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1
덜컹덜컹—— 바퀴 소리가 자갈이 깔린 관광도로 위를 지나갔다.
창밖으로 이어지던 숲의 풍경은 어느새 정교하고 아름다운 작은 마을의 풍경으로 채워져 있었다.
백기의 휴가를 틈타, 우리는 오래전부터 계획해왔던 여행을 시작했다.
다만 목적지에 대한 정보는 내게 끝까지 비밀이었고, 모든 일정은 전부 백기에게 맡겨져 있었다.
막 시선을 창밖으로 던진 순간, 화려한 옷을 입은 사람들이 꽃차 위에서 음악을 연주하고 있는 것이 보였다.
유연
선배, 저기 봐요. 퍼레이드 음악 공연이에요!
나는 들뜬 마음으로 백기 곁에 바짝 다가갔다. 그러자 그는 천천히 차를 길가에 세웠다.
이곳이 음악으로 유명한 작은 마을이라는 이야기는 전에 어렴풋이 들은 적 있었지만, 눈앞의 광경을 보니 그래도 새삼 놀라웠다.
백기
아마 음악가들이 자발적으로 하는 퍼레이드일 거야.
백기
앞으로 며칠 동안은 자주 볼 수 있을 것 같아.
흩날리는 꽃잎들이 꽃차가 지나간 방향을 따라 날아오더니, 마침 내 손바닥 위에 떨어졌다.
유연
역시 이번에 선배가 갑자기 휴가 난 틈에 놀러 나오길 잘했네요~
유연
이렇게 좋은 곳을 알려준 백 경관님 덕분이에요.
백기
예전에 특훈 장소가 이 근처로 잡힌 적이 있어서, 이쪽은 조금 알아.
백기
저기가 전에 너한테 말했던 별빛 극장이야.
백기
일 년 내내 공연이 열린다고 들었는데, 먼저 가볼래?
백기의 시선을 따라 바라보자, 거리 끝에 서 있는 화려한 건물이 유난히 눈에 띄었다.
나는 고개를 저은 뒤, 백기의 손을 잡고 양옆으로 이어진 거리 안으로 걸음을 옮겼다.
유연
서두르지 않아도 돼요. 우리 아직 시간 많잖아요~
유연
공연 보러 갈 때 그 수수께끼를 풀어도 늦지 않죠~
음표 장식으로 곳곳에 수놓인 거리들을 바라보자, 마음속에 절로 기대감이 피어올랐다.
길을 걷는 동안, 곳곳에서 예술가들의 즉흥 연주가 들려와 우리는 그때마다 발길을 멈추게 됐다.
그리고 눈앞의 아름다운 풍경을 보다보니, 문득 그가 말했던 '특훈'이라는 게 어떤 건지 궁금해졌다.
유연
그럼 선배가 전에 이쪽으로 특훈을 왔던 건, 무슨 특별한 임무 때문이었어요?
백기
특훈 내용이 평소랑 조금 다르긴 했어.
그는 곁에 있는 쇼윈도를 가리켰다. 투명한 전시 진열장 안에는 지휘봉 하나가 놓여 있었다.
백기
저거랑 관련 있어.
유연
지휘봉?
백기
구체적인 내용은 예전에 맡았던 기밀 임무와 관련돼 있어. 아직 종결되지 않은 사건이라 많이는 말할 수 없어.
백기의 표정이 묘하게 웃는 것 같기도, 아닌 것 같기도 했다. 뭔가 떠오른 게 있는 눈치였다.
백기
하지만 그때 교관은 지금 생각해도 꽤 골치 아픈 사람이었어.
거리 모퉁이에서 갑자기 울려 퍼진 음악 소리가 그의 설명을 끊었다. 백기는 내 손을 잡고 계속 앞으로 걸었다.
백기
아, 맞다. 괜찮은 식당도 하나 알아. 바로……
??
백 지휘자님, 오랜만입니다.
백기가 말을 끝내기도 전에, 가늘고 날카로운 목소리가 우리 뒤쪽에서 들려왔다.
