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장
오후의 햇빛은 버스 창문 너머로 볼에 부드러운 온기를 남겼고 흔들거리는 좌석이 사람을 노곤하게 만들었다.
주머니 안에서 울리는 진동에 졸음이 깬 나는 실눈을 뜨고 휴대전화 연결 버튼을 눌렀다.
"우리들 들킨 거 아니죠? 당신이 백 대장님을 보러 온다는 걸 어떻게 알고 계시는 거예요? 어떻게 대장님에게 말하신 거예요……"
전화를 받자마자 당조의 호들갑스러운 목소리가 전화기 너머로 들려왔다.
"제가 들킨 건 아니지만 당신이 제 계획을 그렇게 크게 알린다면 선배도 모르긴 어려울 거예요."
"허, 그럼 당신이 대장님에게 직접 대장님을 찾으러 왔다고 알려주시지 그러셨어요?"
"당신들이 이번에 야영 훈련하는 기지가 너무 멀어서 그가 이렇게 먼 곳에서 달려와서 저를 데리고 오게 하고 싶지 않았어요."
"엄청난 염장질이네요. 이따가 입구에 도착할테니 바로 신분만 보고하면 돼요."
전화기 너머의 사람이 갑자기 목소리를 낮추더니 도둑이 제 발 저리는 것처럼 재빨리 전화를 끊어 버렸다.
나는 점점 넓어지는 경치를 보면서 곧 선배를 볼 수 있을거라는 생각이 기분이 점점 아름다워졌다.
특파서에선 외진 도시로 폐쇄 훈련을 진행했기 때문에 나는 벌써 두 달동안 선배를 보지 못했다.
두달 간의 훈련 중 유일한 휴일날이 겨우 주어졌지만 특파서는 외출을 금지하고 가족들만 방문하도록 했다.
백기는 내가 비행기를 타고 이 도시에 도착해서 5시간 동안 시내버스를 타고 도보로 산에 들아가야 한다는 사실을 안쓰러워해서 방문하게 해달라는 요청을 거절했다.
하지만 내게 있어 길은 얼마나 멀든 전혀 상관이 없었다. 그를 만날 수 있는 게 가장 중요했다. 그래서 나는 몰래 당조에게 기지 주소를 물어봤다.
"초대받지 않은 '불청객'이 선배에게 폐를 끼치지 않았으면 좋겠는데……"
*
나는 큰 트렁크를 힘겹게 끌며 마침내 산 꼭대기의 마지막 계단을 밟았다.
위엄있게 굳게 닫힌 정문 앞에서 나는 보조대원에게 신분을 신고한 뒤 기숙사로 안내되었다.
간소해보이는 기숙사 건물은 조용히 금빛으로 물들어 있었고 나는 햇빛을 가린 채 실눈을 뜨다가 멍하니 자리에 서 있었다.
3층의 어느 기숙사의 야외 베란다 밖으로 익숙한 그림자가 늘어지도록 두 팔을 뻗고 있었다.
나는 미소를 짓다가 그를 놀리기 위해서 휴대 전화를 꺼내 문자를 보내려고 했지만 3분 전에 선배가 보낸 메세지가 도착했다는 알림을 발견했다.
"뭐 해?"
나는 고개를 갸우뚱거리며 생각에 잠겼다가 메시지를 한줄을 보냈다.
"잘생긴 남자가 스트레칭 하는 모습을 감상하고 있었어요~"
위층의 그림자는 동작을 경직되게 멈추더니 다음 순간 그는 정확하고 착오없이 곧장 내쪽을 바라보았다.
"유연아, 어떻게 온 거야?"
2장

"왜 이렇게 수척해진 거예요?"
나와 백기는 기숙사 안의 간이 침대 위에 나란히 앉았다. 나는 눈을 이리저리 왔다갔다 하며 머뭇거리다가 결국 손을 뻗어 그의 팔을 쥐었다.
"피부도 타고 머리카락도 길었고, 잠깐만요. 멍은 왜 이렇게 많은 거예요?"
귓가에 어쩔 수 없다는 듯한 웃음소리가 가볍게 들려왔다. 힘이 들어간 팔이 불안에 가득찬 손을 꽉 잡으면서 나는 그의 품 안으로 비집고 들어갔다.
