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역,의역 많으니 참고만 해주세요
*언급된 꽃은 Campanula 과 입니당 (원문: 风铃花) 꽃말은 '따뜻한 사랑, 변하지 않는다. 상냥한 사랑, 만족, 감사'
1장
구름 사이로 햇살이 끝없이 내리쬐면서 페르미네로 마을이 아침 일찍 깨어나고 있었다. 나는 싱싱한 캄파눌라 꽃을 꽃다발로 묶어 꽃집 문을 열고 지나가는 이웃에게 미소로 인사를 했다.
"레이먼 부인, 즐거운 하루 되세요."
여자는 걱정스러운 듯 몹시 불안한 얼굴을 하며 내게 다가왔다.
"이웃나라에서 전쟁이 일어났다는데 우리에게도 영향이 올까봐 걱정이야……"
"그곳은 우리와 아주 멀리 떨어져있으니 당분간은 영향을 받지 않을 거예요."
내 말에 그녀는 안색이 밝아지며 한숨을 쉬고는 돌아섰다. 이때 맞은편 치즈 가게에 익숙한 모습이 나타났다. 갈색 머리 청년은 오늘 파는 치즈라고 적힌 작은 간판을 내걸었다. 나는 미소를 지으며 그의 뒤로 걸어가 목을 가다듬었다.
"굿모닝, 백기."
그는 목소리를 듣고 몸을 돌려 나를 보고는 가볍게 웃었고, 편안하고 여유있는 말투로 말했다.
"좋은 아침이야. 유연아."
백기는 이 치즈 가게의 견습공으로 치즈 가게 부부는 그를 아주 좋아했다. 그는 치즈 만들 줄은 몰랐지만 가게의 다른 일들은 모두 할 수 있었다. 레이먼 부인의 말에 따르면 그가 온 후 온 도시의 아가씨들은 여기에 와서 치즈를 사먹는 것을 좋아한다고 했다.
"오늘은 오렌지 치즈를 추천할게, 먹어볼래?"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방금 묶은 캄파눌라 꽃을 그에게 건네주었다.
"전과 마찬가지로, 오늘의 치즈값이에요."
그는 이슬이 묻은 꽃에 눈을 멈추더니 눈웃음을 치고는 가게에서 포장된 치즈를 가져다주었다.
멀리서 교회의 종소리가 울리고 송가가 바람을 타고 이곳까지 날아오면서 하얀깃털이 조용히 날아갔다. 나는 눈을 숙이고 백기가 건네준 치즈를 받고 몸을 돌렸다.
"가야 돼?"
"네, 오늘도 처리해야할 캄파눌라 꽃이 많아요."
내가 백기와 작별하고 꽃집 문을 열었을 때 이미 누군가가 가게에 서 있었다. 하얗고 부드러운 날개를 가진 그는 나를 보고는 불쾌하다는 듯 눈썹을 찡그렸다.
"천궁의 기한이 곧 만료돼. 넌 아직도 네가 누군지 몰라? 여긴 왜 온 거야."
나는 눈을 빠르게 깜빡이며 엄격한 동료의 질문에 대답했다.
"그럼요. 심판 천사로서 악마로 타락한 전직 대천사장 백기를 심판하러 왔어요. 죄악으로 가득한 천사의 날개를 제 손으로 베어 버릴거예요."
"기억해. 대천사가 자리를 비운지도 오래니 백기의 날개를 가져가면 네가 바로 차기 대천사장이야. 인간 행세 놀이도 이제 끝났어."
*
"백기를 심판하고 그의 날개를 박탈하라. 그는 이미 두 개의 악의 힘을 통제할 수 없다."
거룩한 하늘에서 신의 위엄있는 소리가 내 귓가에 떨어졌다. 오랫동안 듣지 못했던 그 이름을 듣고는 나는 살짝 떨리는 것을 참을 수 없었다. 전 대천사장 백기, 그는 하늘에서 가장 자랑스러운 전설이자 가장 강한 천사였다. 다른 천사들과 마찬가지로 나도 몰래 그를 흠모했지만 그에게 다가갈 용기는 내지 못하고, 기둥 뒤에 숨어 그의 모습을 훔쳐보기만 했다. 내 기억에 가장 남는 건 그가 캄파눌라 꽃바다를 지날 때 두 날개로 부드러운 꽃을 스치는 뒷모습이었다.
"제 직책을 지키기 위해 인간세상으로 가서 백기의 죄를 심판하겠습니다. 제 판단을 거친 뒤에."
잠시 침묵한 후에 나는 신의 요구를 받아들였다.
