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장
“펑—— 펑——!”
일동
“항졔, 소구! 축하해요——!”
백기의 사무실에서 작은 축하 폭죽들이 연달아 터지자, 흩날리는 색색의 리본들이 사람들의 환호성과 함께 공중을 가득 채웠다.
특행팀과 특파팀 대원 몇 명은 쉴 새 없이 작은 폭죽을 터뜨리고 있었고, 백기는 사람들 곁에서 즐겁게 웃으며 그들이 하는 대로 내버려 두고 있었다.
그러다 사람들에게 둘러싸인 두 사람이 쑥스러움을 견디다 못했는지, 좀처럼 얼굴을 붉히는 일이 없는 항졔마저 얼굴이 새빨개졌다. 결국 그녀는 난처한 기색을 감추지 못한 채 백기의 소매를 붙잡고 억지로 사람들 한가운데로 끌어들였다.
항졔
다들 고마워요, 정말 고마워요. 하지만 오늘 생일 주인공의 주목을 뺏을 수는 없죠. 여기 백 대장님도 계시니까, 이제 다른 사람을 축하해 주세요.
백기
그렇게 말하면 안 되지. 오늘은 너희가 상을 받은 날이기도 하잖아.
백기
그것도 영광스러운 일이니까 충분히 축하받을 만하지.
그의 목소리에는 이루 말할 수 없는 자랑스러움과 뿌듯함이 가득했다. 하지만 누가 봐도 장난기가 조금 섞여 있었다.
백기의 생일인 오늘은 마침 특행팀 대원 두 명의 표창식이 열리는 날이기도 했다.
두 사람은 지난번 대형 사건에서 뛰어난 활약을 펼쳤고, 백기가 적극적으로 힘써준 덕분에 그에 걸맞은 포상을 받을 수 있었다.
백기는 축하 행사가 너무 떠들썩하고 요란해지는 것을 원치 않았기에, 표창식이 끝난 뒤 모두를 자신의 사무실로 불러 모았다.
그는 웃으며 눈썹을 살짝 치켜올리더니, 민망한 나머지 도망치려는 두 사람의 어깨를 양손으로 가볍게 눌러 꼼짝도 하지 못하게 했다.
소구
……백 대장님…… 작년에 다들 대장님 사랑한다고 외쳤을 때, 전 옆에서 부추기지도 않았어요…… QAQ
소구
……TT 그건 전부 항졔 누나가…… 무대에 올라가서 한 말이라고요……
백기
그게 무슨 뜻이지? 지금 내가 작년에 너희가 노래방에서 벌인 일 때문에 일부러 '보복'하고 있다는 거야?
항졔
백 대장님! 진짜 뒤끝 있으시네요!
백기
이젠 생일 주인공한테 '폭언'까지 하네.
백기는 억울하다는 듯 천진한 표정을 지었지만, 웃음을 필사적으로 참고 있는 것 같기도 했다.
그 모습에 옆에 있던 대원들은 더욱 신이 나서 짓궂게 놀려대기 시작했다.
나는 웃음을 참지 못하고 소리 내어 웃었다.
좋아하는 사람들 사이에서 커다란 소년처럼 웃고 있는 백기.
그리고 그를 좋아하는 사람들에게 둘러싸인 그의 모습을 바라보았다.
고진
자, 됐어! 이제 그만들 하고 다 같이 축하하자고!
다시 한번 축하 폭죽이 터지며 이루 말할 수 없는 기쁨이 사방에 넘쳐흘렀다.
결국 모두는 약속이라도 한 듯 백기를 한가운데로 밀어 넣었다.
반짝이는 색종이 조각들이 쉴 새 없이 흩날렸다. 마치 끝없이 쏟아지는 축복 같았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작은 훈장 상자 하나가 백기 앞으로 내밀어졌다.
소구
……비록 이번에 상을 받은 건 저랑 항졔 누나지만, 그 작전들은…… 백 대장님의 지휘가 없었더라면 분명 큰 인명 피해가 났을 거예요. 절대 그렇게 순조롭게 끝나지 못했을 거고요……
소구
……백 대장님은 언제나 특행팀의 명예를 위해 애써주셨잖아요. 그래서 저희도 대장님을 위해 뭔가 해드리고 싶었어요.
그렇게 말하자 항졔가 훈장 상자를 열었다.
그 안에는 직접 만든 작은 배지 하나가 은은하게 빛나고 있었다.
마치 수많은 사람의 충성심과 감사한 마음이 그 안에 담겨 있는 것 같았다.
항졔
백 대장님, 그동안 정말 고생 많으셨어요. 생일 축하드려요.
항졔
성격은 좀 까칠하시지만, 그래도 저희는 이 자리에 계신 분이 대장님이라서 정말 다행이라고 생각해요.
