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3 동생의 자기수양
"백기에게는 보기 드문 특별한 능력이 있다. 그에게 거짓말을 하느니 스스로 끝을 내는 게 낫다."
01
장일만, 사람들은 그를 척척박사라고 부른다. 다른 능력은 딱히 없지만 소문을 캐내는 능력은 도시를 통틀어 제일 뛰어나다.
그는 평소엔 빈둥거리며 낮에는 자고 밤에는 술을 마신다. 그러다 술값이 떨어지면 ‘아우’들과 함께 술집 입구에서 보호비를 걷는다.
그날 저녁, 그들은 바(bar) 안에서 담배를 피우며 수다를 떨고 있는데 부하 하나가 물었다.
‘형님, 우린 언제쯤이면 보호비 같은 거 안 걷고 살 수 있을까요?’
장일만은 머리 위의 휘황찬란한 불빛을 올려다보더니 무섭게 손에 든 담뱃불을 껐다.
‘지금부터야. 가자!’
장일만은 학생 때부터 다양한 업계를 전전했지만 딱히 성공한 경우는 없었다. 그와 술집에 앉아 보호비를 걷을 부하들도 어렵게 구했으니 자연히 많은 것을 지켜내야만 했다.
빨간 머리를 한 그는, 무리에서 나와 온몸에 멍을 두르고 바닥에 쓰러져있는 젊은이를 향해 걸어갔다. 그는 한쪽 발로 옆의 의자를 밟은 채 껄렁껄렁하게 외쳤다. “오, 지방치잖아? 그거 괜찮아 보이네, 벗어 봐, 나 구경 좀 하게!”
옆에서 초록머리를 한 부하가 친절하게 일깨워주었다. “형님, G방시입니다….”
장일만은 초록머리의 정수리를 냅다 내리쳤다. “내가 너보고 얘기하랬어?!”
말이 떨어지자마자, 다른 곳에서 보호비를 걷던 부하가 어디서 얻어터진 모습으로 망가진 탁자를 들고 돌아왔다. 그는 누군가 다가오는 것을 보면서 다급히 장일만의 뒤에 숨어 우물쭈물하며 상황을 전했다.
상황이 이러하니 장일만은 쓰러져 있는 G방시 녀석을 신경 쓸 겨를이 없었고 그는 냅다 고함을 질렀다. “누가 감히 내 사람을 건드려? 죽고 싶나?”
“누가 죽고 싶다고?”
02
말소리의 주인이 그림자에서 걸어 나왔다. 그는 한 손을 주머니에 꽂은 채 사납고도 오만한 표정을 하고 있었다.
장일만은 걸어오는 사람을 보더니 그대로 얼어붙었다. 다리가 후들거렸다. 이런 곳에서 백기와 마주칠 줄은 상상도 못했다.
장일만이 처음으로 백기를 만났을 때도 지금의 상황과 거의 다르지 않았다. 그저 장소가 술집에서 학교 후문으로, 걷어차인 사람이 장일만으로 바뀌었을 뿐.
백기는 바닥에 널브러진 G방시 녀석을 보며 말했다.
“꺼져.”
G방시는 급하게 일어나 제대로 서지도 못했지만 일단 도망가려 했다.
하지만 그는 곧 장일만에게 잡히고 말았고 장일만은 음험한 목소리로 으름장을 놓았다. “잠깐, 누가 너보고 가라고 했냐? 내가 그랬냐? 아니면 저 자식이?”
장일만은 겸멸하듯 백기가 서 있는 위치를 가리켰다. 백기가 피식하고 웃었다. 생각지도 못한 이 웃음은 장일만의 화를 돋우었다. 장일만이 손을 휘두르자 옆에 있던 부하가 소리를 지르며 백기를 향해 달려들었다.
술집의 음악소리는 점점 커졌고, 중앙에는 신나게 춤을 추는 남녀들이 모여있었다. 워낙 다양한 사람들이 뒤섞여 있는 곳이라, 작은 소동이 생겨도 이상할 것 없었다. 아무도 이 모퉁이에서 일어나는 일에 주의를 기울이지 않았다.
