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장
지잉—— 테이블 위에 놓인 휴대폰이 살짝 움직였다.
나는 자른 빵을 토스터기에 넣고 버튼을 누른 다음 몸을 돌려 휴대폰을 들었다.
중요한 메세지는 아니었다. 화면에는 어떤 APP의 실시간 추천 라이브 영상 뿐이었다.
제목이 내 시선을 사로잡았다. '특파서 다시 한 번 큰 사건 해결, 지휘관 공로성 수상'
클릭을 하니 페이지에 페이지에 비디오가 떴다.
뉴스 보도의 전반 3분은 선배가 지휘관으로 부임한 이후 해결한 주요 사건들을 요약하는 내용이었고, 화면에는 가끔 선배의 모습이 스쳐 지나갔다.
곧이어 화면에는 마이크를 든 기자가 나타났다.
"백 지휘관님이 이끄는 소대가 최근 초국가적 사건을 해결했다고 합니다."
"시민의 안전을 위해 노력하시는 백 지휘관님의 노고를 치하하기 위해 정부 인사에서 특파서에서 환영식을 개최했습니다."
"백 지휘관님은 이 자리에서 특수경찰 공로상을 수상할 예정이었는데요,"
"유감스럽게도 임무에서 돌아온 지휘관님을 만날 수 없었으며, 상은 특파팀의 고 대장님이 대신 수령했습니다."
"카메라를 고 대장님에게 비춰보겠습니다."
"고 대장님, 백 지휘관님은 오늘 어떤 이유로 특파서에 돌아오지 않으셨나요?"
고진은 특파팀 대원 다운 분위기를 물씬 풍기며 트로피를 든 채 엄숙한 표정으로 명료하게 말했다.
"지휘관님은 따로 일이 있으셨습니다. 보안 사항이라 말씀드리지 못한 점 양해 부탁드립니다."
카메라가 다시 기자를 비추자 그녀는 감동하며 말했다.
"백 지휘관님은 지금도 어딘가에서 시민의 안전을 위해 묵묵히 일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나는 말없이 휴대폰을 내려놓았다.
토스트기가 잘 구운 빵을 내뱉자 나는 빵 위에 잼을 바르고 접시에 올려 주방에서 나왔다.
통 유리창을 통해 따스한 기운을 머금은 햇살이 쏟아져 들어왔다. 시상식에 참석하지 않았다던 백 지휘관님은 지금 우리 집 소파에 누워 있었다.
나는 새벽에 문 앞에서 선배를 보았을 때를 떠올릴 수밖에 없었다.
내가 하품을 하며 문을 열었을 때 언제나처럼 선배가 문 앞에서 나를 기다리고 있었고, 뒤에서 떠오르는 아침 햇살과 함께 내 눈에 들어왔다.
나는 하품을 하다 말고 그 자리에서 굳어 버렸다.
사실 며칠 전에 나는 그가 또 한차례 중요한 국제 사건을 해결했다는 소식을 들었고 언론을 통해 정부가 그에게 특수경찰 공로상을 수요하기로 했다는 소식도 들은 상태였다.
그래서 당연히 여러 일에 얽매여 있는 백 지귀관님을 만나려면 시상식이 끝날 때까지 기다려야 한다고 생각했다.
문을 여는 순간 선배는 부드러운 표정으로 나를 향해 살며시 미소지었다.
"유연아, 나 돌아왔어."
"네, 무사히 돌아와서 다행이에요!"
"그런데 이따가 특파서에서 시상식이 있는 걸로 아는데"
"여기로 온 건…… 그쪽으론 안 가려는 생각이에요?"
"응, 갈 필요 없어."
그는 아직 임무용 제복을 입고 있었다. 은제 휘장은 햇빛 아래에서 차가운 빛을 반사하고 있었다.
그런데 검은색 장갑을 낀 손에는 아침 식사가 담긴 가방이 들려 있었다.
내 시선이 봉지에 머무는 것을 보고 그가 설명했다.
"아직 아침을 안 먹어서 너희 집 아래에서 사 왔어."
"이따가 같이 먹자."
그는 자연스럽고 여유롭게 내 손을 잡고 우리 집에 들어왔고, 뒤에서 부는 바람이 살며시 문을 닫았다.
그래서 지금 이런 상황이 된 것이었다.
내가 샌드위치를 준비하는 동안 선배는 이미 제복을 갈아입고 샤워한 뒤, 나른하게 소파에 다리 한쪽을 구부린 채 소파에 기대어 쉬고 있었다. 나는 샌드위치를 테이블 위에 올려놓고는 방금 읽은 뉴스가 생각나서 고개를 돌 백기를 바라보았다.
선배는 내 시선을 알아챘는지 고개를 살짝 돌렸다.
"왜?"
"인터뷰를 피하려고 고진 씨에게 대리 수상을 부탁한 거예요?"
백기는 망설임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맞아."
"대단하신 지휘관님이 시상식에 참석하지 않고 그 대신에 우리 집 있다니."
백기는 나른하게 웃으며 눈꺼풀을 살짝 감은 채 살짝 늘어지는 말투로 말했다.
"막 임무를 끝마쳐서 아주 피곤해."
"사람들과 어울려야 하는 곳에는 가고 싶지 않아."
"그냥 네 옆에서 쉬고 싶어."
<독점 방송국·대리 수상>
"고진, 마무리 작업은 끝났어?"
"거의 다 끝났어, 너는 언제 합류할 거야?"
"난 아직 좀 남았어."
"그래, 나중에 서에서 보자."
"아니, 난 안 갈 거야."
"아? 시청에서 와서 상 받으라고 했잖아……"
"난 처리해야 할 일이 좀 남았다고 해줘."
"아——알겠다."
"또 급하게 너의 집사람( 你家那位 )을 보러 가는 거겠지."
"고진, 요즘 말이 좀 많아진 것 같은데."