일동
사랑하는 백 대장님——!
모두와 나
생일 축하합니다!
이번에는 백기가 쑥스러워할 차례였다.
그는 이런 상황을 전혀 예상하지 못했는지 잠시 멍하니 그 자리에 굳어 있었다.
그러다 이내 환하게 웃었다.
백기
나도 정말 고마워. 너희가 나와 함께 여기까지 와줘서.
백기
그리고 앞으로도 너희 모두와 함께 계속 나아갈 거야.
그 말은 감사 인사라기보다, 어쩌면 결코 흔들리지 않을 굳은 맹세처럼 들렸다.
모두의 환호성 속에서 나는 백기가 미소 짓는 모습을 바라보았다.
그는 사람들 너머로 다시 한번 나와 눈을 맞췄다.
그의 온몸에서 행복이 흘러넘치는 것만 같았다.
그런데 그의 눈동자 깊은 곳에서는——
어쩐지 고요한 빛이 한 겹 가라앉아 있는 듯했다.
2장
백기
다음엔 뭘 할 예정이야?
특파팀 정문 밖으로 나오자, 백기는 사복으로 갈아입고 곧장 내 손을 잡아끌며 뛰어나왔다.
유연
선배는 뭐 하고 싶어요?
백기
나? 올해는 이런 방식이구나.
그의 입꼬리가 올라갔다. 머리 위에 삐죽 솟은 머리카락도 바람을 따라 경쾌하게 흔들렸다.
백기
내가 정하면 되는 거야? 네가 준비한 깜짝 선물을 빨리 알고 싶은데.
백기
너랑 단둘이 시간을 보내고 싶어. 네가 직접 끓여준 생일 국수도 먹고 싶고.
백기
네가 나한테 행복하라고 축복해 주는 말도 듣고 싶어. 입도 맞추고, 네 눈에는 나만 가득 담겨 있었으면 좋겠어.
그는 숨 돌릴 틈도 없이 소원을 늘어놓았다.
욕심스럽게 들리면서도 소박하기 그지없는 바람들에 내 마음까지 한없이 부드러워졌다.
하지만 나는 여전히 그의 눈을 똑바로 바라보며 손을 꼭 잡았다.
유연
좋아요. 전부 들어줄게요.
유연
그런데 정말 그게 다예요?
바람이 그의 이마에 드리운 머리카락을 살며시 흔들었다.
햇살은 유독 그에게만 다정한 듯 온몸을 감싸고, 눈동자에는 맑고 투명한 호박빛을 비추었다.
그 안에는 어떤 침묵이 고여 있었다. 하지만 동시에 무언가가 끊임없이 일렁이는 것 같기도 했다.
백기
이것까지 들켰어?
유연
제가 선배를 계속 지켜보고 있었으니까요.
백기는 미소를 거두고 깊은 눈빛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마치 내 눈을 통해 자기 자신을 들여다보는 것 같았다.
한참이 지나서야 그가 입을 열었다. 목소리에는 솔직한 마음이 고스란히 담겨 있었다.
백기
좋아, 사실은 너랑 하늘에서 바람도 좀 쐬고 싶어.
세상은 아득한 지평선을 따라 끝없이 넓게 펼쳐져 있었다.
구름은 마치 도시가 비친 또 하나의 신기루 같았다.
빽빽하게 솟아 있던 고층 건물들은 이제 작고 촘촘한 검은 점들로 변했다. 도시는 마치 축소 모형 안에 들어간 것처럼 아득하고 고요해 보였다.
드넓은 하늘과 땅 사이에서 모든 것이 끝없이 멀어지고, 그저 텅 빈 듯한 바람 소리만 남았다.
백기는 내 손을 잡고 하늘 위를 걸었다.
그러다 자꾸만 내 뒤에 매달린 풍선 다발로 시선이 향하는 듯했다.
알록달록한 색채가 흰 구름과 푸른 하늘 사이에 어우러져, 마치 하늘에 남겨진 찬란한 입맞춤 같았다.
백기
이건 아까 사무실에 장식해 둔 풍선이랑 좀 다른 것 같은데.
유연
헤헤, 선배는 관찰력이 너무 좋다니까요.
나는 웃으며 한 손으로 그의 손을 잡은 채, 다른 손에 묶인 풍선 다발을 살랑살랑 흔들었다.
유연
전부터 꼭 이렇게 선배랑 '구름 위를 산책'해 보고 싶었어요.
유연
하늘에서 풍선 다발을 손에 들고 걷는 거, 정말 낭만적이고 꿈같지 않아요~?
구름이 천천히 떠다니며 나타났다 사라지기를 반복했다.
마치 세상의 모든 시선을 가려주는 것 같았다.
