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1
낮의 마지막 빛이 좀처럼 사라지지 않고 있었다. 빛과 그림자의 경계가 하늘을 선명하게 갈라놓으며 한쪽은 밝게, 다른 한쪽은 어둠에 잠겨 있었다. 넓고 텅 빈 도로 위로 흰색 차량 한 대만이 빠르게 질주하고 있었다.
"속도 좀 내 봐."
고진은 차창 너머 멀리 우뚝 솟아 있는 연모 TV 타워를 바라보았다. 불길한 예감이 점점 짙어지자 운전 중인 특파팀 대원에게 다시 한번 속도를 높이라고 지시했다.
실종되었던 백기가 돌아왔다는 짤막한 보고를 받은 지도 벌써 십여 분이 지났다. 백기의 속도라면 지금쯤 틀림없이 TV 타워에 거의 도착했을 것이다.
지금 같은 상황에서는 어떤 Evol이든 언제 폭발할지 모르는 불안정한 폭탄이나 다름없었다. 더구나 그곳은 TV 타워였다. 오랜 조사 끝에 마침내 찾아낸 장소이자, 연모시 전역에서 발생한 Evol 폭주의 근원지였다.
차량은 다시 한번 속도를 높였다. 구름 사이로 높이 솟은 거대한 건물이 점점 가까워지더니 이내 눈앞에 모습을 드러냈다.
고진은 차가 완전히 멈추기도 전에 문을 열고 뛰어내렸다. 그리고 성큼성큼 TV 타워의 정문을 향해 달려갔다.
그때 갑자기 거센 바람 소리가 들려왔다.
고진은 반사적으로 고개를 들어 올렸다. 그 순간 눈에 들어온 광경에 심장이 멎는 듯했다. 그는 즉시 방향을 틀었지만, 허공에서 떨어지고 있는 사람들의 속도는 그보다 훨씬 빨랐다. 무거운 물체가 급격히 추락하며 공기를 가르는 소리까지 들릴 정도였다.
"젠장……!"
고진은 온몸이 찢어질 듯한 통증을 억누르며 가까스로 다시 능력을 사용했다. 희박한 공기가 힘겹게 한곳으로 모여들더니, 마지막 순간 하늘에서 떨어지는 두 사람을 받아냈다.
격렬한 통증에 눈앞이 캄캄해졌다. 고진은 몇 걸음이나 뒤로 비틀거린 끝에 겨우 몸의 균형을 잡았다.
서로를 꼭 끌어안은 두 사람이 그의 앞에 가볍게 내려앉았다.
의식을 잃은 백기는 여전히 미간을 잔뜩 찌푸리고 있었다. 제대로 붕대조차 감지 못한 상처에서는 피가 배어 나와 특파팀의 흰 제복을 거의 흠뻑 적시고 있었다.
반면 그가 품속에 소중히 감싸 안고 있는 소녀의 얼굴에는 말라붙은 눈물 자국이 남아 있었지만, 표정만큼은 무척 평온했다.
고진은 멍해진 정신을 가다듬으려는 듯 고개를 가볍게 저었다. 그리고 의식을 잃은 두 사람을 내려다보다가 저도 모르게 혀를 찼다.
"쯧, 이 녀석이 이렇게 처참한 꼴을 다 보이다니. 이 정도면 고생한 보람은 있네."
그렇게 중얼거린 고진은 뒤를 돌아보며 함께 온 의료진에게 어서 다가와 두 사람을 치료하라고 손짓했다.
그때 TV 타워 내부를 수색하러 들어갔던 소규모 부대도 밖으로 나왔다.
부대를 이끌던 대원이 고진 앞으로 달려와 보고했다.
"고 대장님, 보고드립니다! TV 타워 내부에서는 수상한 인물을 발견하지 못했습니다. 타워 꼭대기에 설치되어 있던 송신 장치도 이미 철거된 상태입니다."
결국 이번 임무의 목표는 어느 하나 제대로 달성하지 못한 셈이었다.
고진은 이마를 짚으며 한숨을 내쉬었다. 그러고는 일단 적당히 둘러댔다.
