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장
"3, 2, 1…… 아, 왜 또 미션 칸인 거야!"
나는 침대에 엎드려 분홍색 말을 하트가 그려진 칸 위로 떨어뜨렸다.
일요일 밤은 평소보다 더 평온했다. 겨울밤의 추위가 창밖에서 차단되어 집안의 온기가 마음을 편안하게 했다.
연말이 다가오자 나와 백기 모두 유난히 바빴다. 모처럼 집에서 함께 주말을 보낼 수 있었던 오늘, 나는 예전에 구입했던 커플 보드 게임을 꺼냈다. (*예전에 주간 보상 내용으로 나온 적 있었음)
백기의 파란색 비행기는 막힘이 없었지만 내 분홍 꽃은 항상 미션 칸에서 제자리걸음이었다. 그가 미소를 지으며 미션 카드를 건네주자 나는 조심스럽게 손가락을 내밀었다——
"마지막으로 상대방이 당신을 열받게 했을 때를 말해보세요."
내가 생각에 잠긴 것을 본 백기는 긴장한 듯 보였다.
"왜?"
이런 모습의 선배가 너무 귀엽게 느껴진 나는 심각한 척 턱을 치켜들었다.
"제가 출장 간 사이에 누가 꽃병에 있는 꽃을 죽인 거예요? 새 꽃으로 그 사실을 감추려 했지만 그럴수록 더 티 났어요."
그의 눈은 초점을 잃더니 곧 제 발 저린 듯 코를 비볐다.
"설명서에 따라서 엄격하게 물을 갈아줬는데 며칠 동안 기온이 크게 내려가서 꽃이 추울까 봐 히터 옆에 둬버렸어."
백기가 꽃을 따뜻하게 해 주는 모습을 상상해 보고 나는 피식 웃었다.
"저한테 들켰으니 '벌'을 좀 줘야겠네요."
나는 화장대에서 아이라이너를 꺼내 싱글벌글 웃으며 다가갔다.
"……음."
붓끝이 피부에 닿을 때 그의 몸은 좀 굳어있었지만 그래도 그는 꼼짝도 않고 나에 맞춰주었고, 이내 작은 하트가 그의 쇄골에 새겨졌다.
"헤헤, 이제 선배 차례예요."
나는 돌림판을 넘겼다. 그가 임의로 돌리자 멈춰 선 바늘이 숫자 2를 가리키며 내 눈을 번쩍 뜨이게 했다.
그의 눈앞에서 미션 카드를 섞으면서 웃음이 저절로 나왔다.
그는 잠시 주의 깊게 살펴보다가 카드 한 장을 꺼냈다.
"서로를 위해 아름답고 로맨틱한 휴가를 준비하세요."
"와—— 하지만 전 다음 주말엔 야근해야 해요……저흰 언제쯤 짧은 휴가를 보낼 수 있을까요."
서프라이즈는 2초만에 끝이 났다.
"그럼 다음 주에…"
"잘 모르겠네."
그도 잠시 잊고 있던 일이 생각난 듯 말을 주저했다.
우리는 서로 눈을 마주침과 동시에 깊은 생각에 잠겼다. 한참 후에 나는 못내 아쉬워하며 현실을 직시하고는 카드를 한쪽에 놓았다.
"한 장 더 뽑으세요~ 지금 할 수 있는 게 있는지 한번 봐요."
백기도 한 장을 더 뽑았다.
"1분 안에 상대방을 웃기시오."
재미있는 미션 같아서 나는 흥미가 동했고 그는 잠시 생각을 한 후에 입을 열었다.
"의자를 영어로 뭐라고 하는지 알아?"
"A chair?"
"아니, abandon." (一板凳 ;걸상 [yìbǎndèng] 동음 이의어 이야기)
"……?"
내가 어리둥절해하자 그도 좀 당황스러워 보였다.
"이틀 전에 고진이 서에서 이 말을 했을 땐 다들 많이 웃더라고."
"하지만 저를 웃기기엔 한 모자라요."
나는 억지로 웃음을 참으며 백기를 보았고, 그는 재차 입을 열었다.
