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날에 작업한 거라 아쉬운 부분이 많습니다~ 참고하세용
<프롤로그>
"이 가게도 맛있겠다……"
손끝으로 화면 위를 움직이면서 나는 눈도 깜빡이지 않고 블로거에 있는 그림과 글로 풍부한 음식 추천을 바라보았다.
문장 맨 아래의 위치에 시선이 가자 나도 모르게 한숨이 나왔다. 휴대전화를 들고 소파에 눕고는 실망스럽게 손을 소파 옆으로 늘어뜨렸다. 귓가에 발자국 소리가 멀리서 가까워지자 곧 손바닥이 텅 비게 되었다.
눈을 들어 보니, 선배가 소파 앞에 서서 하마터면 내 손에서 미끄러질 뻔한 휴대 전화를 들고는 흔들고 있었다.
"왜 그래? 짜증나는 일이 생겼어?"
"그정도는 아니에요. 그냥 조금 아쉬워서요."
나는 백기에게 휴대 전화 속의 그 문장을 보라고 했다.
"제가 팔로우하는 블로거가 아까 숨은 맛집 추천 글을 올려서요. 원래는 추천받은 가게에 가서 맛집 인증을 하기로 했거든요. 하지만 마지막 문장을 보고나서야 이 가게들이 모두 다른 도시에 있다는 걸 알았어요…… 저는 방금전까지도 문장 속에 나와잇는 음식을 보면서 진심으로 설레고 있었거든요!"
곧 머리가 무거워지더니 따뜻한 손이 내 머리를 쓰다듬었고, 옆에서 웃음기를 띤 백기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럼 우리 이 도시로 가보자. 휴가가 아직 길어서 우리에겐 시간이 충분해."
"정말요? 그런데 오로지 먹기 위해서 달려가는 건 너무 제멋대로인 거 아니에요?"
"네가 좋아하기만 한다면 안될 게 뭐가 있어."
백기는 자연스럽게 문서를 내려보다가 갑자기 손을 들어 화면 속 한 곳에 점을 찍었다.
"전에 네가 겨울 바다를 보고 싶다고 했던 게 생각났어."
"맞아요! 하지만 그동안 바빠서 갈 기회가 없었어요."
"지금이 그 기회야."
백기는 나에게 휴대 전화를 건네주면서 입가를 살짝 올렸다.
"휴게소인 이 가게는 '해안 롱로드; 에 인접해 있어서 관광코스로 빼놓을 수 없어. 서의 사람들로부터 들은 건데 현지에서 유람할만한 경치가 아주 많아서 휴가 보내기에 아주 좋다고 해. 우리 민박집을 찾아서 매일 시내의 풍경을 유람한 후에 가는 길에 가게에 가서 인증을 하자. 그러면 글에 나온 가게들은 모두 들릴 수 있을 것 같아."
진지한 그의 모습을 보면서 나는 눈을 깜빡거렸다.
"선배, 어떻게 이렇게 빨리 스케줄을 계획할 수 있는 거예요!"
"너와 여러번 여행하면서 얻은 경험을 총집합시켰지."
"하지만 임무를 막 끝내고 바로 저와 먼 길을 떠나는 건 너무 피곤하지 않을까요?"
"아니."
백기는 단호하게 대답했다.
"내 휴가니까 어떻게 쉬어야 할지는 내가 결정할게. 너와 함께 있는 게 가장 좋은 휴가 방법이야."
<여행일기>
*초겨울 산림 조성길
"선배, 빨리 여기로 와봐요! 이런 색깔의 꽃은 처음 봐요~"
"아마 재배한 신품종일 거야. 마음에 들면 나중에 디저트 가게에 가서 먼저 사진 한 장 찍자. 그리고 후에 사진을 대조해보면 연모시 꽃시장에 가서 비슷한 품종을 찾을 수 있을 거야."
"그래요, 여기서 한 장 찍어서 여행의 첫 정거장의 기념으로 남겨요~"
(일기)
여행의 첫 정거장에서 처음 본 꽃을 보게 될 줄은 몰랐다.
이 도시가 선물해준 데이트 서프라이즈가 아닐까~
선배는 별로 안 해본 스타일로 해볼까?
*복싱 링
"잠깐만요, 앞이 시끌벅적한 것 같아요. 친선 경기……를 개최하는 것 같아요?"