백기의 미간이 순간 확 찌푸려졌다가, 이내 미소로 바뀌었다.
백기
볼로냐 씨, 여기서 뵙게 될 줄은 몰랐습니다.
상대의 모습을 확인하고 보니, 그는 키가 크고 마른 남자였다. 그의 곁에는 여러 명의 보디가드들이 둘러서 있었다.
내가 막 무언가 묻기 위해 입을 열려는 순간, 맞잡은 손바닥에 아주 가벼운 압박감이 전해졌다.
그의 손끝이 규칙적으로 움직였다. 그 감각에, 예전에 함께 잠입 임무를 맡았을 때 사용했던 암호가 떠올랐다.
눈앞의 이 사람은 아마도 백기가 예전에 잠입 중 접촉했던 용의자일 것이다.
볼로냐는 느린 걸음으로 앞으로 다가오다가 일부러 우리에게서 조금 떨어진 곳에 멈춰 섰다.
볼로냐
음, 지난번 베르나 만찬 이후로는 백 지휘자님을 다시 뵙지 못했지요.
볼로냐
당신의 뛰어난 기량이, 저는 무척 그리웠습니다.
볼로냐
이분은?
백기
제 공연 프로듀서이자, 제 여자친구입니다.
나도 그 흐름에 맞춰 앞으로 한 걸음 나서며, 백기의 말을 자연스럽게 이어받았다.
유연
전부터 말씀 많이 들었어요. 이렇게 직접 뵙게 될 줄은 몰랐네요.
볼로냐
그렇군요. 만나 뵙게 되어 정말 기쁩니다. 혹시 백 지휘자님께서 시간을 내주신다면……
그가 말을 다 끝내기도 전에, 곁에 있던 경호원이 갑자기 몸을 숙여 그에게 무언가를 속삭였다.
볼로냐
아이고, 죄송합니다. 원래는 지휘자님과 연인분을 점심 식사에 초대하고 싶었는데, 갑자기 일이 생겼군요.
볼로냐
그래도 저는 백 지휘자님의 공연을 다시 한 번 볼 수 있기를 바랍니다.
볼로냐
언제든 찾아와 주십시오.
백기
물론입니다.
볼로냐의 모습은 곧 길모퉁이 너머로 사라졌고, 내 가슴에 감돌던 긴장감도 그제야 조금 가라앉았다.
막 백기에게 이유를 물으려던 순간, 나는 그가 이미 진지한 얼굴로 전화를 들고 있는 것을 발견했다.
백기
목표 출현. 특별 행동팀 배치. 지금 출발한다.
02
찬란한 보석들이 극장 천장 위로 별하늘처럼 반짝이는 풍경을 이루고 있어, 마치 드넓은 은하수 한가운데에 서 있는 듯했다.
원래라면 여행의 종착지였을 별빛극장에는 우리가 예정보다 먼저 도착하게 되었다.
전에 본 적 있던 특파팀 대원들은 제복을 입고 있지 않았다. 대신 공연용 정장을 차려입고 있었다.
특파팀 대원
보고드립니다, 백 지휘관님. 특별행동팀 대원들은 이미 집결을 마쳤고, 현재 무대 뒤에서 악기 조율과 현장 정리를 진행 중입니다.
특파팀 대원
이 시간부로 별빛극장은 특파팀이 전면 접수하며, 백 지휘관님의 공연 준비에 들어갑니다.
백기
알았다. 전달해. 합주 연습은 내일부터 시작한다.
유연
……
갑작스러운 신분 전환에 어떻게 반응해야 할지 몰라, 나는 눈빛으로 옆의 백기에게 물었다.
유연
그러니까 특별행동팀 사람들이 전부 악단처럼 차려입은 것도, 볼로냐의 Evol을 피하기 위해서예요?
오는 길에 백기는 내게 이번 일의 전후 사정을 설명해 주었다.
방금 우리 앞에 나타난 볼로냐는 Evolver이자 밀수범이었다.
