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1
똑똑——
문밖에서 조심스럽게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렸다.
나는 미간을 꾹 누르며 침대에서 황급히 일어났다. 서둘러 제복을 입고 문을 열었다.
"무슨 일이야?"
문밖에 서 있던 대원은 울상이 된 얼굴로 나지막이 말했다.
"심 부대장님, 고 대장님이 또 어디론가 사라지셨습니다."
"……."
그 말을 듣는 순간, 잠이 부족했던 나는 눈앞이 캄캄해지는 것 같았다.
이번 달에만 벌써 몇 번째야?!
나는 깊게 숨을 들이마시며 마음을 가라앉혔다.
나 못지않게 절망적인 표정을 짓고 있는 대원에게 손을 내저었다.
"넌 가서 다른 일부터 해. 내가 찾아볼게."
간단히 씻고 나온 나는 어쩔 수 없이 특파팀 내부를 돌아다니며 고진의 행방을 찾기 시작했다.
복도를 지나던 중, 문득 시야 한쪽에 지휘관 사무실에서 나오는 누군가의 모습이 들어왔다.
바쁘게 움직이던 발걸음이 그 자리에서 멈췄다.
백 대장님이다!
임무를 마치고 막 돌아온 듯한 그의 모습을 바라보자 절로 존경심이 솟아올랐다.
듣자 하니 이번에도 백 대장님은 대원들을 이끌고 난도 높은 임무를 성공적으로 해결했다고 했다.
게다가 사상자는 단 한 명도 없었다고 한다.
나는 마음속에서 솟구치는 흥분을 애써 누르고 빠르게 다가가 경례했다.
"백 대장님! 임무를 마치고 돌아오셨습니까?"
백기는 막 임무 보고를 끝낸 듯했다.
그는 나를 향해 고개를 끄덕이더니 물었다.
"또 고 대장 찾고 있어?"
"……그렇습니다."
나는 조금 민망한 마음으로 대답했다.
"긴급 임무와 관련해서 고 대장님이 직접 처리하셔야 할 절차가 있는데, 도무지 어디 계신지 찾을 수가 없습니다. 통신기도 연결되지 않고요."
백기는 복도 창밖으로 쏟아지는 눈부신 햇빛을 바라보았다.
그의 눈에 희미한 웃음기가 스쳤다.
"어디 있는지 알아. 데려다줄게."
"정말입니까? 감사합니다!"
나는 감사한 마음으로 백기의 뒤를 따라 위층으로 올라갔다.
그러면서 이번 임무가 어땠는지 이것저것 물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우리는 사람의 발길이 거의 닿지 않는 구석에 도착했다.
백기가 그곳의 문 하나를 열었다.
그러자 비스듬히 기울어진 하얀 지붕 위에 누워 있는 사람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고 대장니이임——!!!"
한가롭게 햇볕을 쬐고 있던 고진이 얼굴을 덮고 있던 모자를 살짝 들어 올렸다.
그는 갑자기 나타난 나와 백기를 보고 놀란 표정을 지었다.
"어쩐지 얘가 어떻게 여길 찾아왔나 했더니, 백 대장이 데려온 거였구나!"
고진은 누워 있던 몸을 일으켜 앉았다.
하지만 여전히 특유의 나른한 태도는 그대로였다.
"듣자 하니 이번에도 열흘짜리 임무를 일주일 만에 끝냈다며?"
"볼일이 좀 있어서."
백기는 짧게 대답했다.
그는 휴대전화를 꺼내 시간을 확인하더니 말했다.
"이제 찾았으니까 난 먼저 갈게."
그 말을 들은 고진의 눈이 순간 반짝였다.
그는 묘하게 짓궂은 말투로 물었다.
"혹시 누구 퇴근 시간 맞춰서 데리러 가는 거야?"
백기는 그를 힐끗 바라보았다.
하지만 부정하지는 않았다.
백기가 떠난 뒤, 나는 방금 두 사람의 대화를 듣고 생겨난 호기심을 꾹 눌렀다.