"우리 가서 보자. 글에서 추천한 그 분식집은 아직 영업을 시작하지 않았으니 급할 거 없어. 나는 올라가서 연습 좀 하고 싶어."
"응, 그러면 우리 빨리 가요."
(일기)
우연의 일치로 이번 여행 중에 선배가 권투를 하는 모습을 보게 됐다.
링에 오른 그의 뒷모습을 보니 그가 내게 권투를 가르치는 소리가 또 들리는 것 같았다.(*클럽데이트)
내 귓가에 맴도는 선배의 낮은 목소리는 바람처럼 맑고 부드러웠다.
다음에 좀더 과감한 스타일링을 참고하면 선배도 받아들일 것 같다!
*배 밖의 맑은 하늘
"바다 경치를 보면서 양식을 먹는 건 정말 인생에서 큰 즐거움이네요! 바다와 하늘도, 햇빛이 이 맑은 파도 속에 부서진 것처럼 일품이에요"
"응, 멀리있는 구름도 예쁘네. 며칠 동안 이렇게 좋은 날씨를 본 적이 없었는데. 여기서 찍고 싶어?"
"좋아요! 어떤 각도로 찍고 싶으세요!"
(일기)
뱃전에 앉아 멀리 있는 구름을 보자 갑자기 학교 다닐때가 생각났다. 선배에게 '구름을 보고 날씨를 안다'(교과서에 수록되어 있는 과학 설명 지문)는 그 본문을 아직도 기억하냐고 물었다. 곧 선생님께 잡혀가 본문을 외울 것처럼 우리 두 사람은 열심히 그 글의 내용을 회상하려고 했다. 지금 생각해보니 유치하지만 재미있었다.
*액세서리 가게
"이 가게에는 귀여운 액세서리가 아주 많네요! 이번 맛집 탐방 여행 기념품으로 가져가고 싶어요! 미니 비단꽃, 등롱모형…… 아, 저 목재 조립완구 분재도 괜찮네요. 어떡하죠, 제 선택 불안증이 또 재발했어요……"
"다 좋으면 다 사자. 또 갖고 싶은 거 있어?"
"네! 그럼 상품 진열대를 쓸어버릴게요!"
(일기)
결국 백기와 함께 크고 작은 가방을 들고 가게를 나섰다. 우리를 보는 가게 주인의 눈빛은 기쁨으로 가득 차 있었다.
이따가 선배와 이 기념품들을 돌아가서 어떻게 배치할 것인지 의논해 보자.
*박물관 한 구석
"고깃집에서 이렇게 가까운 곳에 박물관이 있을 줄은 몰랐어요!"
"그런데 여기는 오늘 아무도 없네."
"날씨가 너무 추워서 그런지 다들 외출하고 싶지 않나봐요. 텅 빈 박물관에서 이리저리 돌아다니는 건 또 아주 신기한 체험이네요! 아마도 그 블로거도 이런 경험은 없을 거예요!"
"응, 이런 기회는 확실히 흔치 않아. 이 순간을 기록해볼까?"
"그래요, 이건 아주 특별한 기념사진이에요!"
(일기)
박물관 안이 텅 비어 나와 백기는 손을 잡고 한참을 돌아다녔다. 대리석 바닥 위를 걸으니 발소리가 유난히 또렷하게 들렸다. 오늘 공통된 기억 속에 또 신기한 일이 더 추가됐다. 어떤 포즈를 취하든지 카메라 안의 백기는 모두 아주 멋있다!
*황혼의 설원
"석양이 비치는 설산이 이렇게 아름다웠네요. 뜨거운 초콜릿 한 잔을 곁들이면서 보니까 어느새 마음이 차분해졌어요……"
"해가 뜰 때 이곳에서 바라보는 경치도 좋을 거야. 내일 일찍 일어나서 이곳에서 아침 햇살을 보자."
"그래요! 그럼 내일 아침에 일찍 일어나라고 독촉해주세요~"
(일기)
설원의 오렌지 빛은 조금씩 물러가고 우리가 내뿜던 입김도 점점 황혼 속에 보이지 않았다. 나는 선배와 손을 잡고 산 아래로 걸어갔다. 장화가 눈 위를 밟을 때 나는 삐걱삐걱 거리는 소리에서 묘한 리듬감이 느껴졌다.
*해안의 롱 로드
"후우…… 오늘 바닷가는 아주 춥네요. 휴게소에 있는 그 맛집까지는 얼마나 걸려요?"