특파팀은 이미 오래전부터 그의 행적을 주시하고 있었다.
백기
응. 이게 가장 안전해.
백기
볼로냐의 Evol은 일종의 흐릿한 거짓말 탐지 능력이야.
백기
당조랑 작동 방식은 다르지만, 상대방의 신분이 진짜인지 가짜인지 판별할 수 있어.
백기
원래 악단 신분으로 접근하는 데까지는 성공했는데, 체포 직전에 이유도 없이 사라져버렸어. 그래서 임무가 잠시 보류된 거야.
유연
선배가 전에 말했던 아직 끝나지 않은 임무가 이거였구나.
유연
……그런데 이것도 거짓말 탐지 계열 Evol이면, 왜 당조는 안 보이는 거예요?
무언가 떠올랐는지, 백기가 픽 웃었다.
백기
그쪽도 나쁘지 않은 후보긴 했어. 근데 음악적 재능이 영 없어서. 그래서 외곽 지원 쪽으로 배치했어.
백기
그 점에 대해서 당조 본인이 항의하기도 했는데, 만장일치로 기각됐지.
다 함께 당조의 항의를 일축하는 장면을 상상하니, 나도 참지 못하고 웃음이 터졌다.
잠깐의 가벼운 분위기가 낮 동안의 긴장을 조금 씻어주었다. 그러자 궁금한 것들이 더 생겼다.
유연
그러면 백 지휘관님은 어쩌다가 지휘자가 되신 거예요? 지금 너무 궁금한데요!
백기
아마도 원래 내가 지휘관이니까? 현장에서 함께 움직일 때도 문제가 생기기 어렵고.
백기
음악 쪽은……
그의 입가에 떠오른 씁쓸한 웃음을 보자, 나는 마침내 그가 말한 ‘특훈’이 어떤 것이었는지 알 것 같았다.
유연
그럼 백 지휘자님의 첫 등장은 상대에게 충분히 깊은 인상을 남겼겠네요.
유연
아니면 만나자마자 다시 공연을 보고 싶다고 하진 않았을 테니까요.
백기
그 사람을 상대로 한 특별 공연을 한 번 한 적은 있어.
백기
담당 교관이 충분히 뛰어난 덕분에 어떻게든 무사히 해낼 수 있었지.
백기
그 기간 동안 그 사람이 날 볼 때마다 처음 한 말은 늘 이거였어. “감정을 담아 지휘해라.”
백기
지휘관한테는 확실히 난이도가 높은 요구였어.
그가 살짝 난감한 표정을 짓는 걸 보자, 나는 풋 하고 웃음을 터뜨렸다.
그의 묘사를 통해, 그 특별했던 시간의 풍경이 눈앞에 그려지는 것 같았다.
유연
그래서 결국 어떻게 테스트를 통과한 거예요?
백기
요령을 하나 찾았어. 무대에 서기만 하면, 네가 아래서 공연을 보고 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거든.
백기
그냥 지휘관이 아니라, 백 지휘자가 되는 거지.
그의 눈동자 깊은 곳에 빛이 번졌다. 나는 시선을 뗄 수 없었다.
유연
설마 나한테도 공이 있었을 줄이야~
유연
그럼 나도 진짜로 아래에 앉아서 공연을 한 번 볼 수 있는 거예요?
그의 살짝 흐트러진 머리카락을 정리해주려고 손을 뻗었더니 그가 먼저 내 손을 잡았다.
백기
사실 이번 작전에 너도 같이 참여해줬으면 했어.
백기
내 공연이니까, 네가 당연히 있어야지.
그의 입가에 살며시 피어오른 미소는 초대이기도 했고, 우리가 함께 나아가는 무언의 약속이기도 했다.
유연
당연히 참여해야죠.
유연
저는 선배의 기획자이기도 하고 여자친구이기도 한데, 안 오면 상대방이 분명 의심할 거예요.
유연
게다가 나쁜 사람 잡고 나면 우리 휴가도 계속 이어가야 하니까요.