지금은 해야 할 일이 먼저였다.
"고 대장님, 당장 처리하셔야 할 서류가 몇 건 있습니다."
고진은 나를 바라보더니 한숨을 내쉬었다.
"이렇게 날씨가 좋은데 꼭 그런 분위기 깨는 얘기를 해야겠어?"
나는 참았다.
또 참았다. 하지만 결국 참지 못하고 소리쳤다.
"대장님은 왜 백 대장님처럼 믿음직스럽지 못한 겁니까?!"
고진이 곧바로 반박했다.
"백 대장도 항상 혼자 돌아다니면서 이런 잡무에는 일절 신경 안 쓰잖아."
"그거랑 이게 어떻게 같습니까! 백 대장님이 얼마나 대단하신데요!"
나는 기다렸다는 듯 말을 쏟아 냈다.
"백 대장님은 특파팀 전체에서 임무 성공률이 가장 높으신 분입니다! 이번 작전도 그렇게 복잡했는데 예정보다 훨씬 빨리 끝내셨잖습니까. 게다가……."
나는 고진과 똑같이 대장직을 맡고 있는 백기가 얼마나 뛰어난 사람인지 온갖 방면에서 쉬지 않고 설명했다.
"알았어, 알았어. 네가 백기 열성 팬인 건 충분히 알겠으니까……."
고진은 어이가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딱 5분만 더."
그러더니 다시 지붕 위에 드러누웠다.
나는 그 모습을 바라보다가 속수무책으로 한숨을 내쉬었다.
하아, 내가 뭘 어쩌겠어?
이런 대장님을 모시게 된 이상 그냥 운명이라고 생각해야지.
02
백기가 특파팀을 배신하다니.
나는 그런 일이 벌어지리라고는 상상조차 하지 못했다.
어느덧 몇 달이라는 시간이 훌쩍 흘렀다.
그 짧은 시간 동안 연모시에는 세상이 뒤집힐 만큼 커다란 변화가 일어났다.
먼저 백기가 특파팀을 배신했고, 독감 사태가 발생했다…….
그리고 가속 진화 캡슐이 등장했다.
고진이 개조 실험에 지원했다는 소식을 듣자마자, 나는 서둘러 지휘관 사무실 앞으로 달려가 그가 나오기를 기다렸다.
창밖에는 모처럼 화창한 날씨가 펼쳐져 있었지만, 내 마음은 전혀 맑지 않았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백기가 특파팀을 배신했다는 사실을 알게 된 순간부터 내 마음에는 짙은 먹구름이 드리워져 있었다.
처음에는 충격과 믿을 수 없다는 생각뿐이었다.
오랫동안 내 마음을 지탱해 주었던 기둥 하나가 굉음을 내며 무너져 내린 것만 같았다…….
내가 백기를 처음 만났을 때, 나는 특수 경찰학교에 갓 입학한 신입생에 불과했다.
수석으로 입학한 나는 얼마 지나지 않아 유난히 강력한 능력을 지닌 선배가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그 선배는 언제나 혼자 행동했고, 누구와도 어울리지 않는다고 했다.
처음에는 그런 이야기가 영 못마땅했다.
하지만 직접 그 힘을 목격한 순간, 나는 깊은 충격을 받았다.
전장에서의 백기는 마치 한 마리의 고독한 늑대 같았다.
고고하고 강인한 모습이었다.
그의 날카로운 기세에는 감탄하지 않을 수 없었고, 압도적인 실력 앞에서는 결국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나는 졸업과 동시에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그의 발자취를 따라 특파팀에 들어왔다.
과거의 나에게 백기는 신념이 확고한 사람이었다.
그는 언제나 자신이 믿는 정의를 몸소 실천하는 사람이었다.
처음의 충격에서 벗어나 마음을 가라앉힌 뒤에도, 나는 백기가 정말 배신했다는 사실을 믿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지휘관의 말은 더 이상 현실을 외면할 수 없게 만들었다.