나는 백기가 악마가 되었다고 믿지 않았다. 설령 그가 하늘에서 금기시된 존재가 되었다고 해도 다른 천사들은 그를 외면했다. 하지만 나는 그에게 다가가 그가 타락했는지 직접 확인하고 싶었다.
*
하지만 인간 세상에서 백기는 반년 동안 평범한 견습공처럼 살았다. 그는 인류를 해치지도, 악마라고 할 수 있는 행동도 하지 않았다. 오랜시간이 지나자 나는 심지어 그가 일반인이 된 건 아닌지 의심하기 시작했다. 조용하고 부드러운 시간은 끊임없이 나의 의지를 소모시켰다. 나는 가끔 이런 평범한 시간이 영원히 이렇게 지속되기를 바라기도 했다. 그래서 나는 항상 그 재판을 끊임없이 내일에 맡겼다. 하지만 임무 기한이 다가오면서 더이상은 이럴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
나는 어둠을 틈타 백기의 방으로 잠입해 침대에 누워있는 청년을 한눈에 보았다.
그가 악마라면 위험을 느낄 때 반드시 힘으로 자신을 보호할 것이다.
내가 천사의 칼을 그의 목구멍에 들이댔을 때 그는 좋은 꿈을 꾸기라도 하는 듯 눈을 감고 조용히 숨을 쉬고 있었다. 이 순간 나는 놀랍게도 살짝 기뻐했다. 아마도 신이 틀렸을 것이다. 백기는 타락하지 않았을 것이다. 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 다음 순간 누군가에 의해 손목이 움켜잡혔다. 저항할 수 없는 힘에 내 손안의 검은 바닥에 떨어졌다. 내 손목은 백기에게 짓눌렸고, 내 몸은 침대에 눕혀졌다. 나를 내려다보는 두 눈은 차갑고 위험했다. 나는 그의 등 뒤로 짙고 불길한 분위기로 휘감긴 검은 깃털을 어렴풋이 볼 수 있었다.
"넌 나에게 손을 댔어."
그는 멀리 떨어져 있는 검을 힐끗 쳐다보더니 나를 향해 눈을 돌렸다. 왠지 모르게 그의 눈빛이 좀 슬프게 느껴졌다.
"이 반년간 한번씩 나에게 접근해왔던 건, 사실 나를 관찰하기 위해서였어? 이제야 날 죽이기로 한 거야?"
그의 뒤에 있는 날개를 본 순간 나는 내가 흠모하던 대천사장이 악마가 되었다고 확신했다.
어째서? 나는 마음 속의 슬픔을 억누르고는 백기의 눈을 똑바로 보았다.
"백기, 당신의 천사의 날개는 이미 검게 물들었어요. 심판의 천사로서 제가 당신을 심판할게요."
백기의 눈빛이 어두워졌다.
"날개 하나로 나를 단죄하겠다고?"
그의 목소리가 숨소리에 섞여 내 뺨에 닿았다. 깃털이 스치는 것처럼 나는 순간 멍해졌지만, 백기는 갑자기 일어나 나를 놓아주었다.
"넌 헛걸음 했어. 내 날개는 이미…… 타서 잿더미가 되어버렸으니까."
그의 날개가 갑자기 펼쳐지면서 은빛으로 새까만 날개가 그려졌고, 불에 타서 신비한 문자로 된 불꽃이 날개를 감싸며 그를 태우고 있었다.
어떤 곳은 이미 불에 타서 반쯤 낡은 상처를 드러내고 있었는데, 그는 아마 치유할 생각도 하지 않았던지 상처에 흉악한 딱지가 생기도록 내버려두어 아름다운 날개는 온통 상처로 덮여있었다. 백기는 냉담하게 나를 쳐다보았다. 그의 뒤에서는 불꽃이 기승을 부리며 온몸에 있는 악마의 기운을 모두 핥았다. 이게 내가 악마의 기운을 느끼지 못했던 이유였다. 하지만 눈부시게 주목을 받았던 대천사장은 왜 타락했을까? 타락하더라도 그의 날개는 왜 이렇게 상처투성이가 됐을까?
2장
나는 백기의 다락방을 몇바퀴 돌았지만 들어가지 못했다. 그는 다락방에 어떤 금제라도 내린 듯, 내가 날개로 살짝 창가를 건드리니 짙은 붉은색의 흔적이 나타났다. 지난번 백기가 말을 끝내고 나를 그의 집에서 내쫓은지 일주일이 지났지만 나는 그를 다시는 볼 수 없었다.