"야영 훈련이라는게 다 그래."
"수척해지고 피부도 타고, 또 머리를 자를 곳도 없어."
"어째서 나에게 먼저 말하지도 않고 아무말도 없이 온 거야?"
"보고 싶었으니깐요……"
나는 그의 가슴에 얼굴을 묻고 문질렀고 얼굴에 스쳐지는 익숙한 기운에 오랜만에 안심을 할 수가 있었다.
"두달 가까이나 못만났는데 잡을 수 기회가 있으면 잡아야죠.
"그런 이유로 교묘한 수단을 이용해서 이곳의 주소를 알아냈어요."
"그거 당조지?"
"……어떻게 한번에 알아맞춘 거예요?"
그의 입가에는 미소가 넘쳐흘렀다. 그는 손을 들어 나의 머리카락을 귀 뒤로 넘겨줬다.
"걘 쓸데없는 일에 참견하는 걸 뭣보다 좋아하니까."
"그리고 오늘 갑작스레 일거리를 찾아서 하더라고. 수상스런 행동으로 볼때 아마 성과를 쌓아서 속죄하려고 했나보지."
"그렇담 당조 씨는 벌을 피할 수 있을까요?"
"그럴 순 없지."
백기는 확고한 눈빛으로 고개를 저었다.
"돌아오면 규칙대로 벌 받아야지."
"푸핫——“
나는 급히 차렷 자세를 하고 임군(任君 *관리들 칭호)이 처벌받는 듯한 표정을 지었다.
"그럼 백 대장님 저에게도 벌을 내려주세요. 그러지 않으면 제가 의리없어 보이잖아요."
"이건 제가 선배가 너무 보고싶어서 죽을 것 같으니까 다급하게 당조 대원에게 도움을 청한 탓이에요."
"그는 그저 연모시 시민을 도왔을 뿐에요. '원흉'은 결국 저였어요."
내가 일부러 진지한 모습을 보이자 선배는 눈을 깜빡이면서 잠시 진지하게 생각을 했다.
"그럼 앞으로는 야근할 때는 커피를 적게 마셔야 해."
"어떻게 그런…… 전 카페인 수혈로 기운내서 목숨을 연명하는데!"
내가 어깨를 축 늘어뜨리고 구슬프게 울자 백기의 입가가 더욱 휘어졌다.
"졸리면 나에게 전화해도 돼."
"아무리 늦어도 다 받을게."
진지한 말투가 내 마음을 훈훈하게 하면서 내가 무언가 말하려고 할 때 갑자기 종소리가 귀에 거슬리게 울렸다.
삐삐삐.
나는 영문도 모른 채 선배가 휴대전화를 꺼내는 것을 보고 알람시계를 눌렀다.
"오후 3시에 알람을 설정한 거에요?"
"알람을 더 설정해놨어."
나는 더욱 당황하면서 눈살을 찌푸렸다.
"이번에 들어온 신참의 실력이 정말 강해. 내가 훈련 더 하지 않아서 실습 때 그들보다 못한다면 할 말이 없을 거야."
"잠깐만요. 선배 말은, 이건 개인 훈련이라는 거예요?"
선배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데 오늘은 두 달동안의 야영 훈련 중에서도 유일한 휴일이 아닌가요?"
선배는 멍하니 있다가 무언가를 깨달은 듯 시선을 돌렸다.
"이렇게 귀중한 휴일날에도 선밴 쉽사리 쉬지 않는 거예요?"
"크흠, 이건……"
"어떤 것도 다 안 돼요. 휴일이니 당연히 휴식을 하면서 보내야죠."
백기의 목젖이 위아래로 몇 번 움직이더니 결국 하는 수 없다는 듯이 입가를 올리며 내 손을 잡았다.
"유연아, 푹 쉴게."
"하지만 마지막 연습이 하나 남았어. 오늘 중 유일한 코어 훈련이야.
"코어의 힘은 아주 중요해. 실전에서도 순발력과 인내력을 키워서 부상을 쉽게 당하지 않아."
"그러니 이것만 끝내면 안될까?"
그는 내 손을 쥐면서 맑은 눈을 천천히 깜빡였다. 항상 날카로웠던 눈매는 불쌍해보이기까지 했다.