백기가…….
정말 정의를 배신할 수 있는 사람일까?
달칵.
생각에 잠겨 있던 그때, 복도 끝의 문이 열렸다.
엄숙하게 굳은 얼굴로 고진이 걸어 나왔다.
나는 순간 멍해졌다.
고진이 저런 표정을 짓는 모습을 거의 본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마치 어깨 위에 무거운 무언가가 짓눌러 앉아 있는 것 같았다.
그런데도 그의 등은 굳건하게 곧게 펴져 있었다.
고진은 내가 그곳에 있는 것을 보고도 별로 놀라지 않았다.
"무슨 말 하려는지 알아. 장소를 옮기자."
의문으로 가득한 나는 말없이 고진의 뒤를 따라 계단을 올라갔다.
얼마 지나지 않아 낯익은 장소에 도착했다.
문을 열자 바깥의 찬란한 햇빛이 아무런 방해도 받지 않고 우리 위로 쏟아졌다.
넓게 펼쳐진 하얀 지붕이 눈부실 만큼 밝게 빛나고 있었다.
나는 잠시 멍해졌다.
지난번 이곳에 왔을 때만 해도 연모시에는 이렇게 많은 변고가 일어나지 않았다.
백기도 특파팀을 배신하지 않았고, 고진은 백기에게 좋아하는 여자를 퇴근 시간에 맞춰 데리러 가는 거냐며 농담을 던지곤 했다.
마치 까마득한 옛날 일 같았다.
나는 한동안 침묵하다가 결국 입을 열었다.
"고 대장님, 왜 개조 실험에 지원하신 겁니까? 아시잖습니까. 그 실험은 아직 완성되지 않았습니다. 통제할 수 없는 힘은 누구에게나 위험합니다."
고진은 곧바로 대답하지 않았다.
그의 시선은 먼 하늘에 머물러 있었다.
처음에는 조금 막막해 보이던 눈빛이 서서히 확고해졌다.
"백기처럼 나도 하고 싶은 일이 있어."
그는 말을 멈추지 않았다.
자신도 모르게 말하는 속도가 조금씩 빨라지고 있었다.
"이런 걸 입에 올리는 게 좀 가볍게 들릴 수도 있겠지만, 나한테도 나만의 정의가 있어. 이 결정은 바꾸지 않을 거야."
마지막으로 고진의 시선이 내게 향했다.
그 눈에 담긴 복잡한 감정은 도무지 헤아릴 수 없었다.
"네가 선택하고 싶은 길이 아니라면 억지로 받아들이려고 하지 마."
뜨거운 햇살이 내 몸 위로 쏟아지고 있었다.
그런데도 나는 아무런 온기를 느낄 수 없는 것 같았다.
정의란 무엇일까?
나는 알 수 없었다.
백기의 정의.
고진의 정의.
그리고…….
내 마음속의 정의는 무엇인지.
03
그 질문은 오랫동안 나를 괴롭혔다.
한때 내 마음속에서 정의라는 이름은 곧 백기를 의미했다.
그러나 그 믿음이 무너진 뒤, 나는 어떻게 해야 할지 알 수 없는 혼란에 빠졌다.
특파팀 내부에서는 가속 진화 캡슐을 이용한 실험이 순조롭게 진행되고 있었다.
첫 번째 개조 대상자들이 성공적으로 실험을 마치자, 곧바로 두 번째, 세 번째 대상자들에게까지 실험이 확대되었다…….
실험에 성공한 뒤의 고진은 완전히 다른 사람처럼 변해 있었다.
예전에는 그 특유의 느긋하고 제멋대로인 성격 때문에 내가 몇 번이고 속을 끓이곤 했는데, 그런 모습이 이제는 조금도 남아 있지 않았다.
그는 백기를 추적해 체포하라는 임무까지 아무런 이의 없이 받아들였다.
나는 그가 임무를 수행하러 떠나기 전, 따로 불러내 한바탕 싸움을 벌였다.