전쟁이 이미 이웃나라로부터 국경에까지 이르렀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요 며칠동안 나의 꽃집에는 관심을 갖는 사람이 전혀 없었고, 마을 전체가 긴장하고 불안해하기 시작했다. 맞은편 고요한 치즈 가게를 보면서 나는 늘 화염에 얽매인 그의 날개와 나에게 시선을 주지 않으려는 그의 차가운 눈빛을 떠올렸다. 나는 섭섭하긴 했지만 오히려 백기의 날개가 검게 물든 경위를 알고 싶었다. 그가 타락해서 날개가 검게 물들었다고 믿고 싶지 않았지만 그것이 사실이라면. 나는 그의 날개를 직접 잘라낼 것이다. 이는 천사를 심판하는 나의 직책이며, 동시에…… 오랜 흠모에도 종지부를 찍을 것이다.
갑자기 1층에서 목이 잠긴 고함소리가 강렬한 불길한 냄새를 동반하며 들려왔다. 나는 즉시 땅에 떨어졌다. 백기의 힘이 느슨해진 것 같아 나는 순조롭게 대문으로 슬그머니 들어갔다.
1층은 짙은 어둠에 둘러싸여 있었고 나는 검은 깃털들이 화염에 반쯤 타서 공중에 떠있는 것을 보았다. 백기는 어둠 속에 숨어있었고 그의 뒤로 검은 날개가 펼쳐지면서 이따금 으스러지는 소리가 났다. 화염으로 이루어진 주문은 그의 날개를 단단히 감싸고 더욱 격렬하게 타오르는 것 같았다.
"백기?"
"오지 마!"
그의 목소리는 들킬까봐 당황하는 기색으로 역력했지만 그는 숨길 수 없을 정도로 화염에 저항하고 있었다.
"백기, 너 괜찮아……?"
내 말이 끝나기도 전에 거센 바람이 나를 향해 불어오는 것이 느껴졌다. 그는 한 손으로 나의 어깨를 쥐고 나를 어둠 속으로 끌어들였다. 백기의 호흡은 내 얼굴을 덮쳤다. 그의 눈에는 초점이 없었고 커다란 두 날개는 끊임없이 흔들렸다. 곁눈질로 나는 그의 발 아래에 산산이 부서진 석상을 보았다. 그는 계단 입구에 등을 받치고 있었고, 어깨를 움켜쥔 곳에서는 또렷이 통증이 들려왔다. 하지만 그의 힘은 내 몸을 먼지로 만들 것처럼 점점 쎄졌다.
"……아파!"
예전에 싸웠던 가장 강력한 악마들도 지금처럼 백기의 힘에는 저항할 수 없을 것이다. 그는 이성을 잃은 짐승처럼 아파보였지만 내 목소리를 듣고는 갑자기 눈빛이 꿈틀거렸다.
"여길 떠나!"
그는 눈을 감고 신음 소리를 내며 움켜잡았던 내 어깨를 조금씩 풀어주고는 나를 갑자기 밀어냈다. 제정신이 아닌 그의 두 눈을 보자 가슴이 무언가에 눌려 숨이 막힐 것만 같았다. 나는 이런 그를 여기에 혼자 둘 수 없었다. 나는 반드시 백기를 도와야 해.
나는 숨을 깊이 들이마시고는, 다음 순간, 있는 힘껏 그에게 달려들었다. 백기는 믿을 수 없지만, 머리보다 먼저 몸이 본능적으로 나를 껴안았다. 그가 뒤쪽 계단으로 넘어지는 순간 나는 그의 이마에 세게 키스했다.
천사의 키스로 고통을 없앨 수 있다는 건 천사들이 다 아는 지식이었다. 백기는 놀란 듯, 계단에 날개가 휘어져 있었다. 나는 그의 가슴을 짚고 일어서서 그의 눈을 뚫어지게 쳐다보며 진지하게 물었다.
"아직도 아파요?"
백기는 반응하며 무의식적으로 내 허리를 감고 있던 손을 풀었다. 맑고 깨끗한 그의 표정을 보고 나서야 나는 안도의 숨을 내쉬며 계단을 기어 올라가 가볍게 등불을 켰다.
등불로 눈앞에 있는 사람을 비추니, 그의 머리카락과 날개가 따뜻한 빛으로 물들었다. 그 빛 속에서 나는 백기의 귀가 살짝 붉으스레해진 것을 보았지만 그는 얼굴을 살짝 돌리고 차갑게 말했다.
"아까 그럴 필요 없었어."
