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1
여덟 살의 당조는 작문 시간에 이렇게 썼다.
'내 꿈은 아무 걱정 없이 편하게 살면서, 배부르게 먹고 잠이나 자는 것이다.'
선생님은 그에게 낙제점을 주었다.
열여덟 살이 된 당조는 여전히 아무 걱정 없이 배부르게 먹고 잠이나 자는 생활을 누리지 못했다.
경찰학교에 특별 추천 입학을 하게 되었기 때문이다.
다행히 모두가 그가 '특기생'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입학 당시에는 그 악명 높은 '지옥의 테스트'까지 면제받았고, 평소 교관들도 그의 훈련에 지나치게 엄격한 기준을 적용하지 않았다.
게다가 첫 학기에는 주로 기초 체력 훈련과 범죄 수사의 기본적인 내용만 배우는 수업이 진행되었다.
덕분에 당조는 첫 한 달 동안 모든 과목을 간신히 턱걸이로 통과하면서도 놀라울 만큼 느긋한 생활을 누리고 있었다.
당조의 룸메이트가 분하다는 듯 불평했다.
"넌 Evol이 특별하다는 것만 믿고 그러는 거잖아. 그 능력만 아니었으면 네 성적으로는 진작 학교에서 쫓겨났어."
"맞아. 내 Evol이 특별하거든."
당조는 눈썹을 치켜올렸다.
"학교에서 날 쫓아내면 손해가 이만저만이 아닐걸?"
거짓말 탐지.
그야말로 범죄 수사를 위해 태어난 듯한 Evol이었다.
신체 능력이 특별히 뛰어나지도 않은 평범한 학생이었던 당조가 이 명문 경찰학교에 특별 추천 입학할 수 있었던 것도 바로 이 능력 덕분이었다.
"흥, 어차피 네가 편하게 지낼 날도 이제 며칠 안 남았어."
룸메이트는 철제 침대 위에서 몸을 뒤척이더니, 위층 침대 밖으로 머리를 반쯤 내밀었다.
"교관들이 하는 얘길 들었는데, 입학하고 첫 한 달은 그냥 준비 운동에 불과하대. 다음 주부터 진짜 훈련이 시작되는 거야. 게다가 윗선에서 3학년 선배들을 보내 우리 훈련을 감독하게 한다더라. 우리 반에는 누가 배정됐는지 알아?"
"누군데?"
룸메이트가 한 글자씩 힘주어 말했다.
"백. 기!"
"백기가 누군데?"
룸메이트는 하마터면 위층 침대에서 떨어질 뻔했다.
"너 백기도 몰라?"
"내가 왜 그 사람을 알아야 하는데……."
당조가 중얼거렸다.
"그렇게 유명한 사람이야?"
"유명하냐고? 엄청 유명하지!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로 유명하다고!"
그렇게나 유명하다는 백기 선배는 입학시험에서 기록을 경신할 정도로 높은 점수를 받았다고 했다.
체력, 사격, CQC 근접 격투, 모의 전술훈련…….
어느 과목에서도 성적이 3위 밖으로 밀려난 적이 없었다.
2학년 때는 이미 정식 Evol 특수경찰들과 함께 실전 임무에 투입된 경험도 있었다.
아직 졸업조차 하지 않았는데도 각 지역 경찰 부서에서 앞다투어 데려가고 싶어 하는 인재였다.
"……그런데 그때 임무가 꽤 처참했다고 하더라. 같은 중대에 있던 동료 대원도 전사했다던데…… 야, 너 내 말 듣고 있어?"
"듣고 있어, 듣고 있다고."
당조는 입으로는 건성으로 대답했지만, 마음속으로는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확실히 그 백기라는 선배는 자신보다 훨씬 특수경찰다운 사람이었다.
아니, 어쩌면 Evol 특수경찰이라면 마땅히 백기 같은 사람이어야 하는 것인지도 몰랐다.
"내가 미리 경고하는데, 그 사람 성격이 엄청 깐깐하고 자존심도 세다더라. 사소한 잘못도 그냥 넘어가지 않는다고."
룸메이트가 침대 가장자리를 툭툭 두드렸다.
"그러니까 다음 주부터는 너도 좀 얌전히 굴어."
당조가 코웃음을 쳤다.
"그 사람이 날 어쩌겠어? 나한테는 면죄부가 있는데."