"아무래도 BLACK SWAN은 이미 목적을 달성한 모양이군."
다만 이번 작전을 끝낸 그들이 다음에는 무엇을 계획하고 있을지 알 수 없었다.
고진은 팔을 들어 가장 가까이에 있던 대원의 어깨에 몸을 기댔다. 왼손으로는 욱신거리는 가슴을 누르고 있었다. 숨을 한 번 들이쉬는 것조차 견디기 어려울 만큼 고통스러웠다.
"아아…… 너희 대장, 아파 죽겠다……."
점차 의식이 멀어지는 가운데, 귓가로 다급한 외침이 들려왔다.
"고 대장님?! 의사! 의사 선생님——!"
02
TV 타워에서의 사건이 있은 뒤, 모든 일이 정말로 일단락된 듯했다.
이번 Evol 폭주 사건으로 특파팀 대원의 절반 이상이 중상을 입었다. 임무 수행 중 Evolver를 체포하다 다친 사람들뿐 아니라, 능력 폭주로 인해 Evol 자체가 심각하게 손상된 대원들도 적지 않았다.
고진은 병원에서 이틀 동안 경과를 관찰한 끝에 마침내 의사로부터 Evol에는 큰 이상이 없으니 당분간 휴식과 요양만 잘하면 된다는 진단을 받았다.
큰 이상이 없다고는 하지만, 요 며칠 고진은 잠에서 깨어날 때마다 병실의 물건이 감쪽같이 사라져 있는 일을 자주 겪었다. 물컵이나 이불은 물론이고 심지어 침대 옆 협탁까지 사라진 적이 있었다.
이를테면 지금처럼——
고진은 눈을 뜨고 하품을 한 뒤 무심코 옆으로 고개를 돌렸다. 그런데 바로 옆 침대에 누워 있어야 할 백기가 온데간데없었다.
"큰일 났네……."
그는 이마를 짚은 채 자신이 잠결에 무의식적으로 백기를 다른 곳으로 이동시켰을 가능성이 얼마나 되는지 곰곰이 생각했다.
바로 그때 병실 문이 열렸다.
사복 차림의 백기가 성큼성큼 안으로 들어왔다. 며칠 전만 해도 중상을 입어 몸조차 가누지 못했던 사람이라고는 믿기 어려울 만큼 멀쩡한 모습이었다.
백기는 침대 옆으로 다가가 몇 번의 손놀림만으로 자신의 소지품을 깔끔하게 챙겼다.
고진은 방금 전까지 하던 터무니없는 생각을 머릿속에서 지워 버렸다.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행동하는 백기를 의아하게 바라보다가 물었다.
"넌 벌써 일어날 수 있는 거야?"
백기는 고개를 들어 아직도 병상에 누워 있는 고진을 힐끗 보더니 담담하게 대답했다.
"나 오늘 퇴원해."
"아, 그래…… 잠깐, 퇴원한다고?"
고진은 자신의 귀를 의심했다. 그러다 저도 모르게 말을 내뱉었다.
"너 분명 중상이었잖아?!"
"다 너처럼 약한 줄 알아?"
백기가 눈썹을 살짝 치켜올렸다. 고진은 그 눈빛에서 익숙한 비웃음을 분명히 보았다고 장담할 수 있었다.
그는 힘겹게 몸을 일으켜 앉으며 흐트러진 머리카락을 손으로 쓸어 넘겼다. 그러고는 불만스럽게 받아쳤다.
"내가 약하다고? 네 회복력이 비정상적으로 빠른 거겠지!"
백기는 그의 말을 상대하지 않았다. 그사이 이미 병실 문 앞까지 걸어가 막 나서려던 참이었다.
그제야 고진은 미처 묻지 못한 것이 떠올라 서둘러 질문을 던졌다.
"그렇게 급하게 퇴원하면 그 여자애는 어쩌려고?"
백기는 문에 손을 얹은 채 뒤도 돌아보지 않고 대답했다.
"걔도 오늘 퇴원해. 이따가 집까지 데려다줄 거야."
"나중에 봐."
백기는 그 말만 남기고 병실을 나섰다. 곧이어 쿵 하는 소리와 함께 문이 닫혔다.