"하지만 그러면 날개가 계속 아플 거예요."
백기의 그림자와 얼굴의 반은 어둠 속에 숨어있었는데, 답답하고 기쁘지 않은 소리가 들려왔다.
"이건 내 일이니 너랑은 상관없어. 가까이 오지 마."
그는 모든 몸을 어둠 속에 숨기고 마치 두껍고 차가운 벽처럼 흔들리는 빛이 그 사이를 가리고는 내가 그에게 접근하는 것을 가로막고 있었다. 하지만 나는 여전히 그에게 몇걸음 다가갔다.
"사실 내가 여기 처음 왔을 때부터 내 정체를 알고 있었죠? 당신이 악마라면 처음부터 나를 공격했을텐데 당신은 그러지 않았어요. 당신의 날개는 검게 변했지만 페르미네로에 있는 동안 당신은 한 사람도 해치지 않았어요. 내가 한밤중에 당신을 기습했어도 나를 제압하기만 했지. 그냥 내버려두었잖아요. 검은 날개를 제외하고는 당신이 하는 모든 일은 악마의 기준에 맞지 않아요."
백기는 고개를 살짝 돌려 나를 보았다.
"하고 싶은 말이 뭐야?"
"저는 그냥 제가 본 일과 당신을 돕고 싶은 이유에 대해서 말하고 있는 것 뿐이에요."
"나를 돕는다고? 네 임무는 중요하지 않은 거야?"
희미한 빛이 백기의 눈에 조금도 숨김없는 관심과 저항심을 비췄다. 나는 그를 향해 고개를 저었다.
"저는 제가 본 것을 믿고 제 마음에 따라 최후의 심판을 할 거예요. 그리고 제 결론은 당신을 돕고 싶다는 거예요."
백기의 눈빛은 한 순간 흔들리더니 다시금 원상태로 돌아왔다.
"넌 날 도울 수 없어."
그가 손에 쥐는 대로 내 검이 순순히 그의 손에 떨어졌다. 그리고나서 그는 갑자기 장검을 자신의 두 날개에 찔렀다. 검은 그의 날개에 닿기도 전에 화염에 타 그 자리에서 부러졌다. 나는 놀라서 칼자루만 남은 검을 바라보았다. 화염의 주문의 힘은 막아내기 어렵고, 거부할 수 없는 것처럼 느껴졌다.
"……이건 어떻게 된 거예요?"
"이건 네가 해결할 수 있는 일이 아니야. 네가 해결할 필요도 없어."
*
깊은 밤, 삼엄한 뜰 밖에는 순찰 천사가 엄숙하게 외벽을 둘러싸고 있었다. 나는 그림자 속에 숨어 그들이 옆벽으로 들어갈 때 몰래 들어갔다. 천궁의 많은 성물과 서적들은 이곳에 있었다. 백기의 날개의 주문은 정말 이상하니 아마 여기에서 그 답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나는 손끝에서 희미하게 빛을 모아 책꽂이를 뒤적거렸다.
"여긴 책이 너무 많네……"
나는 참다 못해 한마디를 내뱉었다. 몇 번이고 뒤적였지만 답을 찾을 수 없었다. 그런데 갑자기 저 깊은 곳에서 뭔가 빛나는 것이 보였다. 무의식적으로 다가가서 보니 유난히 무겁고 평범한 책이었다. 위에는 심지어 이름조차 없었다. 그 책은 어둠 속에서 신비하게 빛을 냈고, 신들의 속박에 얽매여 있었다. 나는 잠시 망설이다가 장검을 꺼냈다. 유리가 깨지는 소리가 들리는 것 같아 책을 펼쳤는데 그 안에 기록된 것이 천궁의 역사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나는 책 속의 글을 빠르게 뒤적이기 시작했다. '천사장', '죄악', '용기'…… 눈부신 글자가 눈에 들어와 나는 참지 못하고 숨을 들이마셨다. 한창 책장을 넘겨보고 있을 때 책장 속에 자그만한 캄파눌라 꽃 한송이가 끼워져있었다. 그것은 몇 년간 방치된 듯, 꽃잎 전체가 바람에 말려있었다.
"누구냐?!"
창밖에서 갑자기 경계하는 소리가 들리는 것을 보니 방금 난 소리에 놀란 것 같았다. 나는 재빨리 책을 내려놓고는 옆책꽂이에 숨겨두고 떠날 방법을 궁리했다. 그때 뒤에 있던 '벽'이 갑자기 밀려나 다음 순간 나는 손목을 잡히며 끌려갔고 뜨거운 체온이 내 주위를 감쌌다.