"차로 5분 남았어. 네 코끝이 얼어서 빨개졌어. 가자. 우리 먼저 차 안으로 들어가자."
"하지만 눈앞의 경치가 아까워요……"
"이따가 좀 천천히 운전할 거니까 차창으로 천천히 볼 수 있을 거야."
"그럼 사진 몇장 찍고 돌아가서 천천히 음미해요~"
(일기)
해안의 긴 길을 따라 오랫동안 주행한 후 차창으로 겨울의 맑은 바다를 보았다.
이 풍경 앞에서 차를 세우고 두 사람은 함께 오랫동안 조용히 보았다.
*야채 선반 앞
"어떻게 이럴 수가…… 이 슈퍼마켓에는 정말 연뿌리가 없어요!"
"시간이 아직 있으니까 우리 조금 있다가 다른 슈퍼마켓에 가 보자. 내가 먼저 네가 좋아하는 간식 좀 사러 갈게. 국수집에 가기 전에 너는 먼저 배를 채워."
"좋아요, 마침 저도 배고팠어요!"
(일기)
놀러 나왔지만 마트를 지날 때 참지 못하고 야채 선반 앞을 한 바퀴 돌았다. 채소를 사고 나니 이제는 물어보지 않아도 된다는 것을 깨달았다. 옆에 있는 이 사람의 먹는 취향을 나는 이제 훤히 알고 있었다. 물론, 선배가 어떤 간식을 사왔는지 똑똑히 보는 순간 그도 마찬가지라는 걸 알았다.
*네온사인
"왜 여기에서 멈추고 안 가는 거야?"
"흠흠, 요즘 블로거들 사이에서 네온 사인 필터를 이용한 야경 거리 촬영이 유행이라고 해요."
"크흠, 난 그런 유행은 그렇게 잘 몰라. 하지만 네가 찍은 건 그 사람들보다 더 예쁠 거야."
"자리 잡았으니까 여기서 한 장 찍어요!"
(일기)
백기가 내 사진을 많이 찍었지만 사진을 확인할 때 나는 그가 처음부터 끝까지 필터를 켜지 않은 걸 알게 되었다.
그와 함께 해줘야 할 일 목록에 뷰티 카메라 사용법 가르치기를 하나 더 추가해야겠다.
각도를 달리하면 기대 이상의 효과가 있을 거야.
1장
프로텍터의 하얗고 맑은 빛줄기가 거실을 지나가면서 벽면에 여러가지의 맛있는 음식의 빛을 한데 모았다. 나는 따뜻한 담요 아래 백기의 품에서 둥지를 틀고 오디오에서 들려주는 다큐멘터리의 내래이션을 듣고 있었다.
‘……저장하는 과정을 거치면 과일즙이 진하고 달콤해집니다. 한 숟가락만 넣어도 진한 국물에 다른 맛을 더할 수 있어요……’
“……꿀꺽.”
세번이나 침을 삼키고 옆에 있는 백기를 찌르자 그는 웃으며 고개를 숙이고 다가왔다.
“배고파?”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화면을 뚫어지게 쳐다보았다.
“조금요…… 우리가 이번 여행에서 사온 찹쌀떡은 어때요?”
그 말이 끝나자 옷감이 마찰하면서 바스락 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백기는 무언가를 찾으면서 몸을 앞으로 내밀더니 곧 원탁에 앉았다.
“여기 있어.”
나는 대답을 했지만 시선은 여전히 다큐멘터리에 집중하고 손을 뻗어 나른하게 종이봉투의 위치를 찾고 있었다.
손끝이 부드럽고 부스스한 부분에 닿아서 만져보니 백기의 스웨터였다.
내가 무심코 계속 앞을 더듬으며 무의식중에 옷감을 따라 백기의 유려한 허리라인을 만지는 바람에 몸쪽의 사람은 두번이나 웃어버렸다.
“촉감이 그렇게 좋아?”
“풋……”
나는 부끄럽다는 듯 그를 바라보았지만 지지 않고 일부러 몇 번 더 만지작거린 다음에야 웃으며 그의 손에서 종이봉투를 받았다.
“네, 백 형사님의 허리에 있는 ‘군살’은 확실히 만지면 편안해져요.”
“……그래?”
백기는 내가 과장해서 말한 농담에 몸이 굳은 것 같았다.
