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전 번역이니 오역, 의역 많으니 참고만 부탁드립니다~
1장
"기사님, 다왔어요!"
햇살 좋은 일요일 오후, 택시에서 빠른 걸음으로 내린 내 머릿속엔 아까 전화상으로 백기가 했던 말이 떠올랐다.
"흠, 유연아, 시간 있어? 네 도움이 필요해."
백기는 곤란한 듯한 목소리로 말했지만 전화로는 아무런 말도 하지 않고 그냥 패스트푸드점 주소만 알려줬다. 간만에 백기의 부탁을 받으니 나도 모르게 좀 궁금했다.
식물 돌보기? 저녁 차리기?
*
그렇게 생각을 하면서 가게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서자 바로 익숙한 모습이 보였다.
그의 주변에 있는 식탁에선 교복을 입은 고등학생들이 숙제를 하고 있었다.
백기는 창가에 앉아 한 손으론 옆얼굴을 받치고 엄지손가락으로는 끊임없이 펜을 누르며 눈살을 찌푸린채 책장을 넘기고 있었다. 온 몸이 살포시 햇빛에 휩싸여 순간 옆에 있는 고등학생과 다를 게 없어 보였다. 그가 왜 여기에서 책을 보는지 좀 궁금했지만 말할 수 없이 조화로운 장면을 보니 나도 모르게 입가가 올라갔다.
나는 가벼운 발걸음으로 조용히 그의 맞은편에 앉았다.
"학생, 안녕하세요? 여기에 앉아도 될까요?"
거절하려고 하던 그의 얼굴은 책에서 고개를 들어 나를 보고는 웃음으로 번졌다.
"그럼요."
그는 입가를 구부리고는 식탁 위의 햄버거와 음료수를 내게 내밀었다.
"배고프지? 뭐 좀 시켰어."
앞에 수북하게 놓인 음식을 본 나는 잠시 멍해졌다. 이내 옆에 흩어져 있는 서류를 훑어보니 위에는 온통 스케치한 흔적으로 가득했다.
"......일하는 거예요? 왜 여기까지 와서요?"
"집에서는 효율이 떨어지길래 환경을 바꿔보려고 했어."
백기는 이렇게 말하면서 '은근슬쩍 친절하게' 내 음료수에 빨대를 꽂아주었다. 백기의 얼굴을 쳐다보니 그의 눈밑에는 다크서클이 있었고 감출 수 없이 피곤해보였다.
이 백 지휘관님은 어떤 난관에 부딪힌 것 같았다. 나는 마음속으로 중얼거리며 바로 본론으로 들어가기로 했다.
"그래서 아까 전화로 도와달라고 한 건 무슨 일이에요?"
"……이거야."
백기는 길고 가느다란 속눈썹을 깜빡이며 숨을 죽였다. 마치 무슨 치열한 고민이라도 하는 듯 했다.
한참 동안 그는 무슨 결심이라도 한 듯 나를 바라보았다. 목소리는 정중하고 눈빛은 확고했다.
"연아."
"……네!"
"내 '업무 보고서' 첨삭을 부탁하고 싶어."
2장
나는 눈을 깜빡이며 백기를 멍하니 바라보았다. 그는 눈을 내리깔고 손 가장자리에 있는 종이 몇 장을 훑어보았다.
"이건 내가 처음으로 특파서 지휘관의 신분으로 업무 보고를 하는 거야. 이 보고서는 요구하는 세부사항이 아주 많아. 포괄적이고 상세한 정리를 요구하는 것 뿐만 아니라 내용 서식에까지 모두 엄격한 규칙이 있어……"
백기는 차분하게 서술했지만 말을 계속할수록 눈살을 찌푸렸고 말투에는 초조함과 답답함이 묻어있었다.
"난 이런 일을 잘 못해. 특파서에 있는 걔네들은 더더욱 도움을 기대하기 어렵고. 그러니 네가 좀 봐줬으면 해."
말을 마친 후, 그는 부탁을 바라는 뜻으로 나를 똑바로 쳐다보았다.
나는 이런 백기는 처음 보았다.
책임감이 커다랗게 자리잡아 나도 모르게 허리를 꼿꼿이 세우고 고개를 푹 숙였다.