"호박고구마와 땅콩은 좋은 친구야. 하루는 땅콩이 놀러 가자고 하니깐 호박고구마가 땅콩에게 또 누가 있냐고 물었어."
"땅콩은 나, 호박고구마, 그리고 너라고 답을 했어."
동음이의어 장난
南瓜紫薯和花生是好朋友( nánguā zishǔ hé huāshēng shì hǎo péngyou ),
一天花生约它们出来玩,南 瓜问花生还有谁( yìtiān huāshēng yuē tāmen qù wán nánguā wèn huāshēng huán yǒu 谁shéi? )?
我wo紫薯zishu与yu你nǐ 과 我wo只zhi属于shǔyú你nǐ。
(내 자색고구마와 너 = 너는 나만의 것이야)
나는 잠시 멈칫했다가 동음이의어의 뜻을 알아차렸다. 그러더니 심장이 내 생각보다 더 세차게 뛰기 시작했다.
깨달았을 때는 따뜻한 손끝은 이미 내 윗입술에 닿았고 그의 눈매는 휘어져있었다.
"내가 이겼어."
"계속하자, 난 아직도 '도전'을 더 많이 할 수 있어."
2장
나는 피곤한 몸을 이끌고 욕실로 들어가 칫솔을 들고 거울에 비친 초췌한 나를 바라보았다.
6일 연속 계속된 강도 높은 야근으로 나는 무아지경의 상태가 되었고 그날 선배와 보낸 주말은 꿈처럼 멀게만 느껴졌다.
최근 회사에서 휴양지 시리즈 촬영을 기획했는데 빡빡한 일정 때문에 이 촬영장 저 촬영장을 뛰어다니느라 눈코 뜰 새 없이 정신이 없었다.
그때 휴대폰이 두 번 울리면서 갑자기 고진에게서 문자가 왔다.
"유연 씨, 혹시 백기랑 같이 있어요? 전화 좀 받으라고 해줘요, 걔랑 연락이 안 되네요."
"선배는 집에 없는데, 제가 대신 선배에게 연락할게요."
문를 발송하고 막 선배에게 전화를 하려는데 답장이 도착했다.
"괜찮아요! 연락 왔네요."
백기가 보낸 문자창을 열었더니 그는 오후에 오늘 일이 있어서 늦게 들어온다고 한 것을 발견할 수 있었다.
이상하다, 그는 특파서에 없다고 했는데? 의구심이 드려던 찰나 현관에서 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렸다.
"돌아왔어."
"선배, 일은 끝났어요?"
"응, 네가 잠들기 전에 끝내려고 좀 서둘렀어."
"그렇구나, 고진씨가 방금 선배에게 볼일이 있다고 저에게 문자를 보냈길래 오늘 밤 또 야근하는 줄 알았어요."
"아, 방금은 엘리베이터 신호가 안 좋아서 그랬나 봐, 걔한텐 다시 전화 걸었는데 별일 아니었어."
그는 외투를 벗고 나를 품에 안았다.
"하루 종일 못 봤으니 좀 안고 있을게."
익숙한 품 안에서 나는 눈을 깜빡였다.
그는 돌아올 때면 나를 항상 안아주었지만 오늘은 평소보다 좀 더 성급하게 포옹을 하면서 무언가 감추려는 느낌이 들었다.
침대에 누워 있는데 귓가에서 평온하고 긴 숨소리가 들려왔다, 그 가운데서 나는 잠에서 깨어나 조심스럽게 몸을 움직였다. 요 며칠 선배는 항상 일찍 나갔다가 늦게 돌아왔다. 때로는 내가 막 일어날 때도 그는 또다시 나가야 했다.
문득 고진 씨가 보낸 문자가 떠올랐다.
그러고 보니 최근 며칠 밤 그는 비번일 때도 아주 늦게 들어왔었다.
왠지……선배가 작은 비밀을 숨기고 있는 것 같았다.
호기심이 한번 불을 붙으니 쉽게 사라지지 않았다.
나는 계획을 실행하기로 결정했다——
토요일 밤, 야근을 마치고 서둘 집으로 돌아와 준비를 시작했다.
"피시 앤 칩스, 과일 음료, 샌드 위치, 라티아오, 케밥, 디저트…… 음, 모두 완벽해!"
