀어 그의 약지에 감아 고리를 만들었다.
항상 날카로운 눈썹이 약간 아래로 내려가고 귀 끝에서 눈가까지 붉은 색을 옅게 띠고 있었지만 호박색 눈동작는 더욱 밝게 빛났다. 그의 머리카락에는 내가 붙인 메모가 매달려 있었다.
원래라면 다소 웃긴 장면이었을테지만 지금은 왠지 모르게 항상 거만하고 고독한 늑대가 두 귀를 늘어뜨리고, 고분고분하게 부드러운 뱃가죽을 드러내고 있단 생각이 들었다.
나는 미소를 지으며 잡고 있던 손을 흔들었고 손끝이 그의 굳은 살이 박힌 손바닥을 문질렀다.
"천재 게임 미소녀는 그녀의 존경할 만한 상대에게 매우 마음에 들어 천재 농구 미소년을 초대해 발란타인 데이트를 이어갈 거예요."
"원하세요?"
그는 얼굴을 짚은 손에 말을 숨겼지만 굳게 닫힌 입가가 쳐졌다가 올라가는 것을 볼 수 있었다.
결국 내게 응답한 건 손가락이 손가락 사이에 끼어드는 촉감과 그의 부드럽지만 거부할 수 없는 그의 힘이었다.
나는 시선을 돌려 바닷바람과 여름 햇살의 향기가 가득한 남자의 품속에 안겼다.
그가 맞잡은 손을 끌어당기며 입술에 들어올리면서 내 왼손 약지에 각인된 온기를 대신해 손가락 사이의 작은 고무줄을 씌워주었다.
"물론이지."
또다시 조금 더 느린 키스가 손끝에 닿았다.
피부에 내려앉은 말이 숨결을 따라 함께 고리에 감기면서 내 모든 마음과 두근거림을 제자리에 가두었다.
불타오르는 그의 눈빛과 부드럽게 내뱉는 말은 거절할 수 없는 어떤 확인이자 약속이었다.
"원해."
"나도 네가 원한다는 말만 듣길 원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