아직도 몸 여기저기가 욱신거리는 고진은 한동안 말없이 앉아 있었다.
그러다 문득 생각했다.
……설마 진짜 내가 너무 약한 건가?
03
백기는 퇴원한 뒤로 마치 또다시 실종되기라도 한 것처럼 모습을 감췄다. 가끔 검사를 받으러 돌아오는 것을 제외하면 좀처럼 얼굴을 볼 수 없었다.
아무래도 그 소녀의 안전을 유난히 신경 쓰고 있는 듯했다. 하긴, 그런 일을 겪었으니 누구라도 그럴 만했다.
BLACK SWAN에 대한 감시도 종료되었다. 최근에는 Evol의 통제 불능으로 인한 소동이 더 이상 발생하지 않았고, 당분간은 추가적인 움직임이 없을 것이라는 판단이 내려졌다.
고진은 남몰래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그도 그럴 것이 이번 사건으로 특파팀 전체 인력의 절반 가까이가 사실상 활동 불능 상태에 빠졌기 때문이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자신의 치료도 마침내 후속 재활 단계에 접어들었다는 점이었다.
물론 가끔은 '역시 젊을 때만 못하군. 회복하는 데 이렇게 오래 걸리다니.' 하고 한탄하기도 했다.
하지만 생각을 바꿔 보니 나쁠 것도 없었다. 조금 일찍 은퇴 생활을 체험한다고 생각하면 그만이었다.
검사를 마친 고진은 느긋하게 의료실을 나섰다. 그런데 마침 복도에서 며칠 동안 얼굴을 보지 못했던 사람과 마주쳤다.
"이야, 이게 누구야. 귀한 손님이 다 오셨네."
고진은 백기에게 다가가 한바탕 놀려 줄 생각이었다. 그러나 그의 표정이 유난히 무겁다는 것을 알아차리고는 장난기를 거두었다.
"왜 그래? 네 그 아가씨한테 무슨 일이라도 생겼어?"
백기는 고개를 저었다. 잠시 침묵하던 그는 어두운 빛이 서린 눈으로 고진을 바라보며 낮은 목소리로 물었다.
"종역(钟易), 기억해?"
"종역?"
고진은 턱을 매만지며 한참을 생각한 끝에야 오래전에 특파팀을 떠난 그 남자를 떠올렸다.
종역는 한때 잠시 백기의 대장을 맡았던 인물이었다. 백기와의 사이도 제법 좋았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런데 그 사람이 갑자기 왜?
"그 사람 얘기는 왜 갑자기 꺼내는 건데?"
고진은 아무렇지 않은 척 백기의 표정을 살폈지만, 거기에서는 아무런 단서도 찾아낼 수 없었다.
백기는 시선을 내리깔고 짧게 대답했다.
"그 사람이 돌아왔어."
그러고는 그대로 자리를 떠났다.
홀로 복도에 남겨진 고진은 한동안 그 자리에 서 있다가, 뒤늦게 허공을 향해 중얼거렸다.
"돌아왔다니, 그게 무슨 뜻이야?"
고진이 알고 있는 정보에 따르면 종역는 몇 년 전 명령을 위반했다는 이유로 특파팀에서 제명되었다.
그 후로는 마치 세상에서 자취를 감춘 것처럼 소식이 끊겼다. 고향으로 돌아가 결혼하고 아이까지 낳았다는 이야기를 얼핏 들은 것이 전부였다.
그렇다면 돌아왔다는 말은 무슨 뜻일까?
연모시로 다시 돌아왔다는 것일까.
아니면…… 자신이 짐작하고 있는 또 다른 가능성을 뜻하는 것일까?
고진은 손가락 끝으로 손가락 마디를 가볍게 문질렀다.
오래전에 끊었던 담배가 문득 다시 피우고 싶어지는 기분이었다.
04
'고참' 생활도 오래 계속되니 슬슬 지루해졌다. 고진은 기지개를 켰다. 몸 여기저기서 뚝뚝 소리가 나는 것이 꼭 녹이 슬어 가는 것 같았다.