03
‘단독 대관 공연’을 제공하겠다고 하자, 볼로냐는 과연 기꺼이 별빛극장으로 와 약속에 응했다.
밤이 내려앉기 전, 나와 백기는 일찌감치 현장에 도착했다. 특파팀 대원들은 각자의 방식으로 작은 마을 안에 잠입했고, 외곽에 팀 배치를 마친 상태였다.
볼로냐의 차량 행렬이 극장 입구에 멈춰 선 순간, 내 이어폰에도 신호가 들어왔다.
나는 백스테이지 대기실 문을 열고, 안쪽 탈의실을 향해 두어 마디를 외쳤다.
유연
선배, 볼로냐가 벌써 극장 입구에 도착했어요.
유연
이제 20분 뒤면 무대에 오를 준비를 해야 해요.
탈의실 밖의 옅은 푸른색 커튼이 살짝 흔들리더니, 곧 그 안에서 곧고 훤칠한 실루엣이 걸어 나왔다.
짙은 남색 정장 위에 은빛 무늬가 은은하게 수놓여 있었다. 마치 밤하늘에서 빛나는 별들 같았다.
백기
……이 예복, 생각보다 훨씬 거추장스럽네.
백기가 조금 답답한 듯 가슴 위의 브로치를 만지작거리는 모습을 보고, 나도 앞으로 다가가 그의 옷깃을 정리해주었다.
유연
사전 계획대로 바깥에 있는 대원들은 극장에서 떨어진 곳에 배치됐어요.
유연
선배 공연이 시작되면 곧바로 움직일 거예요.
백기
알고 있어. 상대가 의심하지 않도록, 우리는 첫 곡에서 최대한 시간을 끌 거야.
백기
그래야 외곽에 있는 팀에게 충분한 시간을 벌어줄 수 있어.
나는 은색 브로치를 그의 가슴 위에 달아주었다. 반짝이는 빛이 그의 자태를 한층 더 빛나게 했다.
유연
응, 나는 제일 위쪽 좌석에 자리를 잡아뒀어요.
유연
그래야 작전에 방해되지 않을 테니까요.
어느새 그의 손끝이 내 손을 붙잡고 있었다. 그리고선 손가락 끝으로 내 손바닥을 가볍게 누르듯 감싸왔다.
백기
손이 왜 이렇게 차가워. 걱정돼?
유연
솔직히 조금은요. 그런데 제가 걱정하는 건 다른 거예요.
유연
혹시 너무 빨리 잡아버리면 어떡해요? 전 공연 더 보고 싶은데.
나는 백기의 뺨을 손가락으로 콕 찌르며, 공기 속에 감돌던 긴장감을 살짝 흩어뜨렸다.
그의 미간에 잡혀 있던 주름이 스르르 펴지며, 얼굴 가득 자신감 넘치는 빛이 번졌다.
백기
그건 어렵지 않아. 끝나고 내가 다시 한 곡 해줄게.
쿵—— 쿵——
텅 빈 극장 안에, 백기가 무대로 오르는 발소리가 울려 퍼졌다.
나는 멀리 떨어진 관람석에 서서, 심장이 터질 것처럼 긴장했다.
볼로냐는 지금 자신의 보디가드들과 함께 앞줄 좌석에 앉아 곁에 놓인 샴페인을 즐기고 있었다.
검은 옷을 입은 보디가드들은 극장 안 곳곳에 흩어져 있었고, 언제든 돌발 상황에 대응할 태세였다.

https://youtu.be/2yaBxn3wwDQ?si=wg6yejw8lXPZFpnu
백기가 무대 한가운데에 섰다. 수많은 스포트라이트가 교차하며 그의 몸 위로 쏟아졌다.
별빛처럼 빛나는 돔 천장이 그의 실루엣을 받쳐주었고, 그는 첫 음을 내려놓았다.
비통한 현악기 소리가 파도처럼 쏟아져 나와, 지휘봉의 움직임에 맞춰 울려 퍼졌다.