나는 음식을 한 상 가득 차리고, 저녁에 농구 경기가 시작할 때까지 기다렸다, 선배가 내 계획을 눈치채지 못하도록.
"돌아왔어——"
문이 열리는 소리가 갑자기 뚝 멈추었다. 선배는 식사가 차려진 테이블을 보고 나를 멍하니 바라보더니 이내 망설이며 떠보듯이 물어봤다.
" ……오늘 중요한 날이야?"
"오늘 밤에 농구 경기 본다고 했잖아요, 그래서 야식을 준비했어요."
나는 그의 팔을 껴안고 소파에 앉아 눈에 띄게 기뻐하며 경기를 보는 선배의 얼굴을 보고 웃을 수밖에 없었다.
오후 8시 30분, 경기가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
초반부터 양측은 팽팽한 접전을 펼쳤고 점수 차는 3점을 넘지 못했다. 하지만 곧 오렌지 팀이 공격을 성공시키면서 점수차를 10점으로 벌렸다.
"오렌지색 머리띠를 한 사람 정말 대단하네요, 3점 슛을 연달아서 두 개나 넣었어요!"
"저 사람은 신인 선수이자 유망주인데 많은 사람들이 그를 높이 평가하고 있어."
"얼굴도 잘생기고 사진빨도 잘 받네요."
"저렇게 생긴 사람을 좋아해?"
경기에 집중하던 선배가 갑자기 화면에서 눈을 떼고 미간을 찡그렸다.
나는 휴대폰으로 카메라를 불러와 화면을 그에게로 향했다.
"저는 이렇게 생긴 사람이 좋아요."
호박색 눈동자가 살짝 커지면서 그는 잠시 멍하니 있더니, 갑자기 뜨거운 숨결이 그의 얼굴과 함께 가까워졌다.
닿자마자 입술에 남겨진 열기는 방금 먹은 치즈 케이크 보다 더 달았다.
눈을 들어 올려보니 내 앞에 있는 사람이 다시 화면으로 눈을 돌렸지만 내 눈에는 그 사람의 목덜미가 옅은 연분홍색으로 물드는 게 보였다. 나는 웃음을 참으며 계획을 위해 넌지시 선배를 떠보았다.
"경기 안 한 지 너무 오래됐죠? 일이 너무 바쁜가요?"
"응, 고진이 나를 몇 번 불렀는데 그때마다 다 같이 모일 수 없어서 당조를 붙들러 갔어."
"그런데 당조도 요즘 시간이 없어. 퇴근하면 영화 보고 거리 돌아다니면서 쇼핑하기 바빠."
"네? 당조 씨에게 무슨 일이 있어요? 혹시 전에 말했던 소꿉친구분 일이에요?"
(2부 멘스 41-7장에 언급됨)
"맞아, 그 녀석은 고집이 세서 쉽게 인정하려들지 않을 거야."
"와, 백 대장님이 팀원들의 비밀을 잘 알고 있을 줄은 몰랐네요."
"그 녀석이 남몰래 다른 사람이랑 찍은 애프터눈 티세트 사진을 쥐고 있는 걸 나한테 걸렸거든."
"점심때 함께 식사할 때, 모두들 자유롭게 이야기를 나누는데 거기서 항졔와 아율이 다퉜다거나, 루일에게 좋아하는 여자가 생겨서 고백할 계획이라는 등의 이야기를 들었어."
"그럼 백 대장님에게는 비밀이 없나요?"
나는 조금 더 가까이 다가가서 아무런 내색하지 않고 그의 옆모습을 바라보았다.
"나? 없을 걸. 우리 두 사람에 대한 일은 다들 알고 있을 테니, 비밀이 아니지."
심장이 두근거려서 돌아보니 그의 얼굴은 그 말이 아주 당연한 말이라는 듯 평소와 다름없는 얼굴을 하고 있었다.
이 순간의 떨림을 진정시키기도 전에 오렌지 팀이 또 멋진 덩크슛을 성공시켰고 그 옆에선 감탄하는 소리가 울려 퍼졌다.
"좋은 슛!"