우리는 손을 맞잡고 그 사이를 느긋하게 걸었다.
하늘과 땅이 한없이 고요하고 텅 비어 있어, 이 세상에 오직 나와 백기 둘만 남은 것 같았다.
어쩌면 우리는 이미 우리 둘에게만 허락된 또 하나의 비밀스러운 세계를 거닐고 있는지도 몰랐다.
백기는 눈앞의 풍경을 조용히 바라보았다.
바람이 그의 몸을 떠받쳤고, 그는 나를 품에 안은 채 긴 숨을 내쉬었다.
유연
무슨 생각 해요?
그의 눈동자에 구름 그림자가 어른거리며 고요하고 순수한 공백을 드리웠다.
백기는 고개를 들어 한참 동안 진지하게 생각했다.
마치 지금 자신의 감정을 정확히 표현할 말을 찾으려는 것 같았다.
오랜 침묵 끝에 담담한 목소리가 귓가에 들려왔다.
백기
뭐랄까…… 현실 같기도 하고, 현실이 아닌 것 같기도 해.
백기가 이렇게 모호한 말을 하는 건 드문 일이었다.
나는 눈을 깜빡이며 그를 깊이 바라보았다.
유연
예전에도 그런 기분을 느낀 적 있어요?
백기
있긴 했어. 자주는 아니지만.
그는 바람을 일으켜 우리의 다리를 부드럽게 떠받치더니, 내 손을 잡아끌어 구름 속에 더욱 느긋하게 드러누웠다.
백기
그럴 때면 이렇게 누워 있곤 했어. 사실…… 나도 내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햇빛이 이따금 구름 사이를 뚫고 들어와 그의 얼굴에 부서졌다.
그때마다 그의 얼굴에는 밝은 빛과 그림자가 번갈아 드리워졌다.
백기는 내 시선을 느끼고 고개를 돌렸다.
그의 숨결은 마치 내 곁을 스치는 또 하나의 바람 같았다.
깊은 옥빛처럼 그윽한 호박색 눈동자가 내 눈에 비쳤다.
그 안에는 말로 다 표현할 수 없는 수많은 이야기가 오랫동안 쌓여 있는 것 같았다.
나는 저도 모르게 그의 뺨을 어루만지고 몸을 기울여 이마와 눈가에 입을 맞췄다.
유연
그냥 누워 있기만 하는 건 아니겠죠.
그는 나를 바라볼 뿐, 한동안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하늘과 땅 사이에는 오직 구름과 바람만이 남아 있었다.
백기
아주 가끔은…… 바람을 멈추기도 해.
긴 침묵 끝에 그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햇살이 그의 눈동자에 내려앉았다.
마치 감춰두었던 무언가가 빛 속에 드러난 것 같았다.
나는 조용히 그의 시선을 마주했다.
잠시 멍해진 채, 그 대답에 담긴 의미를 무의식적으로 곱씹었다.
서로를 끌어안은 품 안에서 단단한 심장박동이 울려 퍼졌다.
그 심장박동도 때로는 공허한 외침과 같은 것이었을까.
하지만 그의 바람이 멈추는 순간에도, 그를 떠받치는 바람은 결국 그 자신이 일으켜야 했다——
지난 수많은 순간이 그랬듯, 그는 언제나 스스로를 붙잡고 이를 악문 채 앞으로 나아가야 했다.
눈앞의 백기를 바라보자 나도 모르게 눈시울이 뜨거워졌다.
유연
……지금도 그런가요?
그는 대답하지 않았다.
그저 내 손을 더욱 힘주어 잡았다. 마치 그것이 또 하나의 말없는 대답인 듯했다.
나는 그의 눈을 바라보며 미소를 지었다.
유연
그럼…… 지금 한번 선배의 바람을 멈춰보는 건 어때요?
백기가 무언가 말하려는 순간, 나는 손가락 끝을 그의 입술에 가져다 댔다.
그는 잠시 놀란 듯했다. 입을 벌리는 모습이 본능적으로 거절하려는 것 같았다.
유연
저 믿죠?
백기
당연히 믿지.
백기는 그녀의 눈을 바라보았다.
심장이 쉴 새 없이 빠르게 뛰는 것이 느껴졌다.
그는 알고 있었다.
이렇게 행복해야 할 날에, 이런 분위기에는 어울리지 않는 이야기를 꺼내서는 안 된다는 것을.
그런데도 그녀에게는 말하고 싶었다.
그저 눈앞의 그녀가 너무나도 소중하고 아름다워서, 손을 잡고 끝없이 위로 올라가고 싶었다.
더 넓고 아름다운 곳으로 함께 나아가고 싶었다.
그런데 그녀는 바람을 멈추라고 했다.