룸메이트는 혀를 차더니 더는 설득하지 않았다.
"쯧쯧. 하는 꼴을 보아하니…… 직접 만나고 나서는 네 운에 맡겨야겠네."
02
월요일 이른 아침, 운동장에 집합한 당조는 반장 옆에 서 있는 스무 살 남짓한 청년을 발견했다.
청년은 날카로운 눈매를 지니고 있었고, 등은 운동장 옆에 심어진 삼나무보다도 꼿꼿하게 펴져 있었다.
이제 막 입학한 자신들과는 한눈에 봐도 확연히 다른 분위기였다.
"이쪽은 7중대 소속 백기 생도다. 이번 학기에는 임시 훈련 교관으로 너희를 지도할 예정이다."
반장이 목소리를 높였다.
"앞으로 훈련할 때 전부 정신 똑바로 차려라! 우리 반 망신시키는 일 없도록! 알겠나!"
"알겠습니다!"
대열에 선 신입생들이 일제히 대답하는 동안, 백기는 이미 그들을 한 차례 훑어보았다.
모두 숨을 죽인 채 이 선배가 무슨 훈시를 더 할지 기다렸다.
하지만 백기는 그저 고개를 한 번 끄덕이더니 말했다.
"그럼 정식으로 시작하지. 우선 준비 운동으로 10킬로미터를 달린다."
몇 킬로미터라고?
학생들은 서로 얼굴을 마주 보았다.
자신들이 잘못 들은 줄 알았다.
당조가 손을 들었다.
"교관님, 보고드립니다! 저희는 평소 아침에 5킬로미터만 달리는데요……."
하지만 백기는 들은 척도 하지 않았다.
"우로 돌아. 준비—— 뛰어."
그제야 모두가 백기가 소문대로 만만치 않은 사람이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학생들은 마지못해 침을 꿀꺽 삼키고 차례대로 대열을 맞춰 달려 나갔다.
당조는 일부러 맨 뒤로 처졌다.
그리고 백기에게 다가가 먼저 경례했다.
"교관님, 보고드립니다."
백기가 그를 바라보았다.
"저는 10킬로미터 못 뜁니다."
당조는 더없이 솔직한 얼굴로 말했다.
"저는 사정이 좀 특별하거든요. 반장님도 다 알고 계십니다. 저한테 10킬로미터를 뛰라고 하시면 정말 죽어요……."
"경찰학교에 들어온 이상 특별 대우는 없다."
백기가 대답했다.
"죽을지 안 죽을지는 뛰어 보고 나서 말해."
"……."
결국 당조는 10킬로미터를 완주했다.
아니, 기어서 완주했다고 하는 편이 더 정확할지도 몰랐다.
반의 다른 학생들은 이미 달리기를 마치고 아침을 먹으러 갔지만, 당조만은 여전히 운동장 위를 한 줄기 유령처럼 떠돌고 있었다.
가끔 지나가던 학생들은 아직도 달리고 있는 당조를 발견하면 낄낄거리며 웃었다.
특혜를 받고 들어온 꼴찌가 호되게 당하는 모습을 보니 다들 어느 정도는 고소했던 모양이었다.
하지만 백기는 그런 모습을 보고도 고소해하지 않았다.
당조가 비틀거리며 결승점에 도착하자 그저 무표정한 얼굴로 말했다.
"20분 늦었다. 가서 아침 먹어. 20분 뒤에 전원 집합해서 다음 훈련을 시작한다."
당조는 이미 너무 지쳐서 말할 기운조차 없었다.
하지만 그 명령을 듣자 도저히 참을 수가 없었다.
"형씨…… 아니, 백 교관님! 아무리 기선 제압이 목적이라도 이 정도면 충분하지 않습니까?"
백기가 미간을 찌푸렸다.
"보세요. 저도 교관님 말씀에 꽤 협조적으로 따랐잖아요."
당조는 손가락을 하나씩 접으며 말을 이었다.
"앞으로 반 애들이 제 꼴을 보면 교관님 말씀이라면 무조건 따를 거 아닙니까? 그런데 저는 원래 체력이 딱 이 정도예요. 반에서 꼴찌인 것도 제가 원해서 그런 게 아니라고요. 그러니까 그냥 눈 한 번만 감아주시면 안 될까요?"