나는 그의 부드러운 태도와 타당한 이유를 듣고 얼떨떨해져서 결국 한숨만 쉬었다.
"그래요."
"끝나고 나면 제가 선배의 긴장을 잘 풀어드릴게요."
"긴장을 풀어준다고?"
나는 비밀스럽게 눈썹을 치켜 올렸다.
"이따가 알게 되실 거예요."
3장

"385, 386……"
공중으로 복부 코어의 고강도의 힘을 내뿜으면서 건장하고 다부진 두 다리가 침대 끝에 힘있게 매달렸고, 근육이 팽팽하게 당겨지면서 예쁜 라인을 만들었다.
눈길이 끊임없이 반복되는 크런치동작으로 시선이 왔다갔다 하면서 한시도 눈을 뗄 수가 없었다.
하지만 시선의 주인공은 온몸에 힘이 넘쳐흐르는 것처럼 변함없이 불타는 눈빛을 하며 눈앞의 어느 지점을 바라보고 있었다.
침대 바닥은 그가 움직일 때마다 규칙적으로 삐걱삐걱 소리를 냈고 이미 300개가 넘는 크런치 동작을 한 후에도 그는 여전히 규칙적인 리듬을 유지했다.
비록 한 마디도 하지 않았지만 몸을 굽히고 펴는 매 순간마다 점차 호흡이 무거워지면서 이 운동이 얼마나 강도가 심한지 보여주고 있었다.
"……"(호흡이 많이 거칠어와요.)
땀은 그의 티셔츠를 점점 적시면서 피부에 찰싹 달라붙었다. 투명해진 천 아래로 근육이 희미하게 보였다.
복근에 힘을 모두 줄 때마다 복근이 솟아올랐고 핏줄의 무늬도 따라서 가볍게 떨렸다.
하지만 선배는 아무런 표정변화도 없이 숨을 내쉴 때 그저 얇은 입술을 살짝 내밀기만 했고 촉촉한 땀방울이 새빨개진 뺨을 따라 끊임없이 흘러내렸다.
이러한 모습들은 하나 하나 내 마음속으로 파고들면서 간질간질해진 기분에 혀가 메마른지도 느끼지 못했다.
"398, 399, 400!!!"
"다 했어요!"
*
나는 환호하며 선배를 맞이하면서 마른 수건으로 그의 땀방울을 닦아 주었다.
"나눠서 400개를 해낼 줄 알았는데 한번에 끝낼 줄은 전혀 몰랐어요."
"피곤하진 않아요?"
"괜찮아. 보통은 훈련의 마지막 종목이 가장 쉬워."
"……이게 쉬운 거라고요?"
그는 내가 쥐고 있는 물을 받으면서 가볍게 '응'이라고 말했다. 살짝 올라간 눈썹끝으로 자세히 살펴보지 않으면 알아챌 수 없는 의기양양함이 보였다.
"잠깐만요……마지막이라고요? 그렇다면 제가 오기 전에는 어떤 훈련을 하고 계셨던 거예요?"
백기는 물통을 비틀어 열면서 기억을 더듬더니 정말 별일이 아니라는 듯이 대답했다.
"20kg의 무게를 짊어지고 6천 미터를 뛰고, 표적 사격 훈련 2시간, 진흙밭에서 자유 격타 2시간……"
"?"
"그렇게 많은 훈련을 했다고요? 이제 겨우 오후 3시인데…… 몇 시에 일어난 거예요?"
"아침 6시."
"새벽이라고 해야 하지 않아요?"
나는 참지 못하고 입을 삐죽 내밀었다. 무시할 수 없는 안쓰러움과 씁쓸한 감정이 마음 속에서 일렁였다.
"제겐 매일같이 격투하고 달리기만 한다고 그러지 않았어요?"
그는 잠시 멍해져서 민망한 듯 머리를 긁적였다.
"본질적으론……달리기와 권투가 맞아."
나는 어쩔 수 없다는 듯이 한숨을 쉬었다. 이 '괘씸한' 사람과 더는 말하지 않기로 결심하고 가지고 온 트렁크를 열었다.
"이건……"
"어깨 안마기, 쿠션, 상처 패치, 미용가위……"
내가 쉴새 없이 트렁크에서 여러가지 것들을 꺼내는 것을 보고 백기는 멍하니 그 자리에 서 있었다.