그다음에 무슨 일이 일어날지 모르는 걸까?
아니면 무슨 일이 일어나더라도 기꺼이 받아들이겠다는 걸까?
그녀가 그럴 사람이라는 건 알고 있었다.
이미 여러 번 자신에게 증명해 보였으니까.
그런데도 지금 이 순간에는 말로 표현하기 어려운 망설임이 남아 있었다.
하지만 그녀의 눈빛은 너무나도 끈기 있고 다정했다.
마치 자신을 떠받쳐 주는 또 하나의 바람 같았다.
형언할 수 없는 용기와 충동이 마음속을 가득 채웠다.
온몸이 가볍게 떠오르는 듯했다.
어쩌면 그는 이미 오래전부터 그녀만의 바람 속에 있었는지도 몰랐다.
그렇게 생각하자 저도 모르게 웃음이 났다.
심장은 이미 자신의 것이 아닌 것만 같았다.
결국 백기는 넘치는 마음을 참지 못하고 그녀에게 입을 맞췄다.
백기
난 널 믿어.
백기
그리고 나도 그러고 싶어.
그렇게 그는 그녀의 손을 꼭 잡았다——
바람이 소란스러운 움직임을 멈췄다.
햇빛이 구름을 뚫고 그녀의 등 뒤로 쏟아져, 온몸이 빛나는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예전처럼 아래로 추락하는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그의 눈에 들어온 것은 긴장하면서도 자랑스러운 표정으로 풍선 다발을 힘껏 움켜쥔 그녀였다.
그녀가——
그를 붙잡아 주고 있었다.
3장
백기가 멍하니 바라보는 모습을 보자 나도 모르게 더욱 의기양양한 미소가 지어졌다.
긴장한 탓에 오른손이 가늘게 떨렸고 손가락을 펼 때도 조금 뻣뻣하긴 했지만.
내 손에 들린 풍선들은 수없이 반복했던 훈련에서처럼 사방으로 펼쳐지며 우리 주위를 에워쌌고, 나와 백기의 몸을 떠받쳐 공중으로 띄워 올렸다.
나는 눈을 크게 뜬 백기 앞에서 조금 허둥거리면서도 계획대로 숨겨두었던 축하 풍선들을 꺼내 함께 하늘에 풀어놓았다.
모두가 연결 줄을 꼼꼼하게 달아주었지만 높은 곳에서 부는 바람 때문에 풍선 몇 개는 날아가 버렸다.
알록달록하고, 눈부시고, 자유로우면서도 조금은 제멋대로인 풍경이었다.
광활한 하늘과 도시 사이에서 한없이 작지만 뜨겁게 빛나는 모습은 마치 생명이 처음 태어나는 순간 같았다.
그 찬란한 빛깔들이 백기의 눈동자에도 고스란히 물든 듯했다. 백기 역시 나를 바라보며 바보처럼 환하게 웃기 시작했다.

유연
계획이랑 조금 달라지긴 했지만, 그래도 하늘에서 선배한테 두 번째 축복을 전해주고 싶었어요.
나는 웃으며 그의 손을 잡고 품에 기대었다.
유연
저한테는 하늘을 날 수 있는 힘이 없지만, 다른 대단한 사람들의 도움을 받아 제 날개를 만들 방법은 찾을 수 있잖아요.
유연
지금까지는 언제나 선배가 저를 데리고 날아줬지만 저도 선배에게 힘이 되어줄 수 있다는 걸 알려주고 싶었어요.
맑고 투명한 하늘은 형형색색의 축복으로 가득했다.
끝없이 펼쳐진 세상의 자유를 바라보며 나는 욕심스럽게도 그 모든 것이 백기의 것이 되기를 바랐다.
유연
그러니까 바람이 멈추더라도 걱정하지 마요. 제가 선배를 꼭 붙잡아 줄 테니까요. 수많은 사람들과 이 세상 모두와 함께 선배를 붙잡아 줄게요.
유연
그리고 언제까지나 선배 곁에 있을 거예요.
그 순간, 아름다운 눈동자 깊은 곳에서 차마 말로 표현하지 못한 수많은 감정이 격렬하게 일렁이는 듯했다.
백기는 몇 번이나 입술을 달싹이다가 결국 그 모든 말을 끝없이 이어지는 입맞춤으로 대신했다.
그러고는 몸을 가볍게 뒤로 뉘었다.
마치 더욱 자유로워진 듯 푸른 하늘에 자신의 몸을 온전히 맡겼다.
사랑과 축복의 마음이 담긴 풍선들이 우리 주위에 떠올라 그를 떠받치고 있었다.
마치 백기에게 또 하나의 날개가 생긴 것 같았다.
백기
이렇게 해도 되는 거였구나.