"나야."
3장
순찰 천사는 신중하게 구석구석을 돌며 계속 자리를 뜨지 않았다. 외벽 밖, 좁고 밀폐된 공간에는 고요하고 가까운 호흡만이 남아있었다. 백기의 가슴에 기대자 끊임없이 속도를 내는 심장 박동 소리에 정신이 혼미해졌다. 내 심장소리인 것인지 아니면 귓가에서 들리는 건지 분간할 수 없을 정도로. 어두운 공간 속에서 나는 그의 얼굴조차 제대로 볼 수 없었고, 유난히 다가오는 숨소리만 들렸을 뿐, 그리고 이건 긴 한숨으로 끝을 맺었다.
"방법을 찾으려는 솜씨는 괜찮은데, 자신에게는 퇴로를 남겨둘 줄 모르잖아. 너무 위험해."
그는 어쩔 수 없이 웃는 듯 했다. 우리는 마치 호기심에 살금살금 들어온 두 명의 작은 천사처럼 느껴졌다.
"모험으로 말하자면 여긴 천궁이에요. 악마씨, 잡히면 어떻게 될지는 알고 온 거예요?"
"들키지 않을 확신이 있어서 온 거야."
그는 말꼬리를 살며시 치켜올리고는 자신감과 오만함에 가득 차서 말했다.
벽 밖의 발자국 소리가 조용해지기 시작한 걸 보니 경계가 풀리기 시작한 것 같았다.
"참, 천궁에 왜 왔는지 아직 안 물어봤네요."
백기의 표정은 어둠 속에 있어서 잘 보이지 않았지만 나를 감쌌던 팔이 한순간 굳어진 것을 느끼고는 나는 의심스러운 듯 고개를 들었다.
"설마 절 미행한 거예요?"
"조사해보려던 일이 있었어. 너를 만난 건……그냥 우연이야."
말을 내뱉는 숨소리가 입술에 닿자 나는 마음이 들뜨는 것을 참을 수 없었지만 애써 의지를 되찾으려고 노력했다.
"뭘 조사하려고요? 지금 용기를 조사하고 있는데 어떻게 계속 할 수 있곘어요?"
손끝 아래 몸이 순간 굳어져 숨을 죽였다.
"천궁의 역사에 따르면 신은 모든 대천사장에게 용기로 인간 세상에서 깊은 죄악까지 흡수하는 직책을 부여했어요. 날개가 검게 변한 건 그가 지닌 죄악의 힘이 한계를 초월하기 시작했기 때문이고, 그를 속박하기 위해 신은 금빛 불꽃을 내린 거였어요."
"이제 그만하자. 다시 조사해봐도 너에겐 어떤 이득도 없을 거야."
나는 몹시 화가 나서 무거운 말투로 말했다.
"당신은 이미 이 일을 알고 있었을 거예요. 아마도…… 대천사장이 되기 전부터요. 그렇죠?"
그 자그마한 캄파눌라 꽃은 어느새 책 속에 꽂혀, 과거의 시간이 역사에 속하는 문자로 되는 것을 조용히 바라보았다.
*
백기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고, 벽 밖에서는 침묵이 흘렀다. 그는 문을 열고는 내 손을 잡고 재빨리 담장을 넘어 한적한 오솔길로 걸어갔다. 오솔길 끝에 넓게 펼쳐진 캄파눌라 꽃 밭에 해가 차츰 밝아왔다. 바람이 꽃 바다를 스쳤던 일이 예전처럼 선명했다. 백기가 검은 날개를 펼치자 그 위에는 깃털이 여전히 타고 있었다. 차가운 화염이 계속해서 그를 태우고 있었다. 아까부터 그는 아픔을 참고 있었지만 별다른 티를 내지 않았다.
"맞아, 알고 있었어. 누군가는 그 일을 해야했고, 마침 그게 나였을 뿐이야. 그리고 나는 이 일을 정말 하고 싶었어."
그는 조금도 주저하지 않고 말했다. 나는 그가 정말 자신이 포로가 된 것에 개의치 않는다는 것을 깨달았다.
"저도 마찬가지예요. 신이 제게 맡긴 임무는 당신의 직책을 대신하는 거예요. 당신의 날개가 거의 타들어 가고 있으니 제가 그 일을 할 차례예요."
불에 타고 있는 날개는 너무도 흉악했지만 고요하여 침묵하면서도 꿋꿋하게 이 모든 것을 받아들이는 주인과도 같았다.
"그래서 뭐 어때?"