“왜 그래요?”
“……흠, 아무것도 아니야. 또 먹을 거야?”
“응! 먹을 거예요!”
나는 손이 가는 대로 종이봉투에서 찹쌀떡 하나를 집어 그의 앞에 가져다줬다. 백기는 미묘한 표정으로 고개를 옆으로 돌렸다. 찹쌀떡이 입술에 스치는 것을 내버려두면서.
“……난 됐어.”
“네? 아까는 이 집 찹쌀떡이 괜찮다고 그랬잖아요……”
다큐멘터리에서 솥뚜껑이 들썩이는 소리가 들려오자 나는 무의식 중에 프로젝션 속의 검지가 움찔거리는 화면을 바라보았다.
“선배, 이 가게 맛있어 보여요! 게다가 연모시에 있대요. 선배 다음 휴가 때 같이 가봐요~”
다큐멘터리의 낮은 배경음악이 천천히 흘렀지만 백기는 오랫동안 답이 없었다. 내가 의문스럽게 고개를 갸웃거리자 명멸하는 그림자 속에서 그는 무슨 고민이라도 하는 듯 입술을 살짝 오므렸다.
내가 포크 위의 찹쌀떡을 살짝 흔들어도 그가 대답하지 않자 다시 그에게 먹이려고 찹쌀떡을 입술에 가져다댔다.
“선배? 왜 그래요?”
몇 초동안 망설이다가 백기는 찹쌀떡을 깨물고는 목젖을 위아래로 움직인 끝에 입을 열었다.
“내가 하고 싶은 말은…… 요즘 임시로 하는 임무가 자주 있어서 당분간 휴가가 없을 거야. 바쁜 게 끝나면 너와 같이 가게에 방문하러 갈게.”
2장
부드러운 형광등 빛 속에서 시곗바늘이 소리 없이 한 칸 앞으로 나아갔다. 나는 시선을 거두고 끓는 냄비를 바라보았다.
여행에서 돌아온 지 벌써 2주가 넘었다. 그간 백기의 귀가시간은 확실히 평소보다 늦어진 것 같았다. 나는 그에게 바쁜 이유가 뭔지 호기심에 물어봤지만 그는 어색한 표정으로 목을 만지작거리면서 아무일도 아니라는 듯 시치미를 떼며 화제를 돌렸다.
여기까지 생각이 미치니 그간 그가 보인 수상한 행동이 한 두군데가 아닌 것 같다……
<회상>
“……응, 확실히 바쁜 일이 좀 있어. 몇 주가 지나면 이러지 않을 거야.”
“지난번에 추천하던 그 맛집, 나중에 회사 사람들과 같이 갔어?”
스웨터 사이로 백기의 침울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아뇨, 선배랑 같이 가고 싶어서요~”
나는 하품을 하면서 고개를 옆으로 돌려 백기를 바라보았다.
원래 부드러운 이마에 두꺼운 옷깃이 스쳐 지나가면서 머리를 헝클어놨다. 옷자락을 미처 다 내려놓지 않아서 훤칠한 등이 살짝 드러났다. 내 시선을 눈여겨본 백기는 내리려는 걸 늦추려는 듯 스웨터에 걸친 손을 멈췄다.
“선배, 허리……”
“왜 그래?”
백기의 목소리가 아주 살짝 올라갔다.
“……이러면 감기걸려요!!”
나는 얼굴을 붉히며 시선을 떼고는 손을 올려 그의 옷을 잡아서 내렸다.
“어떤 사람은 항상 저를 빈틈없이 가리면서 정작 본인은 전혀 신경쓰지 않네요. 여기 밑단 또 실밥 걸린 거예요? 우리 같이 새 옷 사러 가요. 요즘 이 스웨터 갈아입기가 성가셔보여요”
백기는 아무말없이 묵묵히 손을 들어 내 머리에 묻은 솜털을 털어내고는 다시 입을 열고 약간 낮은 소리로 말을 했다.
“……그래.”
*
나는 잠시 고민하다 가스레인지를 끄고는 백기에게 전화를 걸었다.
한참만에야 전화가 연결되었다.
“선배, 언제쯤 돌아오세요? 제가 야식으로 갈비탕 끓였어요!”
전화기 너머의 숨소리는 평소보다 훨씬 무겁고 너머로 사람들의 시끄러운 목소리가 들렸다. 백기는 한숨을 돌린 듯 잠시 후에야 대답했다.