드뷔시의 《바다(La Mer)》는 거센 조류가 되어, 웅장한 기세로 극장 전체를 집어삼켰다.
나는 무대 위의 백기를 뚫어져라 바라보았다. 지금 그의 모습은 마치 말없이 적과 맞서는 전사 같았다.
주변에 위험이 도사리고 있어도, 그는 그저 온 힘을 다해 연주를 이끌며 임무를 이어가고 있었다.
쐐액——
급박한 현악 소리와 함께, 곡조는 제3악장 《바람과 바다의 대화(Dialogue du Vent et de la Mer)》로 들어섰다.
그가 무심코 고개를 돌리며 순간 시선을 던지는 것을 포착했다.
깊고 고요한 눈동자가 찬란한 별빛처럼 목표의 방향을 단단히 꿰뚫고 있었다.
그 허리케인 같은 교향악은 지금 이 순간 그의 지휘 아래 펼쳐진 빈틈없는 포위망처럼 느껴졌다.
그리고 그 안에 걸려든 사냥감에게는 도망칠 가능성이 조금도 남아 있지 않았다.
딩—— 딩딩——
현악기의 마지막 높고 맑은 음색이 마무리를 장식하며, 교향악은 정식으로 끝을 맺었다.
나는 시선을 입구 쪽으로 돌렸다. 하지만 아직 외곽의 특파팀 대원들은 극장 안으로 진입하지 않고 있었다.
무슨 문제가 생긴 걸까?
그 순간, 볼로냐가 이미 조용히 자리에서 일어난 것을 보고 나는 저도 모르게 손에 식은땀을 쥐었다.
백기
공연이 끝나자마자 가기엔 너무 서두시는 게 아닙니까?
백기의 목소리가 극장 안에 울려 퍼졌다. 마치 갑자기 솟아오른 음표 같았다.
볼로냐
백 지휘자님의 공연은 확실히 훌륭했습니다.
볼로냐
하지만 사업 이야기를 나누기엔, 여기는 그리 좋은 장소가 아닌 듯하군요.
곁에 있던 보디가드가 거의 동시에 손을 뻗었다. 새까만 총구가 순식간에 백기를 겨눴다.
백기
확실히 대화는 아니지.
백기
일방적인 심문이니까.
맹렬하게 몰아친 바람이 보이지 않는 족쇄가 되어 가까이에 있던 보디가드들을 모조리 제압했다.
볼로냐
빌어먹을, 저놈 Evolver였어!
그가 알아차린 거의 같은 순간, 거센 바람이 극장 안으로 흩어져 불어닥쳤고, 순식간에 모든 무기가 바닥으로 떨어졌다.
무대 위의 대원들도 그 순간 일제히 모습을 드러내며 모든 사람을 제압하기 시작했다.
백기
넌 도망 못 가.
볼로냐는 공포에 질려 문밖으로 달려갔다. 하지만 그를 맞이한 것은 이미 수없이 배치된 특파팀 대원들이었다.
04
외곽에 배치된 특파팀 대원들과 성공적으로 합류한 뒤, 볼로냐의 범죄 조직원들은 전원 체포됐다.
밤이 내려앉은 거리는 낮의 활기를 잃고, 교향악의 여음처럼 고요하게 가라앉아 있었다.
호송 차량이 떠난 뒤, 극장 입구에는 나와 백기만 남았다.
나는 고개를 돌려 그를 바라보았다. 원래는 말끔하게 다려져 있던 지휘복이 방금 전 작전으로 조금 구겨져 있었다.
소매 끝 단추에는 가느다란 실밥이 감겨 있어, 방금 전의 소란을 말없이 전하는 듯했다.
나는 백기 곁에 기대어 손가락으로 그의 손바닥을 콕 찌르며 말했다.
유연
후…… 작전이 드디어 무사히 끝났네요.
백기
응. 내일 오전에 연모시로 압송한 뒤에는 정식으로 심문할 수 있을 거야.