G방시는 냅다 달려가 술집의 보디가드들을 데려왔지만 곧 눈앞의 광경에 아연실색하고 말았다. 형형색색의 머리를 한 건달들이 모두 바닥에 널브러져 있었고, 머리카락 한 올 다치지 않은 백기가 손에 묻은 먼지를 털며 그 자리에 서 있었다.
그는 바닥에 쓰러진 건달들을 성큼성큼 걸어가 장일만을 붙잡아 익숙하게 수갑을 채웠다. “경찰서 가는 길, 알지?”
장일만은 수갑을 보고 놀라서 움찔달싹 못했다. 백기가 경찰이 되었을 줄이야!
그날 저녁, 무슨 이유에서인지 백기는 그를 구치소로 연행하지 않았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장일만은 스스로 자수를 했다. 그는 구치소의 ‘VIP 고객’이었지만 대우는 좋아지지 않았다. 처음 구치소에 왔을 때처럼 모퉁이에 웅크리고 있을 뿐이었다. 심문을 맡은 경찰은 그를 보며 눈썹을 찌푸렸다. “장일만, 너 이번 달에만 벌써 세 번째야.”
장일만은 속으로 욕을 퍼부었다. 이때 눈에 익은 신발이 그의 앞에 멈췄다. 머리 위에서 익숙지 않은 목소리가 울려퍼졌다.
“장일만.” 상대방의 말투 속에는 음산한 차가움이 섞여 있었다. 고개를 들자 거칠고 고집 센 얼굴의 백기가 있었다. 백기는 옆의 경찰한테 말했다. “이 사람은 내가 맡을게.”
03
말을 마치고 그는 장일만 앞에 쪼그려 앉았다. "널 찾으러 가기도 전에 네가 먼저 찾아오다니. 뜻밖이군."
백기가 그를 찾는다는 말을 듣고 장일만은 바쁘게 말했다. "백 팀장, 나 요즘 조용히 있었다고..." 그는 말을 마치기도 전에 눈치껏 몸을 움츠렸다. 백기는 그를 째려보며 사진 한 장을 꺼내 앞으로 들이밀었다. "알아?"
장일만은 사진의 그 얼굴을 보며 이내 답했다. "알지!"
백기는 눈썹을 치켜세웠다. "말해 봐."
장일만은 막 입을 열려다 히죽히죽 웃기 시작했다. "백 팀장, 그럼 난 뭘 얻게 되지?"
백기가 말했다. "나한테 조건을 거는 건가?"
장일만은 급히 고개를 가로저었다. "아니, 아니. 하지만 이곳은… 정말 못 견디겠어. 특히 기억력에 영향을 주는 것 같기도 하고." 그는 시치미를 떼며 머리를 문질렀다.
백기 역시 태연하게 다른 두 장의 사진을 장일만에게 건넸다. "난 널 풀어줄 수도 있어, 하지만 내일까지 이 세 명에 대해 알아와야 할 거야."
아무렇게나 대답했는데 풀어준다고 하니, 장일만은 속으로 무척이나 기뻐했다. 그의 부하들은 큰 형님이 어떻게 이렇게 빨리 나왔는지 궁금할 뿐이었다.
장일만은 자신의 놀라운 지혜에 우쭐거리며 기고만장하여 백기가 준 사진을 마음속으로 기억했다.
단서를 받기로 한 시각, 백기는 매끈한 검은색 오토바이를 타고 약속한 시간에 술집 후문에 나타났다. 오토바이가 멈춰 서자 장일만은 휘파람을 불며 아무렇지 않다는 듯 담배에 불을 붙여 백기에게 건넸다.
백기는 무표정하게 말했다. “말해 봐.”
장일만은 담배를 다시 받아 들곤 눈알을 굴렸다. 사실 그는 어떠한 조사도 하지 않았고, 대충 가짜 정보를 짜집기해서… 백기에게 알릴 뿐이었다. 장일만이 진지하고 겸손한 척하며 거짓말을 늘어놓자 백기의 미간이 점점 찌푸려졌다. 장일만은 마음 한구석이 불안했지만 다시 알랑거리며 말했다. “백… 백 팀장, 그게 다야…”
백기는 대답하며 다른 사진을 꺼내어 장일만의 눈앞에서 흔들었다.