그는 내가 보지 못했던 밝고 오만한 표정을 지어보였다.
"날개가 다 타버려도 몸이 남아있잖아. 신이 너를 보낸 건 나를 믿지 않기 때문에 내 날개를 자르고 네가 내 책임을 이어받게 하기 위해서야. 하지만 난 할 수 있어. 신은 내가 할 수 없다고 생각하는 일을 나는 할 수 있어."
"……하지만 이 세계의 '악'은 제거할 수 없어요. 그건 인간의 본능이에요! 언젠가는 당신의 몸도 다 타버릴 거예요!"
"그럼 끊임없이 강해져야지."
"……네?"
"끊임없이 강해질거야. 끝없는 미래까지."
"……"
가슴이 답답했다. 앞에 있는 이 사람은 완전히 막무가내였다.
"백기, 당신은 포기할 생각을 한 적이 없었어요?"
이 책임을 포기하고 끝없는 속박에서 벗어나서 이렇게 무거운 족쇄를 짊어지지 않는……
백기는 침묵하고 말하지 않았지만 나는 이 문제의 답을 알고 있었다. 대 천사장 백기만의 영예와 긍지를 알고 있으니까. 생각 안 해봤겠지.
"생각해본 적 있어."
나지막한 그의 목소리에 떨구고 있던 내 눈이 깜빡거렸다.
"나는 신이 아니니까, 나도 물러서고 싶고 포기하고 싶을 때도 있어. 하지만 물러설 수 없는 이유를 찾았으니까."
들판의 캄파눌라 꽃이 가볍게 흔들리며 듣기 좋은 소리를 냈다. 내가 그를 바라보니 그는 아름답게 웃고 있었다.
"대천사장에 속하지도 않고, 신의 것에도 속하지도 않아. 그게 나만의 이유야."
그는 직설적으로 이런 말에 하는 것에 익숙하지 않은지 볼을 옅게 물들이고는 잠시 멈추었다.
"이 반년 동안 네가 곁에 있어서 무슨 일을 하든지간에 나는 즐거움을 느꼈어. 나는 네가 행복하길 바라. 새장에 갇히는 대신에 말이야.
결국 나는 백기를 설득하지도 못했다. 페르미네로로 돌아온 후 나는 그에게 임무를 포기할테니 마지막으로 꽃집에서 그를 만나길 바란다고 말했다.
전쟁은 끊임없이 확대되고 많은 사람들은 적막한 마을에서 벗어나 중심도시로 향했다. 내가 정신에 팔려있을 때 백기는 약속대로 꽃집에 도착했다.
우리는 문 앞에 앉아서 오렌지 치즈를 먹었다. 바람에 그의 잔머리가 날려 그의 맑은 눈이 드러났다.
"오늘 교회는 송가가 없는 것 같네."
"응, 전쟁이 다가왔으니깐요."
백기는 가벼운 척 했지만 옆구리를 감싸고 주먹을 꽉 쥔 손은 그를 배신한지 오래였다. 그래도 그가 나를 마지막으로 만나러 왔다.
"미안해, 네 임무를 실패하게 해서."
내가 고개를 돌려 백기를 바라보니 그는 의자에 약간 뻣뻣하게 앉아있었지만 얼굴에는 계속 옅은 웃음을 띠고 있었다.
"돌아가면 신에게 벌을 받을지도 몰라요. 나를 하늘에서 쫓아내고 완수할 수 없는 임무를 하도록 내보낼지도요."
"그러지 않을 거야."
"아마도 오늘 우리는 안녕이라고 말하겠지만 다시는 만나지 않을 거예요. 후회하지 않겠어요?"
백기는 멍하니 있더니 무엇인가를 말하려는 듯 하다가 갑자기 몸을 멈추고 손바닥에 주먹을 꽉 쥐고는 꾹 참았다.
그의 몸은 거의 붕괴될 지경에 이르렀다.
*
나는 재빨리 그를 꽃집으로 끌어들였다.
꽃집에 숨으려는 순간 백기의 등 뒤 날개가 번쩍 펼쳐졌고 그의 한 손은 책상 가장자리에서 죽어라 버티고 있었다.
"백기……"
백기는 갑자기 내 손목을 잡고 다른 한 손으로는 나의 눈을 가볍게 덮었다.
내가 어리둥절하니, 그가 괴로워하는 목소리가 내 귀에서 들려왔다. 그는 나지막하고 인내심이 어린 목소리로 말했다.
"유연아, 나 정말 아파."