그는 시합을 보면서도 손에 든 간식을 내 입에 넣어주는 걸 잊지 않았다. 거실의 불빛이 우리 주위를 은은한 빛으로 감싸고 있어 차분하고 마음이 편안해졌다. 졸음이 쏟아질 정도로 먹고 마신 나는 옆 사람의 따뜻한 몸에 기대어 크게 하품을 했다. 얼마나 지났는지 모를 정도로 혼미한 가운데 몸이 익숙한 팔에 안기고 부드러운 감촉이 입술에 부드럽게 닿았다.
의식이 완전히 흐려지기 직전에야 나는 뒤늦게 오늘 밤의 계획이 실패했다는 것을 깨달았다.
3장
정신없이 지나갔단 한 달 반. 마침내 이번 주 금요일, 휴양지와 관련된 촬영이 순조롭게 마무리되었다.
"모두들 그동안 수고 많았어요, 오늘 오후엔 푹 쉬고 좋은 휴가 보내세요."
회사를 나서는 순간 나는 기지개를 크게 켜고 몸에 쌓인 피로를 훌훌 털어 냈다.
아름다운 생활! 자유로운 주말! 찬란한 인생!
지체 없이 집에 돌아와서는 나는 소파 위에 몸을 던졌다.
그때 휴대폰이 두 번이나 울렸다.
'임무 중인데 되도록 저녁에 일찍 돌아갈게.'
그는 길가에 은행잎이 떨어져 있고 화창한 햇살을 받고 있는 길모퉁이를 사진으로 찍어 내게 보냈다.
어딘지 모르게 낯익은 곳이지만 어디서 본 것인지는 기억이 나지 않았다.
"알았어요, 기다릴게요~"
답장을 보내고는 휴대폰을 한쪽에 치워두고 저녁에 그를 깜짝 놀래키기 위해 한동안 소홀히 했던 거실을 다시 새롭게 꾸몄다.
"이 인형들은 라벨도 아직 안 뜯었네, 그런데 유리장에는 자리도 없는데……"
나는 잠시 고민하다가 장롱에서 오래된 수정 구슬을 꺼내고 새 인형을 넣었다. 서재 안의 안 쓰는 물건들을 보관하는 상자에 수정 구슬을 넣으려는데 그 상자가 보이지 않았다.
"이상하네, 어디다 두었지?"
상자는 찾지 못했지만 책상 위에 백기의 서류 더미를 보고 치우려고 하는데 전단지 한 장이 떨어졌다.
전단지를 집어 들어보니 어딘가 낯익은 리조트 사진이 인쇄되어 있었다.
원래는 촬영 장소로 미리 선정된 곳 중 하나였지만 초반 프로그램의 리조트와 스타일이 비슷해서 제외된 곳이었다.
"선배는 이걸 어떻게 가지고 있는 거지? 그리고 이 디저트 가게는……"
방금 전에 선배가 보내준 사진을 열어보니 역시나 사진 한구석에 같은 가게가 있었다.
"이 가게는 체인점이 아닌 것 같은데, 선배가 여기 리조트에서 임무 중이라고……?"
나는 중얼중얼 혼잣말을 하면서 최근 신출귀물했던 그의 바빴던 모습이 생각이 났다. 마음속에 별안간 억측이 떠오르면서 나는 잠시 생각하고는 그에게 전화를 걸었다.
"유연아?"
"제가 선배의 임무를 방해한 건 아니죠?"
"아냐, 마침 쉬고 있었는데, 왜?"
"프로젝트가 일찍 끝나서 저도 좀 쉬려고요."
"갑자기?"
그는 잠시 놀란 듯했고, 나는 내색하지 않고 계속 그를 떠보았다.
"최근에 선배가 많이 바쁘다는 거 알아요. 그러니 저는 멀리 나가지 않고 며칠 동안 집에서 쉴게요."
"유연아, 사실——"
내 맞은편 사람이 말을 멈추려는 순간 수화기에서 바람소리와 뒤섞인 숨소리가 들려왔다.
"오늘 오후에 임무가 끝나니까, 내일 함께 휴가 보내자."
"집에서 기다려."
전화가 황급히 끊기는 걸 보니 선배가 나 몰래 뭔가를 '계획'하고 있다는 것이 분명했다.