“감옥이 무섭지 않나 본군, 그렇다면 이 걸 유 대장에게 넘기면 어떨까?”
장일만의 얼굴에 순간 웃음이 사라지면서 그 자리에 얼어붙었다. 온몸의 피가 거꾸로 흐르는 것만 같았다.
“백 팀장! 다시 얘기하자, 제발 그러지 말아줘!”
다급해진 장일만은 금방이라도 눈물을 쏟을 것 같았다. 그들의 대장이 이걸 알게 되는 날은… 바로 죽음이다!
백기는 장일만의 찌푸린 얼굴을 톡톡 치며 말했다.
“조사하라고 한 세 사람은 기억나지?”
장일만은 모이 쪼는 병아리처럼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납니다! 나고 말고요!”
백기는 만족스러운 듯 손을 거두고는 헬멧을 쓰고 시동을 걸고는 백미러를 통해 장일만을 힐끗 보았다.
“모레, 다시 여기서 만나. 장난칠 생각은 하지 않는 게 좋아.”
04
약속된 시간이 되었지만 백기는 장일만을 볼 수 없었다.
주변은 조용했다. 그가 후문을 열자, 술집 안의 소리가 귀로 들려왔다. 한 바퀴 쓱 둘러봤지만 장일만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대신 눈에 익은 초록머리가 보였다.
초록머리는 그를 발견하고 도망치려 했지만 바로 잡히자 목이 쉴 정도로 소리 질렀다.
“경찰관님… 말로 합시다. 제발 때리지 마세요!”
백기가 물었다.
“장일만은 어딨어?”
초록머리가 말했다. “형님은 아침 일찍부터 경찰관님 심부름을 한다고 나갔어요. 어디 있는지는 저희도 몰라요.”
백기가 물었다. “어디로 간다고 했는데?”
초록머리는 얼굴을 찡푸리며 말했다.
“저도 몰라요… 아마도 하늘거리 골목으로 갔을 거예요…”
몇 분 후, 백기는 하늘거리 골목에서 장일만을 찾아냈다. 그는 골목에서 십여 명에게 둘러싸인 채 바닥에 고꾸라져 있었다. 얼굴에는 심한 멍과 핏자국이 있었다.
무리의 손에는 10cm짜리 날카로운 무기가 들려 있었다. 예리한 칼끝은 언제든 누군가의 숨통을 끊어놓을 수 있을 것 같았다. 백기는 그들이 무슨 말을 하는지 듣지 못했다. 그저 무리의 사람들이 갑자기 무기를 잡아올려 장일만을 찌르려는 것이 보였다.
장일만은 단념한 듯 두 눈을 감고 자신의 몸에 꽂힐 칼을 받아들였다. 목숨을 보존하고자 목숨을 바쳤는데 결과적으로 목숨을 잃게 된 꼴이었다.
하지만 예상과 달리 칼은 몸에 꽂히지 않았다.
눈을 번쩍 떠 보니, 그의 눈앞에는 언제 왔는지도 모를 그림자 하나가 나타나 칼을 막고 있었고 칼을 쥔 사람은 거칠게 바닥으로 꼬꾸라졌다!
황천길로 갈 뻔한 장일만은 그 자리에서 기절했다.
겨우 뜬 실눈으로 끊임없이 흔들리는 사람의 그림자만을 볼 수 있을 뿐이었다. 누군가가 계속 그의 옆에 쓰러지는 것이 보였다.
장일만은 그제야 확인할 수 있었다. 자신의 목숨을 구한 사람이 백기라는 것을.
그는 상상조차 하지 못했다. 경찰이 자신을 구해주는 날이 올 줄이야.
그 경찰들은 밝은 태양 아래서 항상 가장 정의로운 일을 한다. 마치 세상의 모든 힘이 그곳에 모여있는 것처럼.
하지만 백기는 좀 달랐다. 그는 정의에 속하거나 명예로운 일 같은 건 신경 쓰지 않았다. 그가 관심을 두는 일은 도대체 무엇일까?