"알겠어요. 이게 바로 선배의 업무 보고서예요? 어디 좀 봐요."
내가 막 그의 손 옆에 있는 종이를 만지려고 하는데 한 손이 엎치락뒤치락 하면서 결국 엎어 버렸다.
"크흠, 아직 다 못 썼어."
백기는 좀 쑥스러운 듯 보였지만 내가 보기에는 정말 귀여워서 그를 놀리고 싶었다.
"첨삭을 해주려면 어쨌든 제가 먼저 좀 알아야 해요."
내가 정색을 하고 말을 하자 백기는 머뭇거리더니 납득이 간 듯 조용히 손을 떼었다.
"……정말 다 못 썼어."
"알겠어요!"
"정말 조잡한 초고야."
"알겠어요~!"
나는 속으로는 몰래 웃으면서도 겉으로는 프로처럼 엄숙하게 백기의 보고서를 훑어보았다.
글의 내용 구조는 '작업 성과'와 '미래 전망'의 두 문단으로 아주 단순했다.
처음엔 곁눈질로 뚫어지게 나를 쳐다보는 백기의 눈빛이 신경쓰였다. 그는 내 표정에서 무엇인가를 읽어내려는 듯 나를 뚫어지게 쳐다보았다. 하지만 나는 서서히 집중력을 되찾아 보고서 내용에 집중하기 시작했다. 주변이 조용해지면서 머리 위의 에어컨 바람소리까지 들렸다. 얼마나 지났을까. 보고서의 마지막 장을 덮고 나는 다시 백기를 바라보았다.
그는 한 손으로 머리를 괴고 창밖의 따스한 햇살을 받으면서 병아리가 쌀을 쪼아먹듯이 머리를 끄덕이고 있었다. 졸고 있는 그의 모습을 보면서 안쓰럽다는 생각이 드는 한편으론 웃음을 참을 수가 없었다.
"흠흠"
[##_Image|kage@bcIWf3/btrpgzYMe5g/AAAAAAAAAAAAAAAAAAAAACxPHvXO3r2zIIvr1QKJJaLzzlctaIwtH4luoox-LN60/img.jpg?credential=yqXZFxpELC7KVnFOS48ylbz2pIh7yKj8&expires=1777561199&allow_ip=&allow_referer=&signature=2ecEFVjkWk1j%2F%2Furc0ebXji2ZsQ%3D|CDM|1.3|{"originWidth":1525,"originHeight":2692,"style":"alignCenter"}_##]
"……!"
고요한 분위기가 깨지면서 백기의 머리가 팔에 눌리자 그는 갑자기 정신을 차리고 나를 돌아보았다.
그는 눈을 살짝 떴고 잠이 덜 깬 그는 좀 부끄러워보였다.
"……다 봤어? 어때?"
나는 잠시 침묵하고 그를 쳐다보았다.
"선배."
"응."
그는 약간 긴장한 듯 대답했다. 방금전까지만 해도 멍하게 보이던 그의 눈은 순식간에 맑아졌다.
나는 첫 페이지를 펼쳤다.
"제 1, 작업 성과."
"3월, '날카로운 칼날' 계획의 실행에 참여하여 사건 관련자 32명을 체포."
"6월, 초중등 학교 훈련과 교육 활동을 전개하여 학교 교사와 학생의 안전 예방 의식을 향상시킴."
"7월, 경찰학교의 교육 성과 검토 및 지도……"
나는 아래에 나열된 많은 사건들을 보고 입술을 오므린 채 마지막 페이지로 넘어갔다.
내용이 더욱 간결하고 두 줄밖에 없었다.
"제 2, 미래 전망."
"앞으로도 저와 대원들은 자신들에게 더욱 엄격해짐으로써 연모시의 평화를 지켜내겠습니다."
나는 아무말 없이 보고서를 덮고 백기를 바라보았다. 얇은 종이 몇 장을 쥐고서.
"이 보고서, 글자 수 요구사항이 있어요?"
내 말의 속뜻을 알아차린 백기의 귀 끝은 옅은 붉은색으로 물들었다.
"……올해 한 모든 일들을 다 쓰려고 노력했는데도 글자 수가 모자라."
"대략 얼마나 부족한데요?"
그는 잠시 멈추고 옆으로 시선을 돌렸다.
"열, 열 장."