"그러는 백 지휘관님께선 그분 이야기만 나오면 말이 많아진다고 생각 안 하십니까?"
"……"
"너에게 맡길게. 끊는다."
"야야 잠깐만."
"말은 쉽지, 그 상 받으면 트로피는 어디에 둘 거야? 네 사무실?"
" ……창고에 둬."
"그래, 만인이 존경하는 백 지휘관님은 여자 친구 보러 얼른 가보셔야 하니까."
"오늘은 나 고진이 '특파서의 빛' 이라는 칭호를 떠맡아야 하는 운명이겠네."
"참, 유연씨에게 안부 전해줘!"
"그래."
"하지만 그녀는 네가 안부 묻지 않아도 잘 지내."
2장
오랜 시간을 함께 보냈지만 가끔 너무 직설적인 태도의 선배는 당해낼 수가 없었다.
나는 가볍게 기침을 하고 햇빛에 젖어든 선배의 뻗친 머리카락을 보고 아무렇지 않은 척 손을 뻗어 부드럽게 가라앉혀 주었다.
"그런데…… 그 상이 중요하다고 들었는데 안 가도 정말 괜찮을까요?"
백기는 손에 든 유리잔을 내려놓고 내 손바닥을 향해 머리를 기울였다. 빛에 따라 그의 호박색 눈동자가 차분하게 빛났다.
"괜찮아."
"미리 말해뒀으니 고진이 잘 처리할 거야."
"난 그냥 네 곁에 쭉 있고 싶은데, 안 돼?"
그는 나른하게 입꼬리를 끌어 올렸다. 잠옷의 옷깃도 주인을 따라 제멋대로 열려 있었다.
나는 곁눈질로 옷깃을 따라 훑어 보았다. 이 자세는 그의 쇄골과 가슴을 절반쯤 볼 수 있었다.
갑자기 숨이 막혀서 얼굴을 붉히며 손을 빼려는데 눈앞의 사람에게 손목이 붙잡혔다.
백기가 살짝 힘을 주자 나는 그 단단하고 넓은 품으로 쓰러졌다.
백기가 나를 품에 감싸 안고 내 목에 머리를 기댔다. 아직 물기가 남은 그의 머리카락이 내 목덜미를 쓸어 넘기며 샤워 후의 산뜻한 향기를 가져왔다.
그의 목소리가 귓가에서 들려오는데 말투가 부드럽고 느릿한 게 꼭 그가 나에게 애교를 부리는 것만 같았다.
"움직이지 마, 잠깐만 안고 있을게."
나는 늘 이런 선배에게 약했다. 나는 눈을 깜빡일 뿐, 얌전히 지금의 이 자세를 유지할 수밖에 없었다.
통유리창으로 들어온 햇빛이 아주 좋았고, 꿈에서 그리던 사람이 지금 내 귓가에서 게 숨을 쉬고 있었다. 그의 숨결이 내 모든 감각을 빈틈없이 에워쌌다. 나는 이렇게 고요한 시간 속에서 천천히 마음을 놓았다.
"사실 아까 한 뉴스에서 그 트로피를 봤어요."
백기는 무심코 '응'이라 대답했고 나는 말을 계속 이어갔다.
"꽤 시선을 끌던게 아주 위풍당당해 보였어요. 나중에 지휘관님의 사무실에 둘 건가요?"
나는 고개를 돌려 그를 바라보았다.
선배는 매우 평온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아니."
잠시 말을 멈춘 그가 머리를 다시 내 어깨에 얹고 눈을 감으며 한마디 덧붙였다.
"특파서 창고에 던져둘 거야."
나는 방금 비디오에서 봤던 그 위기 상황 속에서 뛰어다니는 그 특파팀 대원들을 떠올리며 생각에 잠겼다.
"그동안 다들 고생했을 텐데 긴장을 풀 기회가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백 지휘관님께선 대원들의 노고를 위로할 방법을 생각해봐야 하지 않을까요?"
"아니면 회식을 하는 건 어때요?"
나는 신이 나서 반짝이는 눈빛으로 선배를 바라보며 제안을 했다.
선배의 옷이 나의 갑작스러운 움직임에 구겨져서 주름이 생겼다.
그가 충분히 온기를 취한 짐승처럼 느릿느릿 일어나더니 속눈썹을 늘어뜨리고 손끝으로 내 손등을 계속 어루만졌다.
"어때요?"
백기는 잠시 생각했다.
"확실히 요즘 임무는 좀 고됐지."
"하지만 내가 그 자리에 있으면 다들 진짜로 긴장을 풀긴 힘들 거야."
"그냥 휴가를 주는 편이……"
나는 즉시 고개를 저었다.
"백 지휘관님, 베테랑 회사 프로듀서로서 제안드립니다."
나는 허리를 곧게 펴고 진지한 눈빛으로 선배를 바라보았다.
"직원들과 어울려 주는 상사를 싫어하는 직원은 없어요" (이게 무슨 말이니 유연아)
"특파서라도 마찬가지이에요."
나는 다시 한 번 강조했다.
"그리고 대원들과의 관계를 좁히는 건 팀워크에 아주 중요해요."
백기는 내 말에 대답하지 않고 손가락을 들어 그 앞에 늘어뜨러져 있던 내 머리카락 한 가닥을 살짝 감아쥐었다.
백기가 내 제안을 거절할거라고 생각했을 때 그는 갑자기 입을 열었다.
"그래."
"네 말대로 하자."
그가 내 제안에 승낙하자 나는 눈웃음을 지으며 테이블 위에 있는 휴대폰 쪽으로 손을 뻗었다.
"회식 자리는 저에게 맡기세요. 장소 예약하는 건 제가 도와드릴게요!"
백기는 내 허리에 팔을 감고 여유로운 미소를 지으며 휴대폰을 건네주었다.
"허가할게."
*
나는 회사 회식 장소로 자주 이용하는 술집을 예약했다. 그런데 특파서 대원들의 행동력은 확실히 남달랐다.