그가 잠시 멈추자, 나는 어둠 속에서 공중에 떠다니는 먼지와도 같은 그의 목소리가 내 귀에 들려오는 것을 들었다.
"……키스해 주지 않을래?"
천사의 키스가 고통을 없앨 수 있다는 건 천사들이 다 아는 지식이다.
그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나는 까치발을 하고 그의 뺨에 입을 맞추었다.
그의 손이 내 동작을 따라 흘러내렸고, 나는 나를 깊이 바라보고 있는 그의 눈동자를 보았다. 그의 볼에 입을 맞추는 순간 그의 뒤에 있는 날개는 갑자기 더욱 뜨거워졌다. 모든 것을 잿더미로 태울 것 같았다.
4장
호박색 눈동자는 미련이 담긴 눈을 하고 내 얼굴에 멈추었다. 그의 속눈썹은 가볍게 떨렸다. 밀려들어왔던 고통은 눈에서 천천히 사라졌고 따뜻한 햇빛은 그의 얼굴 위로 내려앉았다. 손에 든 캄파눌라 꽃이 땅에 떨어졌다. 이렇게 따뜻한 햇빛 속에서 나는 열 손가락을 백기의 손에 감았다. 다른 한 손으로 등 뒤에서 심판의 검을 뽑아내자 새하얀 날개가 펼쳐졌고 손목을 뒤집어 날카로운 검으로 등 뒤쪽의 날개를 심하게 베어버렸다. 다음 순간 나는 검을 버리고 백기의 품 속으로 달려들었다. 상처입은 날개를 앞으로 모으고 우리는 서로 감싸 안으면서 그의 뒤에서 타오르는 날개를 향하여 나아갔다. 나는 충격을 받은 백기를 향해 웃어 보였다.
"백기, 당신은 천사를 심판하겠다는 결심을 과소평가했어요."
"너 그걸 어떻게 안 거야……?"
"저는 또 한 번 몰래 도망갔지만 이번에는 빠져나갈 길을 잘 남겨뒀어요. 당신은 역사상 최고의 대천사장이라고 하지만, 저도 대단한 것 같아요."
선혈이 화염 주문을 붉게 물들였고 화염 속에 검은 날개와 흰 날개가 엉켜붙어 있었다. 피로 이루어진 주문은 백기의 날개를 떠나 수많은 검은 조각을 들고 나에게 쏟아졌다. 동등한 대가를 지불하고 동등한 힘을 전이시키는 것, 이것이 만물이 운행하는 규칙이자 내가 찾은 가장 외로운 방법이었다.
"이거 놔! 이건 내가 짊어진 거니 네가 책임질 필요가 없어!"
그의 몸은 이미 극한에 이르러 더이상 나를 제압할 힘이 없었다. 나는 타는 아픔을 참으며 그에게 다가가려고 노력했다.
"책임지는 게 아니에요. 백기, 이건 제 소원이에요."
그의 두 눈은 휘둥그레해졌고, 입술은 보이지 않게 떨렸다.
*
조각들이 끊임없이 내 몸으로 쏟아져 들어왔고, 나는 그 죄를 백기의 힘과 기억까지 이어받았다. 나는 그의 기억을 보았다. 나는 그가 대천사장으로서 오랜 시간동안 외롭게 인간세상에서 걸어온 것을 보았다. 그의 새하얀 날개는 눈부시게 빛이 났다. 나는 그가 다락방에 초라하게 주저앉아 신의 주문과 끝없는 악념을 짊어지고 어둠 속에서 이를 갈며 버둥거리는 것을 보았다. 나는 또…… 기나긴 어둠과 세월의 흐름 속에서 돌연 그의 시선의 중심을 차지한 그 그림자를 보았다. 그 기억은 따뜻한 색채를 띠고 그에게 잘 숨겨져 있었다. 그 사람이 그에게 접근하는 목적이 날개를 자르는 것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그건 나였다. 반년 동안 그가 본 매 순간의 나였다. 모든 조각들은 다 흩어져 내 날개 속으로 들어갔다. 두 날개는 마치 무수한 두 인간으로부터 내민 손에 찢기듯 떨어지는 것 같았고, 마지막 깃털까지도 새까맣게 물들었다. 이것이 원래 그가 계속해서 감당해오던 것이었다.