유연
어떤 방식이든 괜찮아요.
그러자 백기는 호기심 어린 대담한 모습으로 나를 이끌었다.
우리는 마치 하늘과 땅 사이에 펼쳐진 또 하나의 세상을 발밑에 두고 걸어갔다.
마치 온 세상의 품에 누워 있는 것 같기도 했고 수많은 사랑이 열어준 새로운 세상을 거닐고 있는 것 같기도 했다.
백기
그럼 네가 나를 데리고 착륙해 줄 수도 있어?
유연
물론이죠.
나는 그의 뺨에 입을 맞추고, 훈련하며 익혔던 경로를 따라 손을 잡고 하늘 저편을 향해 달려갔다.
부력 풍선들이 바람을 거스르며 우리 곁을 에워싸 준 덕분에 나는 백기를 데리고 천천히 산비탈 위로 무사히 내려설 수 있었다.
아름다운 꽃밭 위에는 커다란 라일락 나무가 꽃을 활짝 피우고 있었다.
꽃잎들이 바람에 가볍게 흩날렸고 부드러운 자줏빛과 분홍빛이 하늘 끝까지 물들였다.
백기는 고개를 숙여 발밑의 땅을 내려다보았다.
바람이 그의 머리칼을 흔들었고 그에 이끌리듯 주변을 한 바퀴 둘러본 시선은 마지막으로 내게 머물렀다.
백기
꽤 능숙하네. 연습을 여러 번 했나 봐.
나는 입꼬리를 올리고 만족스럽게 고개를 살랑살랑 흔들었다.
유연
선배가 좋아할 만한 걸 선물하고 싶었어요. 선배가 보는 세상에 조금이라도 더 가까이 다가가고 싶었고요.
유연
선배를 알아갈수록 제가 주는 선물도 선배 마음에 더 들게 되는 것 같거든요.
유연
그래서 훈련을 시작하기 전에 먼저 알고 싶었어요. 선배가…… 아니, 혼자 높은 하늘에 있을 때는 어떤 기분인지요.
백기
……어떤 기분이었어?
유연
자유로웠어요. 하지만 동시에 너무 무서웠어요.
나는 고개를 돌려 백기를 바라보았다.
그 눈빛에는 솔직한 마음과 함께 애틋함이 가득 담겨 있었다.
높은 하늘에서는 세상이 끝없이 넓게 펼쳐져 어디든 갈 수 있을 것 같았다.
하지만 모든 곳이 너무 높고 멀어서 그 어디에도 진정으로 내가 속한 자리는 없는 것 같았다.
그리고 나를 떠받치는 힘이 사라진다면 다시 추락해 산산조각이 나고 말겠지.
그런데도 심장박동은 또렷하게 들렸다.
바람 소리도, 우주의 소리도 들렸다——
내가 살아 있다는 소리가 들렸다.
유연
그 순간, 선배가 왜 바람을 멈출 수 없었는지 조금은 알 것 같았어요.
유연
선배는 자기 자신뿐만 아니라 정말 많은 사람들과 수많은 일들을 짊어지고 있으니까요.
유연
선배는 언제나 최선을 다하면서 힘겹게 살아왔잖아요. 단 한 번의 실수도 허락되지 않는 일을 계속해 온 거예요.
세상이 사각사각 소리를 내며 흔들리고, 가벼운 꽃잎들이 바람에 흩날렸다.
그 속에 서 있는 백기의 모습이 어쩐지 아련하면서도 아름다워 보였다.
백기
……임무에 성공하면 정말 기뻐.
너무 많은 감정이 목을 메이게 한 것일까. 그의 목소리는 조금 잠겨 있었다.
백기
다들 훈장을 받았을 때도 기뻤어.
백기
모두가 살아 있고, 나도 살아 있어. 다들 내 생일을 축하해 주고, 네가 내 곁에 있고…… 이 모든 게 정말 기뻐.
유연
하지만 기쁘기만 한 건 아니죠?
백기
임무를 수행할 때마다…… 많은 사람의 얼굴을 보고 있으면 나도 모르게 이런 생각을 하곤 해……
백기
'이번에도 실패하지 않았구나.'
'성공했다'가 아니라 '실패하지 않았다'는 생각.
기쁨에는 무게가 실려 있었다.
때로는 그 기쁨마저 확신할 수 없는 모습으로 다가와 바보처럼 이 행복을 솔직하게 받아들여도 되는지 고민하게 만들었다.
서툰 어린아이는 여전히 어떻게 해야 마음 놓고 행복해할 수 있는지 모르는 것 같았다.
그래서 어찌할 바를 모르면서도 겉으로는 담담한 채, 모든 의심과 불안을 혼자 삭여낼 수밖에 없었다.