나는 가게 주인과 술 목록을 확인하면서 술집 입구를 나서는데 눈앞에 펼쳐진 광경에 깜짝 놀랐다.
눈앞에는 중무장한 특파서 대원들이 무리를 이루고 있었다. 그들은 모두 제복을 빈틈없이 입고 있었고, 어떤 사람은 심지어 보안 안경까지 쓰고 심각한 표정으로 정렬하여 술집 입구에 서 있었다. 회식하러 온 게 아니라 누굴 잡으려고 온 사람들 같았다.
술집 주인도 그 자리에 얼어붙었다가 잠시 후 더듬거리며 나에게 입을 열었다.
"저, 아가씨…… 여긴 합법적인 영업장이고, 불법적인 일은 하지 않았습니다."
"아, 걱정하지 마세요. 단속하러 온 게 아니니까요."
"저희는 회식을 하러 왔습니다."
선배가 진지하게 설명했지만 효과는 미미했다.
그는 평상복 차림이었지만 여전히 선배는 위압감 있어 보였고 가게 주인은 문 뒤로 움츠러들어서야 입을 열었다.
"알, 알겠습니다…… 그럼 다들 좋은 시간 보내세요, 하하, 좋은 시간요."
나는 몸을 돌려 장비로 무장 대원들을 어리둥절하며 바라보았다……
특파서 회식은 원래 다 이런 건가?
고진이 두 손을 주머니에 꽂으며 옆에 와서 눈앞의 모습을 보고 웃음을 터뜨렸다.
"하하하하 너네 왜 그러냐? 임무에 중독되기라도 했어?"
팀원들은 서로를 바라보며 조심스럽게 말했다.
"저희는 백대장님이 말씀하신 회식( 团建 원문은 이거라서 오해한 듯 ) 이란 게 추가 훈련을 위해 현장으로 오라는 뜻인 줄 알았습니다."
"전에는 이런 일이 없었으니까요……"
"풉……"
나는 웃고 싶었지만 참으며 백기만 들을 수 있는 작은 목소리로 그를 놀렸다.
"백 대장님, 대원들 마음속에 있는 백 대장님 이미지가 좀 위한 것 같네요."
백기는 살짝 눈살을 찌푸리며 자신이 평소에 너무 엄격하지 않았는지 진지하게 반성하는 것 같았다.
이때 고진이 웃으며 손가락을 튕겼다.
"다들 긴장 풀어."
"백 대장님이 놀러 오라고 한 거니까 다들 긴장 풀고 재미있게 놀아."
"그렇죠, 백 대장님?"
백기는 고개를 끄덕이며 의식적으로 말투를 부드럽게 했다.
"이번 임무 완수하느라 수고했다. 오늘은 긴장풀고 눈치보지 말고 놀아."
대원들은 순간 멍하니 있다가 갑자기 환호성을 지르며 백기를 둘러싸고 안으로 들어갔다.
백기는 주위 사람에게 둘러싸여 있는 것이 익숙하지 않은지 표정이 심각하고 입술을 살짝 다물고 있었다. 그때 고진이 무슨 말을 했는지 그를 매섭게 노려보았다.
술집에 오색 조명이 켜지고 대원들의 장난기 어린 목소리가 문밖으로 흘러나왔다.
소란스러운 불빛이 백기의 몸을 비추면 그를 따뜻한 빛으로 덮었다.
<기억의 실루엣>
나는 휴대폰을 열심히 들여다보며 회식 장소를 고르고 있었다.
하지만 잠시 후 한숨이 나왔다.
"왜 그래?"
"결정을 못하겠어요……"
백기는 내가 건네준 휴대전화를 받아 들고 화면을 부드럽게 넘겼다.
"다섯 개의 술집 중에서 하나를 택할 생각이야?"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네, 인테리어나 거리도 적합하고 각자 특색도 있어서 좀 망설여져요."
"특파서 대원들은 어떤 스타일을 좋아하는지……"
"특별히 선호하는 건 없어."
"특별한 게 없어서 더 고르기가 힘든 거라구요."
선배는 이런 일에 아무런 관심도 없어보였지만 내가 휴대폰을 계속 붙들고 있는 것을 보고 어쩔 수 없이 말을 꺼냈다.
"선택이 어렵다면 나에게 맡겨."
그는 정보를 한눈에 훑어보고는 잠시 후 결정을 내렸다.
"여기."
그가 손가락으로 툭툭 건드리자 나는 고개를 내밀어 살펴봤다.
"블루나이트 바…… 왜 여길 고른 거예요?"
백기가 내 허리를 끌어당겨 나를 다시 품에 안았다.
"그냥 아무렇게나 골랐."
"네?"
나는 여전히 마음이 놓이지 않아서 손을 뻗어 휴대폰을 들고 다시 한번 비교해보려고 했다.
"나를 봐, 휴대폰 말고."
그는 조금 무거운 목소리로 말했다.
"우리가 단둘이 함께 있을 시간은 이미 많이 줄었어."
"더 이상 낭비할 순 없어."
특파서 내부.
떠들썩했던 시상식이 일단락되고 특파서는 다시 예전의 진지한 분위기로 돌아갔다.
당조와 몇몇 대원들은 특파서 창고로 가서 장비를 반납하고 무기를 모두 차례대로 놓는데 당조가 예리한 눈초리로 구석에 놓인 백기의 트로피를 발견했다.
당조가 트로피를 툭 건들이며 말했다.
"트로피가 왜 여기 있지?"
"고 대장님이 놓아두신 것 같은데."
당조가 무슨 말을 하려던 순간, 현장에 있던 대원들은 모두 각자의 휴대폰이 두 번 울리는 것을 보았다.
메세지는 임무를 전달하는 단톡방에서 보낸 메세지로, 하단의 새 메세지는 한 문장에 불과했다.