(약간 헐떡거리는 듯한 목소리로) “아직 처리해야할 일이 좀 있어서 야식은 안 먹을게. 오늘도 기다리지 말고 넌 일찍 자. 감기에 걸리지 않게 창문 닫는 거 잊지 말고.”
“……알았어요. 그럼 선배도 너무 늦게 자지 마세요.”
백기는 그렇게 대답하고는 곧 전화를 끊었다. 나는 결국 한숨을 쉬고 말았다.
“십중팔구 특파서에서 또 예정에도 없는 연장훈련을 하겠지.”
냄비 안에서 찐하게 우러난 갈비탕을 바라보던 나는 갑자기 맛볼 기분이 들지 않아 무료하게 휴대전화를 켜고 시간을 보냈다.
모멘트에는 일상의 단편적인 부분들을 공유하는 사람들로 가득했다. 유영의 눈물샘을 자극하는 플레이리스트, 고진의 고깃집 방문 인증, 안나 언니의…… 고진이 고깃집에 있다고?
나는 재빨리 위로 올려 고진의 모멘트를 뒤적였다. 사진 속에서 고진과 특파서의 젊은 대원 몇명이 김이 모락모락 올라오는 가게에서 카메라를 향해 맥주를 들어 보이고 있었다.
‘고진, 사진에 왜 백 대장님이 없어? 난 대장님이 너희들이랑 같이 갔던 걸로 아는데.’
‘걔는 일찍 헬스장에 갔어. 바로 옆동네에 새로 생긴 곳말이야.’
‘역시 백 대장님! 오늘은 훈련량도 많았는데 퇴근 후에도 자율훈련을!’
나는 한글자 한글자 아래의 댓글을 읽으면서 점차 의심이 생겼다.
그러니까 오늘 특파서에선 임시 임무가 없었다는 건가?
“선배가 헬스장에 갔다고? 그런데 왜 나한테 직접 알려주지 않고 비밀스럽게 행동한 거지? ……됐어. 일부러 말하지 않는 걸로 봐선 다른 특별한 계획이 있는 거겠지.”
“하지만 고진네들은 모두 불고기를 먹으러 간 걸로 봐선 특파서는 분명 그렇게 바쁘지 않았어!”
머릿속에 생각들이 끊임없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계속해서 자신에게 반박했다. 자신의 얼굴을 두드리며 엉뚱한 생각을 하지 않으려고 노력했지만 시선은 여전히 고진의 모멘트에 고정되어 있었다.
나는 소파를 몇 번이나 뒤척이다가 일어나서 편한 복장으로 갈아입었고, 그 위에는 모자와 마스크를 또 썼다.
빈틈없이 변장한 거울 속의 자신의 모습을 보며 나는 크게 숨을 들이마시며 일어나 집을 나섰다.
3장
“……이런 기구 외에도 또 요가, 에어로빅 등의 수업을 선택하실 수 있으세요. 헬스장의 코치 경력도 아주 풍부한데, 지금 결제하면 10%의 할인 혜택이 있으니 생각해보시겠어요?”
“감사합니다. 지금은 필요 없으니, 필요할 때 다시 말씀드릴게요.”
나는 끝내 열정이 넘치는 스태프를 사양하고 눈앞의 광경을 다시 살펴보았다.
로잉머신, 스미스머신, 실내 사이클링…… 일렬로 가지런하고 질서정연한 기구들이 금속의 차가운 광택을 띠고 있었고, 많은 사람들이 땀을 비오듯 흘려가며 운동하고 있었다.
나는 조심스럽게 그 안을 헤매면서 백기를 찾아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헬스장 기구가 있는 쪽을 지나갈 때 발걸음이 갑자기 멈췄다.

무산소 운동 구역의 한쪽에서는 백열등의 부드러운 빛이 백기의 길고 건장한 체형을 비추었다. 꽤 파워풀한 실루엣이었다.
새하얀 천이 땀에 흠뻑 젖어 백기의 허리에 늘러 붙어 은은한 윤곽을 드러냈다. 팔굽혀펴기를 할 때마다 그의 팔뚝의 탄탄한 근육도 따라서 수축되었다. 땀이 그의 턱선을 따라서 천천히 흘러내리면서 짙은 색의 마루에 소리없이 떨어졌다. 내 귀끝도 왠지 모르게 은은하게 뜨거워졌다.