나는 책상 위의 전단지를 집어 들자 배시시 웃음이 나왔다.
기다리지 않을 거예요.
리조트는 외딴 교외에 위치해 있었고 조금 덜컹거리는 지하철을 타고 종점에 도달했을 때는 이미 한 시간이 지난 후였다.
이곳의 풍경은 푸른 하늘 아래 선한 붉은 금빛으로 물든 드넓은 벌판에 은행나무가 한 폭의 수채화처럼 끝없이 펼쳐져 있어 아주 아름다웠다. 다행히도 보행로가 크지 않아 디저트 가게를 금방 찾았지만 선배의 흔적은 찾을 수가 없었다.
"어디에 있을까……"
시원한 바람에 머리카락이 흩날리고 황금빛 은행잎 몇 조각이 두런두런 말소리를 따라 바람과 함께 날아왔다.
익숙한 목소리에 무의식적으로 고개를 돌려 소리가 난 곳을 따라 가게 안을 한 바퀴 둘러보니 낯익은 뒷모습이 한눈에 들어왔다.
"계약서는 발송했으니 잘 검토해 보세요."
나는 숨을 죽이고 관찰했다. 그는 임무 수행 중일 때처럼 긴장한 모습은 전혀 없이 매우 평온해 보였다.
잠시 후, 그는 전화를 끊고 숲 속 깊은 곳으로 걸어갔다.
분명 오래간만인데도 어쩐지 그 뒷모습을 보는 순간 발걸음은 머리보다 한 발짝 빨리 나갔다.
세 발자국, 두 발자국——만 더 가면 그를 안을 수가 있었다.
숨을 죽이고 손을 내밀자 심장이 점점 더 빨라졌다. 내가 그에게 닿는 순간 그는 민첩하게 몸을 돌려 내 팔을 잡았다.


하지만 나라는 것을 알아차린 그는 눈을 크게 뜨고는 잡았던 손을 느슨하게 풀었다. 그의 손목을 나에게 가볍게 '잡혀' 머리 위로 들어 올려졌다.
"허위 보고를 한 백 형사를 발견해 체포합니다."
밝은 황금빛 햇살이 나뭇잎 틈 사이로 들어와 호박색 눈을 금빛으로 반짝반짝 비추었다.
바람이 나뭇잎을 살랑살랑 흔들면서 금빛 물줄기가 순식간에 부서지면서 그의 눈가가 옅은 선홍색으로 물들었다.
잠깐동안의 당황스러움은 이내 환한 미소로 물들면서 그의 목소리 톤도 입가에 번진 미소와 함께 높아졌다.
"여기서 뭐 해?"
"제가 오지 않았다면 누군가 '임무 수행'이란 명목으로 리조트 주변을 몰래 돌아다닌다는 것을 어떻게 알았겠어요?"
내가 그의 손목을 뒤로 묶는 것을 보고도 그는 반항하지 않고 미소 지으며 내 행동에 순응했다.
"정석적인 움직임이네."
"당연하죠, 특파서 지휘관님께 배웠는걸요."
"하지만 몸의 무게 중심이 너무 앞쪽으로 쏠려있어서 상대에게 반격당하기 쉬워."
그가 붙들고 있는 내 손을 살짝 돌리자 순식간에 내 손목이 그의 손에 결박되었다. 그는 다른 손으로 내 허리를 감싸고 나를 그의 품 속으로 끌어당겼다.
"거짓말이 아니야, 확실히 '임무'가 있었지만 끝났어."
"이제부터는 네가 최우선이야."
그는 내 손을 잡고 황금빛으로 물든 나무 사이를 지나자 깔끔하고 세련된 아파트가 있는 작은 블록으로 들어섰다.
나는 미심쩍게 그를 따라 그중 한 채로 들어갔고, 문을 여는 순간 아름답고 환한 거실이 눈에 들어왔다.
"와——"
푸른색과 분홍색의 플란넬 쿠션이 소파에 기대어 있었고, 꽃병에 담긴 꽃에는 물방울이 맺혀 있었고, 귀여운 인형 클립이 커튼을 올라타고 있었다……

"이 아파트는 내가 임대하고 있었는데, 지금은 우리 소유가 됐어."