장일만은 도무지 이해할 수 없었지만 오늘의 광경을 목격하고 나서야 깨달았다. 이렇게 홀로 뛰어드는 사람은 오직 백기뿐이라는 것을.
이윽고 신발 한 쌍이 그의 눈앞에 멈춰 섰다. 장일만은 안도의 숨을 내쉬며 웃었다. 그리고 힘겹게 숨을 몰아쉬며 종이 한 장을 꺼내었다.
"미안, 내가 늦었지… 자료는 모두 여기에 있어."
백기는 종이를 받아 들고 장일만의 몸에서 휴대폰을 꺼내어 어디론가 전화를 걸었다.
장일만은 그가 뭐라고 하는지 정확하게 듣지 못하고 의식을 잃었다.
05
장일만은 자신이 이렇게 경찰서 문 앞에 모습을 드러내리라고는 단 한 번도 생각해 본 적이 없다. 그렇지만 그는 이미 이곳에서 대기한 지 일주일이 다 되어갔다. 매일 아침 9시에서 저녁 5시까지. 문 앞에서 담배를 피우는 그에게 근무하는 경찰까지 와서 '문안'을 물을 정도였지만, 백기는 여전히 나타나지 않았다.
그 세 명 중 한 명의 상황이 확실하지 않아 그가 어련사리 다시 확인했지만 이번에는 백기와 연락이 닿지 않았다. 경찰관은 그가 백 경관을 찾는다는 말을 듣고 놀라서 정색하며 그를 내쫓았다.
며칠을 더 기다렸을까. 장일만은 드디어 백기의 모습을 보았다.
백기가 오토바이에서 내리자마자 장일만은 곧장 그를 맞이했다.
“형님!”
백기의 얼굴에는 순간 놀라는 기색이 보였지만 이내 원래의 표정으로 돌아갔다. 장일만은 웃으며 그에게 말했다. “목숨을 구해주신 은혜에 감사드립니다! 저번에 형님이 아니었다면 저는 그날 바로 저승으로 갔을 겁니다.”
백기는 여전히 담담한 어투로 얘기했다. “난 단지 정보가 필요했을 뿐이야. 각자 필요한 걸 취할 뿐이지.”
장일만은 여전히 웃는 얼굴로 백기에게 편지 한 장을 건넸다. “그전의 자료는 충분하지 않았어요, 이걸 더하면 될 겁니다.” 그는 갑자기 무언가 생각난 듯 백기에게 손을 내밀었다. “…맞다, 형님. 그 사진은요?”
백기는 편지를 받아 들고는 고개를 들어 그를 힐끔 보았다. “사진 합성이라는 기술이 있다는 거 모르나?”
장일만은 어리둥절했고, 백기는 말을 이어갔다. “정보, 고마워.”
장일만이 뭐라고 대답하기도 전에 백기는 이미 그를 지나쳐서 경찰서로 향했다. 장일만은 그 뒷모습을 보며 생각에 잠겼다가 이윽고 웃기 시작했다. 그는 백기가 뭘 그렇게 신경 쓰는지 얼추 알 것 같기도 했다.
백기로부터 단서가 더 필요하다는 전화를 받았을 때 초록머리가 옆에서 물었다. “말 나온 김에요, 형님. 저번에 돈 받으셨습니까?”
장일만은 의문스러운 듯 물었다. “응? 무슨 돈 말이야?”
초록머리는 대답했다. “그러니까… 그 백 경관이 예전에 형님에게 찾아보라고 했던 그 세 명에 대한 거요…”
장일만은 곧장 손을 뻗어 초록색 머리털을 움켜쥐었다.
“돈. 돈. 돈 온종일 돈만 아는 거냐! 너희들 내 말 잘 들어라. 다음에 백 경관님 만나면 공손하게 불러! 형! 님! 이라고!”
그는 백기가 이런 걸 원치 않을 것을 알았다. 하지만 세상에는 불문율의 법칙이 따르는 법.
백기 같은 사람이야말로 진정한 형님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