그는 너무나 많은 사람을 떠받치고 있었고, 너무 오랫동안 혼자 압박감을 짊어진 채 걸어왔다.
이제는 마음 놓고 안도할 수 있는 시간마저 유효기간이 정해져 있는 듯했다.
백기
솔직히 예전에는 이런 마음을 인정할 용기가 없었어. 이게 사실은 굉장히 나약한 모습이라고 생각했거든.
백기
어쩌면 바람을 멈췄을 때도 그런 내 모습을 마주하지 않으려고 애쓰고 있었던 건지도 몰라.
백기
내가 겁이 나고 두렵다는 걸 인정하고 싶지 않았어.
백기
임무가 끝나면 기쁜 마음보다 안도하는 마음이 더 크다는 것도 인정하고 싶지 않았고.
이제 내 목숨은 더 이상 나 혼자만의 것이 아니야. 그래서 때로는 살아 있다는 걸 축하해야 할지, 그저 다행이라고 여겨야 할지조차 모르겠어.
백기는 자신의 마음을 솔직하게 털어놓으며 씁쓸한 미소를 지었다.
그러면서도 이내 시원스럽게 고개를 들어 내 눈을 똑바로 바라보았다.
가슴이 먹먹해졌다.
안쓰러운 마음과 자랑스러운 마음 중 어느 쪽이 더 큰지 알 수 없었다.
하늘 끝과 흩날리는 꽃잎들이 어우러져 부드러운 빛깔로 번져갔다.
그리고 바람이 다시 대지를 스쳐 지나갈 때, 백기의 목소리도 한층 더 단단해졌다.
백기
하지만 이런 나라도 오늘 여기까지 무사히 왔어. 내가 해야 할 일을 해냈고, 사랑하는 사람들도 지켰어.
백기
그리고 난…… 그 덕분에 내가 되고 싶었던 사람이 될 수 있었어.
백기
그러니까 후회하지 않아.
하지만 그는 잠시 말을 멈췄다.
백기
……이런 내가 너한테 부담이 되지는 않을까?
유연
그럴 리가요. 저는 선배가 이런 사람으로 태어나 이 세상에 와줘서, 그리고 제 곁에 와줘서 정말 다행이라고 생각해요.
나는 기꺼운 마음으로 두 손을 뻗어 그의 얼굴을 감쌌다.
유연
선배는 언제나 이 모든 걸 당연하게 생각한다는 거 알아요.
유연
하지만 저도 말해주고 싶어요. 이 모든 건 결코 쉬운 일이 아니고, 정말 대단한 일이라는 걸요.
유연
선배가 그런 사람이기에 제 세상도 이렇게 눈부시고 아름다워질 수 있었어요.
나는 백기의 손을 잡고 산비탈 아래로 걸어가기 시작했다.
유연
그러니까 걱정하지 마요.
유연
앞으로는 어떤 길이든 제가 선배를 이끌어 줄 때도 있을 테니까요.
4장
산비탈 아래에는 고요한 호수가 잔잔하게 펼쳐져 있었다.
미리 꾸며놓은 뗏목 위로 뛰어올라 백기를 돌아보자 그는 또다시 놀란 듯 멍하니 있다가 이내 웃음을 터뜨렸다.
작은 배는 그리 크지 않았다. 내가 정성껏 준비한 장식들까지 더해져 조금 비좁을 정도였다.
그래서 백기가 내가 내민 손을 잡고 배 위로 뛰어올랐을 때는 뗏목이 살짝 흔들리기까지 했다.
일렁이는 빛무리가 그의 얼굴 위로 내려앉았다. 생기 넘치는 그 모습에 나도 모르게 눈을 가늘게 휘며 웃었다.
백기
너 지금 나 보고 웃는 것 같은데.
유연
아니에요. 그냥 선배가 귀여워서요.
나는 입꼬리를 올리며 그의 손을 잡아당겨 내 옆에 바짝 붙어 앉혔다.
유연
그럼 우리 출발합니다~
나는 노를 들어 천천히 뗏목을 호수 한가운데로 저어갔다.
멀리서는 은은한 분홍빛과 푸른빛이 서로 어우러져 밤하늘과 떠다니는 구름 사이를 물들이고 있었다. 마치 아름다운 유화 한 폭 같았다.
부드러운 빛무리가 백기의 얼굴에 내려앉자 평소 유난히 냉철해 보이던 그의 얼굴도 한없이 다정하게 느껴졌다.
달빛은 맑고 환했다. 별들 사이에 걸린 보름달은 마치 또 하나의 온전한 축복 같았다.
우리는 그렇게 서로에게 조용히 기대어 있었다. 세상이 한없이 길고 아득하게 펼쳐지는 듯했다.
모든 것이 평온했고 이따금 산들바람만이 스쳐 지나갔다.