그의 목소리는 밤바람처럼 부드럽게 일렁이며 내 마음속 걱정을 조금씩 몰아냈다.
유연
이제 나쁜 사람도 잡았으니까 우리 다음엔 뭐 해요?
내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그의 손이 내 손을 잡아왔다.
백기
아까 한 약속 지켜야지.
그의 목소리가 귓가에 내려앉았다. 기대 어린 표정은 마치 포장을 풀어주길 기다리는 선물 같았다.
주변에서 불어온 산들바람이 우리를 함께 하늘로 끌어올렸다.
우리는 작은 마을 전체를 가로질렀고, 멀리 발아래에 호수 하나가 보였다. 고요한 호수는 하늘의 빛을 비추고 있어 별들이 점점이 내려앉아 어루만지는 것 같았다.
유연
여기는 어떻게 발견했어요?
백기
전에 혼자 훈련할 때, 밤마다 자주 왔어.
백기
별빛이 예쁘고 마음도 쉽게 가라앉거든.
백기
겸사겸사 교관 잔소리도 몇 마디 덜 들을 수 있었고.
그가 전에 말했던 악마 같은 훈련을 떠올리자 나도 참지 못하고 웃음이 났다.
유연
그럼 이것도 일종의 땡땡이예요?
백기
맞아. 그래도 지금은 아무도 날 못 잡아.
그는 내 손을 꼭 잡은 채 그대로 들어 올렸다.
손바닥의 온기가 밤의 서늘함을 밀어내며, 부드럽고 따뜻한 물결처럼 번져왔다.
백기
여기서 별을 보면, 유난히 가깝게 느껴져.
백기
그래서 난 여기가 진짜 별빛극장이라고 생각했어.
나는 하늘을 향해 손끝을 살짝 들어 올렸다. 밤하늘을 스쳐 지나가는 차가운 감촉은 마치 별빛에 닿은 것 같았다.
고요한 호수 위로 바람을 따라 잔물결이 일렁였고, 그 물결은 내 마음에도 작은 파문을 일으켰다.
예상치 못한 사건 때문에 앞당겨 도착했던 최종 목적지가 이제는 또 다른 놀라움의 시작이 되어 있었다.
우리는 나란히 호숫가에 기대어 앉았다. 이 드넓은 극장 아래, 유일한 관객이 되어서.
유연
약속을 지키는 거라면, 공연은 언제 시작해요?
기대감이 가득한 내 시선이 그의 눈과 마주쳤다.
백기
지금.
산들바람이 그의 목소리를 감싸, 내 뺨을 가볍게 스치고 지나갔다.
백기
바람이 우리 악단이 되어줄 거야.
내가 영문을 몰라 바라보는 사이, 그는 천천히 걸음을 옮겨 자신이 훈련하던 장소를 상징하는 그 자리로 올라갔다.
바닥에 남은 옅은 흰 자국은 그의 발밑 자세와 딱 맞아떨어졌다. 마치 그 뒤에서 묵묵히 노력해온 그의 모습을 보여주는 듯했다.
백기
이 공연은, 내 여자아이에게 바칠게.
백기가 팔을 들어 올리자, 그의 머리끝을 스치듯 산들바람이 지나갔다.
나뭇잎들이 흔들리며 맑고 가벼운 사각거림을 냈다. 마치 악단에서 연주의 시작을 알리는 탬버린 같았다.
그가 팔을 휘두르자 호숫가에서는 물결이 천천히 밀려와 부딪히는 소리가 들려왔다.
차분한 음색이 온 하늘의 별빛을 감싸고, 내 마음속에 멈추지 않는 파문을 일으켰다.
그 순간 나는 모든 피로를 잊은 채, 그가 내게 선사하는 공연만을 바라보고 있었다.
이건 지금, 그와 바람이 나를 위해 들려주는 연주였다.
마침내 곁의 작은 풀잎들이 흔들림을 멈추며, 이 곡 전체에 길고 부드러운 쉼표를 찍을 때까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