그날의 처참했던 내 모습을 떠올리자 저절로 쓴웃음이 나왔다.
그러다 뺨에 아직 남아 있는 상처를 건드리고 말았다.
"쓰읍……."
나는 통증에 숨을 들이켰다.
Evol이 진화한 뒤의 힘은 상상했던 것보다 훨씬 강력했다.
그 힘을 직접 경험하고 나니 마음이 흔들릴 정도였다.
비록 그 힘이 조금씩 통제할 수 없는 모습을 드러내고 있었지만 말이다.
그때의 나는 아직 알지 못했다.
앞으로 일이 고진이 기대한 대로 흘러갈지, 아니면 내가 줄곧 경계해 왔던 방향으로 흘러갈지.
그리고 지휘관이 왜 그토록 집요하게 백기를 겨냥하는지도 끝내 알 수 없었다.
복도에 가득한 소독약 냄새가 어쩐지 불쾌하게 느껴졌다.
나는 가볍게 숨을 내쉬고 복도 끝에 있는 병실로 빠르게 걸어갔다.
유리창 앞에 멈춰 서자 각종 의료 장비에 둘러싸인 고진의 모습이 보였다.
그는 두 눈을 꼭 감은 채 여전히 의식을 잃고 있었다.
백기와의 대결에서 패배한 그날, 고진은 기지로 돌아오자마자 알 수 없는 이유로 의식을 잃었다.
그 후로도 생체 징후는 이상할 정도로 불규칙한 변동을 보이고 있었다.
나는 유리창에 손을 가져다 댔다.
그러다 나도 모르게 작은 목소리로 투덜거렸다.
"개조까지 받으셨는데도 결국 못 이기셨네요."
하지만 지금은 병실에 누워 있는 고진이 벌떡 일어나 내 말에 반박할 수도 없었다.
과거 특파팀에 있을 때, 백기와 고진은 사이가 무척 좋았다.
그렇다고 두 사람이 이끄는 부대 사이의 경쟁까지 사라진 것은 아니었다.
고진은 지금까지 무려 75번이나 일방적으로 백기에게 대결을 신청했다.
하지만 결과는 모두 패배였다.
이번에도 예외는 아니었다.
그때 복도에서 갑자기 발소리가 들려왔다.
고개를 돌려 보니 낯이 익지 않은 의료진 몇 명이 다가오고 있었다.
그들은 나를 발견하자 순간 당황한 기색을 보였다.
"심 부대장님!"
나는 눈을 가늘게 뜨고 그들을 살펴보았다.
"검사하러 오신 겁니까?"
"지휘관님의 명령을 받고 고 대장님을 이송하러 왔습니다."
"이송한다고요?"
나는 거의 즉시 무언가 이상하다는 사실을 알아차렸다.
하지만 겉으로는 아무런 내색도 하지 않았다.
"어디로 이송하는 겁니까?"
"그건 저희도 잘 모릅니다."
그들의 눈빛에는 은근한 경계심이 어려 있었다.
나는 더 이상 캐묻지 않기로 했다.
하지만 이번 일로 마음속에 품고 있던 불길한 추측 몇 가지가 사실이라는 확신이 들었다.
나는 그동안 진화 캡슐을 이용한 개조 실험을 받은 옛 동료 몇 명과 몰래 접촉해 왔다.
그리고 조금씩 이상한 점을 발견했다.
그들은 모두 감정을 빼앗긴 사람처럼 변해 있었다.
마치…….
오직 명령에 복종할 줄만 아는 기계 같았다.
그런데도 지휘관은 계속해서 계획을 확대하고 있었다.
그의 행동은 갈수록 조급해졌고, 이제는 은근히 강제성을 띠기까지 했다.
언제 통제를 벗어날지 모르는 이 거대한 힘이 정말 정의를 실현하기 위한 것일까?
나는 꺼진 화면을 오랫동안 바라보며 침묵했다.
그러다 다시 화면을 켰다.