오늘은 고진이 지휘관실을 찾아간 지 다섯 번째 되는 날이었다. 지휘관은 마침내 그의 업무 복귀를 허락했고, 다른 지역으로 파견되는 지원 임무를 하나 맡겼다.
"역시 나 없이는 안 된다니까."
고진은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멜로디도 없는 콧노래를 흥얼거리며 밖으로 걸어 나왔다.
특파팀의 복도는 무척 조용했다. 이번 대규모 부상 사태 이후 사람들의 활기마저 모두 사라져 버린 듯했다. 하지만 그 적막 속에는 또 무언가가 숨어 있는 것 같았다.
고진은 복도 모퉁이에 설치된 감시 카메라를 힐끗 바라보았다. 그러고는 카메라의 사각지대에 이르자 방향을 틀어 다른 쪽으로 걸어갔다.
남자의 직감이 여자의 직감만 못하다고는 하지만, 가끔은 제법 쓸모가 있을 때도 있는 법이다.
고진은 그렇게 생각하며 익숙한 솜씨로 특파팀의 기밀 자료 시스템에 침입했다.
오랫동안 묻혀 있던 정보들이 한 줄씩 눈앞에 나타났다. 내용을 읽어 내려갈수록 조금 전까지 여유롭던 그의 표정이 점점 무거워졌다.
"이거 참, 골치 아프게 됐네."
고진은 턱을 매만지며 한숨을 내쉬었다. 그러고는 백기에게 메시지 하나를 보냈지만 답장은 오지 않았다.
약속한 시각인 늦은 밤, 고진은 창가의 어둠 속에 서서 담배를 피우고 있었다.
고요한 복도에서 희미한 발소리가 들려왔다. 고진이 고개를 돌리자 예상대로 백기가 모습을 드러냈다.
백기의 손에는 고진도 익히 알고 있는 검은 상자가 들려 있었다. 그것이 무엇인지는 한눈에 알아볼 수 있었다.
고진은 하얀 담배 연기를 내뿜으며 무심한 듯 물었다.
"그거 종역의 파일이야?"
"너도 전부 알아낸 거야?"
백기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 모습을 본 고진은 목소리를 낮췄다.
"너 지금 무슨 짓을 하고 있는지 알아?"
백기는 대답하지 않았다.
두 사람은 아무 말 없이 서로를 마주 보고 서 있었다.
한참이 지나서야 백기가 입을 열었다. 그의 목소리는 조금 잠겨 있었다.
"넌…… 정의가 뭐라고 생각해?"
뜻밖의 질문에 고진은 잠시 멍해졌다. 그는 이번에는 백기의 표정을 진지하게 살펴보았다.
백기의 눈에는 깊고 짙은 어둠이 드리워져 있었다. 마치 예전의 확신과 빛이 모두 사라져 버린 듯했다.
고진은 그에게 대체 어떤 변화가 일어난 것인지 이해할 수 없었다.
그는 잠시 생각에 잠겼다가 손에 들고 있던 담배를 비벼 껐다. 그리고 나서야 대답했다.
"널 막지는 않을게."
고진은 의외라는 듯 자신을 바라보는 백기에게 손을 가볍게 흔들어 보였다. 그러고는 자료실을 향해 걸어가며 아무렇지 않게 한마디를 던졌다.
"뒷정리는 예전처럼 나한테 맡겨."
복도 모퉁이에 이르렀을 때, 고진은 뒤돌아 멀어져 가는 백기의 뒷모습을 바라보았다.
그의 뒷모습은 여느 때와 다름없이 곧고 당당했다.
그런데도 어째서인지 그 영혼만큼은 흔들림과 후회 사이에서 고통스럽게 떨고 있는 듯했다.
고진은 익숙한 솜씨로 기밀 자료실에 남긴 흔적을 지웠다.
그리고 낮은 목소리로 백기가 했던 질문을 되뇌었다.
"정의란…… 뭘까."
05
특파팀을 떠나 임무를 수행하러 가기 전, 고진은 백기에게 연락했다.
전화 통화에서 백기는 앞으로 무슨 일이 벌어질지 이미 짐작하고 있는 듯했다. 그는 마지막으로 고진에게 자신을 대신해 보이지 않는 곳에서 그 소녀의 안전을 지켜 달라고 부탁했다.