"오후 6시, 블루나이트 바 집합, 회식( 团建 )."
"??"
"??"
대원들은 한참 동안 서로를 쳐다보다가 겨우 천천히 입을 열었다.
"내일 특파서가 습격당하는 건가?"
"블루나이트 바라는 술집에 무슨 급한 임무가 있는 건 아니겠지?"
대원들은 방금까지 가지런히 놓여져 있던 장비를 말없이 집어 들었다……
3장
"형수님, 백 대장님과 어떻게 만났어요?"
"……고등학교 때 만났어요. 선배는 그때부터 이미 유명했어요."
어찌된 영문인지 술집에 들어서자마자 나는 지나치게 열성적인 대원들에게 끌려가 다트를 함께 하게 됐다.
다들 나를 많이 봐주긴 했지만 그래도 나는 여전히 대원들의 적수가 되지 못했다.
한 차례 게임을 더 한 후, 나는 진 사람의 벌칙인 진실게임을 하게 됐다.
선배처럼 엄숙하고 진지해 보이는 이 젊은 대원들도 제복을 벗어 던지면 장난기 가득한 청년들일 뿐이다.
나의 대답을 듣고 대원들은 한바탕 환호성을 질렀다.
"그럼 형수님이 먼저 고백하신 거예요, 아니면 백 대장님 먼저 고백하신 거예요?"
"그건……"
갑자기 모두가 반짝이는 눈빛과 큰 기대감으로 나를 바라보며 소란스럽게 박수까지 쳤다.
나는 얼굴이 빨개지며 무의식중에 고개를 들어 선배를 찾았다.
하지만 앞에 있던 대원들이 내 의도를 눈치챘는지 재빨리 내 시선을 막았다.
"형수님, 찾지 마세요. 백 대장님은 다른 대원들에게 끌려가서 다른 게임 하고 있어요."
가십거리에 눈을 불태우는 그들을 보며 나는 울지도 웃지도 못했다.
내가 머뭇거리며 설명을 하려고 할 때 뒤에서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내가 먼저 했어."
대원들은 백기를 보고는 곧바로 진지한 표정을 했다.
"크흠흠, 백 대장님."
그들의 표정은 진지했지만 서로 주고받는 그들의 눈빛에는 가십거리에 대한 기대로 가득 차 있었다.
백기는 자신의 대답이 어떤 추측을 불러일으키는지에 대해 신경쓰지 않고, 참혹한 점수 차이를 보고 눈썹을 살짝 찌푸렸다.
"어떻게 된 거야, 쟤네들이 널 괴롭혔어?"
옆에 있던 대원들이 목숨을 건지기 위해 필사적으로 변명했다.
"백 대장님, 저희는 형수님을 괴롭히지 않았습니다!"
"맞아, 맞아요, 저희가 형수님에게 일부러 점수도 많이 내드렸는데……"
그는 말을 마치기도 전에 옆에 있던 동료에게 팔을 찔려 즉시 말을 바꾸었다.
"하하하, 게임일 뿐이잖아요, 점수같은 건 다 재미를 위한 거죠."
나는 부끄러워서 머리를 긁적거렸다.
"제 실력이 너무 부족해서 엘리트 대원분들에게 상대가 전혀 못된 건 사실이에요."
백기는 아무 말 없이 내 손에 남은 다트 핀을 가져가 아무렇게나 휙 던졌다.
다트는 표적의 중앙을 관통했다.
그 후, 그가 다트를 몇 개 더 전지자 점수판의 점수는 순식간에 몇 배로 올라갔고 순식간에 상대 팀을 추월헀다.
옆에 있던 대원들은 원망스러운 표정으로 작은 소리로 입을 열었다.
"백 대장님, 이건 반칙입니다……"
선배는 나를 보며 웃더니 옆에 있는 대원을 힐끗 보았다.
"규칙에 장외 구조 금지는 없었잖아."
"그리고 이건 게임일 뿐이잖아."
백기 떄문에 말문이 막힌 대원들을 보면서 나는 무례하게도 웃음이 나왔다.
패배를 인정하지 못하는 몇명 대원들이 백기에게 대결을 신청했다. 평소에 그와 경쟁할 기회가 드무니 오늘만큼은 실컷 경쟁하고 싶은 듯 했다.
백기는 거절하지 않고 점수판을 지우라는 신호를 보냈다.
경기에 참가하지 않는 대원들도 하나둘 주위로 몰려와 흡사 미니 훈련장 같았다.
특수 경찰이 참여하는 다트 시합은 더 이상 내가 이해할 수 있는 세계가 아니었기에 나는 조용히 군중 속에서 물러났다.
계속 바에 기대어 있던 고진은 내가 혼자 있는 걸 보고 나를 향해 손에 들고 있는 맥주병을 흔들었다.
"한잔?"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승낙하고 바에서 술잔을 가져왔다.
고진은 웃으면서 맥주병을 내 잔에 가볍게 부딪쳤다.
"이번 임무는 거의 두 달이 걸렸잖아요, 모처럼 백기가 돌아왔는데 왜 둘만의 시간을 보내지 않고요?"
나는 쑥스럽다는 듯이 웃었다.
"선배의 삶에는 저만 있는 게 아니잖아요."
"이번에는 다들 너무 고생하셨으니 긴장을 잘 풀으셔야죠."
"그리고 저도 여러분들의 회식 자에 참석할 수 있어서 기뻐요."
내 말에 고진이 싱긋 웃었다. 무슨 말을 하려던 참에 멀지 않은 곳에서 갑자기 비명이 터져 나왔다.
나와 고진은 동시에 고개를 들어 다시 표창을 던지는 백기를 보았다.
그렇게 의기양양해진 백기는 내 시선을 끌었다.
"당신 앞에서 멋진 모습 보이려고 애쓰네요."
"예전에는 서너 번은 졸라야 겨우 실력을 발휘했는데 말이에요."