백기는 될 대로 되라는 듯 뻔뻔하게 구는 당조를 바라보았다.
그리고 담담하게 물었다.
"그렇게 훈련받기 싫으면 여긴 왜 들어왔지?"
당조가 어깨를 으쓱했다.
"뭐, 딱히 거창한 이유는 없는데요. 저를 필요로 하는 사람들이 있으니까요. 적당히 훈련받고 형식적인 과정만 거쳐서 졸업한 다음, 사건 수사나 도와주면 되는 거죠."
"내가 묻는 건 네가 스스로 왜 이곳에 있으려 하느냐는 거야."
백기의 목소리가 엄격해졌다.
"다른 사람들이 너를 필요로 하지 않았다면, 넌 여기에 오지도 않았을 건가?"
그는 계속 말을 이었다.
"네가 달리는 동안 반장에게 지난 한 달간의 훈련 평가 기록을 받아 봤다. 대부분의 과목이 간신히 합격선을 넘나들고 있더군. 몇 과목은 재시험도 두 번씩 봤고."
"네……."
당조는 짧게 대답했다.
이렇게 대놓고 성적을 지적당하니 창피하긴 했다.
하지만 성적표에 흰 종이와 검은 글씨로 명백히 적혀 있는 사실이었다.
당조 자신도 그 성적이 더 나아질 거라고는 별로 기대하지 않았다.
백기가 다시 입을 열었다.
"하지만 재시험 기록을 보면, 네 잠재력은 사실 꽤 괜찮아."
당조가 멈칫했다.
"가능성이 있다면 그 가능성을 낭비하지 마."
백기는 그 말을 끝으로 자리를 떠났다.
03
백기의 지옥 훈련은 여전히 계속되고 있었다.
둘째 날, 백기는 훈련 일정에 중량을 짊어진 채 진행하는 훈련과 팔굽혀펴기 200회를 추가했다. 이제는 당조뿐만 아니라 같은 반 신입생들도 절반 가까이 버티지 못했다. 셋째 날에는 기존 훈련에 장애물 코스 한 세트와 40분간의 자유 격투 훈련까지 더해졌다.
“이제야 알겠어. 저 백기 선배는 나 하나만 죽이려는 게 아니라 우리 전부를 죽이려는 거였어.”
격투 훈련 도중, 당조는 기운 빠진 목소리로 결론을 내렸다.
그렇게 또 일주일이 흘렀다.
이번에는 훈련 과정에 전술 시뮬레이션이 추가되었다. 당조가 드물게 높은 점수를 받을 수 있는 과목이었다. 거짓말을 탐지하는 Evol을 지닌 덕분에 이런 심리전에는 유독 강했기 때문이다.
눈앞의 홀로그램 모의 전장을 바라보던 당조는 어디서 용기가 솟았는지 갑자기 손을 번쩍 들었다.
“보고!”
“무슨 일이지?”
맨 앞에 있던 백기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백 교관님과 한 판 겨뤄 보고 싶습니다.”
당조가 목소리를 높여 말했다.
주변에서 낮은 웅성거림이 일었다.
백기는 눈썹을 살짝 치켜올리더니 웅성거리는 학생들 사이를 지나 홀로그램 모의 전장 맞은편에 섰다. 군말을 늘어놓는 일도 없었다.
“어떤 상황으로 할 거지?”
“공장 인질 구출 작전으로 하겠습니다. 제가 진입팀을 맡겠습니다.”
“좋아.”
당조의 손바닥에 슬며시 땀이 배어 나왔다. 그래도 입가에는 도발적인 미소를 유지했다.
“교관님, 제가 이기면 오늘 남은 훈련은 면제해 주실 수 있습니까?”
백기는 지도를 펼쳤다.
“이기고 나서 얘기하지.”
홀로그램 모의 전투는 경찰학교에서 최근 몇 년 사이 새롭게 개설한 과목이었다.
모의 전장 안의 지형과 인원별 Evol 능력, 날씨와 무장 상태까지 모두 시스템이 무작위로 설정했다. 학생들이 돌발 상황에 얼마나 유연하게 대처하고 판단하는지를 훈련하기 위해서였다.
따라서 어느 한쪽이 경험만으로 상대를 압도할 수 있는 구조도 아니었다.