"이상할 것도 없는데……"
내가 소리없이 몇 걸음 앞으로 내딛자, 백기가 갑자기 동작을 멈추고 내 쪽을 바라보았다.
내 심장 박동이 순간 빨라지면서 무의식적으로 옆에 있는 스미스머신 뒤에 숨어 기구의 틈을 통해 백기를 바라보았다.
그는 일어나서 손등으로 땀을 세차게 닦고는 날카로운 눈빛으로 사방을 둘러보더니 눈썹을 살짝 올리며 놀란 표정을 지었다.
이어서 휴대 전화가 갑자기 울렸다.
"연아, 너 어디야?"
나는 휴대 전화를 더욱 꽉 쥐고 입술을 오므렸다.
"전 집에서 선배를 기다리고 있어요! 돌아오는 길이에요?"
대화창의 '상대방이 입력 중……' 이 몇번이나 반복되었다.
내가 눈을 들어 선배를 바라보니 입꼬리를 올리고 있는 것이 보였다.
"확실해?"
……벌써 들통이 났다고?
그럴 리가 없어. 선배가 이상하게 생각하고 있을 이유가 없는데…… 내 앞에 갑자기 그림자가 드리워졌다.
나는 고개를 들어 호박색 눈동자와 마주쳤다.
"역시 여깄었네."
백기는 환한 눈동자를 하고 놀란 표정을 하면서 다시 나에게 다가왔고 나는 아직 가라앉지 않은 그의 숨결에서 뿜어져나오는 열기를 느낄 수 있었다.
"어떻게 여기까지 왔어?"
"저는 사실…… 잠깐만요, 선배는 절 어떻게 발견한 거예요?"
백기는 고개를 갸웃거리며 그의 목덜미에 걸린 이어폰을 보라고 했다.
"이게 방금 자동으로 네 휴대폰에 연결됐어. 그래서 네가 여기에 반드시 있을 줄 알았지."
방금전까지도 '정정당당'하게 집에 있다고 말했던 걸 생각하면서 백기를 바라보니 나도 모르게 양심이 찔렸다.
하지만 그가 '남몰래' 한 행동을 생각하고 나는 눈을 크게 뜨고 그를 똑바로 쳐다보았다.
"……제가 방금 거짓말을 하지 말았어야 했어요. 하지만 선배가 저를 속이고 비밀리에 헬스장에 왔으니 역시 솔직하지 못했죠?"
물을 마시고 있던 백기는 내 말을 듣고 사레가 들리더니 부자연스럽게 손등으로 입가의 물자국을 닦아냈다.
(크흠) "……특파서에서 곧 체력 테스트를 해서 준비 중이었어."
"백 대장님의 실력으로도 따로 준비가 필요해요?"
나는 눈을 가늘게 뜨면서 물었다.
"거기다 고진에게서 요며칠 선배네의 훈련량이 아주 많이 늘었다고 들었어요. 흥, 이젠 우리에게서 비밀이 조금도 없을 줄 알았는데!"
"고진 그녀석 입이 정말……"
사이클링 구역 쪽에서 격렬한 박자의 음악이 흘러나왔다. 백기는 갑자기 주변을 두리번거리더니 내 손을 잡았다.
"여기는 너무 시끄러우니까 수건 좀 가지고 휴게실로 가자."
헬스장 안의 열정적인 분위기와는 달리 벽 하나를 사이에 둔 나무로 된 복도의 조명은 부드럽고 고요했다.
나는 궁금함을 참지 못하고 백기의 손을 잡아당기고 곁눈질로 그에게 물었다.
"선배, 이제 이유를 말해줄 수 있어요?"
백기는 어쩔 수 없다는 듯 나를 한 번 쳐다보더니 힘겹게 한숨을 내쉬었다.
"한 보름 전쯤에 네가 말했던……"
백기는 잠시 멈추었다가 부자연스럽게 시선을 돌렸다.
"……내 허리에 살이 좀 많아졌어. 반성해봤는데 확실히 여행 기간 동안에 많이 게을러졌다는 생각이 들었어. 그래서 운동을 해서 더 좋은 상태로 네 앞에 나타나고 싶었어. 하지만 유연이 네가 내 변화를 눈치채지 못한 걸 보면 아마 훈련이 충분치 않았을 거야."