고진은 그 부탁이 마치 전장에 나가기 전, 다시는 돌아오지 못할 사람처럼 뒷일을 맡기는 것 같아 영 찜찜했다. 그래도 백기에게 진지하게 약속했다.
전화를 끊은 고진은 고개를 들어 먹구름이 잔뜩 낀 하늘을 바라보았다. 마치 공기 속에서 폭풍우가 곧 몰아칠 것 같은 기운이 느껴지는 듯했다.
지원 임무는 그리 순조롭지 않았다. 다행히 마지막까지 별다른 실수 없이 마무리하기는 했지만, 일이 여러 차례 꼬이는 바람에 모든 문제를 해결하고 나니 이미 며칠이 지나 있었다.
고진은 남은 일을 처리할 인원들을 배치한 뒤, 혼자 먼저 연모시로 돌아왔다.
하지만 특파팀에 복귀한 자신을 기다리고 있는 것이 무엇인지는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
바로 백기의 수배령이었다.
"이게 대체 무슨 일이야?!"
고진은 특파팀 내부에 내려진 수배령을 빠르게 훑어보았다. 내용을 읽으면 읽을수록 어처구니가 없었다.
'특파 B-7, 특별 행동대의 임무 수행을 방해하고 조직에 대한 반역을 꾀함.'
이런 혐의가 다른 누구도 아닌 백기에게 씌워졌다고?
고진은 동료들의 만류도 뿌리치고 지휘관실로 들이닥쳤다.
양기준은 사무용 책상 뒤에 앉아 있었다. 머리카락 한 올부터 옷차림까지 흐트러진 곳 하나 없이 단정한 모습이었다.
그는 손에 들고 있던 만년필을 내려놓고 고개를 들어 고진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냉담하게 물었다.
"고진, 보고할 일이라도 있나?"
"왜 백기에게 수배령을 내리신 겁니까?"
고진이 두 손으로 양기준 앞의 책상을 세게 내리쳤다. 커다란 소리가 사무실 안에 울려 퍼졌다.
평소의 느긋하고 장난스러운 표정은 온데간데없었다. 그의 목소리에는 억누르기 힘든 분노가 서려 있었다.
"제가 조사한 바에 따르면 이번 특별 행동대의 새로운 작전은 특파팀 내부의 정식 임무 절차를 거치지 않았습니다. 그러니 지휘관님께서는 설명하실 책임이 있습니다. 대체 그 부대를 어디에, 무슨 임무를 수행하도록 파견하신 겁니까?"
"자네, 선을 넘었군."
양기준은 책상 뒤에서 몸을 일으켰다. 두 손으로 옷깃을 가지런히 정리한 뒤 다시 고개를 들었을 때, 그의 눈빛에는 이미 날카로운 기색이 서려 있었다.
"특파 B-7이 특파팀을 배신했다는 것은 명백한 사실이다. 자네는 그것만 알고 있으면 돼."
"고진, 자네도 이제는 분명히 알아야 할 때가 됐네…… 자신이 생각하는 정의가 무엇인지."
그 말은 밤새도록 고진의 머릿속에서 메아리쳤다.
밤이 깊어지고 다시 동이 틀 때까지도 그는 도무지 답을 찾을 수 없었다. 최근 들어 이 문제를 고민한 것이 벌써 몇 번째인지 셀 수도 없었다.
고진이 지휘관을 다시 찾아가 따져 물어야 할지 망설이고 있을 무렵, 상황에 또다시 변화가 생겼다.
윗선의 강제적인 지시로 백기에 대한 수배령이 취소된 것이다.
그 소식을 들은 고진은 피식 웃었다.
그는 주머니에 남아 있던 담배 반 갑을 꺼내 쓰레기통에 던져 넣었다. 아무래도 백기는 무사한 모양이었다.
고진은 생각했다.
정의란 무엇일까?
그저 옳은 일을 하고, 끝까지 그 뜻을 지켜 나가는 것뿐이다.
우리가 지금까지 그래 왔던 것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