시작한 지 불과 10분 만에 당조의 작전 점수는 백기보다 16점이나 앞서 있었다.
처음으로 백기를 앞지른 당조는 마침내 조금 우쭐해졌다. 참지 못하고 고개를 들어 백기를 힐끗 바라보았지만, 상대의 표정에서는 조금도 긴장한 기색을 찾아볼 수 없었다.
백기는 오로지 눈앞의 모의 전장에 집중하고 있었다. 손을 쉬지 않고 움직이며 명령을 입력하자, 원래 세 갈래로 나뉘어 있던 방어 병력이 순식간에 아홉 개 부대로 재편되었다. 그리고 각 방향에서 당조를 포위하며 공격해 들어오기 시작했다.
지켜보던 학생들 사이에서 일제히 탄성이 터졌다.
아홉 개 부대를 동시에 지휘한다고? 저게 사람이 할 수 있는 일이야?!
당조 역시 깜짝 놀랐다. 하지만 다음 순간에는 놀라고 있을 여유조차 없어졌다.
지도 위에서 양측의 움직임을 나타내는 표시들이 쉴 새 없이 깜빡였다.
점차 당조는 백기의 작전 경로를 따라잡지 못하기 시작했다.
교란 정보가 너무 많았다. 어느 경로로 가면 안 된다는 것을 막 계산해 내면, 그사이 주변의 다른 경로들이 이미 차단되어 있었다.
지도에 붉은 가위표가 그려진 구역은 점점 늘어났다.
결국 당조가 가까스로 인질을 구출했을 때, 처음에 여섯 개나 되었던 그의 부대는 백기에게 포위되어 섬멸당하고 고작 네 명으로 구성된 한 개 분대만 남아 있었다.
백기가 홀로그램 모의 전장을 종료했다.
“느낀 점은?”
당조는 여전히 억지를 부리고 싶었다.
“그래도 인질 구출에는 성공했잖습니까…….”
“그걸 성공이라고 생각하나?”
백기가 차갑게 웃었다.
“모의 전투에서 인명 관련 점수의 비중이 왜 가장 높은지 알아? 지도 위의 붉은 점 하나하나가 실제 상황에서는 전우 한 사람의 목숨을 뜻하기 때문이야.”
당조는 말문이 막혔다.
“실제 작전에서 너희가 마주할 상황은 이 모의 전장보다 훨씬 위험하고 복잡할 거다.”
백기는 학생들 모두를 둘러보며 한 마디 한 마디 힘주어 말했다.
“범죄자들은 너희가 이렇게 오래 고민하고 판단할 시간과 기회를 주지 않아. 단 한 번의 잘못된 판단으로도 전우가 목숨을 잃을 수 있다.”
그의 시선이 다시 당조에게 돌아왔다. 목소리에도 한층 힘이 실렸다.
“잘 생각해 봐.”
당조가 고개를 숙였다.
“알겠습니다.”
“그래도 도전하려는 용기는 칭찬할 만하지.”
백기는 검지를 구부려 모의 전장을 가볍게 두드렸다.
“5킬로미터. 뛰고 와.”
당조는 처음으로 군말 없이, 진심으로 수긍하며 5킬로미터를 완주했다.
그는 뻐근하게 쑤시는 두 다리를 두드리며 기숙사로 돌아가려다가, 문득 멀지 않은 구석에서 30분 전 자신과 대결했던 상대를 발견했다.
백기는 나무 아래 홀로 서서 사진 한 장을 들여다보고 있었다.
그는 당조를 알아차리지 못했다. 모든 신경이 오직 그 사진에 쏠려 있었기 때문이다.
그 순간만큼은 모든 경계를 내려놓은 듯했다.
평소의 백기답지 않은 모습이었다.
언제나 서늘하고 날카롭던 눈매에는 그늘이 드리워져 있었고, 얼굴에는 아득한 상념과 피로가 어렴풋이 묻어났다.
당조는 숨을 죽이고 눈을 가늘게 뜬 채 사진을 알아보려 했다.
사진 속에 있는 건…… 여자애인가?
설마 백 교관님의…….
그런데 사진에는 왜 피가 묻어 있는 거지?
당조가 온갖 상상의 나래를 펼치기도 전에 누군가 갑자기 그의 어깨를 툭 두드렸다.