나는 한숨을 살짝 쉬며 손 안의 보고서를 놓았다.
"저는 선배 보고서의 문제점을 대충 알고 있어요."
백기의 눈은 순간 번쩍 빛났다. 그는 몸을 곧게 펴고 공손히 경청하는 경건한 자세를 취헀다.
"선배는 너무 간략하게 써요! 의미있는 내용이 많지만 선배는 쓰지 않잖아요."
나는 소매를 걷어올리고 펜을 들고는 그의 보고서에 동그라미를 치기 시작했다.
"이 원고의 구조는 소제목을 몇 개 더 나열하면 좀 더 풍부해질 수 있어요. 예를 들어서 '작업 성과'의 문단 아래에서 선배는 이야기를 전개할 수 있어요. 임무 전단계의 준비, 도중에 부딪친 어려움과 거기에서 얻은 경험과 교훈이요……"
술술 말이 쏟아지는 나의 모습에 멍해진 백기는 난감한 표정으로 머리를 긁적였다.
다소 소란스런 환경과 주위의 고등학생들로 둘러싸인 상황에서 나와 백기는 좀 어색해보였다. 때때로 사람들은 오가면서 우리를 쳐다보았다. 하지만 나와 백기는 주위의 모든 것이 사라지고 둘만 남은 것처럼 전혀 신경쓰지 않았다.
*
시간은 소리 없이 지나갔다. 석양이 구름 속으로 천천히 떨어지고 창밖의 가로등이 연이어 밝아질 때가 되어서야 비로소 나는 펜을 놓았다.
"대충 이 정도예요."
"……이렇게 많이?"
백기가 내가 제시한 '5개의 문단', '10개의 제목'을 보고 난처한 표정을 짓자 그만 웃음이 터져 나왔다.
"걱정 마세요. 선배와 같이 완성할 테니깐요. 최종 원고에는 꼭 백 지휘관님의 성실함과 책임감, 용감함과 강인함을 보여줄 수 있을 거예요."
나는 주먹을 휘두르며 자신만만하게 웃음을 지었다.
잠시 나를 보던 백기의 눈빛은 갑자기 부드러워졌다.
"그래. 그럼 유연 프로듀서님에게 신세 좀 질게요."
3장
내가 백기를 따라 집에 돌아왔을 때는 날이 완전히 저물었다.
나는 약간 피곤해서 소파에 누웠다.
"선배, 언제 업무 보고하러 가세요?"
오후 내내 분투를 해서 우리는 가까스로 전체 구조의 골격을 정리했고 '조잡한 초고'의 내용을 거의 반 이상 늘렸다. 하지만 최종 원고까지는 아직 많이 부족했다.
백기는 내 옆에 앉아 자연스럽게 손을 뻗어 나를 안고는 내가 그의 어깨에 머리를 기댈 수 있도록 했다.
"내일."
"아…… 잠깐만요. 내일이요?!"
나는 벌떡 일어나 깜짝 놀란 얼굴로 그를 쳐다보았다.
"그럼 시간이 얼마 없잖아요?!"
백기는 눈이 휘둥그레진 내 모습을 보고도 자신은 아무 일 없다는 듯이 빙그레 웃었다.
"맞아. 하지만 이제 걱정은 안되네."
그는 수중의 보고서를 내려다보면서 입가에 보기 좋은 곡선을 그렸다.
"이전에는 이 보고서를 쓰는 게 정말 귀찮다고 생각했어. 임무를 하는 것보다 만 배는 더 성가셨거든. 그런데 이제는 이 일도 그렇게 재미없지 않네."
맑고 투명한 눈동자가 나를 바라보았다. 그 부드러움 속에는 안정감이 느껴졌다.
"네가 날 돕고 있으니 반드시 좋은 결과가 있을 거라고 믿어."
눈 깜짝할 사이에 멍해진 나는 자신도 모르게 잔뜩 올라간 입가를 억누른 채 백기의 손을 잡고 일부러 그에게 물었다.
"그런 생각들이 지나치게 낙관적일까봐 걱정되지 않아요?"
백기는 웃으면서 고개를 저었다.
"네가 있으니깐 자신 있어."
나를 믿고 있는 그의 눈빛을 보며 나는 순식간에 투지가 불타올랐다.