그리고 오직 세 사람만이 알고 있는 비밀 통신망을 통해 메시지 하나를 보냈다.
바로 그 무렵, 고진이 회복되어 다음 작전에 참가할 준비를 하고 있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불과 며칠 전까지만 해도 의식을 잃고 있었는데.
04
백기에게서는 여전히 답장이 오지 않았다.
어쩌면 앞서 벌인 행동 때문에 무언가 낌새를 드러낸 것인지도 몰랐다.
얼마 지나지 않아 누군가가 나를 은밀히 감시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차렸다.
똑똑.
특별행동대 대원 하나가 문을 두드렸다.
"심 부대장님, 지휘관님께서 찾으십니다."
나는 냉담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아무것도 묻지 않고 그를 따라 지휘관 사무실로 향했다.
창가에 서 있던 양기준이 날카로운 시선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이번 작전은 고진이 지휘할 예정이네. 심 부대장도 참가할 생각이 있나?"
나는 섣불리 그의 의도를 짐작하지 않았다.
그저 모호하게 대답했다.
"모든 것은 명령에 따르겠습니다."
"가속 진화 캡슐을 이용한 개조에 반대하는 사람이 많다는 건 나도 알고 있네. 하지만 BLACK SWAN에 맞서려면 우리에게는 더욱 강력한 힘이 필요해."
그의 눈에 희미하게 광기가 어려 있었다.
"우리의 계획이 결국 모든 사람에게 증명해 줄 걸세. 이 선택이 옳았다는 사실을."
나는 침묵한 채 대답하지 않았다.
하지만 지휘관은 개의치 않는 듯했다.
마치 그의 몸에서 이성이 조금씩 떨어져 나가고, 그 안에 숨겨져 있던 검은 본성의 일부가 모습을 드러내는 것 같았다.
그 광경에 마음은 더욱 무거워졌다.
……한때 냉정하고 침착했던 지휘관이 이제는 완전히 광기에 사로잡힌 듯했다.
결국 나는 반강제로 이번 작전에 참가하게 되었다.
수많은 함정이 설치된 무도회에 백기가 나타났다.
그는 거의 혼자 힘으로 무너지기 직전의 특파팀을 구해 냈다.
오랜만에 다시 만난 백기는 많은 것이 달라진 듯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아무것도 변하지 않은 것 같았다.
하지만 한 가지 사실만큼은 확신할 수 있었다.
내가 믿고 따랐던 그 백기가 돌아왔다는 것.
작전이 끝나고 특파팀으로 복귀한 뒤, 얼마 지나지 않아 양기준의 해임 명령이 내려왔다.
조만간 새로운 상관이 부임해 지휘관 자리를 맡게 될 것이라고 했다.
하지만 신임 지휘관이 오기 전까지도 특파팀의 업무는 계속되어야 했다.
쾅——!
나는 두툼한 서류 뭉치를 책상 위에 내려놓았다.
서류 더미에 얼굴이 거의 가려질 지경이 된 고진이 절망적인 표정으로 외쳤다.
"아니, 아직도 이렇게 많이 남았어?!"
무도회가 끝난 뒤, 고진은 다시 예전의 모습으로 돌아왔다.
아마 전에 나를 때린 일이 마음에 걸렸던 모양이었다.
이번에는 임시로 떠맡게 된 수많은 업무를 군말 없이 성실하게 처리하고 있었다.
"새로운 지휘관님은 대체 언제 부임하시는 걸까요?"
나도 한숨을 내쉬었다.
새 지휘관이 오면 특파팀에 또 어떤 변화가 생길지 알 수 없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걱정이 태산인 나와 달리 고진은 꽤 태평해 보였다.
그는 고개도 들지 않은 채 말했다.
"걱정하지 마."
그 반응을 보자 문득 한 가지 생각이 떠올랐다.
설마 새로운 지휘관이 될 사람이…….
아니겠지?
나는 머릿속에 떠오른 터무니없는 상상을 황급히 지워 버렸다.