“야, 당조. 혹시 백 교관님 못 봤어?”
룸메이트였다.
“교관님께 좀 여쭤볼 게 있어서.”
당조는 몸을 슬쩍 틀어 룸메이트의 시선을 가렸다. 그리고 반대편을 가리켰다.
“어, 봤어. 식당 쪽으로 가시던데.”
거짓말을 간파하는 자가 하는 거짓말은 그 누구도 눈치채지 못하는 법이었다.
룸메이트는 조금도 의심하지 않고 당조의 어깨를 한 번 더 두드렸다.
“고맙다!”
룸메이트가 멀리 사라지고 나서야 당조는 고개를 돌려 백기가 있는 쪽을 다시 바라보았다.
그리고 조용히 그 자리를 떠났다.
사진 속 소녀가 백기에게 어떤 의미를 지닌 사람인지는 알 수 없었다.
하지만 당조는 직감적으로 느꼈다.
지금만큼은 누구도 저 고요한 풍경을 방해해서는 안 된다는 것을.
04
억수같이 쏟아지는 비 속에서도 경찰학교 운동장에는 빗줄기를 뚫고 나아가는 한 무리의 생도들이 있었다.
잔뜩 흐린 날씨만큼이나 분위기도 침울했다. 어깨에 짊어진 무게마저 평소보다 훨씬 무겁게 느껴지는 듯했다.
하지만 이번에는 누구도 불평하지 않았다. 당조도 마찬가지였다.
——어제 또 한 명의 경찰학교 동료가 인질 구출 작전 중 목숨을 잃었기 때문이다.
발밑에 고인 빗물은 마치 곳곳에 흥건히 고인 핏물 같았다. 어깨를 짓누르는 통나무에는 마치 숨결과 체온이 깃든 것만 같아 숨조차 쉬기 어려웠다.
당조는 이를 악물었다. 비록 대열의 맨 뒤로 처졌지만, 끝까지 앞으로 나아가기를 포기하지 않았다.
“4분 늦었어.”
백기는 여느 때처럼 결승점에서 초시계를 확인하고 있었다.
“발전했네.”
그 ‘발전했다’는 세 글자를 듣기 위해 자신이 얼마나 많은 노력을 쏟았는지는 당조 자신만이 알고 있었다.
그 순간, 머릿속에서 무언가 희미하게나마 이해되기 시작했다.
아직은 막연했지만, 그의 마음속에는 분명 ‘편하게 살다가 배부르면 잠이나 자는 것’보다 훨씬 뚜렷하고 확고한 인생의 목표가 생겨나고 있었다.
물론 편안한 삶도 좋았다.
지금 당장 통나무를 내던지고 ‘나 안 해!’라고 외치기만 하면 얼마든지 그런 삶을 살 수 있었다.
하지만 그가 경찰학교에 몸담고 있는 한, 입학할 때 했던 선서가 마음에 새겨져 있는 한, 앞으로의 인생은 편안함과 거리가 멀 수밖에 없었다.
당조는 길게 숨을 내쉬었다.
어깨에 짊어진 통나무를 내려놓더니 그대로 운동장에 벌러덩 드러누웠다.
“백 교관님, 처음에 제가 잠재력이 있다는 걸 어떻게 아셨습니까?”
백기는 잠시 침묵했다.
“……사실 그건 거짓말이었어.”
당조는 소리 내어 크게 웃었다.
어쩌면 정말 백기가 한 거짓말이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백기는 줄곧 그 거짓말을 행동으로 실천했고, 당조 역시 그 말을 믿게 만들었다.
백기는 당조를 포기하지 않았고, 당조 또한 자기 자신을 포기하지 않았다.
비는 여전히 내리고 있었다.
한참 웃음을 터뜨리던 당조가 다시 입을 열었다. 그의 목소리는 맑은 빗기운에 섞여 들려왔다.
“그거 아십니까? 전 어느 날 하룻밤 사이에 갑자기 거짓말을 알아채는 능력이 생겼어요.”
백기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당조는 이야기를 이어 갔다.
“처음에는 Evol을 어떻게 제어해야 하는지도 몰라서 정말 겁이 났어요. 주변 사람들도 다들 당황했고요. 제 앞에서는 누구도 뭔가를 숨길 수 없게 됐거든요.”