백기의 걸음걸이가 점점 느려지면서 휴게실 입구에 멈추었다.
그동안 몇 번이나 꾸물거리면서 옷을 벗던 그의 행동이나 머리를 쥐어짜내가며 야식을 극구 사양하는 행동들을 생각하니 갑자기 모든 것을 이해하게 되었다.
"저는 그날…… 그냥 입에서 나오는 대로 말했던 거예요. 그럼 제가 지금 다시 입장을 밝히겠습니다. 백기 선생님께서는 잘 들어주세요."
"백기 선생님의 몸매는 절대적인 기준이라는 점을 제가 가장 잘 알고 있고 또 가장 발언권도 있으니 질의는 허락하지 않겠습니다."
내가 너무 격식을 차리고 말을 해서 그런지 백기는 한동안 말을 하지 않고 나를 똑바로 바라보았다.
그 호박색 눈동자를 바라보니 갑자기 예전에 겪은 재미있는 기억이 떠올랐다.
"전에 손톱 발라줬을 때 뭐라고 했는지 기억이 나요? '너의 존재 자체가 나를 설레게 하니까.' 선배, 이건 제가 선배에게 하고 싶은 말이기도 해요. 전 선배가 했던 말을 기억했는데 왜 선배가 잊어버린 거예요?"
*도전 데이트 4장에 나오는 대사


나는 말을 하면서 손을 뻗어 그의 얼굴을 잡았다.
"어떤 사람은 그렇게 맞는 말을 했지만 정작 자신에게는 '융통성있게' 쓸 줄을 몰랐나보네요…… 정말 비판받아 마땅합니다!"
백기는 참지 못하고 입꼬리를 올리면서 내가 일부러 부풀린 나의 볼을 손으로 꼬집었다.
"확실히. 겸허하게 받아들일게."
휴게실 안의 불빛은 따스하게 우리의 눈에 비친 서로의 그림자를 비추었다.
그는 무엇인가 생각이 난 듯 갑자기 진지하게 고개를 돌려 나를 쳐다보았다. 감출 수 없는 웃음이 백기의 입가를 은은하게 스치고 지나갔다.
"연아, 너…… 보고싶어? 그동안의 내 헬스 성과."
4장
흐릿한 어둠 속에서 백기는 내 손을 쥐고는 호흡과 함께 가볍게 오르내리는 허리를 만지도록 인도했다.
"내가 옷을 갈아입었을 때 네가 아무런 반응이 없어서 훈련이 아직 제대로 되지 않았다고 생각하고 종목을 조정했어, 지금은 운동한 효과가 전보다 더 좋을 거야."
팽팽한 근육과 뚜렷한 윤곽을 스쳐 지나가는 손끝에 촉촉한 땀이 묻어나왔다.
불빛은 여전히 희미하지만 내 머릿속에는 평소에는 신경쓰지 않았던 많은 영상들이 스쳐지나갔다. 그날 잠깐 본 그의 단단하고 건장한 등과 움푹 파인 척추골(미인골이라고도 합니다)……
어렴풋이 들려오는 발자국 소리가 복도 반대편에서 들려오자 나는 정신을 차리고 얼굴을 붉히며 백기를 밀었다.
"……알았어요알았어요, 검수는 충분해요! 성과가 좋네요. 이 선생님이 다른 데에 신경쓰지 않고 집중해서 운동을 했나보네요."
말하면서 그의 옷을 끌어내리려고 하자 백기에게 손목을 잡혔다.
"집중하지 못했어."
백기는 진지한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운동할 때 계속 네가 내 곁에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어. 그래서 오늘 네가 근처에 있다는 걸 알았을 때 아주 기뻤어."
"그럼 이 이후로 선배가 하는 모든 운동에 저는……"
그 순간 운동할 때마다 허리와 무릎이 욱신거렸던 '참상'을 생각하자 멈칫하고는 이를 악물고 말했다.
"……제가 선배와 모두 함께 할게요!"
내 머리를 쓰다듬는 백기의 눈빛은 부드러웠다.
"그래, 하지만 무리할 필요는 없어."
"아니에요! 선배의 '지도' 아래에 저도 지금 많이 성장했어요."
나는 말을 하면서 손목을 움직여 내 말에 설득력을 더하려고 했다.
백기는 웃음을 참지 못하고 내 손을 잡아당겼다.