"유연아, 정식으로 너의 휴가에 합류할 것을 신청할게."
4장
"신청하지 않아도, 언제든지 자유롭게 제 휴가에 합류할 수 있어요."
나는 백기를 끌고 한쪽에 있는 빈백 소파에 함께 누워 히죽히죽 웃으며 가까이에 있는 선배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그런데 왜 갑자기 휴가지를 준비한 거예요?"
"전에 보드 게임 미션지에 있었잖아? 그때 너도 기대하는 것 같았어서."
"하고 싶은 일은 바로 하는 게 좋잖아, 어차피 앞으로 더 하고 싶은 일이 많아질 테니까."
원래도 선배는 작은 기대까지도 실현시켜 주기 위해 노력하며 항상 기억을 하고 있었다.
순식간에 마음이 부드러워지면서 나는 아파트를 둘러보았다. 모든 곳은 사소한 배려를 가지고 장식이 되었다는 게 느껴졌다.
"이 모든 걸 선배 혼자서 다 한 거예요?"
"응, 전에 오두막집보다는 좀 더 복잡했어서 네 마음에 들지는 모르겠네."
석양에 황금빛으로 물든 하루살이들이 속눈썹 끝에 떨어져 살랑거리면서 눈 아래로 설렘으로 쿵쾅거리며 부서지는 기대에 찬 눈빛이 내 심장으로 들어왔다. 나는 방을 따라 관찰하다가 찬장 앞에 멈춰 서서 백조 스톰 글라스(*예전에 마이홈 선물로 스톰 글라스를 줬었음)를 가리켰다.
"우리 집에 있던 거랑 같은 건가요? 그리고 이 액자도 낯익는데……"
"모두 집에서 가져온 거야, 서재에 안 쓰는 물건들을 보관하는 상자가 있었잖아?"
"선배가 가져간 거구나."
"계속 상자 안에만 있는 게 좀 아깝기도 하고, 마침 이곳을 꾸미던 중이라 '징용'했지."
"그럼 제가 이 귀여운 친구들을 대신해 백 형사님에게 고마워해야겠네요."
선반 위에 있는 많은 것들은 나에겐 익숙한 것들이었지만 그것들을 새롭게 진열해놓고 보니 신기하게도 신선했다.
그때, 낯선 하얀색의 새장 스탠드가 눈길을 확 끌었다. 그것은 금속 덩굴과 함께 귀여운 라벨이 감겨 있었다.
새장을 내리려는데, 그 밑에 눈에 띄지 않게 작은 티켓이 꽂혀있는 것을 발견했다.
백기는 얼굴이 살짝 달아올랐는지 손을 뻗어 목덜미를 긁었다.
"이건 구매한 지는 얼마 안 됐는데, 다른 건 준비한 지 꽤 됐어."
"중간에 너에게 '불시 검사'를 당하는 바람에 가까스로 너를 속였어."
그는 드물게 난처했다는 듯이 입가를 구부렸다.
"잠깐만요…… 농구 시합 때를 말하는 거예요? 어떻게 알았어요?"
"그동안 넌 일하느라 바빠서 입맛이 없었던 터라 비교적 음식을 담백하게 먹었는데, 그날밤 유독 매운 음식을 준비했잖아."
"그리고 그날따라 너는 다른 때보다 더 자주 훔쳐봤고."
완벽하게 숨겼다고 생각했던 계획이 일찌감치 들통났다는 생각에 나도 모르게 의기소침해졌는데 백기의 웃음은 더 짙어지기만 했다.
"하지만 뭣보다 가장 중요한 건—— 내가 널 잘 안다는 거야."
잔잔한 호수 표면에 물 한 방울이 떨어지듯이 물결은 겹겹이 퍼져나가고 또 끊임없이 나아갔다. 나는 발을 내딛으며 일어나 그의 목을 두 팔로 감쌌다.
"점검 완료, 맘에 들었으니 99점 줄게요."
"그럼 마지막 1점은 어떻게 받아야 해?"