호수와 보름달 사이에는 오직 우리의 작은 배만이 남아 있는 것 같았다. 마치 온 우주에서 유일하게 발 디딜 수 있는 곳처럼.
백기
계속…… 이렇게 너랑 함께 있고 싶어.
유연
언제까지나 이렇게 있어도 돼요.
나는 웃으며 작은 케이크를 탁자 위에 올려놓고, 백기의 머리에는 생일 모자를 씌워주었다.
부드럽게 일렁이는 촛불이 호박색 눈동자에 비쳤다. 마치 그 안에 오랫동안 응어리져 있던 수많은 감정까지 함께 밝혀주는 듯했다.
유연
생일 축하해요. 내가 세상에서 제일, 제일, 제일 좋아하는 백기.
유연
선배가 언제나 용감하고 강한 사람이라는 건 알아요……
유연
하지만 가끔은 이런 생각이 들어요. 바람이 멈췄을 때, 사실 선배가 서 있는 곳이 단단한 땅이 아닐 수도 있지 않을까 하고요.
유연
어쩌면 물 위일 수도 있고, 늪이나 진흙탕 같은 곳일 수도 있겠죠.
유연
그래서 많은 순간 위태롭게 흔들리면서도, 발밑이 얼마나 깊은지조차 알 수 없었던 건 아닐까요?
촛불을 머금은 그의 눈동자가 아주 미세하게 움츠러들었다.
하지만 백기는 시선을 피하지 않았다. 마치 어떤 답을 찾으려는 듯 조용히 나를 응시할 뿐이었다.
백기
……만약 그렇다면, 난 어떻게 해야 할까?
유연
제 곁으로 돌아와요.
유연
무슨 일이 생기더라도 꼭 제 곁으로 돌아오려고 해줘요.
백기의 눈이 살짝 커졌다.
나는 흔들림 없는 눈빛으로 그를 마주 바라보았다.
유연
저도 이 세상에서 선배가 마음 놓고 쉴 수 있는 자리를 만들어 주려고 노력할게요.
유연
예전에는…… 선배가 언제나 '백기'로 있어 주길 바랐어요. 하지만 잊고 있었어요. 선배는 단지 '백기'만이 아니라는 걸.
유연
선배는 백 대장이기도 하고, 백 지휘관이기도 하잖아요. 수많은 사람의 이상이자, 그들이 마음속으로 바라고 의지하는 사람이기도 하고요.
나는 그의 손을 두 손으로 부드럽게 감싸 쥐고 이마를 맞댔다.
유연
제가 선배의 부담을 전부 없애줄 수는 없겠지만, 적어도 바람이 불지 않는 순간에도 선배가 안심할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
그의 눈동자가 바로 눈앞에 있었다.
그 안에 내 모습이 온전히 담겨 있었다. 마치 세상은 처음부터 이런 모습이었던 것처럼.
백기
너 그런 말 하면 안 돼.
유연
왜요?
백기
그렇게 말하면…… 이제 나 혼자서는 애쓸 수 없게 되잖아.
백기
이제 너 없이는 안 되게 되니까.
유연
전 원래 그러길 바랐는걸요.
유연
그러니까 그런 걸 소원으로 빌면서 '낭비'하지 않아도 돼요. 저는 반드시 선배 곁에 있을 테니까요.
유연
앞으로는 자기 자신도 좀 더 소중하게 아껴주는 법을 배워요. 알았죠?
백기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저 나지막이 웃더니 이내 얌전히 눈을 감았다.
그 순간 달빛은 맑고 환했고, 바람마저 고요해졌다.
마치 온 우주가 그의 마음에 귀를 기울이고 있는 것 같았다.
나는 부드러운 촛불을 바라보다가 저도 모르게 눈을 감고, 마음속으로 내가 사랑하는 그를 위해 기도했다.
세상이 그가 세상을 사랑하는 만큼 그를 사랑해 주기를.
그리고 나에게도 언제까지나 행운과 용기가 함께하여, 해마다 그의 곁에서 함께할 수 있기를.
한참이 지나서야 백기가 천천히 눈을 떴다.
백기
소원을 정말 많이 빌었어. 이렇게 많이 빌어본 건 처음이야.
유연
그럼 정말 행복한 일이네요~ 앞으로 그렇게 많은 소원이—— 전부 이루어질 테니까요.
백기
정말 다 이루어질까?
유연
그럼요. 반드시 이루어질 거예요.
백기가 촛불을 불어 끄는 순간, 또 하나의 새로운 여정이 시작되는 것 같았다.
그리고 나는 믿었다.
그 순간이 더 많은 행복이 새롭게 태어나는 시작이기도 하리라는 것을.