나는 그의 손에 있는 업무 보고서를 들고 자세히 훑어보면서 머릿속에 내용 구조를 다시 한 번 정리했다.
"이 '날카로운 칼날' 프로젝트를……실행하는 과정에서 어려움이 많았나요?"
나는 손끝으로 종이를 살며시 눌렀다. 이 계획은 꼬박 3개월 동안 실행되었는데 다른 임무와 비교해봤을 때 시간이 비교적 많이 걸린 것 같았다.
백기는 그때를 회상하듯 눈썹을 살짝 찌푸렸다.
"사실 순조롭게 진행됐었는데 준비 기간이 비교적 오래걸렸어. 당시 상대를 일망타진하려고 대원들을 데리고 3개월 가까이 잠복했어."
백기는 차분하게 말했지만 내 마음속에 파란을 일으켰다.
나는 틀림없이 실제 상황이 그가 말하는 것처럼 그렇게 가볍고 쉬운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안다. 그에게 물어보고 싶은 것도 많고 그가 3개월 동안 무슨 일을 겪었는지 알고 싶었지만 그것이 기밀사항이기 때문에 그는 나에게 상세히 알려줄 수가 없었다.
잠시 침묵한 뒤, 나는 천천히 입을 열었다.
"그 3개월 동안 밥은 잘 먹었어요?"
백기는 잠깐 멍하니 있다가 한참 후에 웃음기 띤 목소리로 말했다.
"너무 오래돼서 기억이 잘 안 나."
기억이 안 나는 게 어디 있어. 그냥 날 속이고 싶지도, 걱정시키고 싶지도 않은 거잖아.
나는 직접 반박하지 않고 앞에 있는 사람을 쳐다보았다.
부드러운 달빛과 불빛이 뒤엉켜 그의 몸 위로 내려앉았다. 부드럽고 생동감 있게. 마음속 깊이 쓰라리고 떫은 감정이 솟아올라 참지 못하고 그를 껴안았다.
"선배, 수고했어요."
귓가에 백기의 부드러운 웃음소리가 들려왔고 그는 나를 꼬옥 안았다.
"이만하면 힘들지 않네."
그는 턱을 내 어깨에 기댄 채 그리웠다는 듯이 간절하게 문질러댔다.
"어떡하지. 좀 졸리네. 차라리 내일 내가 즉흥으로 보고할게. 치우고 자자."
나는 잠시 멍하니 있다가 그의 품에서 고개를 들었다.
눈앞의 사람의 눈은 전혀 졸려보이지 않고 오히려 밝게 웃고 있기만 했다.
나를 놀리고 있는 그를 보며 나는 웃음을 터뜨렸다.
"푸흡...... 유혹하지 말아요!"
나는 머리를 흔들며 의지를 되찾고는 손가락으로 옆에 있는 원고를 눌렀다.
"백 지휘관님 잊었나요? 저희 아직 4페이지나 남았어요!"
*
"삐빅"
새벽, 자명종 소리의 재촉에 나는 천천히 눈을 떴다. 햇빛은 소파 위로 떠올라 몸을 덮은 이불 위로 내려앉았다. 나는 굼뜨게 땅에 흩어진 서류철들을 훑어보았다. 어젯밤 백기와 원고를 몇 번이나 수정했는지, 어렴풋이 이게 꿈인지 현실인지 헷갈렸다.
갑자기 누군가 내 눈앞을 지나가면서 탄탄한 허리와 탄탄한 복근이 보일락 말락 했다.
천천히 시선을 올리자 백기의 맑고 아름다운 얼굴이 눈에 들어왔다. 나는 어리둥절하면서 내 얼굴을 꼬집었다. 나의 기척을 알아차리고 백기가 쪼그리고 앉아 시선을 나의 눈높이에 맞추었다.
"식탁 위에 아침 준비했어. 이따가 일어나 데워야 해. 너는 좀 더 자도 돼."
코앞에 있는 그의 숨결과 얼굴의 아픔이 나를 완전히 깨어나게 했다.
"......! 괘, 괜찮아요......"
나는 벌떡 일어나 막 무슨 말을 하려다가 백기의 머리 위에 있는 바보털 몇 가닥을 보았다. 나는 눈을 깜빡이며 참지 못하고 웃었다.