그러다 갑자기 입을 열었다.
"사실 백 대장님은 처음부터 특파팀을 배신한 적 없으셨죠?"
고진이 고개를 들었다.
몇 초가 지나자 그의 입꼬리가 올라갔다.
얼굴에는 다시 예전의 여유로운 미소가 떠올랐다.
"맞아. 백기는 자기가 뭘 해야 하는지 늘 알고 있었어. 누구보다 정확하게."
그는 말을 덧붙였다.
"그런데 이제는 '백 대장'이라고 부르면 안 돼."
이유를 물어보기도 전이었다.
갑자기 경보음이 울려 퍼지며 우리의 대화가 끊겼다.
"경고, 경고. 미확인 인원이 기지에 접근하고 있습니다."
나는 즉시 감시 화면을 켰다.
화면에는 불과 몇 초 전 검은 오토바이를 탄 누군가가 빠른 속도로 지나가는 모습이 잡혀 있었다.
고진이 망설임 없이 지시했다.
"입구로 가자!"
우리는 서둘러 대원들을 이끌고 지하에 있는 출입구로 향했다.
그곳에 도착하자 우리에게 등을 돌린 채 서 있는 사람의 모습이 보였다.
너무나 익숙한 뒷모습이었다.
우리 모두가 잘 알고 있었고, 지금까지 수없이 바라보았던 사람이었다…….
곁에 서 있던 고진이 마침내 안도의 숨을 내쉬는 소리가 들렸다.
그는 다른 사람들이 미처 반응하기도 전에 먼저 발걸음을 옮겨 그 사람에게 다가갔다.
그때 기지의 시스템에서 맑은 알림음이 울렸다.
딩동.
"특파 B-7, 기지 최고 권한이 부여되었습니다."
백기가 몸을 돌렸다.
고진은 그의 앞에 멈춰 섰다.
그리고 정중하게 손을 들어 경례했다.
"돌아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백기 지휘관님."
05
백 대장님…… 아니, 이제는 지휘관님이라고 불러야겠지.
백기가 특파팀으로 돌아왔다는 사실에 나는 한동안 멍한 상태로 지냈다.
마치 발이 땅에 닿지 않고 붕 떠 있는 듯한 이 기분을 뭐라고 설명해야 할지 나조차 알 수 없었다.
나는 또다시 저절로 올라가는 입꼬리를 애써 내리고, 다음 임무를 수행하기 위해 발걸음을 재촉했다.
현재 상황은 여전히 낙관적이지 않았다.
하지만 백기가 돌아오자 특파팀 전체가 다시 중심을 잡기 시작했다.
모든 일이 빠르고 질서 있게 진행되었다.
복귀한 뒤의 백기는 확실히 조금 달라져 있었다.
여러 방면에서 관찰하고 확인한 끝에 내린 결론이었다.
더욱 강력해진 Evol뿐만이 아니었다.
그에게서 풍기는 분위기 자체가 어딘가 달라진 것 같았다.
내가 처음 알았을 때의 백기와는 달랐다.
이제 그의 모습에서는 예전처럼 날카롭게 벼려진 기세가 느껴지지 않았다.
마치 오랫동안 자신을 짓누르던 그늘을 마침내 내려놓은 것 같았다.
가끔은 그가 한결 부드러워진 표정으로 통화를 하거나 메시지에 답장하는 모습을 우연히 보기도 했다.
그럴 때마다 나는 전화기 너머에 있는 여자는 대체 어떤 사람일까 하는 궁금증을 참을 수 없었다.
하지만 평온한 나날은 며칠도 이어지지 않았다.
양기준은 그날의 작전 이후 자취를 감춘 상태였다.
우리가 그의 행방을 찾아내기도 전에, 그가 고아원 하나를 점거하고 사람들을 인질로 붙잡았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이 사람, 아무래도 완전히 미쳐 버린 것 같은데!"
고진이 그 자리에서 손에 들고 있던 물건을 책상 위로 내던졌다.