유연
자~ 이제 선물을 드릴 시간이에요.
나는 구석에 미리 숨겨두었던 기타를 꺼내 뿌듯한 마음으로 그에게 건넸다.
유연
여름에 선배가 괜찮은 기타가 하나도 없다고 했었잖아요. 그래서 친구들한테 여기저기 물어보다가 마침내 이걸 찾았어요.
유연
앞으로 저한테 더 많은 곡을 연주해 줘야 해요~
나는 당연히 백기가 깜짝 놀랄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는 그저 눈을 살짝 가늘게 떴다. 마치 이미 알고 있던 무언가를 조심스럽게 확인하는 듯했다.
유연
……응? 왜 하나도 안 놀라요?
백기는 웃었다.
그의 손가락이 기타 줄을 가볍게 튕기자 고요한 달밤에 느긋한 선율이 몇 음 흘러나왔다.
백기
그거 알아? 사실 널 처음 만났을 때는 언젠가 네가 내 사람이 될 거라고는 생각도 못 했어.
백기
네가 이렇게 나를 위해 모든 걸 준비해 주고, 그런 말들을 해주고, 이렇게 내 곁에 있어 줄 거라고도 생각하지 못했지……
백기
나한테 '생일 축하해'라고 말해줄 거라는 것도.
그는 내 질문에 대답하는 대신 뜻밖의 이야기를 꺼냈다.
나는 잠시 멍해졌다.
백기
그런데 지금은 달라.
백기
이 기타처럼 말이야. 이제는…… 수많은 아름다운 것들과 날 행복하게 해주는 것들이 하나둘 내 것이 되어가는 것 같아.
백기
네가 그런 것들을 나한테 가져다줄 거라는 걸 알아.
백기
내가 행복하길 바라니까.
빛과 그림자가 그의 주위를 부드럽게 감돌았다.
그 속에 앉아 있는 백기는 더없이 편안하고 행복해 보였다.
유연
맞아요. 저는 선배가 언제까지나 행복했으면 좋겠어요.
그렇게 말하며 나는 마지막 선물을 꺼냈다.
은색 인식표 목걸이가 빛을 받아 잘게 반짝였다.
그 빛이 백기의 호박색 눈동자에 내려앉자, 그는 순간 숨을 멈췄다.
유연
헤헤, 이건 선배한테도 익숙한 물건이죠? 그래도 제가 특별히 제작한 거예요.
나는 두 개의 은색 인식표를 손바닥 위에 올려놓고 웃으며 그를 바라보았다.
유연
이건 주 인식표예요. 여기에는 선배 이름이 새겨져 있고, 이 보조 인식표에는 제 이름이 새겨져 있어요.
유연
선배에게 주는 선물이지만, 이걸 받아주면 이제 선배의 일부도 제 것이 되는 거예요.
마치 선배가 받는 또 하나의 훈장처럼, 나와 선배가 맺는 또 하나의 약속이기도 했다.
유연
선배도 무섭고 두려울 때가 있다는 걸 알아요. 아무 말도 하지 못하거나 고개를 숙이게 되는 순간도 많겠죠.
유연
하지만 그럴 때는 제가 선배를 지탱해줄게요. 지금 우리를 떠받치고 있는 이 뗏목처럼, 언제든 돌아올 수 있는 곳이 되어줄게요.
유연
선배, 생일 축하해요. 제가 선배의 가족이 되어줄게요.
나조차 놀랄 만큼 목소리가 조금 떨리고 있었다.
하지만 나는 진지한 눈빛으로 백기를 똑바로 바라보았다.
유연
이 선물, 받아줄래요?
마치 온 세상이 그 순간 숨을 멈추고, 우리를 바라보며 이 약속을 지켜보는 것 같았다.
백기는 나를 가만히 응시했다.
몇 번이나 입술을 달싹였지만, 끝내 한마디도 꺼내지 못했다.
그러다 마침내 미간을 살짝 찌푸린 채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조금 숙였다.
백기
네가…… 직접 걸어줬으면 좋겠어.
가슴속에서 심장이 쉴 새 없이 요동쳤다.
나는 조심스럽게 목걸이를 들어 그의 목에 걸어주었다.
백기는 가슴 앞에 놓인 은색 인식표를 꼭 움켜쥐었다.
마치 맹세와 함께 뛰는 또 하나의 심장을 붙잡은 것처럼.
유연
백기, 선배는 분명 자신이 사랑하는 모든 모습의 사람이 될 수 있을 거예요.
끝없이 이어질 것 같던 수많은 말들은 진심 어린 입맞춤으로 바뀌었다.
그리고 서로를 더욱 세게 끌어안는 포옹으로 이어졌다.
백기
그건 분명…… 네 사랑을 받게 됐기 때문일 거야.