“사람들이 아무리 그럴듯한 가면을 쓰고 있어도 전 그걸 벗겨낼 수 있었어요. 그러니까 많은 사람이 저와 이야기하는 걸 두려워했고, 심지어 가까이 오려고도 하지 않았죠.”
“그때는 정말…… 답답하게 살았어요. 이렇게 대단한 능력인데도 말이에요.”
“다행히 나중에는 이 능력을 어떻게 써야 하는지 조금씩 터득했고, 그런 환경에서 살아가는 방법에도 어느 정도 익숙해졌어요.”
당조는 자신의 머리를 가리켰다.
“비결은 신경 쓰지 않는 거예요.”
“넌 사실 신경 쓰고 있잖아.”
백기가 말했다.
“맞아요.”
당조는 씁쓸하게 웃었다.
“그냥 오랫동안 신경 쓰지 않는 척하다 보니까 어느 순간 제가 뭘 해야 할지도 모르겠더라고요.”
“백 교관님, 제가 여기 있어야 하는 이유를 다시 찾을 수 있을까요?”
백기는 잠시 생각에 잠겼다가 대답했다.
“거짓말에 둘러싸여 살아간다는 게 어떤 건지 나는 상상할 수 없어.”
“하지만 넌 그런 시간을 이겨 내고도 여전히 스스로 판단하는 능력을 잃지 않았잖아. 그건 네가 보통 사람들보다 훨씬 강인한 마음을 지녔다는 뜻이야.”
“전 제가 강하다고 생각하지 않는데요…….”
“태어날 때부터 강한 사람은 없어.”
당조는 얼굴에 흘러내리는 빗물을 한 손으로 훔쳤다.
“교관님도요?”
“나도.”
백기가 진지하게 대답했다.
“나도 한때는 방황했어. 하지만 나중에는…… 끝까지 버틸 수 있게 해 주는 이유를 찾았지.”
“너도 마찬가지일 거야. 언젠가는 반드시 네가 믿고 나아갈 수 있는 신념을 찾게 될 거야.”
백기의 목소리에는 별다른 높낮이의 변화가 없었다. 그저 누구나 알 수 있는 명백한 사실을 이야기하는 것처럼 담담했다.
당조는 이 순간 Evol을 사용하지 않았다.
백기가 진심으로 하는 말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굳이 거짓말인지 아닌지 확인할 필요조차 없었다.
비가 점차 잦아들었다.
당조는 오랫동안 잿빛으로 흐려진 하늘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마치 자기 자신에게 들려주듯 나지막이 말했다.
“거창하고 그럴듯한 이유는 저도 잘 모르겠어요.”
“그러니까 제 목표는…… 제가 가진 이 능력에 부끄럽지 않은 사람이 되는 걸로 할게요.”
백기가 미소를 지었다.
그는 발끝으로 당조의 팔을 가볍게 툭툭 건드리더니 손에 든 집합 호루라기를 불었다.
“좋아. 일어나. 다음 훈련 준비해야지.”
당조가 벌떡 몸을 일으켰다.
“아니, 형님! 그래도 칭찬 한마디쯤은 더 해주셔야죠!”
05
어느덧 한 학기가 끝나 가고 있었고, 백기의 훈련 지도 임무도 곧 마무리될 예정이었다.
원래 반 학생들은 백기와 함께 섣달그믐에 조촐한 송별회를 열 생각이었다. 하지만 공교롭게도 그날 백기가 특별 작전에 차출되면서, 학생들은 송별회를 앞당겨 열기로 했다. 겸사겸사 백기 교관의 이번 작전이 무사히 끝나기를 기원하기 위해서이기도 했다.
학생들이 모두 교실을 떠난 뒤, 백기는 문가에 아직 당조가 서 있는 것을 발견했다.
“넌 왜 다른 애들이랑 안 돌아갔어?”
“이번 임무가 꽤 위험하다고 들었어요.”
당조가 불쑥 입을 열었다.
“임무에는 언제나 위험이 따르는 법이야.”
백기가 말했다.
“그런 위험을 말하는 게 아니에요…….”
당조는 이번 작전에 직접 참여하지는 않았지만, 작전 내용에 관해서는 어느 정도 들어 알고 있었다.
“자칫 잘못 처리하면 일반인과 Evolver 사이의 갈등이 격화될 거예요. 그렇게 되면 피를 흘리는 충돌 몇 번으로 끝날 문제가 아닐지도 몰라요.”