"네? 예전에는 선배가 이렇게 놀아본 적 없었어요?"
고진은 고개를 저었다.
그는 잠시 멈칫하다가 또 한번 놀리는 듯한 말을 했다.
"사랑의 힘은 대단한가 봐요."
나는 고진의 놀림이 너무 부끄러워서 재빨리 화제를 돌렸다.
"고진 씨는 선배가 예전에 대원들과 이렇게 놀지 않았다고 하셨는데 그럼 선배는 이전에 어떤 사람이었나요?"
"설마 항상 혼자였던 건 아니죠?"
고진은 잠시 생각했다.
"걔는 그때…… 저 말고는 친구가 별로 없었어요."
나는 고진이 하는 말 한마디 한마디를 진지하게 들으며 손에 든 컵을 꽉 쥐었다.
한참 후에 한 손이 갑자기 카운터를 짚었다.
"둘이 무슨 이야기 하는 거야?"
살짝 입을 비죽이는 백기를 보고 고진은 고개를 저으며 나를 향해 눈을 깜빡였다.
"거 봐요, 제가 그랬죠."
"평소에는 엄숙한 지휘관인데, 왜 당신 앞에서는 이렇게 껌딱지(원문 粘人; 집착한다, 질척거린다 의 의미도 있음) 같은지, 잠시라도 당신이 안 보이면 불안해하네요."
"콜록——"
나는 고진의 말에 사레가 들릴 뻔해서 술 한 모금을 우여곡절 끝에 간신히 삼켰다.
동시에 백기의 격양된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고진!"
고진은 재빨리 손을 흔들며 백기가 미처 움직이기도 전에 자리를 떴다.
"그럼, 내가 가서 쟤네들이랑 한바탕 놀아주러 간다, 그래야 너희들을 방해하지 않겠지."
그는 서둘러 대원들 속으로 도망가더니 나와 백기를 향해 손 하트를 만들었다.
"고진 씨는 참 재밌네요."
"저 녀석은 내가 내일 처리할게."
우리는 동시에 말했다. 잠시 정적이 흐르면서 나는 하하 웃기 싲가했다.
백기가 돌아서서 무력하게 내 손에 있는 컵을 한 번 보았다.
"조금만 마셔."
나는 순순히 고개를 끄덕였다.
"응, 저도 조금밖에 안 마셨어요."
백기는 바에 기대어 손가락을 내 손에 살짝 걸고 손끝을 빙빙 돌렸다.
"고진이 방금 헛소리 했지?"
나는 그를 보고 웃으며 말했다.
"별 말 안 했어요."
"그냥 선배의 지난 일에 대해 이야기를 했을 뿐이에요."
4장
"지난 이야기?"
백기는 눈썹을 치켜 들고 호박색 눈동자로 나를 뚫어지게 쳐다보았다.
내가 입을 열려던 참에 옆에서 들려오는 시끄러운 소리에 방해를 받았다.
고진이 대원들과 주량을 겨루고 있었다. 금빛 술이 쌓인 유리잔에 차례로 부어졌고 옆에는 이미 여러 잔이 비워진 상태였다.
대원들은 고진을 이기지 못할 것 같자 백기에게 큰 소리로 구조를 요청했다.
"백 대장님이 오시지 않으면 우리가 질 거예요!"
고진은 큰 소리로 웃으며 맞은 편 대원의 어깨를 두드리며 의기양양하게 무언가를 말했다.
하지만 백기는 지금 그들을 상대하고 싶지 않은 것 같았다.
그는 즉시 바에서 아까 흘린 다트 하나를 주워 대원들이 그를 위해 가득 채운 술잔으로 던졌다.
다트가 술잔에 들어가면서 거품이 사방으로 튀자 세 번째 술병을 따려던 고진은 깜짝 놀라 이쪽을 바라보며 혀를 찼다.
주위의 대원들도 웃으며 자기네 지휘관의 뜻을 알아차리고는 더 이상 그를 부르지 않았다.
백기가 나를 바라보며 설명했다.
"고진은 과장해서 말하는 걸 좋아하니 믿지 마."
주변의 분위기가 너무 뜨거운 나머지 나도 모르게 같이 웃음을 터뜨리며 손에 든 술을 반이나 마셨다.
백기는 바로 손을 뻗어 술잔에 든 나의 손을 막았다.
"주스로 바꿀래?"
나는 백기의 긴장한 표정을 보고 웃음을 터뜨렸다.
"제가 술 마시는 모습을 사람들에게 보여주고 싶지 않다고 했던 거 기억나요."
"하지만 선배가 있으면 조금은 마셔도 된다고 했잖아요."
"이제 저도 조금 마시고 싶은데 괜찮아요?"
백기는 '안 돼.'라고 말하려고 했지만 내가 그의 손을 쥐고 살며시 흔들자 백기는 하는 수 없다는 듯이 허락했다.
"알았어. 하지만 진짜 조금만이야."
나는 턱을 괴고 그를 바라보며 천천히 입을 열었다.
"선배, 저는 가끔 선배의 예전 모습을 볼 수 없어서 아쉽다고 느낄 때가 있어요."
"하지만 가끔은 선배의 지금 모습이야말로 제가 언제나 붙잡고 싶어하는 것이라고 느껴요."
술잔을 쥔 백기의 손이 잠시 멈칫하더니, 그의 맑은 눈빛이 술집 안의 밝은 불빛을 휘감고 내 눈에 들어왔다.
나는 고개를 기울이며 웃었다.
"고진 씨가 선배의 예전 모습 대해 이야기했어요."
"선배는 고진 씨가 만난 순간부터 쉽게 친해질 수 있는 사람이 아니라는 걸 알았대요."
"선배의 임무 완수율은 100%고, 사격 점수도 항상 팀에서 최고."
"선배의 근접전, 복싱, 체력도……다방면에서 모두 최고였고요."
"그런데 늘 혼자 다녔다고 했어요…… 그런 습관은 안 좋아요."