"이거 다 네가 준비한 거야?"
나는 쿠션 두개를 들어 간이 침대 위에 놓고 가장 편안한 각도로 조정하려고 노력했다.
"그럼요. 사실은 오기 전부터 선배가 많이 고생하고 있다는 걸 알았어요."
"고진 씨가 저에게 선배네 동료들이 야영 훈련하고 있는 곳의 숙식 환경이 모두 힘든 축이고, 훈련 기간동안 모두의 머리카락이 길었지만 머리 자를 곳도 없다고 알려줬어요."
"……"
"고진 이녀석까지 나를 팔아먹은 거야?"
그는 불만스럽게 눈살을 찌푸렸다. 나는 그런 그를 보면서 은근 웃기다고 생각했다.
"거기에 대한 계산은 나중에 그들을 다시 찾고 해요. 이제 대야랑 주전자를 줘보세요~"
"왜 대야랑 주전자가 있어야 한다는 거야?"
나는 간이 침대 위에 걸쳐놓은 침대식 의자를 두드리며 그의 어깨를 붙잡고 어서 앉으라고 했다.
"오늘은 제가 선배의 '일일미용사(원문은 *TONY)'가 되어줄게요~"
*최근 헤어디자이너를 Tony老师라고 통칭해서 부르는게 유행.
4장
"머리를 직접 잘라주겠다고?"
백기는 눈을 살짝 크게 뜨고 보기 드물게 놀란 표정을 지었다.
"안심하세요."
나는 민첩하게 준비한 옷을 한번 털고 그에게 걸쳤다.
"여기 오기 전에 공부를 많이 했거든요!"
"머리 자르는 법만 아니라 마사지하는 법도 심도있게 연구했어요. 신진대사를 가속화시켜서 욱신거리는 몸의 통증을 완화시킬 수 있을 거예요."
내가 어깨를 주물러주며 이렇게 말하자 그는 조금 경직된 것처럼 몸을 움츠리더니 비로소 점점 긴장을 풀었다.
"유연아, 이런 번거로운 일은 안해도 돼. 우리 그냥 같이 쉬자……"
"멋대로 움직이지 마세요! 계속 버티시겠다면 선배가 제 실력을 의심하고 있는 거라고 합리적으로 의심해볼 거예요."
"당연히 아니지."
"그렇담 제 명령에 따라 얌전히 앉아 계세요!"
"……분부대로 하겠습니다."
그는 말을 듣고 순순히 고개를 올리고 침대 머리맡에 누웠다. 저녁 햇살이 실내로 들어와 언제나 날카롭던 그의 턱선을 부드럽게 비추었다.
"그럼 시작하겠습니다~"
나는 손바닥으로 물을 떠서 그의 머리뿌리를 살짝 적셨다.
부드러운 머리카락이 대야에서 물결치며 나를 바라보는 반짝반짝 빛나는 두 눈과 어우러지면서 나의 마음은 순식간에 더할나위 없이 부드러워졌다.
이어서 나는 샴푸를 손바닥에 붓고 거품을 낸 후 그의 머리뿌리를 부드럽게 원을 그리며 마사지했다.
백기는 편안하다는 듯이 눈을 가늘게 뜨고 있는 것 같았다. 이런 그의 모습을 보니 벅차올랐지만 바로 목소리를 가다듬고 말했다.
"선생님, 제 서비스가 만족스러우시면 회원권을 끊어주시겠어요?"
백기는 어리둥절하더니 곧 그의 입매가 휘어졌다.
"그건 안 되겠는데요."
"네? 어디 불편하신가요?"
"아니요. 아주 편안해요."
"다만 항상 나를 위해 서비스해주기엔 당신이 아까워서요. 그러니 됐어요."
*의역
일부러 고객인 척 연기하는 그에게서 빛나는 진정성이 보여서 갑자기 나는 응원이라도 받은 것처럼 만족스러워하며 더욱더 꼼꼼하게 그의 머리를 감겼다.
그 반짝이는 두 눈이 계속해서 나를 쳐다봐서 내 볼의 온도가 점점 높아지자 손을 닦고 손바닥으로 그의 두 눈을 감겼다.
"안심하고 즐겨주세요!"