"선배, 제가 있다가 머리 해 드릴게요~"
"......머리를 해준다고?"
"네!"
재빨리 세수를 하고 거실로 나오자 백기는 이미 내키지 않는다는 듯 양복을 입고 어색하다는 얼굴로 넥타이와 씨름을 하고 있었다.
"......나는 넥타이 매는 게 익숙하지 않아."
"제가 할게요!"
나는 웃으며 앞으로 걸어가 까치발을 하고는 백기가 지켜보는 가운데 그의 넥타이를 잡았다.
백기는 눈을 약간 크게 떴다. 나는 눈앞에 있는 그의 목젖이 위아래로 미끄러지는 것을 보았다. 그는 살짝 고개를 돌렸고 따뜻한 숨이 내 뺨을 가볍게 스쳤다.
내가 아랫입술을 오므리자 심장박동이 나도 모르게 좀 빨라졌다. 짧지만 긴 시간이 흐르자 나는 그의 멋진 넥타이를 매주는 데에 성공했다.
그 후 나는 또 백기를 데리고 화장실로 가서 도구를 갖추어놓고 그를 대신해 스타일리시하게 헤어스타일을 정돈했다.
"이따가 보고서 몇 번 더 보세요. 어떤 부분은 임의로 고친 거라 좀더 익숙해져야 해요. 참, 마지막 그 말은 정리됐어요? 어젯밤에 너무 늦게 고쳐서 기억에 없어요......"
나는 손가락으로 백기의 부스스한 머리카락을 가볍게 정리해주며 수다를 떨었다. 백기는 웃음을 머금고 거울을 통해 나를 보더니 목청을 가다듬었다.
"경찰학교를 졸업하고 특별 파견서에 부임해 지금까지 그 맹세를 계속 가슴속에 새겼습니다......'목숨과 열정을 다해 많은 사람들의 평안을 위해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두려워하지 않고 영원히 자신의 신앙을 배신하지 않을 겁니다.' 지난 한 해 동안 특별 파견서가 한 일을 돌이켜봤을 때 저는 여러분에게 이렇게 말하는 것이 부끄럽지 않습니다. 확실히 우리의 '모든 총알은 정의만을 위해 울렸습니다.'"
차분하고 확고한 음성이 실내에 울려퍼졌다. 마지막 한마디를 막힘없이 끝낸 백기는 잔뜩 놀란 나를 보고 빙긋 웃었다.
"유연 장관님 이제 안심하셨을까요? 오늘 업무 보고는 반드시 순조롭게 끝날 겁니다."
그는 내 손을 잡아 손바닥에 쥐고는 자신만만하게 입꼬리를 올리고 고개를 뒤로 젖히며 마지막 말을 높였다.
"나는 특파서의 지휘관일 뿐만이 아니라 연이의 백 지휘관이기도 하니까. 실망시키지 않을게."
4장
기다리는 시간은 항상 유난히 길기만 하다.
백기가 떠난 후 나는 다른 일을 하면서 주의를 돌리려 했지만 무슨 일을 하든 머릿속에는 '백기' 라는 두 글자만 남았다.
업무 보고는 끝났을까? 잘 했을까? 보고를 들은 간부들의 반응은 어떤지 궁금했다......
넋을 잃고 창밖의 석양을 보고 있었을 때 갑자기 문 앞에서 노크 소리가 났다.
"똑똑-"
"......갑니다가요!"
나는 손에 들고 있던 빗자루를 내팽겨치고 쏜살같이 문을 향해 뛰어갔다. 문을 열자 백기가 활짝 웃는 얼굴로 문 밖에 서 있었다.
멀끔하게 양복을 입은 그의 눈에는 환한 빛이 반짝였다.
"다녀왔습니다."
모든 의문이 순식간에 사라졌다. 물어볼 필요도 없이 그의 표정에서 답을 알 수 있었다. 그의 업무 보고는 틀림없이 내가 기대한 대로 순조로웠을 것이다. 그런 생각이 미치자 나도 활짝 웃으며 손을 들어 백기에게 경례했다.
"어서 오세요, 백 지휘관님!"
백기는 집에 들어온 후 양복 외투를 벗으려고 했지만 호기심 어린 표정으로 그의 곁에 달라붙어서 이것저것 물어보는 나 때문에 그럴 수가 없었다.