선배는 내 말에 반박하지 않고 내 말을 진지하게 듣고 있는 것 같았다.
"고진 씨 말을 들으니 임무를 완수한 뒤면 자주 사라졌다면서요?"
"한 번은 고진 씨가 선배네 집 근처를 지나가는 길에 선배를 찾아갔는데, 마침 선배 혼자 붕대를 물고 지혈하는 걸 우연히 봤다고 했어요."
목구멍에서 옅은 술기운이 피어오르자 나도 모르게 속에 담아둔 말을 내뱉고 있었다.
"사람들은 항상 그랬어요, 강한 사람은 늘 고독한 법이라고."
"저는 그 말을 믿지 않아요."
"강하고 부드러운 사람은 이 세상에서 가장 최고의 사랑을 받아야 해요."
백기는 입을 열어 뭐라 말하려 했지만 나는 손을 들어 그의 입을 멈추었다.
"사실 고 대장님의 말을 들었을 땐 이미 선배의 모습이 머릿속에 그려졌어요."
"지금과 비슷하게 잘생긴 얼굴이었을 텐데, 지금처럼 웃음이 많은 얼굴은 아니었겠."
"그래서 방금 선배가 대원들에게 둘러싸여 환하게 웃는 모습을 보고 문득 다행이라고 느꼈어요."
백기가 갈색 술이 담긴 유리잔을 흔들 그는 나를 쳐다보았다.
"왜 다행이라고 생각해?"
"이젠 선배가 주변의 온기에 둘러싸여 있으니까요."
백기는 내가 낸 결론이 의외였는지 잠시 말이 없었다. 하지만 그는 이 와중에도 끝내 내 손을 놓지 않았다.
나는 술을 한 모금 마시고 또 한 모금 마셨는데, 세 번째 모금을 마셨을 때 백기가 말을 했다.
"그때는 어떤 모습이었는지 사실 나는 잘 기억하지 못해."
내가 그를 바라보니, 빛과 그림자가 그의 각진 얼굴에 닿아 부드럽게 보였다.
술의 달짝지근한 맛이 혀끝에 퍼지고 백기는 차분하게 말을 했다.
"예전에 내가 너한테 비밀 기지가 있다고 했던 거 기억나?"
"네, 기억나요, 그 체육관."
백기는 미소를 지으며 손가락으로 잔의 입구를 어루만졌다. 총을 쥐고 칼을 들던 손이 의외로 길고 예뻤다.
"나는 그때 대부분의 시간을 그곳에서 보냈어."
"조금 단조롭긴 했지만 그게 나쁘다고 생각하지는 않았어."
"이곳으로 돌아와 다시 너를 만날 때까지는."
그는 고개를 기울였다. 내가 눈을 감아도 그릴 수 있는 그 눈매는 확신에 가득 차 있었다.
"넌 사실 내가 이미 많은 것을 가지고 있다는 걸 깨닫게 해줬어."
그는 환호하는 대원들을 다시 한번 돌아보았다.
"난 지금 생활에 아주 만족해."
그는 이미 알고 있는 사실을 말하는 것처럼 아주 담담하게 말했다.
"오래전에 난 너만 가지 된다고 생각했어."
"하지만 넌 내게 상상보다 훨씬 더 많은 것을 안겨줬어."
나는 조용히 있다가 가볍고 느렸지만 단호하게 말했다.
"아뇨, 선배가 지금 가진 건 아무것도 아니에요."
백기는 이해가 가지 않는다는 듯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나를 보았다.
"왜냐면요, 앞으로 훨씬 훨씬 더 많은 온기와 사랑이 선배를 기다리고 있을 테니까요."
나는 백기의 눈을 진지하게 응시했다.
멀리서 들려오는 소음이 점점 희미하게 느껴지더니 갑자기 술기운이 도는 걸 느끼며 백기의 손을 더 힘껏 잡고 손깍지를 꼈다.
"전 이 세상의 따뜻하고 빛나는 것들을 다 모아서……"
"계속 선배 곁을 지키면서 선배한테 하나하나 선물할 거예요……"
뺨에 열기가 올랐다. 나는 너무 센 술기운에 똑바로 서 있지도 못하고 백기의 손에 이끌려 그의 품에 안겼다.
나는 그의 차가운 옷깃에 얼굴을 비비며, 술김에 하고 싶은 말을 다 했다.
"선배의 마음을 빈틈없이 꽉 채워줄 거예요."
"언제나 선배의 오늘이 어제보다 더 행복하도록요."
나는 선배를 쳐다보았다. 나는 언제나 그의 표정을 잘 읽는다고 생각했다. 눈살을 찌푸리면 기분이 언짢다는 것, 목을 만지면 부끄럽다는 것, 귀끝이 빨개지는 것도 부끄럽다는 것……
무엇보다도 제일 중요한 건, 나를 바라보는 그의 눈에 고요한 사랑(眷恋)이 녹아 있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그 호박색 눈이 잘 읽히지 않았다.
그 속에는 뜨겁고 집요한 감정이 격렬하게 요동치고 있었다. 마치 짙고 강렬한 와인 색이 덧씌워진 것 같았다.
백기가 날 보더니 갑자기 술잔을 내려놓으며 말을 했다.
"너 좀 취했어."
내 귓불을 스치는 그의 손가락 온도가 평소와 달랐다.
"휴게실에 데려다줄게."
<기억의 실루엣>
백기가 내 손을 잡고 휴게실로 향했다. 가는 도중에 나는 내 몸에서 나는 술 냄새를 은은하게 맡을 수 있었다.
나는 화장실 앞을 지날 때 바로 걸음을 멈추었다.
"선배, 저 세수하면서 술 좀 깨고 싶은데, 먼저 휴게실에 가서 기다릴래요?"
백기는 내 얼굴을 훑어보더니 내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꿰뚫어 본 듯 옅은 미소를 지었다.