그는 짖궂게 웃고는 팔짱을 편히 하고 상황을 즐겼다.
분위기가 점차 조용해지면서 백기의 호흡도 고르게 변하기 시작했다. 잠이 든 것 같았다.
이 사람은 내 앞에서는 늘 지칠 줄 모르는 것처럼 굴지만 사실 그도 분명 피곤하겠지……
여기까지 생각하니 내 손바닥의 움직임은 더욱 가볍고 부드러워졌다. 모처럼 그가 어렵게 얻은 휴식 시간을 방해할까봐 자신도 모르게 숨까지 죽여가면서.
잠시 후 나는 마른 수건으로 조심스럽게 그의 머리카락을 닦은 후 그의 목을 쿠션으로 살짝 높게 받쳐 머리를 자르기 시작했다.
작업실에서 몇 시간동안 공부했는데도 정작 선배의 머리를 자르려고 하니 체력이 많이 소모가 됐다.
머리 다듬기가 마침내 끝났을 땐 이미 한 시간이 지난 후였다. 나는 한숨을 길게 쉬고 결과물을 살펴보려고 할 때 곁눈질로 그의 옷깃에 그의 잔머리가 상당히 많이 떨어져있는 것을 언뜻 보게 됐다.
내가 작은 솔을 들고 청소해주려고 하는데 시선이 무심코 옷깃을 따라 아래로 내려가면서 그의 가슴팍 부분에 붉게 부어오른 붓기가 크게 자리잡은 걸 발견했다.
나는 잠시 멍해졌다. 무의식적으로 눈살을 찌푸리고 자세히 관찰해보니 붉게 부어오른 붓기는 햇빛에 그을려서 껍질이 벗겨진 피부라는 것과 한쪽에는 여전히 멍이 상당하게 있다는 걸 알게 됐다.
"……"
코가 시큰거리던 찰나, 손가락을 내밀어 나를 놀래킨 피부 부위를 만지려고 하는데 몸 앞에 있던 사람이 갑자기 움직였다.
나는 눈을 들어 졸린 눈으로 나를 쳐다보는 선배를 보았다.
"왜 그래?"
"사실대로 말해주세요. 저한테 숨기는 일 없으세요?"
선배는 내가 무슨 말을 하는 건지 전혀 모르겠다는 것처럼 어리둥절하며 두 눈을 깜빡였다.
"제가 선배와 통화할 때마다 선배가 제게 무슨 말을 했는지 기억하세요?"
"보고싶어요?"
"……그거 말고요!'
나는 목소리를 가다듬고 화제를 다시 돌렸다.
"매번 통화할 때마다 선배는 사소한 것들만 이야기해요."
"오늘 훈련할 때 모자 위에 잠자리 한마리가 멈춰있었다던지, 당조가 밥을 다섯공기나 해치웠는데도 여전히 배불리 못먹었다면서 불평한다는 둥……"
"늘 이런 가벼운 이야기들을 나누느라 꽤 오랫동안 저는 정말로 선배의 훈련이 그렇게 힘들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어요."
"정말 힘들지 않아."
그는 내 말을 깔끔하게 받아넘겼다. 나는 아예 그의 옷깃을 쥐고 살짝 벌리고선 눈짓으로 그에게 상처투성이라는 '증거'를 스스로 봐보라고 했다.
"……"
"사실 이런 것들은 정말 괜찮아."
"이전의 야영 훈련 중엔 걸어서 원시림을 가서 임무 기간동안에 먹고자는 문제를 자체적으로 해결해야 했었어.
"폭우 같은 날씨에 노숙할 동굴을 찾지 못해서 진흙밭에서 밤을 보내는 일도 예삿일이었어."
나는 백기의 말을 들을수록 얼굴이 안좋아졌다. 백기도 곧 뭔가를 깨닫고 입을 다물었다.
"……어쨌든 내 말은, 난 정말 괜찮아."
그는 나를 품에 끌어안고 내 품에 머리를 바싹 붙이고선 애교를 부렸다.
"특히 훈련을 끝날 때마다 내게 따뜻한 관심을 기울이며 걱정해주고, 네가 일상을 공유해주는 걸 보고 늘 즐거웠어.