"선배의 연설이 끝나고 간부들이 다들 선배가 글도 아주 잘쓰고 말도 아주 잘한다고 생각하지 않았나요?"
나는 선배가 이야기하는 게 듣고 싶어서 의기양양하게 눈짓을 보냈다.
"그 사람들은......"
백기는 말을 질질 끌더니 뭔가 생각난 듯 빙그레 웃었다.
*(회상)*
회의장, 업무 보고를 마친 백기가 자리를 뜨려는데 누군가 백기를 불렀다.
"녀석!"
듬직한 얼굴의 사내가 성큼 걸어와서 그의 어깨를 툭 쳤다.
"네 업무 보고 들었는데 괜찮잖아! 이 녀석 이런 걸 혼자 쓸 줄 알았다니 치켜세워줘야 겠는걸!"
"어린애도 아니고 당신의 치켜세우기에 흥미없어요. 유, 부, 장, 님."
남자는 호탕하게 웃었고 이어서 자부심과 거만함이 잔뜩 섞인 표정을 지었다.
"아이고, 내가 그때 가르쳤던 아이가 지금은 정말 냉정해졌네. 그땐 어떻게 '형'이라고 불렀는지 잊어버려서 괴로워."
"......"
잠시 불쾌해하던 백기의 얼굴에는 그리움과 존경심이 교차하는 미소가 번졌다.
"유교관님, 유 형, 티베탄 마스티프 치와와...... 또 뭐로 불리고 싶어요?"
"그 별명 좀 잊어버려!"
남자는 이를 갈고 있는 것 같았지만 말투에는 전혀 화가 느껴지지 않았다.
"경찰학교에서부터 지금까지...... 너를 보았지만 정말 많이 변했구나."
백기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웃기만 했다.
"마지막에 언급한 고마운 그 사람 때문이야? 언제쯤 보여줄거야?"
남자의 말을 듣고 백기의 눈은 순식간에 부드러워졌다. 이어서 그는 손을 들어 어깨에 올려진 손을 담담하게 치웠다.
"안 보여줄겁니다."
"......이놈의 자식!"
*
"그 사람들이 왜요?""
나는 추억에 잠긴 백기를 보며 주저없이 그의 손을 흔들어 보았다.
"아무것도 아니야."
백기는 생각을 거뒀고 그의 웃음기는 더욱 깊어졌다.
"그 사람들은 네가 아주 잘 썼대."
"정말이에요?"
나도 모르게 좀 더 자랑하고 싶어서 그가 가져온 보고서의 복사본을 들어서 보는데 보고서 상단의 빈 곳에 글씨가 몇 줄 쓰여있었다.
나는 한눈에 이것이 백기의 글씨체라는 것을 알아차렸다.
"마지막으로 한 분께 감사 인사를 드립니다......"
내가 다 읽기도 전에 백기가 손에 있는 보고서를 가져가고는 곤란한 표정을 지었다.
"이건 그냥 하는 김에 쓴 거야."
나는 눈을 가늘게 뜨고 백기를 살펴보았다. 분명히 그는 나에게 그 몇 줄을 보이려고 하지 않았다.
감추면 감출수록 문제가 생긴다고.
"좋아요. 그럼 됐어요!"
백기가 한숨을 돌리는 사이에 나는 갑자기 벌떡 일어나 곧바로 그를 향해 달려들었다.
"!"
[##_Image|kage@btwi5s/btrpeKmDR3i/AAAAAAAAAAAAAAAAAAAAALz70oXF7iSLi4KFzDo14MfYy21kiZtkELeHbDYFWC3D/img.jpg?credential=yqXZFxpELC7KVnFOS48ylbz2pIh7yKj8&expires=1777561199&allow_ip=&allow_referer=&signature=nE1Q9n6SjwDLa4L68rOrLIF3%2BZY%3D|CDM|1.3|{"originWidth":1527,"originHeight":2692,"style":"alignCenter"}_##]
놀라움으로 그의 눈이 휘둥그레진 다음 순간, 중력이 느껴지지 않았다.
"아......!"