나는 눈짓하며 그에게 가까이 다가갔다. 그는 잠시 얼어붙었지만 즉시 내 말을 알아차렸고, 그의 시선은 살짝 무겁게 풀리면서 뜨거운 숨결이 나를 덮쳤다. 석양의 마지막 한 줄기 밝은 빛이 창가에 드리우니 마치 술에 취한 연인의 옆모습 같았다.
밤이 드리웠다.
부드러운 이부자리 속에서 천천히 눈을 뜬 나는 무의식적으로 옆구리를 만졌지만 비어 있었다.
방 밖에선 희미하게 소리가 들렸고, 나는 느긋하게 일어나 간단하게 씻고 방문을 열었다.
햇빛은 이미 거실의 절반을 밝게 비추고 있고, 베란다에서 백기는 런닝셔츠를 입고 세탁기 옆에 기대고 있었다.
목에는 하얀 수건을 아무렇게나 걸치고 곧게 뻗은 실루엣에 겨울 특유의 아늑함이 느껴졌다.
세탁기 소리에 묻혀서 다시 한번 그를 '기습'하기 위해 나는 그에게 살금살금 다가가기 시작했다.
내가 막 그의 손에 닿았을 때 그는 나를 기다렸다는 듯이 몸을 돌려 나를 덥석 안았다.


"?!"
순간적으로 눈을 크게 뜨고 무의식적으로 그의 어깨에 팔을 꽉 두르며 방심한 상태로 그의 호박색 눈동자에 사로잡혔다.
든든하게 나를 받쳐주는 강한 팔과 환한 미소에 가슴이 미치도록 요동치면서, 나는 입술을 꽉 다물고 어쩔 줄 몰라하며 바로 지척으로 다가온 얼굴을 바라보았다.
"어떻게 알았어요?"
"네가 나오자마자 알았어."
그의 피부에는 목욕을 방금 끝냈는지 여전히 자욱한 열기로 가득 차 있었고, 허벅지 피부를 따라 손바닥의 불타는 열기가 심장으로 흘러낼 것처럼 불타오를 듯이 나를 설레게 했다.
나는 아랫입술을 살짝 깨물고 내색하지 않고 손을 그의 허리춤으로 뻗었다.
"알아낸 것만으론 소용이 없어요, 전 선배의 '약점'이 어디에 있는지 알고 있으니까요."
내 손가락이 정확하게 허리춤을 찾아 가볍게 주물렀다.
"읏——"
내 손길이 닿은 그의 몸이 갑자기 떨리면서 그의 눈이 커졌지만 그는 나를 막을 수가 없었다.
내가 떨어질까 봐 그는 나를 감싸는 팔을 더욱 단단히 잡았다. 흔들리는 와중에 빨래 건조대에 놓인 수건이 부딪히면서 떨어졌다.
그러더니 마침내 그는 더 이상 참을 수 없다는 듯이 나를 품에 안고 몸을 돌렸다.
내가 깜짝 놀라기도 전에 시야는 이미 거꾸로 뒤집히면서 등이 빈백 소파 위로 떨어지면서 뜨거운 숨결이 얼굴을 덮쳤다.
한 손이 거부할 수 없이 나의 턱을 쥐면서 숨결과 체온이 한데 섞여 통제권은 어느새 모두 빼앗긴 상태였다.
내가 항복하기까진 오래 걸리지 않았고 나는 그가 내 모든 숨결을 빼앗도록 내버려 두었다. 굳은살이 박힌 손가락이 마치 '보복'이라도 하듯 허리춤에 내려앉아 느긋하고 집요하게 나를 매만졌다.
등골이 오싹하고 발가락이 살짝 움츠러들었다. 나는 허리를 웅크리며 피하려고 했지만 또 한 번 그 두터운 손바닥에 완전히 갇혀버렸다.
세탁기에서 완료되었다는 안내가 어렴풋이 울리기까지 그는 나를 놓아주지 않았다.
가쁜 숨을 고르며 빈백 소파에 기대어 빨래를 널고 있는 그의 모습을 보니 갑자기 오늘의 햇살이 평소보다 더 밝게 느껴졌다.
그동안의 모든 고생과 피로가 마치 지금 이 순간의 평온을 위한 것 같았다. 자신을 괴롭혔던 피곤함이 꽃과 피우고 열매를 맺어 큰 만족감으로 변하는 듯했다.