내 시선이 복슬복슬해진 그의 머리 위에 닿자 마음이 순간 뒤죽박죽이 되었다.
"그럼 선배도 겨우 하루 있는 휴식날까지 개인훈련하지 말고 계속 쉬세요. 평소에도 충분히 고생 많이 했잖아요……"
*의역
백기는 가볍게 웃으며 고개를 들어 침대의 뒤쪽으로 몸을 기울여 누웠고, 눕는 김에 나를 끌어당기면서 그의 옆에 눕혔다.
"네 눈에는 내가 힘들어보여?"
"그런 건 아니에요. 선배의 업무 특성도 잘 알고 있지만 누구보다도 선배가 그런 사람이라는 걸 잘 알아서 그런 거예요."
"하지만 전 선배가 고생하는 걸 보기만 할 순 없어요."
"선배는 누군가를 좋아하게 되면 그 사람을 '불쌍' 하다고 느낀다는 말을 들어본 적 있으세요? 그를 조금이라도 고생시키는 건 가슴 아픈 일 아닐까요?" *의역
"그런 이야기였구나."
그는 살며시 눈꼬리를 올리며 웃었고, 진지한 눈동자가 내 얼굴을 바라보았다.
"장관님께 보고드립니다. 지금 이 순간부터 저는 그렇게 '불쌍하지' 않을 겁니다."
"흥, 선배는 정말……"
나는 입을 삐쭉 내밀고 불만스럽게 그의 볼을 꼬집었다.
"말은 그렇게 해도 선배는 항상 늘 자신에게 가혹하게 대해왔잖아요. 저는 아마 선배더러 자기자신에게 느슨해지라고 하진 못할 거예요. 저는 선배를 잘 알고 있으니까요. 저는 선배가 추구하는 것과 자기자신에게 요구하는 것이 있다는 걸 알고 있어요. 그러니…… 방법은 하나 뿐이에요."
"무슨 방법?"
나는 목소리를 깨끗하게 가다듬고 진지한 얼굴로 그의 눈과 마주쳤다.
"지금 이 순간부터 저는 늘 선배의 고생과 수고를 기억할 거예요. 선배가 스스로를 아낄 줄 모른다면 유연이가 아끼는 수밖에요!"
백기는 말을 잇지 않고 나를 바라보았다. 그의 눈밑으로 짙은 그리움이 잔잔하게 넘실거렸다. 다음 순간, 그는 손을 뻗어 나를 품에 안았다.
석양은 능숙하게 따스한 금빛이 남긴 온기를 우리들 몸에 떨어뜨렸다. 이 온도를 영원히 이곳에 머무르게 하려는 것처럼.
"네가 이런 말을 해준 덕분에 그동안의 고생은 모두 잊어버리고 행복만 남았어."
"제 말이 그렇게 신비롭나요?"
나는 웃으며 놀려댔지만 귓가에는 더욱 진중한 말투가 들려왔다.
"팀원들이 항상 경계하고 깊이 잠들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 이곳 침대는 사실 모두 딱딱해."
"하지만 지금 너를 안고 있으니까 처음으로 이 작은 침대가 아주 편안하다고 느꼈어."
"여기까지 와서 내가 휴가를 하루 보낼 수 있게 해줘서 고마워."
"그리고 나를 아껴줘서 고마워."
억제할 방법이 없는 그의 웃음이 나에게도 물들었다. 나는 만족스럽게 깊이 숨을 쉬며 선배의 숨결을 내 마음속 깊이 가득 담았다.
한낮의 여독이 마침내 이 순간 드러나면서 내 눈꺼풀이 점점 무거워졌다.
갑자기 어떤 생각이 들어 그의 가슴을 쿡쿡 찔렀다.
"선배는 거울 보러 안 가세요? 제가 자른 머리가 어떤지 확인시켜줄까요?"
"괜찮아. 네 실력 정말 마음에 들거든."
그의 이런 편안한 대답에 나는 더욱 만족스럽게 그의 품 속에서 비비적거렸다(蹭了蹭).
몽롱해지는 가운데 나는 선배의 말에 살며시 찬성했다.
이 작은 침대는 확실히 아주 딱딱하고 차갑지만 또 아주 편안하고 커다랬다.
어느 순간 나는 정신이 희미해졌다——
이곳이 세상의 전부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