그가 평소 건들거리는 태도를 보인다고 해서 바보라는 뜻은 아니었다.
“알고 있어.”
백기가 고개를 끄덕였다.
“네가 작전 내용을 조금이라도 들었다면 너희 반 애들도 대충 알고 있겠군. 다른 애들이 너한테 알아보고 오라고 시켰어?”
“꼭 그런 건 아니고요. 저도 직접 물어보고 싶었어요.”
당조는 팔짱을 꼈다.
“만약…… 그러니까 만약에요. 이번 작전이 교관님이 지금까지 지켜 온 신념에 어긋나는 방향으로 흘러간다면 어떻게 하실 거예요?”
“그런 가정은 할 필요 없어.”
백기는 당조를 바라보았다.
“난 직접 내 눈으로 보고, 내 머리로 판단할 거야. 작전이 시작되기도 전에 미리 의심부터 하지는 않아.”
“신념이라는 게 그토록 쉽게 흔들린다면, 그건 애초에 자기 자신의 신념이 아니라 남이 억지로 주입한 것에 불과하다는 뜻이겠지.”
백기는 잠시 말을 멈추고 자신의 손바닥을 내려다보았다.
“설령 작전이 내 신념과 충돌하는 방향으로 전개되더라도, 난 내 방식대로 해결할 거야.”
그 말을 들은 당조는 잠시 멍하니 있다가 이내 웃음을 터뜨렸다.
“하, 역시 백 교관님다운 대답이네요.”
그는 백기에게 가까이 다가가 짓궂게 눈을 찡긋했다.
“그러니까 윗분들이 교관님을 지휘관으로 키우려고 하는 거겠죠. 이런 말씀을 하시는데 누가 백 교관님 밑에서 일하고 싶지 않겠어요?”
백기는 고개를 저었다.
“난 지휘관이 되는 데 관심 없어.”
“교관님은 어쩜 그렇게 관심 있는 게 없어요? 지난번 경연 대회 때도 관심 없다고 하시더니…….”
당조가 싱글벙글 웃었다.
“제가 보기엔 교관님이 관심 있는 건 그 사진 속 아가씨밖에 없는 것 같은데요? 언제 한번 형수님을 데려와서 저희한테도 소개해 주세요. 아얏!”
백기의 팔꿈치가 날아왔다.
당조는 배를 움켜쥐고 입술을 삐죽 내밀었다. 얼굴에는 억울함이 가득했다.
“지휘관이 싫으면 대장이라도 맡으면 되잖아요? 그 정도는 괜찮죠?”
“듣자 하니 제가 졸업할 즈음에는 윗선에서 계획 중인 특별행동대도 창설될 거래요. 그때쯤이면 재미있고 실력 좋은 동료들도 많이 들어올 텐데, 교관님이 대장을 맡아 주시면 되겠네요.”
“특별행동대를 내가 창설하는 것도 아닌데, 하고 싶다고 마음대로 대장을 맡을 수 있겠어?”
백기는 당조를 흘겨보았다.
“넌 일단 네가 거기 들어갈 수 있을지부터 생각해 봐.”
“교관님이라면 분명 가능할 거라고 생각해요.”
당조는 이를 드러내며 씩 웃었다.
“백 대장님이 될 수 있다면, 저도 반드시 들어갈 수 있을 거예요.”
며칠 뒤, 백기가 작전을 위해 떠나는 날이 되었다.
반 학생들은 그를 배웅하기 위해 교문 앞까지 나와 차량에 오르는 모습을 지켜보았다.
당조는 백기에게 경례하며 미소 지었다.
“백 교관님, 미리 새해 인사드릴게요. 새해 복 많이 받으시고, 이번 작전도 무사히 마치고 돌아오시길 바랍니다.”
백기는 고개를 끄덕인 뒤 모두에게 거수경례로 답했다.
“좋은 말 고맙다. 새해 복 많이 받아. 앞으로도 분명 다시 만날 테니까.”
학생들은 트럭이 시야에서 완전히 사라질 때까지 바라보았다.
한동안 누구도 입을 열지 않았다.
마침내 반장이 코를 세게 훌쩍이더니 물었다.
“훈련…… 계속할까?”
“당연히 계속해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