빨래를 말끔히 널어놓고 그는 턱을 괴고 베란다 구석을 바라보며 무슨 생각인지 모를 표정을 지었다.
"왜 그래요?"
나는 다가가서 그를 안았다.
"여기가 좀 비어 있는 것 같은데, 뭔가 좀 더 넣을 수 있을 것 같아."
"선배 집이니까, 건조기 한대 넣는 건 어때요?"
"겨울에는 자기 전에 이불을 빨고 말리면 밤에 이불 속에 들어가도 춥지 않아요."
"좋은 생각이야, 나중에 내가 적당한 걸 찾아서 설치해 볼게."
"여기다가요? 선배 너무 낭비하는 거 아니에요? 어차피 우린 여기서 오래 살지도 않을 거잖아요."
"이미 장기간 계약(长期租)을 해놨으니 휴가가 짧거나 멀리 가고 싶지 않을 땐 여기로 와서 휴가를 보내자."
이 말을 듣고 여전히 머리가 혼란스러워 잠시 아무런 반응도 할 수 없었다.
"다시 말해서, 이곳이 지금부터 우리의 두 번째 '보금자리'라는 거죠?"
"물론이지, 네가 원하는 대로 여기서 살 수 있어."
나는 고개를 들어 역광에 비친 그의 옆모습을 보았다.
마치 이미 매우 달콤한 선물에서 나는 또 하나의 더 큰 놀라움을 발견한 것 같았다.
가슴이 마치 부드러운 거품에 잠기는 것 같았고 입가도 억제할 수 없이 올라갔다.
"선배, 고마워요. 여기 정말 마음에 들어요."
따뜻한 손끝이 내 얼굴 옆면을 스치고 지나갔고, 그는 눈을 내리뜨리며 내 눈을 바라보았다.
"사실 이 순간을 오랫동안 기다려왔어."
"예전에 이상적인 집이 어떤 모습이냐고 물어보지 않았어?" (2020년 백기 생일 '옛 장소 데이트')
흩날리는 하얀 이불 시트가 기억 속의 한 귀퉁이를 들추어내고, 먼지 하나 묻지 않던 오래된 집 밖의 바람도 여전히 예전처럼 선명했다.
마치 한 줄기 빛이 마음속에 들어와 그의 맑은 마음을 비추는 것 같았다. 내 마음속이 살며시 요동치면서 그가 다음에 어떤 말을 할지 어렴풋이 느낄 수 있었다.
"그 후에 나는 앞으로 우리에게 여유로운 시간이 더 많이 생긴다면 조용하고 아름다운 곳을 찾아야겠다고 생각했어."
"매일 네가 잠에서 완전히 깨어날 때까지 함께 자고, 네가 하고 싶은 일을 함께 하고, 아니면 아무 일도 하지 않고 그냥 함께 지낸다거나……"
"하지만 생각하다 보니 그때까진 기다리고 싶지는 않았어."
"이렇게 하면 앞으로 더 많은 것을 기대할 수 있을 거야."
그는 마음속에 품었던 모든 약속들을 지키며 조금씩 내 앞으로 가져다주었고, 천천히 한 폭의 완전한 퍼즐을 이루었다.
한 번도 칠해지지 않은 진심 어린 마음만큼.
"우리가 할아버지가 되고 할머니가 되면 블랙이를 타고 드라이브해 주겠다는 약속도 있었어요."
"당연히 블랙이는 철저하게 관리하고 있지."
그의 진지함에 나는 한바탕 웃어버렸다.
"그런데 제가 앞으로 기대하는 것이 점점 더 많아지면 어떡하려고요?"
나는 천천히 그에게 다가갔다. 그의 눈 속에 있는 나는 가까이 있을 때 더 밝고 선명해지는 것 같았다.
"결국 선배와 함께 하는 일에 관해선 영원히 만족하지 못할지도 몰라요."
"그러면 더 좋지."
"네가 원하는 건 내가 뭐든 만족시켜 줄게."
한없이 가까워진 숨결은 다시 겨울 햇살에 녹아 떨어질 수 없는 사이가 되었다.
"넌 항상 나에 대한 기대감을 가지고 있을 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