"가자, 그럼 우리 가장 기초적인 달리기부터 시작하자."
*
몇분후 나는 러닝머신에 서서 백기의 몇 개의 수치를 조절하는 것을 보았다.
"이건 경사도와 걸음 속도야, 너는……"
백기는 최저 등급으로 설정했지만 나와 눈이 마주치자 또 망설이며 한 등급 위로 올렸다.
"……우선 차근차근해."
"저는 몸을 풀고 천천히 올릴게요! 선배는 선배 일을 하세요."
나는 끊임없이 뒤로 가는 벨트를 따라 발걸음을 내딛었다.
날씨가 추워진 후 나는 이미 오랫동안 운동을 하지 않았다. 그래서인지 억지로 버티면서 한참동안이나 걷자 종아리가 시큰거리고 관자놀이도 은은하게 흔들렸다.

나는 가볍게 숨을 내쉬며 백기 쪽을 한 번 보았다.
그는 지금 런닝머신에서 열심히 운동을 하고 있었다. 땀이 팔 근육과 쇄골의 선을 따라 천천히 흘렀고 속눈썹에도 땀이 묻어 반짝반짝 빛이 났다. 러닝머신의 벨트는 뒤로 빠르게 밀려났지만 높은 속도로 돌아가는 기계의 마찰음 속에서 백기의 발자국은 가볍고 힘이 있게 들렸다. 평소보다 깊고 긴 호흡을 제외하고는 평소와는 별다른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 때때로 옷자락을 걷어 올리고 턱에서 흘러내리는 땀을 여유롭게 닦기도 했다.
백기는 내 시선을 알아차리고는 갑자기 내 쪽을 쳐다보며 한쪽 이어폰을 벗었다. 뭔가 감화라도 된 듯 나는 그에게 신경쓰지 말라며 손사래를 치며 눈앞의 '도전'을 돌아보라고 했다.
어깨를 풀어주고, 종아리를 곧게 펴고, 발뒤꿈치를……
나는 방금 백기에게서 관찰한 '요점'을 회상하며 동작을 조정하고 호흡과 걸음걸이의 주파수를 맞추려고 했다.
얼마지나지 않아 벨트 위에서 걷는 걸음도 점점 경쾌하고 규칙적으로 변해 어느새 백기의 리듬을 따라갔다.
소리없이 호흡이 잘 맞는 이 분위기 속에서 우리는 함께 앞으로 달리고 있었다.
"후우……"
나는 마지막 스트레칭 동작을 하고 나서는 한숨을 길게 내쉬었다. 평소보다 호흡이 훨씬 빨라진 것 같았다.
백기는 벤치에 앉아 나를 쳐다보았다. 젖은 앞머리가 이마에 가닥가닥 붙어 호박색 눈을 더욱 밝게 비추었다.
나는 손이 가는 대로 수건을 그의 머리 위에 덮어준 후 젖은 머리카락을 닦아주었다.
"오늘은 절대로 최근 중 운동량이 가장 많은 날이에요. 그런데 정말 상쾌하네요. 운동하는 재미를 느낀 것 같아요!"
"그럼 내일도 계속할까?"
그는 입가를 올리고 나를 놀리는 말투로 말했지만 나는 단숨에 고개를 끄덕였다.
"물론이죠, 도중에 그만두지 않을 거에요!"
눈앞에 있는 이 사람과 함께 있으니 무엇을 하든 놓치고 싶지 않아.
백기의 눈웃음이 더욱 짙어졌고, 그는 옷깃을 잡고 부채질을 하면서 내 볼에 붙은 머리카락을 귀 뒤로 밀어 올리고는 나를 벤치에서 일어서게 했다.
"가자, 집에 가서 갈비탕 먹자."
나는 잠시 멍해졌다.
"그러면 선배는 오늘 괜히 운동한 거 아니에요?"
"괜찮아, 어차피 우린 나중에 같이 운동할 거니까. 요 며칠 너와 함께 지내는 시간을 너무 많이 낭비해서 더이상 아무것도 놓치고 싶지 않아."
말하지 않아도 통한 대답은 내 마음도 부드럽게 만들었다.
백기는 내 손을 꼭 잡고 살짝 목소리를 높였다.
"지금 내가 가장 하고 싶은 일은 너를 데리고 집에 가는 거야. 그리고 소파에 기대어서 네가 끓여준 갈비탕을 한 그릇 먹을 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