나는 엉겁결에 비명을 질렀다. 정신이 아찔해진 사이에 내가 백기의 몸을 누르고 있는 것을 발견했다. 그 호박색 눈동자에는 당황한 내 얼굴이 거꾸로 비쳤다. 백기는 아주 빠르게 내 팔을 잡아 내가 관성으로 인해 옆으로 넘어지지 않게 했다.
"......"
방 안에는 잠시 우리들의 어지러운 호흡 소리만이 남아 있었고 그의 손바닥에서는 뜨거운 온도가 젼해져 왔다. 나는 고개를 숙이고 백기를 바라보았다. 은은하게 반짝이는 샹들리에가 분명히 그의 눈에 들어왔다. 지금 우리들의 상황을 의식하고 난 후 그는 살짝 웃기 시작했다.
"네 앞에서는 언제나 방심하게 돼."
백기의 예쁜 눈동자에 빛과 그림자가 지나갔다. 내 마음속의 움직임이 갑자기 몸을 구부려 그의 옆얼굴에 가볍게 키스하게 했다.
"좋아요. 그럼 뺏지 않을게요. 하지만 이렇게 하면 보고서 마지막에 무슨 말을 더했는지 알려줄 수 있겠어요?"
나는 그의 가슴에 기대어 간절히 그를 바라보았다. 머릿속에 방금 얼핏 본 그 몇 줄의 글자에서 '유연'이라는 글자가 뇌리를 스치고 지나가서 나도 모르게 심장이 쿵쿵 뛰었다. 그 내용에 대해 어렴풋이 짐작은 갔지만 백기의 입으로 직접 듣고 싶었다. 내 마음을 알아차렸는지 백기는 속눈썹을 깜빡였다. 잠시 후, 그는 부드럽게 입가를 올렸다.
"마지막으로 한 분께 감사 인사를 드립니다. 그녀가 저를 도와 이 보고서를 첨삭해 주었습니다. 또한 그녀는 언제나 저를 가장 따뜻하게 지지해주고 함께해주었습니다. 일 때문에 항상 옆에 있지는 못했지만 그녀는 항상 제가 끊임없이 전진할 수 있는 원동력이었습니다."
그는 잠시 멈추었다가 계속 말했다.
"연모시를 지키기로 결심했을 때도 그녀는 저를 끝까지 지켜주었습니다."
그의 가벼운 말 한마디 한마디가 내 가슴에 와닿아 메아리를 울렸다. 나는 잠시 조용히 있다가 손을 내밀어 백기의 얼굴을 손끝으로 가볍게 그렸다.
"사실 이번에 선배를 도울 수 있어서 저도 정말 기뻤어요. 선배는 언제나 뭐든지 할 수 있을 것만 같았거든요. 차를 수리하든지, 수상 오토바이를 수리하든지 간에 제가 할 수 있는 게 없었으니까요......"
나는 불만인 척 얼굴을 부풀린 뒤 백기의 눈을 보며 진지하게 입을 열었다.
"앞으로의 백 지휘관님도 제가 보호할 거예요."
백기는 멍하니 있다가 얼굴에 가장 부드러운 웃음을 지었다.
"그래, 약속한 거야."
그는 손을 들어 내 얼굴을 가볍게 쓰다듬고는 손끝으로 흩어진 머리카락을 감았다.
"나에게 너는 아주 중요해. 나도 당연히 못하는 게 있어. 나는 식물을 잘 가꾸지 못해. 요리 솜씨도 아직 향상되어야 하고 음식의 유통기한을 기억못하고, 보고서 작성에도 유연이 네 지도가 필요해."
그의 목소리가 낮아지면서 내 머리카락을 감싸고 있던 손이 갑자기 위로 올라가 내 목덜미를 쓰다듬고는 살짝 힘을 주었다.
백기는 다가와 내 입술에 격렬하고 부드러운 키스를 했다.
"......나 혼자 할 수 없는 일도 많아."
키스가 촘촘하게 떨어지면서...... 온 세상이 '백기'의 숨결로 가득했다.
"네가 모든 일들을 도와줬으면 해. 오직 너만이 할 수 있어."
그는 분명 웃기만 했을 뿐인데 나의 심장은 뭔가에 홀리기라도 한 듯 박자를 흐트러뜨렸다. 나는 그를 바라보다가 단 한순간 몸을 숙였다.
나는 아마 일평생 이 사람을 거절하지 못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