"아, 밖에서 기다릴게."
나는 살짝 멈칫했다.
"음…… 그렇게 해요."
나는 화장실에 들어가 찬물을 한 웅큼 받아 세수를 했다.
차가운 물이 얼굴에 닿자 코끝에 맴돌던 술기운이 천천히 사라지면서 흐릿했던 의식도 살짝 돌아왔다.
머릿속으로 방금 전의 장면을 떠올리니 방금 전에 선배에게 했던 말이 아직도 귓가에 남아있는 것 같았다.
"선배가 내가 술주정하는 거라고 생각할지도 모르겠네……"
나는 작은 소리로 중얼거리면서 고개를 들어 갑자기 거울 속에 비친 내 모습을 보았다.
거울 속의 나는 두 볼이 빨갏고, 눈에는 취기가 돌았다.
이렇게 엉망으로 취한 모습을 보니 역시 설득력이 없어 보였다.
나는 머리를 흔들며 정신을 차리려고 노력했다.
하지만 술기운이 여전히 남아 있었는지 나는 그만 실수로 세면대에 부딪치고 말았다.
"쓰읍……"
내가 인상을 쓰며 팔을 문지르고 있을 때 입구에서 또렷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왜 그래?"
나는 급히 고개를 들어 문밖에서 다급하게 문을 두드리는 소리를 들었다.
몇 초동안 소리가 멈추더니 그가 문을 열고 들어왔다.
"!"
"왜 들어왔어요?"
백기는 다가와 내 팔이 빨갛게 부은 것을 보고는 곧 눈썹을 찌푸렸다.
"네가 걱정돼서."
"그런데 여긴……"
"여긴 1인용 화장실이니 안심해. 문 잠궜어."
그는 이 말을 마치자마자 눈을 내리뜨고 내 팔을 들어 위의 붉은 곳을 진지하게 살펴봤다.
"사실 별거 아니에요. 그냥 제가 좀 휘청거리다가 부딪쳤어요."
"제가 술을 좀 많이 마셨나 봐요……"
나는 어눌하게 설명하다가 갑자기 몸이 허공헤 뜨는 것을 느꼈다. 나는 무의식적으로 백기의 어깨를 짚으며 비명을 질렀다.
"아……"
"움직이지 마, 내가 도와줄게."
백기는 나를 안아 세면대 위에 올려다놓았다.
커다란 거울에 기댄 채 고개를 숙여 선배를 보는데, 볼이 불타오르는 것만 같았다.
그러나 백기는 여전히 나의 팔만 꽉 쥐고 휴지에 찬물을 묻혀 그 붉은 부기를 진정시키는데 여념이 없었다.
밝은 빛이 내려오면서 그의 잘생긴 콧날과 꾹 다문 입술을 비추었다.
화장실은 한동안 쥐 죽은 듯이 조용해져서 흐르는 물소리만 들렸다.
막연한 생각이 허공을 맴돌더니 다시 느릿느릿 눈앞의 사람에게로 돌아갔다.
만약 내가 그 풋풋했던 시절로 돌아간다면, 나도 지금처럼 17살의 그가 싸워서 생긴 상처에 반창고를 조심스레 붙이고 싶었을 것이다. 그리고 나서 다시 그에게 앞으로 이러면 안된다고 말했을 거야.
빨갛게 부은 곳은 시원하면서도 안심이 되는 온도가 되었고, 잠시 후에야 백기가 내 팔을 놓았다.
"작은 부상이라도 제때에 처리해야 해."
"알겠지?"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선배를 향해 천천히 두 팔을 벌렸다.
백기가 잠시 놀라더니 그 호박색 눈동자로 조금 혼란스러운 듯이 나를 바라보았다.
"안아서 내려줘요."
나는 눈웃음을 지으며 그에게 요구했다.
백기의 눈동자에는 잔잔한 파문이 일더니 그는 손을 뻗어 나를 안아 세면대에서 내려놓았다.
문을 열자 멀리서 들려오는 시끄러운 음악과 사람들의 소리가 섞여서 우리에게 다가왔다.
이 밤은, 아직 길었다.
5장
(앞은 검열 전 내용)
넓은 휴게실에 은은한 향기가 코끝을 가득 채웠다.
나는 볼이 빨개져서 마실 물을 찾으려다 선배에게 손목을 붙잡혔다.
"선배 왜…… 읍?!"
고압적이고 열렬한 키스가 다소 가쁜 숨과 함께 나를 찾았다.
나는 손목이 잡혀 문에 기대어진 상태로 정신없이 갑작스럽게 나를 찾아온 키스를 맞이했다.
백기의 숨결이 코끝을 감싸 안았고 문에 부딪혀 허리가 아팠지만 머리는 백기가 손으로 감싸고 있었다.
문 밖으로는 대원들의 왁자지껄한 웃음소리가 똑똑히 들렸고, 문 안의 세상은 두 사람의 어수선한 숨소리만 남아 있을 정도로 조용했다.
나는 갑작스러운 키스에 멍해져 있었는데, 이내 물결을 타고 가라앉으며 모든 말을 잃고 말았다.
손은 무의식적으로 백기의 가슴을 어루만지며 부목을 붙잡듯이 그의 셔츠를 꽉 움켜잡았다.
"음……"
머릿속은 엉망이었지만 동시에 불꽃이 타오르고 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나는 숨이 가빠서 무의식적으로 손에 힘껏 힘을 쥐다가 곧이어 무언가 찌익 하는 소리를 들었다.
놀라서 고개를 숙이고 살펴보려고 했지만 눈앞에 있는 사람에게 손을 붙잡혔다.
뼈마디가 뚜렷한 손이 내 다섯 손가락 사이에 꽉 박혀서, 타는 듯이 뜨거운 온기가 입술과 치아 사이를 뒤척였고, 백기는 더욱 깊은 키스를 퍼부었다.