"백기, 당신은 제가 왜 꽃집에서 캄파눌라 꽃만 파는지 알아요? 예전에 제가 흠모하던 대천사장이 천궁 위의 캄파눌라 꽃 바다를 가장 좋아했기 때문이에요. 그의 날개가 캄파눌라 꽃을 스쳤을 때 마치 세상의 빛과 꽃 향기가 모두 그 날개에 떨어지는 것만 같았어요. 신은 그가 타락했다고 말했지만 저는 믿지 않았어요. 오랜 시간이 흐른 뒤 저는 어둠 속에 숨어있는 그를 찾았고, 그가 숨긴 상처를 보았어요. 빛이든 어둠이든 그의 두 날개 아래 모두 부드러운 마음이 있는 것을 발견했어요. 저는 당신이 잿더미가 되는 걸 원치 않아요."
백기의 눈동자는 내 말에 다른 온도로 물들었다. 그는 내 손을 거꾸로 잡고는 처음으로 피하지 않고 나를 품에 안았다. 먼 곳에서 사람들의 울부짖음과 함성이 들려오자 사악한 생각이 날개깃으로 밀려들었다가 화염에 짓눌렸다. 나는 있는 힘을 다해 고통을 참았고, 모든 깃털이 바늘처럼 나를 찔렀다. 하지만 백기의 따뜻한 손바닥이 나의 등을 가볍게 쓰다듬었고 부드럽고 차디찬 입술이 나의 이마에 떨어져 부드럽고 솟구치는 힘이 나의 몸속으로 들어왔다.
"백기……!"
마른 날개는 천천히 펼쳐지고 검은 깃털은 타면서 시들었다. 하지만 내가 인간세상에서 본 것 중에 가장 순결하고 때 없는 깃털이었다.
"천사의 키스가 고통을 없앨 수 있다는 건 천사들이 모두 알고 있는 지식이야."
"당신은 한 번도 그런 적 없었잖아요……"
나는 떨면서 그의 옷자락을 움켜잡았다. 마음 속에 어떤 감정이 한없이 번졌다. 그는 가볍게 웃었다. 이마의 잔머리가 내 귓가를 스치면서 끝없는 고통 속에서 작은 진실들을 가져다주었다. 백기는 지금껏 타락한 적이 없었다.
날개가 끝없이 검게 물들더라도, 불꽃이 끊임없이 그를 침식하더라도 그는 항상 자랑스럽고 빛나는 대천사였다.
"나는 내 신앙을 위해서 모든 것을 바칠 줄 알았어. 내가 잘못한 것 같아."
짙게 아쉬움과 안도감을 내뱉은 그는 나의 뺨에 입맞춤을 했다. 나는 몸 속에 따뜻한 어떤 것이 가슴에서 새어나와 나와 백기의 날개에 녹아드는 것을 느꼈다. 텅 빈 자리에 가늘고 희미한 빛이 피어났다. 그 빛들은 점점 눈부시게 변하면서 남은 상처에 피어나 새하얀 깃털이 자라나고 있었다. 부드러운 빛이 구름을 통해 백기의 몸에 떨어졌다. 그는 자신의 날개를 보며 뭔가를 알고 있는 것처럼 살짝 웃었다. 그는 고개를 숙이고 미련하게 손가락으로 나의 볼을 쓰다듬고 있었다.
"신이…… 그래서 너를 여기로 보내셨구나."
그의 날개는 갑자기 펼쳐져 빛이 그 위를 비추었고 그는 마치 계속해서 빛을 입고 있는 것처럼 거룩했다. 그는 나의 허리를 감싸 안고 양 날개를 흔들어 나를 데리고 공중을 향해 날아갔다. 나의 날개는 여전히 검은색이지만 주문은 그의 힘에 의해 소멸되었으니 더이상 타는 고통을 참을 필요가 없었다. 백기는 어쩔 수 없다는 듯이 웃으며 내 뒤에 있는 날개를 바라보았다.
"이제 넌 정말 대천사장이 되었으니 나를 대신해서 세상의 모든 악을 짊어져야 해. 세상의 악은 멈추지 않지만, 내가 너를 도와 속박한다면 나처럼 그렇게 고통스럽지는 않을 거야. 내가 너를 지켜줄게."
그는 항상 간결한 사람이지만 나는 이 사람이 말하면 말한 대로 지킨다는 것을 안다.
나는 무거운 짐을 벗은 듯 모든 걱정을 내려놓고 백기의 가슴에 기댔다.
"하지만 저는 날개를 다쳤으니 오랫동안 치유해야 괜찮아질 수 있을 거예요."
나는 백기가 웃는 것을 들었다. 새가 우리 발 밑에서 날개를 치며 멀리 따뜻한 곳으로 날아갔다.
"그게 무슨 상관이야? 내가 바로 너의 날개야. 네가 가고 싶은 곳이면 어디든지 갈 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