백기는 미간을 깊이 찌푸리더니 신속하게 명령을 내렸다.
"즉시 전원에게 전달해. 부대를 정비하는 대로 바로 출발한다."
그 명령이 떨어지자 특파팀 전체가 빠르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복도에는 바쁘게 오가는 대원들의 발소리가 끊이지 않았다.
이번 작전은 크게 두 부분으로 나뉘었다.
한쪽은 고아원으로 향해 인질들을 구출하고, 다른 한쪽은 다른 곳으로 끌려가 실험을 받게 된 특파팀 대원들을 구조하는 임무였다.
왠지 모를 예감이 들었다.
어쩌면 이번에야말로 모든 일에 종지부를 찍게 될지도 몰랐다.
5분 후, 모든 준비가 끝났다.
나는 제복의 옷깃을 바로잡고 지휘실로 들어갔다.
백기는 원래 사진 한 장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러나 내가 다가오는 것을 보자 곧바로 사진을 집어넣었다.
그 순간, 시야 한쪽에 사진 속 인물이 스쳤다.
전에 나와 고진이 연모시 TV 타워 아래에서 구해 냈던 그 소녀였다.
문득 당시 백기가 소녀의 병실을 찾아갔을 때 있었던 일이 떠올랐다.
우리 몇 명이 장난스럽게 그 소녀를 '형수님'이라고 부르며 놀려댔었다.
그러자 소녀의 얼굴이 순식간에 새빨개졌다.
그때 옆에 앉아 있던 백기가 차가운 눈빛으로 우리를 훑어보는 바람에 모두 입을 다물고 말았지만…….
역시 그때 잘못 부른 게 아니었구나…….
"준비는 끝났나?"
백기의 목소리가 잠시 딴생각에 빠져 있던 나를 현실로 되돌려 놓았다.
나는 즉시 정신을 차리고 대답했다.
"예! 전원 정렬을 마쳤습니다!"
백기가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출발하지."
넓고 텅 빈 광장에 특파팀의 모든 병력이 집결했다.
백기는 새하얀 지휘관 제복을 입고 대열의 맨 앞에 서 있었다.
그 모습은 마치 칼집에서 뽑아낸 날카로운 검 같았다.
조금 전 잠깐 엿보였던 부드러운 기색은 이제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었다.
백기는 눈앞에 늘어선 대원들을 바라보며 낮고 묵직한 목소리로 말했다.
"이번 작전은 무엇보다 중요하다."
"우리는 앞으로 어떤 상황에 직면하게 될지 알 수 없다. 어떤 돌발 상황이 발생할지도 예측할 수 없다."
"하지만 처음부터 끝까지 확신할 수 있는 사실은 단 하나다."
"특파팀의 모든 총탄은 오직 정의를 위해 울린다!"
백기는 잠시 말을 멈췄다.
그러고는 얼굴에 옅은 미소를 띠며 덧붙였다.
"마지막으로, 너희와 다시 어깨를 나란히 하고 싸울 수 있게 되어 기쁘다."
"출발——!"
나와 고진은 대열의 맨 앞줄에 서서 눈앞의 백기를 바라보고 있었다.
나는 가슴속에서 벅차오르는 감정을 억누를 수 없었다.
그리고 다른 모든 특파팀 대원들과 함께 목소리를 높여 대답했다.
"예, 지휘관님!"
나는 오랫동안 생각해 왔다.
나에게 정의란 무엇일까.
이 질문에는 사람마다 서로 다른 답이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제는 알 것 같았다.
내가 생각하는 정의란 바로 이런 사람을 따르는 것이다.
그의 뒤를 따라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가시밭길로 발을 내딛는 것.
아무리 험난하더라도 언제나 앞으로 나아가는 그 길을 함께 걷는 것.
그것이 바로 내가 선택한 정의였다.
——지휘관님과 어깨를 나란히 하고 싸울 수 있다는 것은 언제나 제게 더없는 영광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