수개월 동안 보지 못해서 쌓였던 그리움이 이 키스에 모두 풀어져버렸다.
나는 그의 옷깃을 다시 움켜쥐며 다른 건 신경 쓰지 않고 온 신경을 그의 움직임에 집중하며 그를 맞이했다.
쓰윽——
셔츠의 단추를 몇 개 더 풀었어야 했지만 나는 참을성없이 조바심이 나서 손을 뻗어 그의 셔츠를 벗기려고 했다.
이 키스가 너무 황홀한 탓이었는지,내 손으로 마구잡이로 몇 번이나 셔츠를 벗기려고 했지만 죄다 허사로 돌아갔다.
갑자기 귓가에 살포시 웃는소리가 예민하게 포착되었다.
선배가 이 순간에도 한눈을 팔며 나를 비웃다니!
내가 항의하려고 하자 선배에게 손이 붙잡혔다.
"한눈 팔지 마."
"내가 도와줄게."
그의 말은 업술에 착 달라붙었지만 한순간의 숨결만 남기고는 바로 나를 새로운 소용돌이 속으로 끌어들이며 나를 빠져들게 했다. 그러나 손으로는 내 손끝을 자극적으로 잡아당겨, 셔츠와 가슴의 빈틈을 발견해 그의 어깨를 어루만졌고, 마츰내 그 셔츠가 등을 타고 아래로 떨어뜨렸다.
그가 내 손을 재빠르게 놓자 셔츠가 벗겨져 내 손에 쥐어졌다. 갑작스럽게 맞닿는 온기가 줄어들면서, 나는 괴로워하며 앓는 소리를 냈지만 그는 그 모든 것을 삼키며 매혹적인 미소를 지었다.
나는 몰래 눈을 뜨고 눈을 감은 남자와 그의 맨살을 보았다.
잠시 한눈 판 나에게 벌이라도 주려는 듯 백기는 내 입술을 가볍게 깨물었다가 다시 어루만져 주었다.
한참이 지나서야 그는 나를 놓아주었고 약간 쉰 목소리가 내 귓가에 울렸다.
"방금 네가 말한 거 기억나?"
그의 머리카락은 방금 전의 뒤엉킴으로 인해 헝클어져 있었고 노출 넓은 근육 라인은 뚜렷하고 매끈했으며, 입술색은 방금 전의 뒤엉킴으로 인해 촉촉한 붉은 색을 띄고 있었다.
좁은 세상에 유일하게 펼쳐진 매력적인 풍경을 우두커니 바라보다가 잠시 생각을 잃어버렸다.
(공통)
"방금……뭐랬죠?"
백기는 살짝 눈살을 찌푸리고는 맑은 눈동자로 나를 바라보며 한 마디씩 일깨워주었다.
"아까 휴게실에 오기 전에 네가 나에게 한 말."
"…… 기억해요."
백기가 내 얼굴을 빤히 쳐다보자 나는 결국 눈웃음을 치며 몸을 숙여 그의 오똑한 코끝을 문질렀다.
"내 앞에 서 있는 사람은 세상에서 가장 자유로운 바람이죠."
"전 영원히 선배 곁에서 바람과 동행하는 사람이 될 거예요."
갑자기 통유리창 밖으로 보이는 건물 조명이 하나둘씩 켜졌다. 꼭 내 말을 증명하려는 것처럼.
나는 백기를 끌고 창가로 가서 그와 함께 웅장한 야경을 바라보았다.
"봐요, 도시 전체가 제가 선배에게 한 약속을 들었잖아요."
백기는 시선을 한 번 던진 후 다시 나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연아."
그의 목소리는 아주 낮았다.
"한 번 행복을 맛본 사람은 더 탐욕스러워지기 마련이야."
"바라는 것도 더 많아지지."
[검열 전]
그는 잠시 말을 멈추고 내 입가에 손을 올려 내 입가에 묻은 립스틱을 지워주었다. (조금 전 키스 때문에~란 표현이 없음)
[검열 후]
그는 잠시 말을 멈추고 내 입가에 손을 올려 조금 전 키스 때문에 번진 립스틱을 닦아 주었다.
(공통)
손가락의 감촉이 조금 거칠었다. 백기의 기다란 속눈썹이 나를 향해 내리뜬 눈 아래 작은 그림자를 드리웠다.
"괜찮겠어?"
그는 나의 대답을 기다리고 있었다, 아주 오래 전부터 기다리고 있었던 것처럼.
내 눈엔 오직 그만 보였다. 그 질문의 함의도 알고 있었다.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오늘 밤 달빛이 너무 매혹적인 탓일 수도, 혹은 우리가 떨어졌던 시간이 너무 길었던 탓일 수도 있다.
백기와 눈을 마주친 순간, 나는 그의 눈에서 그의 솔직한 반응을 보았다.
그가 한 손으로 내 손목을 잡고, 한 손으로 나의 뒤에 있는 통유리창을 짚으며 몸을 기울였다.
조금 전의 열기가 남은 입술이 물결처럼 내 눈과 코를 지나 내 입술로 내려앉았다.
오뚝한 콧날이 내 볼을 스쳤다. 그는 눈을 감지 않았다. 나를 보는 두 눈엔 짙고 강렬한 감정이 넘실거렸다.
(검열 전 내용-삭제)
서로의 입술과 이가 맞닿은 곳에서 애틋하고(缱绻) 뜨거운 숨결이 묻어나올 때까지 나는 결국 조용히 속삭이며 눈을 감을
수밖에 없었다.
(공통)
그리고 그 순간 나는 마음속으로 나 자신에게 영원한 맹세를 했다.
세상에서 가장 뜨거운 사랑과 끝없는 온기를 눈앞의 그에게 바치겠다고.
나는 용기를 내어 발꿈치를 들고 백기를 맞았다.
눈앞의 그는 세상의 모든 온기와 사랑을 누릴 자격이 있는 사람이니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